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02화 (102/313)

[102]

왈왈! 멍멍!

둘이 싸우는 이야기를 요약하면 대충 저랬다. 우리는 신나게 개싸움을 벌이고 있는 둘에게서 빠르게 관심을 끄고, 난로 앞에서 손을 비비고 있는 할머니를 향해 다가갔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고생이 칼날처럼 지나간 흔적이 가득했고, 허리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반쯤 굽어 있었다.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물었다.

‘할머니, 여기 오신 거 가족분들이 다 아세요?’

‘다 죽고 없어.’

할머니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 순간 노인의 얼굴이 굳어졌고, 내 손에는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모든 걸 놓은 듯 허탈해 보이는 할머니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일단 나는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타와 할머니에게 내밀었고, 담요 한 장도 챙겨와 덮어 주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살며시 숙이며 감사 인사를 보내왔다. 난 그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내 옆에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지만 노인도 마땅한 생각이 나지 않는지, 아련한 눈빛으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나처럼 많은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할머니가 종이컵을 내려놓으며 나를 불렀다.

‘총각들.’

‘네?’

‘총각들이 부랑자들인가 그거 잡는 사람들 맞지?’

처음에는 치매나 장소를 잘못 알고 들어오신 줄 알았다. 하지만 난로 앞에 얌전히 앉아 있는 할머니는 이곳이 부랑자 탐색조 사무실이고, 무슨 임무를 진행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또한, 부랑자라고 말하는 부분에선 종이컵을 들고 있는 손을 덜덜 떨기까지 했다.

‘부랑자들이 그 사람 잡아먹는 놈들 맞잖아, 그치?’

한순간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왜냐하면,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사무치는 원한과 고통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참 싸우던 여학생과 용팔이는 고함을 멈췄고, 각자 할 일을 하던 사람들도 행동을 멈추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말을 이어갔다.

‘……식권 안 줘도 돼. 그냥 하라는 일만 종놈처럼 할 테니까. 제발 그놈들 상판만……. 그 육시랄 놈들 상판대기만 좀 보여줘, 응?’

피해자는 당연히 있었고, 그 피해자가 남긴 인연도 아직 남아 있었다. 난 그놈들을 향한 역겨움이 새삼 몰려와 입을 다물었고, 나머지 일행들도 눈치를 보며 말을 아낀다. 하지만 노인만은 살며시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누구요?’

그 짧은 말에 함축된 뜻을 단번에 알아챈 할머니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손자랑 우리 며느리.’

희생된 사람, 그리고 남은 이. 그녀는 복수마저 하지 못하는 그 늙은 육신을 탓하며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무섭지 않을까? 복수는 가능할까? 끊지 못해 이어가는 삶 속에 이어지는 고통. 아마 우리가 붙인 공모문이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기회였을지도 몰랐다.

입안이 씁쓸했다. 이 종말은 힘없고 온화해 보이는 늙은이마저 복수를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난 쓴 침을 입안에서 굴리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노인은 손을 뻗어 할머니의 어깨를 조심히 어루만졌다. 그리고 잠시 뒤를 돌아보며 나와 눈을 마주쳤고, 이내 일행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무언의 허락을 구했다. 반대하는 인원은 당연히 없었고, 내가 노인을 대신해 대답했다.

‘오늘부터 출근하실래요?’

우리를 등지고 난로를 바라보고 있던 할머니는 어깨를 떨며 눈물을 흘렸다.

* * *

할머니, 아니 그러니까 김복자 할머니는 사실상 현장투입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사무직을 하실 수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조금 버거워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난감한 상황 앞에 우리는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 정답을 찾지 못했다.

시간을 공친 우리는 일단 밥이나 먹고 하자는 마음에 서둘러 배급을 받아왔다. 모든 일행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 쪽으로 모였고, 익숙한 듯 식사준비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순간 뜻하지 않게 김복자 할머니의 특이한 능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김복자 할머니는 사무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셨다. 그리고 어느 샌가부터 탁자 한가운데에 있는 큰 지도를 살펴보고 계셨는데, 내가 뭔가 싶어서 다가가 보니 할머니는 품속에서 돋보기안경을 꺼내어 지도 위에 주소가 틀리거나 오류가 있는 곳을 전부 하나하나 고쳐 주고 계셨다.

