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형님!!!!!’
고개를 돌려보니 용팔이가 경비탑 위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옆을 덮치려는 그놈 대가리에 볼트가 박혔고, 난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경비탑 쪽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경비탑 위에 서 있는 용팔이도 노인처럼 온몸이 붕대투성이였다. 하지만 초롱초롱한 눈은 여전히 부담스럽게 빛나고 있었고, 나를 부르는 목소리도 변함이 없었다.
용팔이는 다시 나를 부르며 아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용팔이가 손에 들고 나에게 전해 준 것은 대검이 착검 된 소총이었다. 그것을 발견한 순간 내 심장은 거칠게 뛰기 시작했고, 힘없이 늘어졌던 근육은 팽창하기 시작했다.
비어 있는 이빨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나는 빠르게 총을 낚아채고, 다시 그놈들에게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나는 손등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 때문에 자동으로 경비탑 위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시선이 닿은 그곳에는 용팔이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엉엉 울고 있었다.
‘형님…….’
난 손에 힘을 강하게 주고, 완전히 총을 빼냈다. 그리고 후련함이 묻어나오는 숨을 훅 내뱉고, 용팔이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가 총을 빼내자 용팔이는 콧물을 킁 삼키며 고개를 굳세게 끄덕여 보였다.
난 개머리판을 잡고, 총을 뒤로 당긴 뒤 몸체를 두 손으로 꽉 잡았다. 전의가 고양되기 시작하고, 입에서는 뜨거운 숨결이 훅하고 빠져나온다. 내 뒤에 그들이 있다는 걸 인식한 순간 난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달려오던 그놈들은 이미 반절이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그놈들은 눈앞에 놓인 먹잇감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강 형사는 이미 한 놈과 힘겨운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고, 정문 앞에 있던 무리들도 발악 같은 반격을 가하고 있었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고, 날아갔던 이성이 되돌아왔다. 난 자리를 박차고 달려가 강 형사를 덮치고 있는 그놈의 몸체를 발로 차 버렸다. 너무나 익숙한 몸짓은 그놈의 대가리를 개머리판으로 날려 버렸고, 이내 뒤통수를 향해 대검을 찔러 넣게 했다.
3초, 그리고 다음 놈.
맨 끝에서 달려오던 놈이 나를 의식하고 이빨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난 자리를 굳세게 지키며 그놈이 이곳까지 달려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3초 후, 앞으로 내지르는 대검이 놈의 왼쪽 눈에 정확히 꽂혔고, 그놈은 바닥에 꼬꾸라진다.
뒤에선 볼트가 쉴 틈 없이 날아왔으며, 발사하는 족족 모두 머리를 꿰뚫었다. 난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는 강 형사는 내버려 두고, 마무리를 위해 다시 자리를 박차고 뛰기 시작했다. 내 쪽으로 몰려오는 그놈들은 다 처치했다. 이제 무리를 공격하는 그놈들만이 남았다.
‘으아아!’
싸울 힘이 없는 무리는 반쯤 패닉 상태였다. 아이들은 울고, 여자들은 아이를 숨기며 정문에 바짝 붙는다. 남자들이 한곳에 모여 그놈들을 막아 봤지만, 역시나 역부족. 이미 한 남자는 팔이 물어뜯겨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남은 놈은 4마리! 패닉 상태가 된 남자들의 전투력은 기대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노인이 볼트를 발사하는 동안 내가 시선을 끌어야 했다. 난 총을 앞으로 들고, 그놈들이 들릴만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어이!!’
그러자 3마리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철이 일그러지고 찢기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그놈들 입 사이로 새어 나왔고, 총을 잡은 손에는 긴장으로 인한 식은땀이 고인다. 하지만 죽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긴장은 그저 불 위에 기름을 부어 버리는 의식과 같았다.
3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자 세상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내 귀를 간질이던 소음은 사라지고, 짙은 이명과 심장 소리가 고막을 가득 채운다. 난 터질 것만 같은 숨을 훅 내뱉고, 눈동자를 바쁘게 굴렸다. 그리고 계산대로 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달려오는 한 놈은 몸을 피해 발을 걸어 버린다. 그리고 넘어진 그놈을 지나쳐 그 뒤를 따라오던 녀석의 목에 대검을 찔러 넣었다. 성대가 찢어지고, 더는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난 재빠르게 총을 꺾어 옆으로 대검을 빼내 버린다.
