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91화 (91/313)

[91]

부랑자들이 범죄자 출신이었다는 가정이 사실이 되었다. 물론 앞뒤 상황을 모르는 강 형사는 부랑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슨 짓을 해 왔는지에 대해 몰랐고, 난 어쩔 수 없이 대략적인 설명을 해 줘야 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기 전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서 빌라 계단을 한 층 더 올라갔다. 그리고 부랑자들이 잘 보이는 방향에 자리를 잡고, 몸을 숨겼다. 만약 부랑자 놈들이 이곳으로 접근하고 있다면, 가장 먼저 계단 밑으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모든 경계 태세를 갖춘 나는 강 형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모든 설명을 해 주었다. 꽤 충격적인 내용이었지만, 그것을 조용히 경청하던 강 형사의 반응은 생각보다 침착했다.

‘그럴만한 놈들입니다.’

강 형사는 범죄자들을 체포하는 일선에서 뛰어다녔을 사람이다. 별의별 범죄자를 다 잡아넣었을 강 형사에겐 그들의 범행이 생각보다 충격적이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강 형사의 나이를 고려해 경력을 따져 본다면, 그는 상당히 노련한 베테랑 형사였을 게 분명했다.

난 이왕 떠들기 시작한 거, 듣고 싶은 내용을 다 물어보기로 했다.

‘……인육을 먹는 건요?’

단순한 정보가 아닌 현장을 오가는 진짜 전문가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난 조금 공손해진 태도로 물었고, 내가 챙겨 온 생수와 초콜릿을 그에게 뇌물 주듯이 넘겼다. 강 형사는 갑자기 변한 내 태도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었다.

대한민국의 범죄사를 따져보아도 인육을 먹던 미친놈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한 폭력 집단에서 동료의 인육을 섭취한 사건과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살인마가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먹었던 사건은 시간이 지나도 언급이 되는 유명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집단으로 인육을 섭취, 그러니까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 부랑자들 사이에서 성행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사람을 죽이고, 범죄를 가볍게 생각하는 자들이라도 인육을 섭취하는 건 극단적인 리미트 라인이었다.

물론 지금이 종말이라는 특수한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종말이 시작된 지는 갓 한 달이 넘어갔을 뿐이고, 그 짧은 시간은 인간이 이룩한 윤리의 틀을 한순간에 바꿔놓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강 형사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강 형사는 무언가 기억나는 게 있는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눈을 감았다. 난 그가 기억을 살피는 시간을 방해하기 싫었던지라 조용히 일어나 강 형사가 눈을 뜨기를 기다렸다.

‘……최근에 있긴 했습니다. 그런 새끼가.’

난 잠시 밖을 살펴보며 부랑자들의 움직임을 살펴봤다. 그리고 아무런 이상이 없자 강 형사의 말을 듣기 위해 다시 바닥에 앉았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 옆에 앉은 강 형사는 담배가 생각나기라도 하는지 입술을 만지며 입맛을 다셨다.

‘한 3년 전에 관악구랑 동작구 사이에서 일어났던 연쇄살인 사건 기억나십니까?’

난 뒷머리를 긁적였다. 3년 전이라 하면……. 그냥 TV 자체를 보지 않았다. 내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자 강 형사가 그 유명한 사건도 모르냐며 나를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하지만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기에 강 형사는 조곤조곤 설명을 시작한다.

‘그땐 유명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새끼 나이가 25살에 불과한데, 죽인 사람만 10명이 넘었거든요. 거기다 죄다 여자였고, 9명은 여대생이었어요.’

듣기만 해도 욕이 나오는 어지간한 X새끼였다. 그런 놈들이 부랑자 중에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으며, 입에선 자동으로 욕설이 튀어나온다. 강 형사는 그때 당시를 회상이라도 하는지 흐릿한 눈으로 먼 산을 바라봤다.

‘최초의 피해자는 친모였는데……. 글쎄 시체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미친놈, 시발놈 거리며 반나절을 물어봤더니 그놈이 웃으면서 어디를 가리킨 줄 아십니까?’

그렇게 말한 강 형사가 피식 웃으며 양손으로 자기 배를 가리켰다. 난 밖에 그놈들이 있어 긴장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어이없는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강 형사는 숨을 후 내뱉으며 상상도 하기 싫은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0명이 죽었는데, 시체는 3구밖에 못 찾았습니다. 근데 그 3구도 그 새끼 냉장고에서 나왔어요.’

