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병실 문을 조용히 두드리자 금방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강 형사는 생각보다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잠시 지내기로 한 모양이었다. 나는 강 형사를 위해 사 온 군것질거리를 한 아름 들고서 병실 문을 천천히 열었다. 1인실로 되어 있는 병실 안에는 강 형사가 침대 위에 앉아 있었고, 그 옆으로는 어떤 남자가 같이 앉아 있었다.
‘다음에 올까요?’
선객이 있었던 걸까? 난 엉거주춤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강 형사와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강 형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짓했고, 앉아 있던 남자도 벌떡 일어나더니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곽동윤 씨 맞으시죠? 찾아뵈려고 했는데 운이 좋았네요.’
처음 보는 그 남성은 대뜸 인사를 건네오며 반갑게 웃었다. 그리고 나에게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기에 난 얼떨결에 간식들을 내려놓고 그와 악수했다. 그 남자는 두꺼운 뿔테 안경을 착용하고 있었고, 왠지 지적으로 보이는 흰색 가운까지 완벽하게 갖춰 입고 있었다.
의사인가? 아니, 의사는 아니다. 저 옷은 에덴 의료진들이 입는 복장이 아니었다. 난 일단 손을 놓고 그 뒤에 있는 강 형사를 힐끔힐끔 바라봤다. 그의 안색은 편안해 보이는 듯 많이 좋아져 있었다. 난 일단 헛기침을 하며 그 남자에게 물었다.
‘저한테 용건이 있으시다고…….’
분명 나를 찾아오려고 했다고 한다. 난 별다른 기색이 없어 보이는 그 남자에게서 경계를 풀고 이내 자세를 편안하게 했다. 그러자 남자는 웃으며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를 가리켰고 대화를 좀 하자는 제스처를 취했다.
내가 의자 근처에서 머뭇거리자 그 뒤에 있던 강 형사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하자는 건가? 난 일단 목적이 강 형사에게 있었기에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난 의자에 앉자마자 챙겨온 간식들은 강 형사에게 떠넘기고 그의 안부를 물었다.
‘몸은 좀 어떠세요?’
‘웬만한 건 다 치료했습니다. 아직도 이런 시설이 남아 있다니……. 많이 놀랐습니다.’
얼굴을 보니 자잘한 흉터까지 전부 치료가 된 모양이었다. 얼굴에 거즈가 꼼꼼하게 붙여진 것을 보니 대충 누구 작품인지 짐작이 갔다. 난 일단 그의 몸 상태를 살피고, 먼저 온 선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 이내 물었다.
‘용건이 뭡니까?’
그 남자는 내 곁으로 의자를 끌고 와 앉더니 우리를 차례차례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쪽 가방에서 꺼낸 종이와 펜을 들고 별다른 사족 없이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변종 때문입니다.’
변종, 돌연변이. 그놈들과는 다른 행동 양식을 보여 주며 무력 또한 지나치게 강력하다. 또 사람을 뛰어넘는 감각과 준수한 지능을 겸비한 그 녀석들은 갑작스레 튀어나온 위험변수와 마찬가지였다. 변수? 사실 마주치는 순간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난 그 녀석들을 변종이라 칭했고, 보고서에도 자연스레 변종이란 이름이 쓰였다. 아마 그 보고서는 단체장의 손을 거쳐 에덴 곳곳에 있는 모든 부서에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을 확인한 이 남자는 그 변종에 대해 질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었다.
‘자세한 건 보고서에 적혀 있습니다.’
더 물어봐야 무얼 하겠는가? 이미 보고서에 그놈이 가지는 특성과 행동 양식을 전부 기록했다. 모든 걸 기억하고 일기에 기록하는 게 버릇이 된 것처럼, 난 보고서를 대충대충 작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에 있는 남자는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직접 목격하신 뒤 사격까지 가했다고 들었습니다.’
맞다, 분명 내가 쏜 총알은 그놈의 머리를 정확히 뚫었다. 하지만 그놈은 즉사하지 않고 몸을 버둥거렸고, 분명 나에게 식지 않은 살의를 보내고 있었다. 아마 그 녀석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표정을 굳혔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자세한 외관을 알고 싶습니다.’
남자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냉큼 자신의 목적을 밝혔다. 놈의 얼굴? 하나같이 끔찍하고 혐오스럽다. 꼭 공포 영화에 나오는 귀신같았고, 혹은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괴생명체 같았다. 난 눈을 감고 사진처럼 지나가는 두려움의 순간을 더듬었다.
하지만 대답을 하기 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남자의 정체였다.
‘그쪽은 누구십니까?’
