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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97화 (97/313)

[97]

피로 엉겨 붙은 머리도 감고, 더러운 얼굴도 닦아 내었다. 그리고 상처 부위를 가려 줄 두껍고 긴 옷을 챙겨 입고, 천천히 병원 밖을 나섰다. 김 철이 기겁하며 안정을 취하라 말했지만, 나는 1분이라도 빨리 채연이를 보고 싶었기에 대충 흘려들었다.

나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던 강수련은 아직 일이 안 끝났다는 변명과 함께 얼굴을 붉히며 도망치듯 병실을 나섰고, 노인은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는 손녀를, 그리고 용팔이 형제는 채연이와 같은 곳에서 공부하는 자신의 조카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리고 우리를 얼떨결에 따라 다니던 강 형사는 병원에서 완전히 치료를 받고 침대 위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병실로 서류를 들고 있는 누군가가 조용히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대략적인 조사와 이야기를 나눌 모양이었다. 그는 분명 잘 적응할 것이다.

병원 밖을 나서자 피곤과 함께 나른함이 몰려 왔다. 꼭 나의 귀환을 축하라도 해 주듯 햇살은 구름 사이로 찰랑거리고, 따뜻한 온기는 내 피부를 조용히 핥았다. 난 햇살을 머금은 길을 걸어 채연이가 다니고 있다는 학교로 향했다.

시간은 오후 3시. 용팔이가 말하길 30분 뒤에 학교가 끝난다고 한다. 난 그 시간에 맞춰 하교하는 채연이를 깜짝 놀라게 해 줄 생각이었다. 난 근처에 있는 상점을 찾아 넘쳐나는 식권을 이용해 아이들이 좋아할 간식거리를 한 아름 장만했다.

주변에서 시선이 느껴졌지만, 난 애써 그들을 무시하고 일행들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에덴은 한창 일할 시간인 듯 사람들이 거리를 바쁘게 뛰어다니고, 건물마다 인기척이 부산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 5분 정도 걸었을까, 우리는 유난히 밝고 큰 건물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노란색과 분홍색 페인트로 귀엽게 칠해진 건물은 주변 건물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마치 종말 어린 회색 사이로 아직 남아 있는 순수함? 난 학교 건물이 마음에 들었다.

용팔이와 두식이는 유난히 들뜬 얼굴이었다. 내가 알록달록한 학교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데, 용팔이가 살며시 다가와 내 허리를 쿡 찌르고 조용히 속삭였다.

‘형님, 기분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난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용팔이 말이 사실이었다. 난 아이들이 공부한다는 학교 앞에서 채연이를 기다리자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항상 이 시간에는 바쁘게 도시를 누비고 다녀서일까? 무언가 갑자기 찾아온 평화 앞에 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중요한 건 절대 나쁜 기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 말을 끝으로 아무 말 없이 학교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학교 내부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하더니 문밖으로 애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학생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이상하게 그곳만 빛나는 기분이 들었다. 난 눈동자를 빠르게 굴려 밖으로 나오는 아이들을 하나둘 확인했고, 이내 채연이와 우리 아이들을 찾을 수 있었다.

채연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학교 정문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채연이 근처로 모여 묵묵히 길을 걷고 있었다. 다른 학교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뛰어오는 모습이랑은 무척이나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항상 그랬다. 조용히 하라고 하면 조용히 하고, 걸으라고 하면 걷고. 아이들은 그 나잇대와 맞지 않게 투정도 짜증도 부리지 않았다. 그저 어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처럼 나이와 맞지 않은 모습을 자주 보여 줬다.

종말은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윽박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것이 너무나 싫었다. 그래서 에덴으로 온 것이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난 아이들이 좋아할 간식을 꾹 끌어안고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갔다.

다른 아이들은 어느새 학교를 빠져나갔고, 천천히 걷고만 있는 우리 아이들이 가장 늦게 정문을 지나쳤다. 그리고 난 살며시 그 앞으로 다가가 조용히 채연이의 이름을 불렀다.

‘채연아.’

바닥을 보며 걷고 있는 채연이가 고개를 추켜올렸다. 동시에 그 주위를 걷고 있던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가장 먼저 용팔이의 조카가 뛰쳐나와 용팔이에게 달려갔고, 그다음으로 채연이가 나에게 비틀비틀 뛰어왔다.

아이는 넘어질 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뛰며 내 애간장을 녹이기 시작했다. 채연이는 눈가에 큰 눈방울을 하나 달고 엉엉 울면서 나에게 팔을 벌렸고, 나도 본능처럼 팔을 벌리며 바닥에 쭈그려 자세를 숙였다.

그리고 묵직한 감촉이 가슴팍에 느껴졌고, 목을 끌어안는 작은 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채연이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터트렸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가 머리를 땋아 준 걸까? 머리끝에 달린 나비 핀이 너무나 예뻤다.

내 시선은 앞으로 향했고, 그곳에는 시선을 피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는 다른 아이들이 있었다. 몇몇 아이의 누나들은 다른 곳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고, 혹은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 채연이를 부러워하고 있는 게 보였다.

