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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92화 (92/313)

[92]

강 형사는 내가 갑자기 멱살을 잡자 굉장히 놀라는 눈치였다. 지금 이곳에 있는 강 형사나 밖에서 싸돌아다니는 부랑자들의 행동으로 보아 옥상에 있는 저 녀석을 발견한 것이 내가 유일한 모양이었다. 지금만큼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난 침착하기 위해 숨을 연신 내쉬었고, 강 형사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금부터 내 말만 들으세요. 아니면 정말 죽습니다.’

따라오지 못하면 데려가지 못한다. 대형마트 옥상에서 죽은 그 녀석은 갑자기 튀어나온 변종이었다. 그 녀석을 죽이고 나서 다른 변종이 또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갑자기 튀어나올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를 너무나 무섭게 하는 점은 소울 여상에서 만난 그것보다, 지금 옥상에서 발견한 저 녀석이 내 신경과 몸을 더 짓누르고 있다는 점이다. 공포의 면역을 넘어선 영역. 난 지금만큼은 미친 듯이 도망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강 형사는 다행히 내 지시를 잘 따라 주었다. 난 가장 먼저 밑에 있는 부랑자들의 행동을 주시했다. 1층에 있는 부랑자 두 명은 일행들이 모두 거리에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강 형사에게 손짓하며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부랑자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형님……. 뭔가 섬뜩하지 않수?’

‘지랄 마, 새끼야! 으……. 시발 누가 장난질이야…….’

한 명은 딱딱 울려오는 소리에 이상한 점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섬뜩? 직접 그 모습을 본다면, 섬뜩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난 소름이 돋은 피부를 쓸어내리며, 2층 중간쯤에 걸음을 멈추고, 현관에 서 있는 부랑자 두 놈을 주시했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그 녀석이 무엇을 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랑자들이 적어도 고기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딱, 깍. 딱, 깍. 그 녀석은 마치 자신을 발견 못 한 그들에게 화가 나기라도 한 것처럼 괴상한 소리를 빠르게 내지르기 시작했다.

난 오금이 저렸고, 강 형사도 무언가 이상한 감정을 느꼈는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경험이 없는 사람은 그놈과 마주 봐서는 안 된다. 나는 강 형사가 정신을 차리도록 재빠르게 흔들어주고 살며시 창을 들어 올렸다.

원치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저 녀석과 공동전선을 펼쳐야 했다. 사실 말이 좋아 공동전선이지, 그냥 부랑자들이 죽는 동안 열심히 도망가는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잠시 뒤 내가 그토록 원하던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야!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시발 어떤 놈인지 걸리기만 해 봐…….’

형님이라 불리던 부랑자 하나가 얼굴이 잔뜩 굳어져서는 갑자기 호기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는 한쪽에 세워 둔 쇠 파이프를 들어 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일갈했고, 이내 다른 동료들을 따라 길가로 뛰쳐나가 버렸다.

현관에 남은 건 부랑자 한 명, 기습한다면 충분히 처리가 가능했다. 나는 더는 고민할 필요 없이 재빠르게 자세를 숙여 1층을 향해 나아갔다. 무섭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는 내 숨소리조차 묻어 버렸고 차가운 한기는 내 인기척을 지워 버렸다.

놈이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난 창을 앞으로 내밀고 놈의 목 앞으로 창을 조준했다. 그리고 조용히 휘파람을 불어 그놈의 얼굴이 내 쪽을 향하게 했다.

‘……어?’

빌라 현관에 조용히 울리는 휘파람 소리. 부랑자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몸을 흠칫 떨었고, 이내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뛰쳐나가 그놈 목젖에 창을 찔러 넣었다. 살인의 감촉이 물밀듯 몰려와 신경을 감싸 안았다.

꺽.

숨이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내 얼굴로 튀긴다. 목이 찔린 그놈은 황급히 상처 부위를 막았지만, 분수처럼 샘솟기 시작하는 피를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내 얼굴에 튄 피를 소매로 닦아내며 바닥에 쓰러지는 그놈을 차가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딱, 깍.

