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두식아!!! 뚜껑 열어!!!’
목이 쉬어서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난 끊어질 듯 말 듯 한 이성과 정신을 붙잡고, 육체를 한계까지 몰아넣는다. 내 목을 노리는 그놈을 처리하면, 그 옆의 노인을 노리는 녀석을 처치한다. 우린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를 지키고 등을 맡겼다.
두식이가 황급하게 맨홀 뚜껑으로 달려가서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양손에 힘을 가한다. 무거운 맨홀 뚜껑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옆으로 치워졌고, 우리의 마지막 탈출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등을 맡기고 있던 노인 쪽에서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영감님!’
노인이 놈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덮쳐지는 순간, 위태롭던 몸이 한계를 넘어섰는지 휘청 흔들리며 바닥에 엎어진다. 그리고 강력한 완력을 가진 그놈은 노인의 반항을 가볍게 뚫어내며 목덜미에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노인은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외쳤다.
‘그냥 가!!!’
노인은 마지막 발악을 하듯 장전이 되지 않은 크로스 보우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크로스 보우 몸체로 그놈이 내미는 이빨을 막아 봤지만, 크로스 보우는 곧 철이 긁히는 소리와 함께 시위가 끊어지고 몸체가 부서진다.
쿵. 쿵. 쿵!
그놈은 반항하는 노인이 짜증 난다는 듯 기괴한 울음소리를 길게 내뱉는다. 그리고 양손으로 노인의 머리를 잡고, 바닥에 여러 번 내려찍는다. 쿵 쿵 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심장의 피들도 같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노인은 정신을 잃었는지 움직임이 없었다. 그리고 노인을 잡고 있던 그놈은 마치 코코넛 열매라도 딴것처럼 기분 좋은 울음을 내뱉으며 입을 쩍 벌렸다. 난 총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착검하고 있던 대검만을 빼내어 노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온몸에 흐르고 있는 피가 손끝을 퍼져 나갔다가 다시 심장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머릿속의 이성을 잡고 있던 끈이 끊긴 순간, 공포라는 감정이 탁하고 터져 버린다. 난 그놈들과 같은 고함을 내뱉었다. 증오스럽다. 그놈들이 미치도록 증오스러웠다.
바닥에 쌓인 눈이 흩날리고, 눈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내리는 눈과 더불어 흐릿한 정신은 내 시야를 어지럽히고, 난 내 앞에 모든 장면을 눈에 담았다. 검은색 피가 하얀 눈을 더럽히고, 불어오는 칼바람은 단 한 순간도 감지 못한 내 눈을 감기게 만든다.
노인의 머리를 씹으려는 그놈의 이빨에 가죽장갑을 끼고 있는 손을 박아 넣었다. 그놈은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었고, 으득 소리와 함께 손에서 극심한 고통이 전해져 온다. 난 물린 손을 그대로 움켜잡고, 그놈을 뒤로 밀었다. 그리고 다른 손에 들고 있는 대검을 그놈 복부에 정신없이 박아 넣었다.
난 고함을 내질렀다. 그것은 고통과 분노 그리고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오는 발악이었다. 그놈의 복부는 대검으로 찢어져 더러운 내장과 피를 쏟아 낸다. 하지만 그놈은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 내 손을 뱉었고, 이내 나에게 아가리를 들이민다.
난 지지 않고 대검을 빼내며 고함을 지른다. 그리고 그대로 대검을 추켜올렸다.
내가 내지른 대검은 그대로 놈의 아래턱을 관통했다. 그런데도 바동거리는 그놈을 난 손으로 밀고 엉키며, 같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놈이 쏟아 낸 내장과 피는 내 팔다리에 엉겼고, 더러운 눈은 온몸을 적신다.
‘어, 으아! 어!!’
그놈이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 맨홀 뚜껑을 완전히 연 두식이가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빨리 오라는 다그침 같았다. 난 죽어 버린 그놈을 밀쳐내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의 머리 아래로 붉은 피가 흘러 흰 눈을 적신다. 난 움직임이 없는 노인을 움켜잡고, 버둥거리며 일어난다. 가야 한다. 살아야 한다. 저 코앞까지만 가면 둘 다 살 수 있다. 난 거친 숨을 훅 내뱉으며, 입안으로 들어온 내장조각을 뱉어냈다.
필사적으로 눈을 해치며 노인을 질질 끌었다. 흰 눈에 묻어 나오는 피가 점점 많아질수록 내 몸도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리고 맨홀 뚜껑에 도착한 나는 노인을 그 밑으로 욱여넣고, 갈팡질팡 하고 있는 두식이를 발로 차 안으로 쑤셔 넣었다.
