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84화 (84/313)

[84]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

적의와 악의, 그리고 포식의 기쁨이 검은색 덩어리가 되어 끓어오른다. 그리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었을 때, 지금과 같은 하울링이 도시 곳곳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널 먹겠다. 널 먹고야 말겠다! 치명적인 본능이 우리의 고막을 강타한다.

신경이 곤두서고, 그 여파는 곧 전기신호를 만든다. 죽는다. 넌 곧 죽는다. 그 살의에 반응한 몸은 근육 다발 하나하나까지 두려움에 찌들게 만든다. 온몸이 무거워진다. 무력감이 내 근원 자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판단해라, 동윤아! 지금 바로 판단해라. 난 아비규환으로 변한 현장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눈동자는 끊임없이 흔들렸고, 등골을 차가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다. 모두가 내뿜는 절망이 나를 적신다. 그놈들이 내뿜는 분노가 내 정신을 끈적하게 핥는다.

‘컥!’

노인이 엄 순경에게 달려가 총을 뺏고 복부를 걷어찬다. 차마 설명 못 할 표정은 엄 순경을 두 번이고 쏴 죽였을 만큼 사나웠다. 미치도록 원망스럽다. 저 권총을 뺏어서 당장 대가리에 총알이라도 박아 넣고 싶었다. 하지만 난 그것보다 우리의 생존을 우선순위로 삼았다.

모두가 나를 쳐다본다.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다 닥쳐!

나는 머리를 흔들어 그 감정을 떨쳐 냈다. 하지만 회색의 정글은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 아니 육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올랐고, 손발은 주체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놈들이 온다.

‘꺄아아악!!!’

정해진 길이 없다. 그놈들은 사람이 앞에 있다면 하수구 구멍에도 몸을 욱여넣는 새끼들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귀를 찢는 듯한 여자의 비명으로 시작되었다. 그놈들이 골목 담을 넘어 미친 듯이 몸을 날리기 시작했고, 저 멀리서는 황소 떼 같은 회색 구름이 몰려온다.

목표는 오직 살과 피!

차가 무너지고, 박살 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하울링에 대답한 죽음이 회색 파도가 되어 우릴 덮쳐오기 시작한다. 상황은? 가능성은? 그리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난 한순간에 많은 생각을 했고, 그만큼 많은 것을 손에서 놓았다.

‘살려 줘!! 살려 줘!!!’

‘엄마!!!!’

그놈들이 미친 듯이 달려오자 대열을 순식간에 무너진다. 남자들은 고함을 지르며 도망치기 바쁘고,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오직 아이들만이 절망에 빠져 아무것도 못 한 채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들의 전멸은 예고편처럼 눈앞에 상영되었다.

난 멍하니 고개를 돌려 노인과 용팔이 형제를 바라본다. 노인의 얼굴에는 절망이 어렸고, 용팔이는 반쯤 울먹이고 있었다. 그들은 재앙과도 같은 공포 앞에 아무것도 못 하며 내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용팔이가 나에게 말했다.

‘형, 형님……. 우리 죽어요?’

안 죽는다. 아니, 못 죽는다. 노인과 용팔이 형제 뒤로 다른 일행들의 모습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 또한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 삶은 거친 조류가 되었지만, 그 흐름조차 그놈들에게 뺏길 수는 없었다.

다리가 묵직하다. 채연이가 매달려 있던 자리다. 아빠는 슈퍼맨, 모두를 구하는 슈퍼맨. 채연이의 어눌한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난 그 목소리에 하모니를 심어 넣듯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그래, 난 아직 살아있다.

챙겨 온 탄창은 두 개. 난 하나를 빠르게 꺼내 총에 끼워 넣었다. 노리쇠를 당기자 차가운 장전음과 함께 내 근육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차갑게 식었던 온몸의 피가 뜨겁게 달궈져 광란의 질주를 시작했고, 차갑던 등골은 솟구쳐 오르는 열기 앞에 뜨거운 김을 내뱉었다.

생존 욕구. 나는 질주하기 시작한 폭주 기관차처럼 삶을 연료로 삶을 태웠다.

타앙!

총소리가 다시 한 번 도시를 강타한다. 하지만 이 총소리는 절망을 부르는 시발점이 아닌 살기 위한 신호탄이었다. 난 담을 넘어오는 그놈들을 향해 총을 발사했고, 내 발사를 시작으로 노인이 용팔이의 총을 뺏어 들었다.