그리고 내 귀를 울리는 소름과 두려움.

난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부랑자가 들고 있던 야구 방망이를 뺏어 강 형사에게 넘겼다. 그리고 멍하니 시체를 바라보고 있는 강 형사의 옷을 잡고 흔들며 조용히 속삭였다.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요.’

‘네?’

강 형사는 아직도 사태파악을 못 했는지 멍청하게 반문하며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를 납득시켜 줄 시간은 없었고, 그저 그가 달리기를 잘하길 바랄 뿐이었다. 난 빌라 1층 문을 잡고 힘껏 밀었다. 그러자 찬바람과 함께 폭풍 같은 눈이 내 얼굴을 때렸다.

‘뭐, 뭐야!!’

빌라를 먼저 나갔던 부랑자 놈이 거리를 서성인다. 그러다 우리가 빌라에서 나오자 그놈은 깜짝 놀라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당황도 한순간, 인간을 해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놈은 순식간에 쇠 파이프를 들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놈이 욕설을 내뱉는 순간, 내 살의와 생존 욕구도 똑같이 분출되었다.

난 창을 들어 날아오는 쇠 파이프를 막아 냈다. 날카롭긴 했지만, 너무나 가벼운 공격 앞에 마대 자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놈이 2차 공격을 가하려는 순간 강 형사는 언제 당황했냐는 몸짓으로 그놈에게 재빨리 달려들었다.

팍! 등판을 강타하는 야구방망이는 한순간에 그놈을 무력화시켰다. 난 바닥에 넘어진 그놈을 바라봄과 동시에 그 녀석이 서 있던 옥상을 확인했다. 역시 없어져 있었다. 하지만 아까보다 더욱 가까워진 소리는 시간이 별로 없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모든 신경이 날카롭게 솟아오르고 뒷목이 뻣뻣해진다.

강 형사는 넘어진 그놈 앞에서 방망이를 들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살인에 대한 망설임, 그 망설임이 강 형사를 붙잡고 있는 모양이었다. 난 창을 들고 재빠르게 다가갔지만, 바닥에 넘어져 버둥거리던 부랑자 놈은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외쳤다.

‘여, 여기!!! 여기 좀 도와줘!!’

강 형사는 아차 하는 얼굴로 사방을 둘러봤다. 하지만 부랑자의 필사적인 외침에도 이상하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아까보다 강해진 눈발과 바람 소리가 우리 주위를 어둠처럼 잠식하고 있었다.

저놈을 죽일 시간조차 없다.

이미 죽음은 눈앞에 찾아와 있었다.

난 빠르게 달려가 강 형사가 들고 있는 방망이를 뺏고 잡아끌었다. 아까부터 딱 깍 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바람 소리만 더 거세지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중간중간 눈발 사이로 보이던 부랑자들의 그림자가 더는 보이지 않았다.

낌새도 없이, 그리고 단 한 줌 소리도 없이 그들은 사라져 있었고, 인질들이 뭉쳐 있던 자리는 마치 아지랑이처럼 사라져 있었다.

거리는 섬뜩한 침묵으로 휩싸였다. 그리고 내 귀를 간질이던 괴음이 어느 샌가부터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목이 서늘해지는 감각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난 그대로 뜀박질을 시작했고, 강 형사 또한 나를 따라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어? 어! 야!! 야!!!’

바닥에 넘어져 고통을 호소하던 부랑자는 우리가 도망가기 시작하자, 고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난 그것을 무시하고 무작정 앞으로 뛰어갈 뿐이었다. 눈은 발에 차일 만큼 많이 왔으며, 마치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우리들의 발걸음을 방해했다.

무언가 나를 잡아당기는 기분이었다. 이 저항, 이 두려움. 난 그것들을 손으로 휘저어 쫓아내며,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길가를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주위에 있어야 할 괴물 놈들이 없어진 걸 눈치챈 순간 난 심장이 덜컥 가라앉는 걸 느꼈다.