하지만 두식이는 들어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버둥거린다. 왜 그래! 왜 그러냐고!! 난 고함을 내지르며 두식이를 걷어찼지만, 이내 두식이가 내뱉는 말을 듣고 온몸이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용, 용팔이!’
용팔이? 용팔이!!
난 그대로 목을 돌려 뒤를 바라봤다. 그러자 내 시야에는 온몸으로 골목을 막으며 쇠 파이프를 휘두르고 있는 용팔이가 보였다. 아까부터 접근하는 놈들이 없는 게 이상하다 싶었다. 그 겁쟁이 용팔이가, 틈만 나면 울던 용팔이가 지금은 마지막을 불태우는 촛불처럼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그놈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난 다시 고개를 돌려 두식이를 바라봤다. 두식이는 소처럼 큰 눈을 끔뻑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큰 눈동자는 너무나 맑아 마치 거울처럼 나를 비춘다. 그리고 그 거울에는 검은색 피를 흠뻑 뒤집어쓴 내가 있었다.
숨자, 이대로 숨어! 그럼 넌 살아서 채연이를 볼 수 있다. 용팔이? 고맙다. 용팔이 덕분에 살 수 있는 거다. 그러니까 이곳에 꼭꼭 숨어서 채연이를 만나러 가자. 삐이이 울리는 이명 사이로 너무나 달콤한 속삭임이 들려온다.
이 구멍은 유일한 탈출구이자 마지막 기회다. 지금 이 뚜껑을 닫는다면 다시는 열릴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지옥과 현실을 구분하는 이 통로를 멍하니 바라본다. 또 도망칠까? 나는 또 도망쳐도 되는 걸까?
그때처럼?
‘용, 용팔이…….’
두식이가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그리고 그 눈동자에 비추는 나도 어느새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무섭다. 죽음이 너무 무섭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또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손이 덜덜 떨린다. 눈물은 더러운 볼을 타고 흰 눈 위에 주르륵 떨어진다. 내 이성은 이 통로에 몸을 욱여넣으라고 외쳤다. 하지만 내 몸은 그 생각과는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빠르게 맨홀 뚜껑을 잡고 앞으로 밀어서 두식이와 노인이 숨어 있는 구멍을 막기 시작했다. 노인은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었고, 두식이는 넋을 뺀 상태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맨홀 뚜껑을 반쯤 밀자 두식이 얼굴에 서서히 그림자가 기운다.
‘……추우니까 꼭 끌어안고 있어.’
내가 흘린 피와 땀이 더러운 손등에 뚝 떨어진다. 내가 내뱉은 말이 눈이 내리는 허공을 조용히 감돈다.
뚜껑이 닫혔다. 그리고 난 재빠르게 주위에 있는 눈을 긁어모아 맨홀이 있는 주위를 막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게, 그놈들이 이곳을 발견하지 못하게 난 최선을 다해 이 부근을 막았다. 손끝이 아리고, 손톱이 빠질 것만 같았다.
탈출구와 난 완전히 격리되었다. 후회를 하면서도, 후회를 하지 않았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이상하게 몸에는 아직도 힘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가 총을 버려둔 방향으로 뛰어갔다.
달리면서 손을 뻗어 총을 잡았다. 눈 속에 파묻혀 차갑게 식어 있던 총이 손에 잡히자 얼어붙은 신경을 찌르르 울린다. 몇 발이나 남았지? 난 그 생각을 하기도 전에 총을 견착하고, 용팔이가 있는 방향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그놈들 대가리가 폭죽처럼 터진다. 용팔이는 뒤에서 갑자기 날아온 총알에 깜짝 놀랐는지 몸을 움츠린다. 그러다 총을 발사하는 사람이 나인 걸 눈치챈 건지 비명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바닥을 기어 일어난다.
‘왜 왔어요! 왜!!’
용팔이의 온몸은 긁히고, 물린 자국으로 가득했다. 아마 에덴에서 보급한 질긴 유니폼이 아니었다면 진작 출혈로 쓰러져 죽었을 것이다. 눈물과 함께 피를 닦아 내던 용팔이가 발악을 하며 나를 탓했지만, 난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내 사격이 가해지자 용팔이를 향한 공격이 잠시 주춤해진다. 아마 좁은 골목이 아니었다면 1%의 승산도 없었을 싸움. 점점 나빠지는 상황에 난 눈동자를 굴리며 최대한 생각했다. 살아갈 길. 그리고 생사의 갈림길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난 빠르게 뛰어가 버둥거리는 용팔이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리고 우리가 왔던 반대 방향을 향해 필사적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뒷덜미가 잡힌 용팔이는 엉엉 울다가도 내가 아직 포기하지 않은 걸 눈치챘는지 스스로 일어나 비틀비틀 걸음을 옮긴다.
