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그 녀석은 내가 총을 조준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움직임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그게 뭐야? 왜 들고 있어? 하는 얼굴로 기분 나쁜 울음소리만 흘렸다.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딱딱딱 웃어 대는 꼴이 꼭 나를 장난감처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녀석이 총의 존재를 모르는 이 순간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기회임을 직감했다. 난 넘어져서 죽음을 기다리는 강 형사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총알.’
‘네?’
강 형사는 공포의 질린 얼굴로 나에게 반문했다. 난 답답한 마음과 더불어 그에게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크게 고함을 내질렀다.
‘여기에 총알 있냐고!’
어차피 마주한 변종이다. 겁에 질려 도망치다 죽거나, 앞에서 잡혀 죽으나 똑같았다. 하지만 난 이 순간만큼은 저 녀석 앞에서 떨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갑자기 소리치자 앞에 있는 녀석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며, 눈을 번쩍 뜬다. 까각, 그리고 목이 90도가량 옆으로 돌아갔다.
내 고함이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차박, 차박.
그 녀석이 울음소리를 멈추고,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거리는 육교 끝에서 중간지점까지. 저 느린 속도라면 찰나의 기회가 분명히 생긴다. 난 다이가 없는 도박을 해야 함을 느꼈고, 강 형사는 그것에 호응이라도 해 주듯 넋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 발.’
기회는 한 번뿐이다. 난 한 손으로 들고 있던 리볼버를 양손으로 다시 잡고 미간을 찡그렸다.
내가 총을 쏘려는 걸 눈치챈 강 형사는 슬금슬금 내 옆으로 기어 왔고, 이내 침을 삼키며 그 녀석을 바라봤다. 마음 같아선 강 형사에게 총을 넘겨 주고 싶었지만, 자세를 푸는 순간 내 목이 날아갈 것만 같아서 그러지 못했다.
강 형사도 목을 조르는 살기를 감지했는지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소극적인 움직임으로 내 발밑까지 접근한 강 형사는 아까와는 달리 침착해진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쏴 본 적 없죠?’
당연하다. 대한민국 군필 출신 중에 리볼버를 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요즘은 리볼버 사격이 가능한 사격장이 있다지만, 난 사격장 간판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강 형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조용히 나에게 지시했다.
‘다리 더 벌리고, 어깨 올리세요.’
나는 강 형사가 지시한 그대로 자세를 취하며 그 녀석을 정면으로 노려봤다. 정확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 녀석이 가깝게 다가오길 기다려야 한다. 난 숨을 참았다. 아니, 숨 쉬는 것을 까먹고, 모든 정신을 그 녀석에게 집중했다.
조준간 사이로 그 녀석의 끔찍한 모습이 잡힌다. 위턱을 떨 때마다 따다닥 흔들리는 머리는 손안에 식은땀을 고이게 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방아쇠 위에 올라간 손가락을 훑고 지나간다. 이 공간에는 이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노리쇠…….’
강 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속삭였다. 난 덜덜 떨리는 엄지로 조준간 뒤에 위치한 노리쇠를 뒤로 당겼다. 차가운 장전음이 울려 퍼지고,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두쿵-. 두쿵-.
차마 감지 못하는 눈동자가 서서히 아파져 왔다.
차박, 차박. 30m, 딱, 까각……. 20m.
쏴? 아니야, 아직이다. 쏴야 하는데? 아니야! 빗나가면 다 죽는다. 내 속에 살고자 하는 본능과 인내심이 끊임없이 충돌한다. 귀로는 이명이 울리고, 손은 사정없이 떨린다. 그리고 그 녀석이 발을 앞으로 내미는 순간, 내 모든 신경이 폭발했다.
까가가각각깍!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그 녀석은 우리 바로 앞까지 도착했고, 이내 미친 듯이 웃어 재끼며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시간이 느리게 흐름과 동시에 눈동자가 돌아가는 감촉까지 생생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준간 사이로 그 녀석의 회색 눈동자가 잡힌다.