내가 경악할 만큼 세세하셨고, 심지어 어떤 건물에는 무슨 상가가 있는 지까지 다 알고 계셨다. 말 그대로 이 동네는 할머니의 홈그라운드였던 것이다. 그 특기를 발견한 순간 난 번쩍 드는 생각과 함께 손뼉을 마주쳤고, 서둘러 달려온 노인도 할머니를 보며 경악했다.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가 싫으셨는지 한 10년 전부터 폐지를 줍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 동네에 폐지가 없는 날은 옆 동네까지 부지런히 걸어 다니셨고, 골목을 누비던 그 경험이 쌓이고 쌓여 지금은 모든 길을 기억하게 되신 것이었다.

육신은 늙고 주름은 늘었지만, 아직도 총명한 정신을 유지하시던 할머니는 이런 게 정말 도움이 되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한참을 상의하던 노인과 나는 김복자 할머니가 내정될 포지션은 만장일치로 결정할 수 있었다.

일단 난 김혜정을 불러 할머니에게 무전기 사용법을 알려드리라고 지시했다. 김복자 할머니는 그동안 김혜정이 탐색조에서 해 왔던 일을 하게 될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 위성이 되어 우리의 귀와 눈이 되어 줄 것이다. 난 할머니에게 그간 써온 기록들을 전부 공개해 주었다.

물론 기록을 받고 무전기 사용법을 배우시는 할머니는 어딘가 어색해 보였지만, 지속적인 훈련으로 금방 익숙해지실 거라 믿고 있다. 정신없이 손과 눈을 움직이는 할머니는 힘든 것 같으면서도 얼굴에는 묘한 미소를 담고 계셨다.

* * *

할머니 문제는 해결했으니 다음으론 미성년자 두 명을 해결할 차례다. 하지만 뒤를 돌아봤을 때는 이미 용팔이가 여학생에게 암바가 잡혀 바닥을 격렬하게 치고 있었다. 새로운 막내가 들어와 신나 하던 그 기세는 어디 갔는지 용팔이는 으아 고함을 내뱉고 있었다.

‘그만해.’

난 용팔이가 반쯤 죽어가려고 할 때 나지막이 여학생을 불러 행동을 멈추게 했다. 그러자 앙칼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여학생은 거칠게 암바를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팔이는 여학생에게 당한 게 서러운지 꺽꺽거리며 두식이를 향해 달려갔다. 난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고, 여학생과 그 주변에 앉아 있는 남학생에게 물었다.

‘학생들 아니야?’

에덴에선 모든 미성년자가 학교에 간다. 우리가 보살피고 있는 저학년 아이들은 물론이고 각각 고등학생, 중학생인 이연경과 오혜연도 같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무엇을 배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학교라는 걸 유지하는 이 시스템이 내가 에덴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아무리 봐도 이 두 명은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처럼 보였다.

‘왜요? 아저씨도 꼰대 짓 하게요?’

학교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여학생의 눈이 반항적으로 변했고, 이내 상처 입은 고양이처럼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꼰대? 난 한순간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억해내기 위해 수염이 자란 턱을 만지며 잠시 아이를 바라봤다.

‘……학교로는 안 가요.’

그리고 그 순간 한쪽에서 가만히 바닥만을 내려다보던 남학생이 소심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생각해 보니 이 두 사람은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종말 전에도 같은 학교에 다녔던 것일까? 난 곤란함을 느끼며 노인을 바라봤다.

하지만 내 시선을 받은 노인은 입을 다문 채 묘한 눈빛으로 그 둘을 바라봤다. 호기심? 친숙함? 혹은 동정? 워낙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지라 난 노인의 의도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노인이 아무 말도 없자 난 그 둘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가장 먼저 들어야 할 것은 이곳에 온 이유였다. 아무리 세상이 망했다지만, 성인이 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부랑자와 괴물들을 잡자고 말할 수는 없었다. 사람을 죽이고, 자신이 죽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 큰 성인도 힘든 마당에……. 이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 물음에 여학생은 갑자기 분한 얼굴로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자존심이 상한 걸까? 그냥 이유를 물어봤을 뿐인데 생각보다 싸늘한 반응이다. 하지만 한쪽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학생은 여학생과 다르게 침착한 태도를 보이며 나를 향해 말했다.

‘학교로 돌아가기 싫어요.’

그러자 내 옆에 있던 노인이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왜?’