서로가 내뱉는 거친 숨소리가 서서히 동화된다. 그리고 강한 생존 욕구가 나에게 살길을 제시했고, 난 그저 본능이 이끄는 방향으로 미친 듯이 걸음을 옮겼다. 골목을 빠져나가자 차들이 모여 있는 공용 주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앞으로는 주차장의 경계인 초록색 철창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것만 넘어가면 공용 주차장이다. 노인과 두식이가 숨어 있는 맨홀에서 최대한 멀어져야 한다. 난 아직도 비틀거리는 용팔이를 잡고, 담 쪽으로 끌어 넘겼다.
용팔이가 힘겹게 숨을 내뱉으며 담을 넘고, 나에게 손을 내민다. 옷은 용팔이가 흘린 피로 범벅이 되었고, 그 피는 담을 따라 흘러내린다. 난 용팔이의 손을 굳게 잡고, 그 낮은 담을 힘겹게 넘었다.
저 멀리서는 우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그놈들이 혀를 빼물고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 공포에 질릴 체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난 정신없이 사방을 둘러 봤다. 용팔이는 치명상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자잘한 상처들이 너무 많았다. 빨리 지혈하지 않으면 상태가 점점 나빠질 것이다.
아무리 도망 다녀 봤자 저놈들에게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고, 결국엔 노인과 두식이처럼 몸을 숨겨야 했다. 난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용팔이를 끌고 차가 빽빽한 주차장 사이를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우리가 넘어 온 초록색 담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거리는 불과 100m. 난 선택의 순간이 온 것을 깨달았고, 엉엉 울고 있는 용팔이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울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용팔이의 뺨을 강하게 갈긴다.
뺨을 맞은 용팔이는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며 나를 바라본다. 용팔이의 눈동자에는 절망과 공포가 가득 깃들어 있었다. 난 그런 눈동자를 마주 보며 입술을 강하게 씹었고, 이내 버스 옆으로 빠르게 걸어가 용팔이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주차장에도 눈이 가득 쌓여 있었다. 난 버스 하단을 완전히 가리고 있는 눈들을 손으로 끄집어내고, 용팔이를 그쪽에 쑤셔 넣었다. 멍하니 나에게 끌려가던 용팔이는 상황파악이 되기 시작하는지 빠르게 내 손을 움켜잡았다.
‘아, 안 돼! 형님 안 돼요!’
용팔이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그럴 때마다 내 주먹은 용팔이의 얼굴과 몸을 때렸고, 나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손을 놓게 했다. 그런데도 용팔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바닥과 바퀴를 손으로 긁었다. 손톱이 빠지고 손끝이 문드러져 피가 철철 흘렀지만, 용팔이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처절한 외침을 내뱉었다.
‘같이 숨어요! 형님, 둘 다 살 수 있어요!’
아니다. 분명 둘 다 죽는다. 이미 그놈들의 시선을 우리를 향하고 있었고, 한 놈을 잡기 전에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용팔이를 살릴 수 있다고 판단한 이유는 채연이가 차 밑에 들어가 살 수 있었던 그 기억 덕분이었다.
이놈들은 내가 도망간다면 나를 쫓아올 것이다. 하지만 내가 숨는다면 버스 밑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난 내가 메고 있던 가방을 용팔이에게 넘겼다. 이곳에는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구급상자와 밤을 보낼 수 있는 핫팩이 있었고, 에덴과 통신이 가능한 무전기가 존재했다. 노인과 두식이, 그리고 용팔이가 살려면 구조요청이 꼭 필요했다.
난 빠져나오려는 용팔이를 발로 밀어내고, 치워 뒀던 눈을 파헤쳐 버스 밑을 막기 시작했다. 눈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을 때쯤 용팔이는 저항을 멈췄고, 이내 서서히 사라지는 구멍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주먹 하나가 들어갈 구멍이 남을 때쯤 용팔이가 나를 조용히 부른다.
‘형님…….’
난 눈을 퍼 올려 마지막 남은 구멍을 틀어막았다. 숨이 거칠다. 머리는 너무나 아팠다. 난 사방에서 들려오는 그놈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는 총밖에 남지 않은 장비를 들고, 그놈들이 보이지 않은 방향으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몇 발 남지 않은 총을 위로 추켜올리고 방아쇠를 당긴다. 벼락같은 총성이 눈 내리는 도시를 가로지르고 그놈들을 자극한다. 이곳을 봐라. 나를 따라와라. 그리고 그놈들은 내 유인에 충실하게 대답하며 바닥을 기고 뛰어오른다.
검은색 파도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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