나는 죽음을 당기는 심정으로 방아쇠를 꾹 당겼다.
탕!!!!
근육이 출렁이고, 귀를 찌르는 총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내 코앞까지 다가와 손을 내뻗은 그 녀석의 머리통은 순식간에 뒤로 꺾이고, 몸은 형편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컥, 허억. 난 그제야 숨을 내쉬며 매캐한 화약 연기를 들이켰다.
맞았나? 머리?
검은색 피가 팍 튀겨 하얀 눈을 더럽힌다. 바닥에 떨어진 그 녀석은 마치 살충제를 맞은 바퀴벌레처럼 온몸을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입에선 끄르륵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고, 팔다리는 베베 꼬인다.
분명 머리를 맞았음에도 즉사하지 않았다. 총격으로 인해 오른쪽 눈이 뻥 뚫렸지만, 그 녀석은 아직도 몸을 버둥거리며 내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몸이 회복되길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시선을 나에게 고정하고, 육교 바닥을 빠드득 긁었다.
난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넘어져 있는 강 형사를 일으켜 세웠다. 강 형사는 머리에 총을 맞고도 살아 있는 그 녀석을 질린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렇게 감상할 시간이 없다. 나는 단 한 발의 총이 벌어 준 시간을 필사적으로 헤집었다.
텅. 텅. 텅. 텅.
우리는 육교를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서 온몸을 꼬고 있는 그 녀석이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까가아아가아아아!
죽일 거야, 죽일 거야!! 그 녀석이 성대를 찢으며 내지르는 울음소리에는 무조건적인 적의가 함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우리를 따라오지 못했고, 울음소리는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육교를 완전히 내려온 우리는 길 한가운데를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내 호흡이 너무나 거칠다. 다리의 근육은 비명을 지르며 땅겨왔지만, 두려움은 그 고통마저 잊게 만들어 줬다. 시야는 정신없이 휙 휙 뒤바뀌었고, 우리는 어느새 중간 지점까지 달려왔다. 그놈이 쓰러졌던 육교는 눈보라 속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분명 총소리가 울렸음에도 그놈들은 육교로 몰려오지 않았다. 아직 녀석의 영역이란 걸까? 덕분에 이곳까지 도망칠 수 있었지만, 이 행운의 시간은 절대 길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결국 도주를 포기하고, 은신처를 찾아 몸을 숨기기로 했다.
나는 몸을 돌려 대로를 벗어났고, 이내 골목으로 재빠르게 들어갔다.
하지만 골목으로 들어서는 그 순간, 과거의 잔재가 머리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소율 여상에서 처음 발견한 그 변종 놈이 우리를 냄새로 추격하던 그 기억. 그리고 그와 동시에 노인의 재치 있는 대응도 생각났다.
저 녀석도 변종이니 똑같지 않을까?
난 본능처럼 외투를 벗었고, 이내 강 형사의 외투도 벗겼다. 물론 추워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추위가 아니었다. 난 내 외투를 들고 담 너머로 휙 던졌고, 뺏어 버린 강 형사의 옷도 다른 방향으로 휙 던져 버렸다.
하지만 외투 두 개로는 불안했는지 내 본능은 양말까지 벗어 던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난 충실하게 그 본능을 따랐고, 이내 양말을 사방으로 뿌리기 시작했다. 눈으로 흠뻑 젖은 신발 때문에 급히 후회가 몰려 왔지만, 지금은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6시가 다가오는 시간, 서서히 세상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 * *
해는 완전히 지고, 나는 아직 살아있다. 지금 내가 일기를 작성하는 시간은 저녁 7시. 밖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으며, 아직도 눈이 왔다.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이었다.
우리가 들어온 곳은 주변에 널리고 널린 빌라 건물이었다.
빌라 복도나 계단에선 이 추위를 버티지 못했기에 우린 어쩔 수 없이 추위를 피할 집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문이 반쯤 열려 있는 집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차가운 한기와 먼지가 내 얼굴을 훅하고 때려왔다.