‘이, 이 봐요! 동윤 씨!!’

내가 뛰기만 하자 내 뒤를 따라오는 강 형사가 나를 조급하게 불렀다. 난 그가 소리를 내자마자 빠르게 멈춰 강 형사의 입을 황급하게 틀어 막아 버렸다. 그 순간 우리는 중심을 잃고 눈 위에 넘어졌고, 그 빈자리를 순식간에 눈과 바람이 차지했다.

정적과 동시에 식은땀이 콧등을 타고 주르륵 떨어진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저 멀리서 고통이 묻어나오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인간에게 얼마나 강한 고통을 줘야지 저런 비명이 나게 되는 걸까? 그 소리를 끝으로 거리는 다시 침묵으로 휩싸였다. 강 형사는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강 형사의 입을 막고 있는 손을 놓았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뛰기 시작했다. 그놈들은 고함이 도시를 강타했음에도 몰려오기는커녕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다른 이면의 세계 앞에 당도한 것처럼 이 도시는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딱, 깍

딱…….

그렇게 다시 한 번 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은 부랑자들이 있던 거리였고, 그 순간부터 강 형사는 나를 부르거나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도 점점 다가오는 죽음 앞에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허억-. 허억-.

나와 강 형사가 내뱉는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마치 무형의 공간에 갇힌 것처럼 시야는 좁아지고, 양옆에 서 있는 건물들조차 사라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난 오른손에 들고 있는 창을 황급히 바닥에 버렸다. 그리고 앞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팔과 다리를 미친 듯이 움직였다.

딱, 깍. 딱, 깍.

목각인형이 부서지는 소리가 연신 울려온다.

가까워지고 있다. 그 녀석은 분명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 눈보라 너머에 희끗희끗한 검은색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이 아니다. 저 속도는 분명 인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 눈앞으로는 대로를 가로지르는 육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눈앞에 있는 육교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 녀석하고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우리는 황급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강 형사는 덜덜 떨리는 손을 품속에 넣어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

나는 차마 쏘지 말라고 말할 수 없었다.

텅, 텅. 텅, 텅.

철로 만들어진 육교를 오를 때마다 철이 울리는 소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음 사이로 그 녀석이 내는 기괴한 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가까운 거리다. 나는 그 소리를 쫓아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우리 근처까지 도착한 그놈이 있었다.

그놈은 기괴하게 목을 꺾으며 네발을 이용해 미친 듯이 기어오고 있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눈이 오는 흐릿한 시야 속에 끊임없이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녀석과의 거리가 100m쯤 되었을 때, 난 그 녀석의 얼굴을 완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웃고 있었다.

턱이 없었음에도 올라간 입꼬리는 기괴하게 찢어져 있었고, 눈매는 초승달처럼 휘어져 회색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 녀석은 우리에게 손을 뻗으며, 마치 거미처럼 육교를 오르기 시작했다.

까가가가가가가각.

웃는 걸까?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그놈 입에서 흘러내렸다.

그 순간 육교를 가로지르던 강 형사가 바닥에 철퍽 넘어진다. 강 형사가 넘어진 걸 확인한 나는 급제동을 걸다가 그대로 미끄러져 육교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나는 눈이 쌓인 바닥을 황급히 짚고 일어나려 했지만, 이내 우리 앞까지 도착한 그 녀석을 발견하고 빠르게 포기하고 말았다.

아까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는 더는 도망가지 못한다.

난 필사적으로 기어가 패닉 상태에 빠진 강 형사를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 그가 잡고 있는 리볼버를 뺏어 들고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녀석은 우리를 바로 덮치지 않았다. 마치 가지고 노는 장난감처럼 우리를 한참 바라보더니 이내 살며시 두 발로 일어난다.

난 덜덜 떨리는 손을 붙잡고 리볼버를 들어 올렸다. 조준간 사이로 그 녀석의 머리를 놓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바람이 불어 내 식은땀을 닦아 냈고, 내린 눈은 리볼버와 내 손위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난 방아쇠 위에 손가락을 올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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