그리고 우리 둘은 동시에 일제사격을 시작했다. 담을 넘어 이곳으로 접근하는 그놈들의 머리가 깨지고, 두개골 사이로 더러운 뇌수가 흘렀다. 나를 시발점으로 퍼지기 시작한 열기가 천천히 우리 일행들을 잠식시키고 있던 차가운 송장의 기운을 몰아낸다.

나는 성대가 찢어져라 소리를 외쳤다. 그 외침은 사람의 말이 아니었다. 그저 살아야 한다는 고함과 일행들을 이끄는 출발 신호였다. 소음? 이미 총을 발사한 순간부터 포기했다.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제외한 다른 생각은 이미 내 머리에서 배제되었다.

앞!

막혔다.

뒤!

막혔다.

그렇다면 옆으로 뚫는다. 양옆에는 골목이 있었지만 이미 몸을 구겨 넣는 그놈들로 가득했다. 빠르게 판단을 끝낸 나는 떨고 있는 용팔이의 뒷덜미를 잡고, 본능처럼 건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총을 발사하던 노인은 멍하니 남아 있는 두식이를 잡아끌고 나를 따라왔다.

우리가 들어간 건물은 1층짜리의 슈퍼 건물이었다. 여기서 농성을 한다고? 자살하자는 소리와 같았다. 난 문을 발로 차며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창문 사이로는 사람들이 찢겨 죽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도망가던 남자들은 그놈들에게 둘러싸여 배를 뜯기고, 울면서 앉아 있던 아이들은 산채로 머리통이 뜯긴다. 펼쳐지는 지옥도는 공포를 내뿜고, 우리에게 살길이 없다고 경고를 날린다. 그래, 길이 없다. 그렇다면 길을 만들어야 했다.

난 빠르게 슈퍼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펴봤다. 그러자 슈퍼 뒤쪽에 작은 창문 하나가 존재하는 걸 발견했다. 흔한 유리창으로 되어 있는 창문은 사람 하나가 빠져나가기 충분했다. 난 우리가 들어온 문을 향해 총을 조준하며 크게 외쳤다.

‘영감님! 창문!!’

노인이 창문을 깨는 소리와 함께 난 방아쇠를 당겼다. 우리를 따라 슈퍼로 들어온 그놈들이 입을 쩍 벌렸고, 그 입 사이로 내가 선사한 총알이 쉴 새 없이 처박힌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그놈들의 대가리는 펑펑 터지고, 탄피는 내 눈앞에서 어지럽게 춤춘다.

짤그랑, 짤그랑. 탄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내 거친 숨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내 귓가를 간질인다. 내 입김은 화약 연기와 함께 위로 솟아올랐고, 내 정신 또한 천천히 몽롱해진다. 방아쇠를 당긴다. 또 당긴다. 펑펑 터지는 머리는 내 심장 소리와 맞춰 두근거린다.

딸칵.

공이가 빈 허공을 때린다. 그리고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흘렀다.

‘동윤아!!!!!!!!!!!’

뒤에서 노인이 갈라진 목소리로 처절하게 외친다. 그 목소리를 들은 내 몸은 본능적으로 움직였고, 재빠르게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헉-. 헉-. 거친 숨소리가 내 발목을 잡고, 팽팽하게 당겨진 근육이 온몸을 옥죄여 온다.

모두 창문으로 빠져나간 듯 슈퍼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노인만이 창문에서 총을 내밀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한 순간, 노인의 총구가 불을 내뿜기 시작한다.

뒤에서 하울링이 울린다. 나를 죽이고 말겠다는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를 보고 있구나, 내 뒤까지 왔다. 나를 짜릿하게 울리는 신경이 빠르게 발을 옮기라고 채찍질한다. 노인은 그 자리에서 탄창 하나를 다 비우고 나에게 손을 내민다.

난 필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노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내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창문 밖으로는 두식이와 용팔이가 미친 듯이 움직이며 놈들과 싸우고 있었고, 사방에는 온통 그놈들뿐이었다.

난 꺽 꺽 숨을 내뱉고 발을 박찼다. 그리고 다 비어 버린 탄창을 빼내고, 마지막으로 남은 탄창을 끼워 넣었다. 노인도 잔탄을 모두 쏟아내고, 허공을 향해 비어 버린 탄창을 집어 던졌다. 탄창이 바닥에 닿는 순간, 우리는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끄아아!