부러움? 아니 이건 슬픔이다. 부모를 잃어 고아가 되어 버린 아이들은 성숙해진 만큼 세상의 비정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칼날에 여러 번 베여 감정을 담은 심장이 이미 너덜너덜해졌을 것이다. 익숙할까? 아니 그 상처로 지독한 고통을 느낄 것이다.

‘얘들아.’

난 채연이를 한 손에 끌어안고 다른 손을 다시 펼쳐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피하고 있는 아이들을 조용히 불렀지만, 아이들은 자기를 부를 이유가 없다는 걸 알기에 애써 내 부름을 무시했다. 그런데도 내가 다시 한 번 아이들을 부르자 그제야 시선을 나에게 돌려주었다.

난 웃음을 머금고 이리로 오라는 듯 팔을 벌렸다. 채연이와 아이들이 배불리 먹을 만큼 간식을 사 왔다. 그리고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모든 걸 잃어버린 저 아이들에게 단 한자리만큼은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고 싶었다.

내가 채연이에게 그랬듯, 그리고 채연이가 나에게 해 주었듯. 비록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유대감이라는 이름으로 품 하나 정도는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 난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싶었고, 아이들이 걱정을 맡겨 줄 기둥이 되어 주고 싶었다.

채연이가 언제 울었냐는 듯 까르르 웃으며 아이들을 불렀고, 그 부름을 들은 아이들은 주춤주춤하면서도 어느새 이곳까지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가 어색함은 아지랑이처럼 사라지고, 학교 정문에는 아이들이 내뱉는 웃음소리가 가득해졌다.

나는 어느새 채연이를 닮아가고 있었다.

* * *

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숙소로 돌아와 저녁 식사도 같이했다. 오랜만에 모인 일행들은 한방에 모여 즐겁게 수다를 떨었고, 후식까지 전부 챙기는 사치스러운 식사를 끝냈다. 해가 지고 통금시간이 왔음에도, 소곤거리는 수다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수다와 놀이로 지친 일행들이 한방에 모여 잠이 들어 있다. 급한 대로 이불을 가져와 아이들을 덮어 줬지만,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기에 그 의미도 무색해졌다. 오직 강수련과 김시은만이 조용히 움직이며 방을 치우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시각, 살며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와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팔이 형제는 이미 잠에 빠져 있으니 자게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잠이 들지 않고 조용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강수련과 눈을 마주쳤다.

강수련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믿는다는 눈빛을 보내 주었고, 난 그 눈빛을 시작으로 빠르게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편안한 복장도 좋았다. 하지만 이번 회의는 어떤 분위기로 흘러갈지 몰랐기에 일부러 임무를 할 때 입던 복장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대검까지 완벽하게 챙기고 노인과 함께 조심히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싸늘한 밤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스팀처럼 입김이 훅하고 빠져나왔다. 이 찬바람은 내 긴장감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역시나 현관 앞에는 은테 안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굳어 있는 얼굴로 조용히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고, 우리 또한 아무 말 없이 은테 안경을 따라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달이 없는 유난히 어두운 밤이었다.

* * *

우리가 도착한 곳은 내가 처음 회의에 참석했던 그 장소였다. 와 본 적이 있어서 그런 걸까? 이상하게 저번처럼 긴장이 되거나 떨리지는 않았다. 은테 안경이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고, 우리는 회의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인원은 그때와 변함이 없었다. 다만 조장에서 물러난 김혜정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것인지 사람들의 시선은 우리에게 쏠렸고, 나는 그 시선을 무시하며 저번에 단체장이 지정해 준 의자로 성큼성큼 걸어가 앉았다.

그리고 살며시 고개를 돌려 단체장을 바라봤다. 단체장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잔뜩 굳은 얼굴로 고개를 살며시 숙이고 있었다. 회의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간부들 대부분이 이번 일에 대해 보고를 받았는지 눈치를 살피거나 불안해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단 한 명, 내 대각선에 위치한 전투조장만이 선글라스를 벗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망할 새끼, 내 입에선 저절로 욕설이 터져 나왔고, 노인의 눈빛 또한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내 입에서 튀어나온 작은 욕설은 회의실 분위기를 더 싸하게 만들었다.

당장에라도 싸움이 터질 듯한 분위기였다. 내 손은 본능처럼 허벅지에 위치한 대검으로 향했고, 노인은 사람 하나를 죽일 만큼 살벌한 눈빛으로 전투조장 새끼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살얼음을 깨부순 건 다름이 아닌 단체장이었다.

‘회의를 시작합시다.’

그 목소리를 끝으로 허벅지로 향하던 내 손은 멈췄고, 노인 또한 살며시 눈을 감았다. 전투조장도 크게 헛기침을 하더니 병신 같은 선글라스를 다시 착용하고 잔뜩 무게를 잡았다. 우리를 천천히 둘러본 단체장은 나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동윤 씨, 이야기는 모두 들었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난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짧은 칭찬과 대답이었지만,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짧은 대답을 들은 단체장의 얼굴이 살며시 풀어지더니, 이내 나와 노인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신뢰와 믿음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단체장은 그답지 않게 노한 얼굴로 전투조장을 바라봤다.