남학생은 대답하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불안하게 떨리는 다리, 힘을 주고 있는지 새하얗게 변한 주먹은 이 아이의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만 있던 여학생이 상처 입은 맹수처럼 우리를 향해 외쳤다.

‘다 똑같아!’

참 알다가도 모를 아이들의 속. 내가 이유를 물어보는 행위가 자신들을 다그치는 행동인 줄 착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어이없게도 여학생은 그 외침과 동시에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대장이야? 싸움 잘해? 나를 만나자마자 그렇게 물어본 이유가 이것인 걸까? 난 앙탈이려니 생각하고 얌전히 아이를 받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리로는 암바를 당하던 용팔이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여학생의 자세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위험을 감지한 신경은 눈치 없이 경종을 울려왔고, 내 근육은 본능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내 몸체를 때리거나 밀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여학생은 분명 내 손과 팔을 노리고 있었다. 아, 그라운드 기술? 이거 혹시 주짓수인가? 난 깜짝 놀라며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집념 가득한 눈빛은 포기를 모르고 불타고 있었다.

팔이나 머리를 잡히면 안 된다. 난 본능적으로 그놈들을 상대할 때처럼 이 여학생을 상대하고 있었다. 나를 잡으려는 손을 자연스럽게 피하고, 최대한 몸의 접촉을 피한다. 그리고 세상이 느려지기 시작했고, 내 손은 기습적으로 그녀의 목을 잡았다.

컥.

자세가 무너진 순간 그녀의 다리를 걸어 하반신의 중심을 무너트린다. 그리고 목을 잡은 팔에 힘을 줘 그대로 바닥을 향해 밀쳐 내버린다. 아마 마지막에 힘을 줬다면, 여학생의 몸체가 바닥으로 내리꽂혔을 것이다.

쿵!

‘엄마야!’

아이가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저쪽에서 김혜정이 비명을 내뱉는다. 2초 만에 모든 상황이 끝이 났고, 난 땀을 삐질 흘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나도 모르게 아이를 상대로 힘을 쓴 몹쓸 어른이 되고 말았다.

모두가 경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고, 유일하게 용팔이만이 나를 응원했다.

‘꼴~ 좋다!!!’

* * *

마지막에 힘 조절을 했기에 큰 상처는 입지 않았다. 하지만 여학생은 바닥에 부딪힌 등이 아픈지 한참을 끙끙거리며 바닥을 뒹굴었고, 결국 김혜정과 강 형사가 다가와 그녀를 일으켜 한쪽 구석에서 얌전히 누워 있게 해 줬다.

아까부터 겁에 질려 있던 남학생은 내가 여학생을 바닥에 넘어트리자 더 긴장한 얼굴로 다리를 떨고 있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지만, 그래도 물어봐야 할 게 많았기에 난 떨고 있는 남학생을 진정시키며 모든 것의 경위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일단 이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소꿉친구였다. 사건이 터진 날은 여느 때와 같이 하교를 하던 날이었고 버스에 타고 있던 이 둘은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무사한지, 구조대가 오기는 하는 건지. 그저 살기 위해 도망만 다니던 그들은 굶어 죽기 직전에 탐색조 인원에게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에덴으로 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간신히 에덴으로 들어온 아이들에게 온 것은 따뜻함과 온정이 아닌 무능력자와 기생충을 보는 싸늘한 시선이었다고 한다. 보호자도 없는 고아, 그리고 일할 능력이 없는 미성년자. 그 둘은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았고, 교육의 장이어야 하는 학교에서까지 따돌림을 당해야 했다.

남학생은 울면서 더는 이런 취급을 받기 싫다고 제발 받아달라고 사정했다. 다른 단체로도 가 봤지만,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퇴짜 받기를 수십 번. 유일하게 남아 있는 단체는 부랑자 탐색조뿐이었다. 다 똑같아! 여학생이 나를 향해 내뱉은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만약 채연이와 아이들이 혼자 이곳으로 왔다면 저런 취급을 받게 되었을까? 에덴? 이곳은 에덴이 아니었다. 종말 앞에 철저히 능력주의로 바뀐 싸늘한 전쟁터였을 뿐이다. 난 조용히 손을 뻗어 온정을 갈구하는 아이의 머리 위로 조용히 손을 올렸다.

오지랖이라도 좋았다. 3명 지원, 전원합격. 설국 위에서 핀 작은 꽃 하나가 너무나 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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