피난을 간 모양인지 집 안에는 먼지와 흐트러진 짐들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과 괴물이 없다는 걸 확인한 우리는 재빠르게 현관문을 잠갔고, 집안에 있는 모든 옷과 천을 이용해 창문을 가려 버렸다. 물론 무거운 가구들을 끌고 와 현관문을 막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한동안 창문 옆에 붙어서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지만, 밖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심한 우리는 추위에 덜덜 떨며 조용히 집안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이내 가장 급한 옷을 찾기 시작했다. 내 옷은 오래된 피와 눈으로 범벅이 되어 그 색을 잃어버렸고, 주머니와 단추는 뜯긴 지 오래였다.
갈아입어야겠다.
집안을 돌아다니던 나는 책상 위에서 우연히 가족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부 한 쌍과 어린 딸 한 명이 웃고 있는 사진에는 먼지가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난 그것을 들어 올려 다시는 오지 못할 일상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들의 미소가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죽었을까? 쓸모없는 상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곧 사진을 내려놓고, 다시 분주하게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옷장에서 두꺼운 외투와 옷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곧바로 망설임 없이 내가 입고 있던 옷들을 모두 벗었고,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강 형사도 푹 젖어 버린 옷들을 모두 벗고, 나를 따라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집주인에게는 미안했지만, 내가 급하니 그런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먹을 게 있을까 하고 부엌을 둘러봤지만, 집주인이 피난 갈 때 모두 들고 갔는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쉬움을 느낀 나는 거실 벽 구석에 가만히 앉아 안방에서 가져온 이불을 꼭 끌어안았고, 이내 내려간 체온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은 강 형사가 발견해서 가져온 촛불 앞에 앉아 손과 몸을 녹이고 있었다. 비록 내 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은 불꽃이었지만 모든 게 얼어붙은 지금은 이 온기마저 감지덕지하게 느껴졌다.
나와 강 형사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집중했다. 그놈들이 활동을 시작했는지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졸기 시작한 나는 배고픔과 동시에 입술이 바싹 말라오는 갈증을 느꼈다.
물과 음식이 들어 있던 장바구니는 도망 오면서 바닥에 버린 지 오래였다. 지겨운 초콜릿이 이토록 그리운 건 처음이었다. 내가 메마른 입술을 핥으며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강 형사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난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강 형사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곳에는 강 형사가 포장지를 깐 에너지 바를 내밀고 있었다. 어디서 구한 거지? 아, 내가 그곳에서 줬던 에너지 바를 아직도 가지고 있던 모양이었다. 난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나는 에너지 바를 정확히 반으로 나눠 강 형사에게 다시 내밀었다. 촛불 앞에는 에너지 바를 받아드는 그의 얼굴이 일렁거렸고, 작은 온정과 같은 따뜻한 온기가 촛불에서 솟구쳐 올랐다.
웃어야 할 상황이 아님에도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난 피식 웃고 에너지 바를 입에 쑤셔 넣었다. 내가 웃자 강 형사도 실없이 웃으며, 에너지 바를 입안에 쑤셔 넣는다. 물론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너무나 맛있었고, 속이 이상하리만큼 든든했다.
두려움에 떨며 이곳까지 도망쳤다. 그런데도 난 죽지 않았고, 심장도 멀쩡하게 뛰고 있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이 순간, 내가 괴물인지 사람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나는 심연을 들여다봤고, 어쩌면 그들과 같은 괴물이 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촛불을 마주하고 음식을 나눠 먹은 지금만큼은 사람처럼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래, 그놈들은 이렇게 웃지 못했다. 나는 입안에 남아 있는 에너지 바를 꿀꺽 삼키고, 숨을 훅 내뱉었다. 힘들고, 아프고, 너무나 무서움에도 웃음이 계속 새어 나왔다.
심장이 뛴다.
그래, 나는 아직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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