‘김윤식 조장, 당신 잘못은 잘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저 새끼 이름이 김윤식이었나? 난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 있는 원한을 되새기며, 그의 이름을 입속에 씹어 넣었다. 한순간 지적을 당한 김윤식은 흠칫 놀라며 단체장을 바라보더니, 이내 헛기침을 거칠게 하며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내뱉었다.

‘……부랑자들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단체장 옆에 조용히 서 있던 은테 안경이 살며시 안경을 올리며 그에게 대답했다.

‘그건 당신 권한이 아닙니다.’

물론 부랑자들이 첩자를 심어 둔 사건이 일어난 직후로 민감한 건 이해했다. 하지만 아까 낮에 벌였던 그 일은 교리라는 이름으로 생존자들을 규합하고 있는 에덴이 취할 행동이 절대 아니었다. 그 자리에는 분명 5살 난 어린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진짜 올바른 판단이 무엇인지 보여 주겠다는 듯 은테 안경이 서류를 들고 단체장에게 보고를 시작했다.

‘모두 한곳에 격리해 치료를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신체검사, 소지품 검사, 그리고 호구조사를 진행했고, 외부와 접촉이 아예 불가능하도록 감시를 붙여 뒀습니다. 주기적으로 보고가 올라갈 예정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은테 안경은 서류를 책상 위에 퉁 하고 내려놓았다. 은테 안경의 보고는 베스트였고, 모두가 납득할만한 처리였다. 단체장은 완전히 수긍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간부들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단 한 사람, 김윤식만은 얼굴을 붉히며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나 단체장은 그것으로 끝낼 생각은 없다는 듯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조명이 은은하게 빛나는 회의실 창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단체장 방에 있던 것과 똑같은 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다.

단체장이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들의 교리였다.

단체장은 그 액자를 소중하게 쓸어내리며 덤덤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전투조에 주었던 탐색 임무와 총기 사용 권한을 회수하겠습니다.’

작정하고 내려치는 칼질이었다. 탐색 임무야 탐색조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전투조로 양도된 임무였다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전투조가 제대로 된 총기로 무장을 할 수 있었던 그 권한, 그 권한을 하루아침에 뺏겨 버린 것이다.

말 그대로 검 없는 기사, 활 없는 궁수. 그리고 무기 없는 전투조였다. 너무나 파격적인 징계 앞에 간부들을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김윤식은 절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책상을 쿵 내려쳤다. 그 무례한 행동에 은테 안경은 눈살을 찌푸렸고,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던 다른 간부들도 표정을 굳혔다.

‘단체장님! 우리 전투조입니다, 전투조!!’

전투조라는 것에 자부심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마치 내가 이런 사람이야! 라고 진상을 부리듯 김윤식은 발악하며 단체장에게 강한 항의를 보냈다. 하지만 단체장의 생각은 이미 확고한 듯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저 구석에서 한 여자가 살며시 손을 들었다. 생각보다 절묘한 타이밍이라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고, 그녀는 소심하게 어깨를 움츠리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단체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그 임무하고, 권한은 누가 가져가나요……?

그것이 화두였다. 사실상 에덴에서 싸움이 가능한 집단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가장 대표적인 게 전투조와 이젠 사라져 버린 탐색조가 있었다. 그 외에 단체장을 지키는 다른 집단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소수였다.

말 그대로 지금 상황에선 집단으로 싸움이 가능한 조는 전투조가 유일했던 것이다. 다만, 우리라는 불청객이 에덴을 찾아오기 전까지는

단체장은 조용히 액자에서 손을 떼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그의 분위기는 아까보다 괜찮아 보였고, 얼굴도 생각보다 온화하게 변해 있었다. 그는 회의장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이내 숨을 크게 내뱉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동윤 씨, 이틀간 휴가를 드릴 테니 인원 보충을 좀 해 주세요. 필요한 인원은 아무나 뽑아가도 상관없습니다.’

그 말은 기폭제였다. 일부 간부들은 얼굴을 찌푸렸고, 또 다른 간부들은 괜찮다는 반응을 보여 왔다. 하지만 김윤식 그 새끼는 여전히 미친 듯이 날뛰며 나에게 삿대질을 시작했고, 이내 크게 고함을 질렀다.

‘저놈들이 군인이라도 된답니까?! 어중이떠중이한테 맡길 일이 아닙니다! 단체장님!’

쾅!

갑작스러운 소음이 내 옆에서 들려왔다. 난 누가 그런 건지를 잘 알고 있기에 조용히 의자에 등을 기대며 입을 꾹 다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 옆에 있는 노인에게로 향했고, 그곳에는 책상을 손으로 내려친 노인이 살벌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윤식아.’

‘…….’

침을 삼키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왔다. 그리고 그 침묵 사이로 차가운 칼날 같은 노인의 목소리가 찌르고 들어왔다.

‘우린 자신 있는데,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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