입을 벌리며 달려오는 그놈의 죽통을 개머리판으로 날려 버린다. 그놈은 형편없이 넘어졌지만, 이내 손을 뻗어 나의 피를 갈구한다. 나는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그놈들을 족족 찌르고 치며 발사했다. 하지만 그놈들의 숫자는 줄기는커녕 점점 늘어났다.

뒤에서는 울음과 거친 숨소리가 섞여서 내 고막을 울린다. 살길. 살길을 찾아야 하는데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살기 위한 판단도 내 머릿속에서 모두 떠나 버렸다. 우리는 그저 앞으로 한걸음 전진하며 끝없는 안개 숲을 돌파하고 있었다.

‘으악!’

그리고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 비명은 내 심장을 덜컹 떨어트렸다. 난 침과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빠르게 뒤를 돌아봤고, 사방에서 몸을 던지는 그놈들을 정신없이 눈으로 좇았다.

노인과 용팔이가 잡혔다. 그 둘은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내 옆에 있던 두식이는 분노가 섞인 고함을 내뱉으며 용팔이를 향해 달려갔다. 그 광경을 본 난 다시 한 번 고함을 내질렀다.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결속되어 있던 무언가가 내 피를 끓어오르게 했다.

노인의 목을 물려는 그놈 대가리에 총을 박아 넣는다. 그리고 움찔거리며 경련하는 녀석을 걷어차고, 넘어져 있는 노인의 옷을 잡고 필사적으로 들어 올린다. 이대로 가다간 다 죽는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그놈들은 우리를 천천히 포위하고 있었다.

숨어야 한다.

난 정신없이 사방을 둘러봤다. 두식이는 용팔이를 덮친 그놈을 곤죽으로 만들었고, 넘어져 있는 용팔이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더 많은 그놈들이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절망스러운 상황이다.

‘동윤아.’

삐이이 울리는 이명 사이로 노인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절망으로 빠지려는 나를 붙잡았다. 나는 얼떨결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곳에는 노인이 땀에 젖은 얼굴로 초연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앞에 맨홀 뚜껑이 하나 있어.’

노인은 그놈들이 몰려오는 골목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닥에 눈이 쌓여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파헤친 눈 사이로 콘크리트 바닥과 색이 다른 한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노인은 하수구에 몸을 숨기자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골목으로 향하는 길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놈들로 가득했다. 저곳을 뚫고 지나간다니,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노인은 깊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 명이라도 살아가야지.’

손이 덜덜 떨렸다. 죽음이 눈앞까지 다가왔다. 언제까지 나를 피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 내 귀에 검은 찌꺼기가 속삭인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들려온 노인의 말은 한곳에 숨겨져 있던 필라멘트를 조용히 자극했다.

노인이 총을 버린다. 그리고 뒤에 메고 있던 크로스 보우를 꺼내 들었다. 난 아직 총알이 남은 총을 들고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용팔이 형제를 손으로 밀었다. 목적지가 정해졌다면 우리는 거침없이 걸음을 옮겨야 한다.

눈을 헤치며 달린다. 속도는 느렸어도 우리는 그곳을 향해 전진했다. 우리가 쏘는 총알과 볼트는 하얀 눈 위에 검은색 피를 쏟았고, 내 몸은 어느새 검은색 피로 절었다.

한계가 찾아온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이 지옥 길 위에 한계가 서서히 나를 찾아오고 있었다. 숨을 쉬고 있는지, 아니면 멈추고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검은색 피를 닦으면 닦을수록 흑색 찌꺼기는 나를 더욱더 옭아맨다.

내가 지금 물속을 달리는 걸까? 공기가 너무 무겁고 칙칙하다. 나를 끝없이 잡아당기는 이 저항감과 무거움은 서서히 나를 지치게 했다.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 100m도 되지 않는 거리는 그 어떤 길보다 길고 멀었다.

하지만 억겁의 시간과 사선을 넘기자 우리는 맨홀 뚜껑 코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놈들은 우리를 결코 도망가게 두지 않겠다는 듯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여기저기서 나를 옥죄려는 손들이 날아오고, 내 목을 노리는 이빨들이 번뜩인다.

난 날아오는 한 놈을 그대로 발로 차고, 앞을 향해 처절하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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