검은색 피가 내 얼굴에 튀기자 나는 자동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실눈 사이로 보이는 그놈은 몸을 비틀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목이 반쯤 잘린 놈을 발로 차 넘어트려, 마지막으로 달려오는 한 놈과 충돌하게 했다.
서로 충돌한 그놈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한참을 뒤엉키더니 이내 바닥에 넘어진다. 하지만 그 강한 집착은 꺾이지 않고, 바닥을 긁으며 나에게 기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난 이미 마무리를 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닥을 기며 달려오는 그놈의 미간에 대검을 조준하고, 정확하게 찔러 넣는다. 마치 머리 고기를 씹을 때와 같은 감촉이 손끝을 타고 찌르르 울렸다. 감촉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내 뒤에선 또다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그대로 개머리판을 빼내 뒤로 휘둘렀다.
까각.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개머리판을 맞은 그놈의 턱이 옆으로 뒤틀렸다. 이빨이 우수수 털려 나가고, 난 총부리를 다시 그놈에게 향했다. 그리고 턱 아래를 관통해 그대로 추켜올려진 대검은 검은색 피를 주룩주룩 흘리며, 놈의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
놈의 탁한 눈동자와 마주친다. 동공은 사라진 지 오래고, 그 자리를 먼지처럼 흐릿한 이질감이 대신한다. 난 그 회색 눈동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복부를 발로 차 그놈을 나에게서 떼어낸다.
마지막 놈인가? 무리에게 달려들었던 나머지 한 놈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다.
깊은 숨을 내뱉었다. 잔뜩 달아오른 엔진이 내뱉는 숨결과 같았다. 난 순간 몰려오는 탈력감과 손끝의 신경을 매만지며, 그 여운을 잠시 느꼈다. 그리고 눈을 뜨자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과 여자들은 울먹이고, 남자들은 바닥에 쓰러져 있다. 모두 탈진 근처까지 도달한 모양이었다. 난 그들을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고, 이내 넘어져 있는 강 형사를 일으켜 세웠다. 이제 에덴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나에게 도움을 받고 일어난 강 형사가 얼떨떨한 얼굴로 내 어깨를 잡았다.
‘……동윤 씨, 혹시 군인이셨습니까?’
난 그의 물음에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 번 들어본 적 있는 질문 같은데, 누가 했더라? 아 맞다, 김혜정. 그녀는 잘 있을까?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강 형사의 어깨를 마주 보고 탁탁 털어 줬다.
이 사람도 참 고생이 많았다. 나도, 강 형사도 이젠 휴식을 취할 시간이 된 것이다. 내가 강 형사에게 손짓하고 에덴의 정문으로 향하려 걸음을 옮기는 순간, 내 바지를 잡아당기는 감촉이 나를 막아섰다.
내 고개는 자동으로 돌아갔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내 바지를 잡아당기는 감촉은 여전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저 무리들 사이에서 한 여자가 황급히 튀어나와 어떤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혜지야!’
혜지? 내 몸이 순간 움찔거렸다. 그리고 황급히 자세를 멈추고 고개를 내렸다. 그곳에는 채연이와 같은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내 바지를 붙잡고 있었다. 이 아이가 혜지, 그리고 혜지를 부른 사람은 아이의 엄마인 듯했다.
왜 내 다리를 붙잡고 있는 걸까? 아이의 때 탄 얼굴은 몹시 창백했고, 안쓰러울 정도로 말라 있었다. 그리고 두려움에 젖어 있었는지 눈가에는 눈물 자국이 자욱했으며,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 바지를 잡은 손은 절대 놓지 않았다.
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우물쭈물했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나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고개를 꾸벅인다. 그리고 무어라 웅얼웅얼했지만, 워낙 작은 목소리라 잘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거로 보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던 걸까? 나는 천천히 자세를 숙여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이 작은 아이를 보고 있자니 채연이가 간절하게 보고 싶었다. 밥은 먹었을까? 잘 지내고 있겠지? 난 아이에게 웃으며 괜찮다는 말을 해 주려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가까이서 들은 나는 몸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아이는 나에게 살려 달라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다. 아니, 목소리를 낼 힘조차 없어 그저 처절하게 중얼거릴 뿐이다. 그리고 고사리 같은 손은 내 바지를 부여잡고 있으면서도 떨리는 눈은 나와 마주치지 못했다.