내 말투에는 불쾌함과 짜증이 깃들어 있었다. 자기소개도 없이 다짜고짜 질문을 가하는 태도도 싫었고, 아마 마음속 한구석에 변종들의 모습이 트라우마로 남았던 모양이었다. 난 상상하기 싫은 눈의 지옥을 떠올리며 살며시 눈가를 찡그렸다.
그러자 그 남자는 눈을 크게 뜨고 말을 더듬었다. 당황해하는 얼굴이 꼭 자신의 실수를 지금에서야 자각한 모습이었다. 무례한 행동이 고의는 아니었던 걸까? 난 의자에 등을 기대며 그를 쳐다봤고, 당황하던 남자는 이내 품속에서 황급히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가 나에게 내민 것은 자신의 얼굴이 박혀 있는 출입증이었다. 그것을 살펴본 나는 그가 연구원이고, 에덴에서 설립한 대학원에 소속되어 있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 또한 짐작이 갔다.
‘성과는 있습니까?’
너무 앞서간 질문이지만 그만큼 궁금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내 질문은 들은 남자는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이내 넋두리를 내뱉듯 나에게 중얼거렸다.
‘성과요? 이게 질병이 아니라는 점? 뭐……. 이런 거요?’
질병이 아니면 치료할 방법도 없다. 아니, 치료라는 단어의 선택이 맞는 건지도 알 수 없다. 그놈들은 마치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역풍처럼 너무나 갑작스레 찾아와 우리를 밀어내었다. 대처할 시간도, 생각할 찰나도 없었다.
불을 처음 발견한 인류가 원초적인 원리를 알아낼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 앞에서 갈 길을 잃고 말았다. 고작 불과 한 달이 지났을 뿐이다. 아직 그놈들에 대한 정의조차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성과를 기대하는 건 너무나 일렀다.
난 품속에서 펜을 꺼냈고, 남자에게 종이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황급히 가방을 뒤지며 이면지로 사용 가능한 A4 용지를 나에게 건넸다. 난 그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종이 위에 재빠르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태 내가 마주한 변종들이 가지는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내 일기장에 그림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율 여상에서 마주한 그 녀석도 그렇고, 눈의 지옥에서 만난 그 녀석도 추가되었다. 내가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강 형사가 조용히 감탄했다.
‘이야……. 잘 그리시네요?’
난 감탄하는 강 형사를 향해 피식 웃어 보였다. 이 그림이? 농담치고는 재미가 없었다. 내가 반쯤 그려낸 이 그림은 꼭 정신병자가 그린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이 모습만이 그 녀석들을 표현할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살벌한 그림이 완성되었고, 그것을 받아든 남자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난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의 단편을 지워내며 품속에 펜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가방 속에 그림을 챙기는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이런 게 도움이 됩니까? 뭐, 시체나……. 피? 이런 거는요?’
‘저희도 그쪽이 더 좋지만…….’
아, 씁쓸해 보이는 남자의 표정을 보자 내 물음이 얼마나 멍청한 질문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녀석들에게 도망치는 것에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판국에 피나 시체를 채취한다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소리였다. 남자는 쓰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감사드립니다. 이게 아무것도 아닌 거 같지만, 정말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계속해서 정보를 모으고 연구를 진행 중이니 곧 윤곽이 드러날 겁니다.’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갔다. 말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하지만 그의 말투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아마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를 계속해서 풀어가듯 막연함을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방을 나서는 그의 등을 향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답은 멀고, 멀었다.
* * *
강 형사는 내가 따 주는 황도 통조림을 받으며 살며시 웃었다. 병문안하면 과일이라는 생각에 일단 과일 비슷한 것을 사 들고는 왔는데, 그 내용물을 떠먹을 수저를 안 챙겨왔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자 강 형사도 덩달아 껄껄 웃으며 통조림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는 나를 향해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난 무언가 씁쓸해 보이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요? 아직 피곤하십니까?’
강 형사는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며 조용한 병실을 한 번 둘러보고 포근해 보이는 이불을 손으로 쓸어내린다. 그의 표정은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해 보였기에, 난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며 아직 남아 있는 여운을 느끼게 내버려 두었다.
‘정말 저만 살아남은 거죠?’
강 형사는 숨을 훅 내뱉으며 살아남은 삶 앞에 고개를 흔들었다. 워낙 처절하게 살아온 한 달이었기에 이 평화로운 일상이 이질적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많은 사람이 죽었음에도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그런 세상에 허탈함을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 어쩌실 생각입니까?’
강 형사에게 같이 하자는 제안을 하려고 왔다. 하지만 다 타 버린 재처럼 힘이 빠진 강 형사를 보게 되자 같이 팀을 꾸리자는 제안을 섣부르게 꺼낼 수 없었다. 난 살며시 고개를 돌려 커튼 사이로 흘러내리는 햇빛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강 형사가 조용히 대답했다.