인육을 돼지고기나 소고기처럼 보관한다. 말 그대로 단순한 호기심이나 충동적인 행위가 아닌, 예정되고 계획한 식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강 형사가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는지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그런 짐승 같은 새끼도 사람이라고, 배가 고프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설렁탕을 시켜 줬더니, 고기 잡내가 나서 못 먹겠다고 하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네. 허허, 시발.’

강 형사는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욕설을 내뱉는다. 그리고 흘러내리는 콧물을 킁 삼키며 입을 꾹 다물었다. 밖으로 보이는 부랑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강 형사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놈들처럼 탈옥했을 수도 있겠죠?’

강 형사는 모호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증거가 저 앞에 있잖아요?’

잡힐 듯 말 듯 한 단서는 공기 같은 무형의 존재가 되어 내 주위를 떠돌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중요한 것은 부랑자들의 정체를 대략이나마 파악했다는 것과 어쩌면 하나의 무리로 움직이는 그들이 쉘터 같은 집단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

난 손에 따뜻한 입김을 훅 내뱉고, 강 형사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놈 이름이 뭡니까?’

‘누구요?’

‘아까 말했잖아요. 그 사람 먹는다던 미친 새끼요. 생긴 것도 알면 좋고…….’

내 물음에 강 형사는 입맛을 다시며 뒤통수를 긁적인다.

‘하도 그 새끼, 저 새끼라고 불러서…….’

강 형사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하는지 사람 이름 몇 개를 중얼거리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는 밖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웅성거림에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움직임을 멈춘 나는 심장이 조금씩 두근거림을 느꼈다.

‘…….’

그리고 그 심장 소리 사이로 웅성거림이 또다시 들려왔다.

우리는 서둘러 자세를 숙이고, 몸을 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을 숨긴 우리는 긴장감이 섞인 얼굴을 들어 웅성거림이 들려 온 창밖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거리가 순식간에 지워지고,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폭설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눈이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뒤죽박죽인 날씨는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눈보라를 몰아 왔고, 순백의 밤이 다시 한 번 도시를 뒤엎기 시작했다.

부랑자들은 갑작스러운 폭설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빠르게 내리는 함박눈은 거머리처럼 옷과 머리에 달라붙었고, 굵은 눈발은 불어오는 바람과 동시에 시야를 방해했다.

부랑자들은 자기들끼리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이내 근처에 있는 건물로 빠르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15명이 넘는 인원이 하나둘씩 짝지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우리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부랑자 2명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가 숨어 있는 빌라 건물로 들어와 버렸다. 난 속으로 침음성을 삼키며 살며시 강 형사를 바라봤다.

강 형사는 긴장감과 작은 절망이 깃든 얼굴로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 난 바닥에 내려놓았던 창을 들어 올렸고, 강 형사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폭설은 변수로 돌변했고, 이내 우리를 위협하는 비수로 찾아왔다.

그리고 계단 밑으로는 부랑자 놈들이 떠드는 소리가 웅웅 울리기 시작했다.

‘……에라이, 시발!’

‘이야~ 형님, 눈이 억수로 내리네요.’

‘좋냐? 미친놈.’

부랑자 두 놈이 내뱉는 걸쭉한 욕설과 말소리. 그놈들은 다행히 위층으로 올라오지는 않는지 발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살며시 자세를 숙이며 남아 있는 계단 위를 기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옥상 문은 잠겨 있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옥상 문 앞에서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제발 올라오지 마라.

난 창을 꾹 잡고 눈을 감았다. 아무리 무리와 떨어진 부랑자라고 할지라도 대면 자체를 피해야 할 상황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강 형사도 그놈들과 싸워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아는지 숨조차 아끼며 숨을 죽였다.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폭설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밑에서 들려오는 욕설의 빈도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미친 새끼들, 제발 조용히 해라. 난 흐려짐과 동시에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제발 밑에 있는 부랑자 놈들이 입을 닥치길 빌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동자가 떨리고 있는 강 형사와 눈을 마주쳤다.

강 형사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 따로 할 말이 있는지 입술을 비틀며 여닫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소리를 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입은 다문 강 형사는 참담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봤다.