살려 달라. 아이는, 이 어린아이는 나에게 살려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저 멀리서 뛰어온 여자가 아이의 몸을 순식간에 낚아챘다. 난 그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으로 달려온 그 여자는 아이를 품속에 꼭 안고 나에게서 주춤주춤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를 무서워하는 걸까? 하지만 그녀의 시선에는 두려움과 경계보단 묘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래, 그녀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여자는 아이를 뒤로 숨기며 몸을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사과를 끝으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지만 여자와 아이는 나를 향해 맹렬한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아마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을까? 이곳에 저 아이와 엄마의 편이 되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들도 자신들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종말이란 피라미드의 가장 바닥. 그들은 살려 달라는 말조차 눈치를 봐야 했다.
필요가 없다. 챙겨봤자 짐이 될 뿐이다. 지금 같은 세상에선 필요 없는 인원이다. 그래, 그게 이성적이고, 종말이란 문제지에 적합한 답안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문제지를 풀어야 한다면, 인간에게 달린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적어 내고 싶었다.
나는 강 형사의 어깨를 붙잡고 조용히 속삭였다.
‘잠시 이 사람들 좀 보고 있어 줘요. 혹시나 흩어지려고 하면 막고요.’
난 몸을 돌려 다시 에덴의 정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곳으로 넘어오려고 낑낑거리는 일행들이 정문 앞에 매달려 있었다.
두식이가 정문 아래로 팔을 뻗어 주면, 노인이 그 손을 잡고 벽을 타며 내려온다. 그리고 일정 높이가 되면 거침없이 손을 놓아 바닥에 몸을 떨어트리고 안전하게 착지한다.
노인이 가장 먼저 바닥에 내려왔고, 용팔이가 두 번째. 마지막으로 두식이가 헐크처럼 몸을 날려 바닥에 쿵 떨어졌다. 주위에 있는 모두의 시선을 이곳으로 향했고, 동시에 시끄러운 소음이 사라진다. 고요함 속의 재회, 우리는 드디어 다시 만났다.
일행들은 말없이 나에게 걸어왔고, 나 또한 말없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용팔이는 내 모습이 보이자마자 바보같이 눈물을 훌쩍였고, 두식이는 평소답지 않게 헤픈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노인은 칭칭 감긴 붕대 사이로 이빨을 만개하고 웃고 있었다.
눈물과 웃음이 같이 튀어나왔다. 난 총을 바닥에 버리고, 일행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 거리가 그동안 걸어온 거리만큼 멀게 느껴졌다. 그리도 도달한 일행들의 앞, 난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입 밖으로 훅 내뱉었다.
노인이 손을 뻗는다. 난 그 손을 망설임 없이 낚아채 잡았다. 따뜻한 온기와 강한 생동감이 손끝으로 전해져 온다. 살아 있다. 나도 살아 있고, 노인도 살아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렇게 존재한다는 걸 증명했다.
‘욕봤다.’
노인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네.’
나도 조용히 대답했다.
그 중얼거림을 끝으로 용팔이가 엉엉 울면서 우리를 끌어안았고, 두식이도 쿵쿵쿵 달려와 그 큰 팔로 3명을 끌어안았다. 울음과 웃음이 공존하며 회색 도시 한가운데 작은 꽃을 피운다. 그 꽃은 설국 위에 핀 결속의 꽃이었다.
* * *
해후를 마친 뒤 내가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내가 가지고 다녔던 가방의 유무였다. 그리고 그 가방은 내가 흘린 총까지 주워 온 용팔이가 들고 있었다. 난 용팔이가 메고 있는 가방을 황급히 받고, 그 속을 정신없이 뒤지기 시작했다.
용팔이는 의료품을 제외하고는 가방 속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다. 비상식량과 노끈과 같은 장비들. 그리고 지도와 매뉴얼까지 전부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내가 찾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난 가방 속에 꼭꼭 숨겨 뒀던 그것을 빠르게 꺼내 들었다.
저 에덴의 문을 열어 줄 열쇠.
내 손에는 첫날 은테 안경에게 받았던 무전기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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