‘한 달 동안 고립되었을 때……. 그냥 살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와도 이혼하고, 자식도 없는 놈이 뭐가 아쉽다고 그렇게 살고 싶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 그래도 살아남자고 아득바득 살아남으니……. 이젠 재만 남아 버렸네요.’
강 형사는 조용히 읊조리며 건조한 과거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이야기했다. 사람의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 그냥 이렇게 살기 위해 살면 되는 것일까? 강 형사는 사선을 넘어 영혼의 근본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눈동자가 흐릿해진 그의 영입을 반쯤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세요, 형사님. 그럼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의자를 밀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두려움에 빠진 사람은 끌어당겨 살리면 된다. 용기가 없는 자는 용기를 얻게 밀어주면 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넘어 지쳐 버린 사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난 그를 존중했기에 천천히 자리를 피해 주려 했다.
하지만 내 뒤에서 강 형사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팀을 만드신다고 들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강 형사가 침대에서 내려와 바른 자세로 서 있었다. 비록 허름한 병원복에 온몸은 거즈와 붕대로 가득했지만, 그의 얼굴과 눈빛은 마치 땅에 내려앉은 따뜻한 햇볕처럼 밝고 따뜻했다. 그는 천천히 걸어 병원 한쪽에 놓인 옷걸이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강 형사가 입고 있던 가죽점퍼와 혁대. 그리고 분신처럼 들고 다니던 리볼버가 있었다. 강 형사는 마치 출진하는 병사처럼 경건한 몸짓으로 그것들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그 행동은 마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무언의 날갯짓 같았다.
그리고 그는 품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꺼내 침대 위에 던져놓기 시작했다. 돈이 들어 있는 지갑과 한때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 주던 신분증까지. 그는 마치 족쇄를 집어던지듯 그렇게 미련을 훌훌 털어내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니 저를 형사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더는 없더군요. 다들 제 이름만 물어보고, 강 형사라고 불러 주는 사람은 이제 없었어요.’
범죄자 잡는 강력반 강 형사. 그는 어느새 신발까지 신고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따라가겠다는 듯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천천히 병실 문을 열었다. 병실 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과 함께 따뜻한 빛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근데 동윤 씨는 아직도 나를 형사님이라 불러 주시네요.’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말 없이 병실 복도를 걸었다. 중간중간 간호사와 의사들이 깜짝 놀라며 강 형사를 만류했지만, 그는 잔잔한 웃음을 머금고 모두 거절했다. 병원을 완전히 나온 나는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고 강 형사도 당연하다는 듯 나를 따라왔다.
인원이 한 명 늘었다. 나는 열심히 걸음을 옮기는 그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이름이 뭐예요?’
그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강 형사라고 부르십쇼.’
* * *
사무실에 도착하자 고소한 감자 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우리를 의아해하며 문을 열었고, 그곳에는 김혜정을 제외한 일행들이 한곳에 모여 감자를 까먹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점심시간이다. 아마 에덴에서 배식을 받아온 모양이었다.
나와 강 형사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노인과 용팔이 형제가 벌떡 일어나 우리를 반겼다. 특히 노인은 강 형사를 향해 악수를 청했고, 살갑게 그를 맞이했다. 부랑자들을 잡아 줄 전문가임과 동시에 노련한 베테랑이다. 노인은 그것을 알기에 감자를 3알이나 건네며 그를 극진히 대접했다.
난 한쪽에 쭈그려 앉아 일행들과 함께 감자 껍질을 열심히 벗겼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김혜정이 엎어져 있는 바닥을 바라보았다. 아까 보여 주었던 패기와 기세는 어디 갔는지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왜 저럽니까?’
난 감자를 입안에 욱여넣고 노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실실 웃음을 머금고 감자를 야금야금 베어 물었다. 표정이 참 얄미웠다.
‘좀 굴렸더니 저러네? 체력이 약해.’
바닥에 누워 있던 김혜정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땀을 훔쳐낸다. 움찔거리는 꼴이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분한 걸까? 그녀의 얼굴은 시뻘게졌고, 눈물을 흘릴 것처럼 일그러졌다. 아마 불합격 통보를 받을까 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노인은 조용히 속삭였다.
‘근데 독해서 좋네.’
내 입에선 흐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틱틱거리긴 해도 정이 많은 노인이다. 그녀가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불합격시킬 마음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남아 있는 감자 한 알을 챙겨 그녀에게 걸어갔고, 이내 분해 보이는 그녀 얼굴 옆에 그 감자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일행들 곁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벌떡 일어난 그녀는 눈물과 땀을 서둘러 닦고, 자기 옆에 놓인 감자를 양손으로 꾹 잡았다. 그리고 우리 쪽으로 열심히 기어와 한 자리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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