내 시선은 강 형사를 따라 자연스럽게 창밖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시야는 역시 폭설 때문에 흐릿했다. 하지만 나는 그 흐릿한 시야 사이로 달달 떨고 있는 인질들을 길 한복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짐승 같은 새끼들.

부랑자들은 인질의 옷을 다 벗겨놓고, 폭설 한가운데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인질들은 차마 도망칠 용기가 없는지 온몸을 버둥거렸고, 이내 서로가 뭉치며 추위와 싸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불안한 몸짓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게 아마 부랑자들이 각 건물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계단 밑으로 부랑자 놈들이 흘리는 비웃음이 들려왔다.

손에는 저절로 힘이 들어갔고, 이빨은 서로가 맞물려 까득 소리를 낸다. 나는 강 형사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차가운 현실 앞에 쥐새끼처럼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저들을 구하러 나갔다간 개죽음을 당할 뿐이다.

나는 눈이 그치고, 차라리 저들이 끌려가길 빌었다. 그래야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을 테니까. 난 내가 입고 있는 이 외투가 너무나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저 밑에서 웃고 있는 부랑자들에겐 분노와 증오조차 자비롭게 보였다.

인질들이 울고 있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달달 떨리던 몸들은 이내 미동이 없었고, 그들은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밑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악한 자를 벌하지 않는 차가운 바람 소리는 내 고막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리고 그 소리들 사이로 너무나 이질적인 노이즈가 들려왔다.

딱…….

딱……. 따닥……. 깍…….

내 눈이 번쩍 뜨였다.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이 소리는 나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들리고 있었다. 꼭 장작을 패는 소리 같기도 했고, 무언가 똑 부러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들려오는 이 소리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분간을 하지 못했다.

깍…….

밑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강 형사는 사방을 둘러보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이상하게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신경이 울리는 경종을 빠르게 잡아냈다. 그리고 우연히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까각…….

아이?

정면에 보이는 빌라의 옥상에 흐릿한 형체 하나가 서 있었다. 그리고 난 그 형체가 작은 체구를 가진 아이인 것을 알아챘고, 무언가에 홀린 듯 창문에 찰싹 붙었다. 뒤에선 강 형사가 헛바람을 들이키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을 빠르게 잡아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딱……. 깍…….

기괴한 소리는 아직도 들려오고 있었다. 부랑자들은 아까부터 시작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자 그제야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거리로 빠져나왔다. 그놈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지만, 난 그 아이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아이의 긴 머리카락은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고,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 추운 날씨에도 흰 원피스를 입고 있는 작은 아이는 별다른 움직임 없이 고개를 반쯤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시선이 느껴졌다.

아이가 왜 저곳에 있지? 부랑자들에게 잡힌 인질인가? 하지만 아까만 해도 저 옥상은 비어 있었는데? 난 그 아이를 필사적으로 살펴보며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이 찌릿한 신경과 떨려오는 오금은 나에게 이 자리를 피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난 자동으로 반응하는 내 몸을 느끼며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아이인데 왜? 이 느낌은 뭐지? 두려움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내 눈동자는 떨리기 시작했고, 창을 잡고 있는 내 손은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느낌이다.

귀를 간질이는 이명과 차갑게 가라앉는 심장은 나를 송장처럼 싸늘하게 식혔다.

흐릿해지는 정신, 저리는 오금은 손으로 꾹 붙잡았다. 그 발버둥은 내 기억 속에 있는 두려움을 끄집어냈고, 포식자 앞에 서 있던 기억을 불러냈다. 그리고 정면에 보이는 아이가 고개를 들자 기괴한 소리가 도시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큰 소리다. 분명히 멀리에서도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그런데도 그놈들은 몰려오지 않았다.

마치 이곳에 무언가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

아이가 고개를 들자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얼굴이 드러났다. 심장이 천천히 뛰기 시작함과 동시에 마치 안경이라도 쓴 듯 그 모습이 너무나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든 아이의 눈동자는 회색이었고, 아래턱이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각, 까각…….

이 기괴한 소리의 정체를 모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아이, 아니! 그놈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위턱과 이빨들이 까가각 움직였다. 그리고 아이의 목이 절대 꺾을 수 없는 기괴한 방향으로 꺾였다.

딱…….

난 손을 뻗어 강 형사를 붙잡았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