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82화 (82/313)

[82]

‘가겠습니다.’

시간이 지나 우리 앞으로 다가온 강 형사가 말했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자세한 설명을 들었는지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더 조심스러웠으며 또 정중했다. 그리고 강 형사의 뒤로는 많은 사람들이 간절한 눈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우리를 살려주세요. 난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음에도 인간이 내보내는 강한 생존욕구 앞에 천천히 동화되었다. 이중에 죽고 싶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눈앞에 던져진 밧줄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좋습니다.’

난 고민 없이 바로 대답했다 그리고 간절히 도움을 바라는 눈빛을 마주하니 이상하게 옛날로 돌아간 듯한 기분도 들었다. [이 부분은 지우고 싶었는지 볼펜으로 그어져 있었다.] 상대적으로 많은 인원이긴 했지만 에덴이 멀지 않았기에 금방 도착할거라 예상된다. 하지만 문제는 밖에서 미친 듯이 불고 있는 눈보라였다.

노인은 창문 밖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혀를 찼다. 용팔이 형제는 부지런히 장비들을 체크하며 떠날 준비를 했지만 이내 내 눈치를 보다가 살며시 가방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내가 창문 옆으로 다가가 밖을 살펴보자 노인이 옆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못나가. 나갔다간 다 죽어.’

서울에 살면서 이렇게 많은 눈이 오는 것은 처음 봤다. 아니, 눈도 문제였고 미친 듯이 불어오는 바람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밖은 순백의 밤 혹은 눈의 안개였다. 기상이변일까? 난 우리나라에 이런 눈이 왔다는 사례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1시 10분. 한참 활동할 시간이지만 우리는 지구대안에 꼼짝없이 고립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추위와 눈을 피할 수 있는 건물 안이었고 문을 막고있는 바리케이드가 존재한다는것이었다.

그래, 우린 안전했고 눈이 그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불안감이 섞인 숨을 훅 내뱉었다. 그리고 뒤돌아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눈이 그치면 이동하겠습니다. 그동안 체력을 비축해두세요.’

사람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자들은 마른기침을 했고 남자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그중에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위태위태해 보였다. 식량이 없는 걸까? 난 엄 순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먹을 게 떨어졌습니까?’

그러자 엄 순경은 잠시 멍을 때리더니 이내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조금씩 아껴 먹었는데……. 그저께를 끝으로 다 떨어졌습니다.’

공포는 사람을 마비시킨다. 이들은 이렇게 굶주려 있음에도 밖으로 나가 식량을 구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들을 탓하거나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공포라는 감정이 얼마나 두려운지는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으니까.

일단 난 혀를 차며 사람들 상태를 살펴봤다. 가뜩이나 많이 내리는 눈 때문에 체력소모가 엄청날 것이다. 그것을 고려한다면 출발하기 전 최대한 체력은 비축해둬야 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챙겨온 식량을 풀어야했다.

‘용팔아, 챙겨온 게 얼마나 되냐.’

그러자 대화를 듣고 있던 용팔이가 가방을 뒤집어 바닥에 식량들을 쏟아냈다. 쉼터에서 굶주린 경험 때문일까? 우리는 마치 강박증에 걸린 사람처럼 항상 여유분의 식량을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지금 그 덕을 톡톡히 보는 중이었다.

나는 그 식량 중에 우리가 먹을 것만을 따로 빼놓고 모두 엄 순경에게 건네주었다. 비록 초콜릿과 에너지 바 같은 음식뿐이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메뉴를 보고 투덜거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 순경은 그것을 받아들고 빠르게 지구대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지구대 안쪽에서 환호성이 터진다. 이곳에서 오래 같이 지낸 만큼 저들 스스로가 잘 나눠먹을 거라 믿었다. 저 한쪽에서 쭈그려 앉아있던 강 형사가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보였고 난 별다른 감정 없이 그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 * *

‘……지겹게도 오는구나.’

노인이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옆에서 담요를 감싸고 있는 나도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벌써 오후 4시다. 한참을 기다려봤지만 눈은 그치지 않았고 이제 어두워질 기세마저 보였다. 5시가 넘어가면 슬슬 해가질것이다.

완벽하게 고립되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 에덴으로 복귀를 해야 했는데 가는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4시 30분이 될 때쯤 나는 복귀를 포기해야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노인이 한구석에서 졸고 있는 용팔이 형제를 깨웠다.

‘여기서 밤을 보내야겠어.’

내가 깨어난 용팔이 형제에게 말하자 용팔이는 걱정스런 얼굴로 밖을 바라봤고 두식이는 언제나 그렇듯 표정 없는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결정이 난 순간 우리는 행동을 할 차례였다. 일단 종이나 천 같은걸 가져와 창문을 막았고 바리케이드를 점검하며 방어시설을 확인했다.

그러자 저 뒤에서 강 형사가 우리를 불렀다.

‘무슨 일 있습니까?’

우리가 부산스럽게 움직이자 문 앞까지 찾아온 모양이었다. 난 바리케이드에 의자 하나를 끼워넣으며 대답했다.

‘오늘밤은 여기서 보내고 내일 아침 일찍 이동하겠습니다.’

그러자 강 형사는 대충 예상 하고 있었는지 떡진 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오늘 출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지 지구대 안쪽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대답했다.

‘……다들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쉽게 됐습니다.’

에덴이란 이름이 주는 이름값은 상당했다. 어디서 어떤 소문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피난민들에게 에덴이란 단순한 인간들의 공동체가 아닌 정말 성경에나 나오는 에덴으로 인식된 모양이었다.

물론 낙원이라 불릴 만큼 대단한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옥 같은 곳에서 한 달을 넘게 살아온 그들로써는 문명이란 게 남아있는 에덴이 마치 이상향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난 충분히 그들을 이해하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입안이 씁쓸해졌다.

난 강 형사를 향해 주의하라는 충고를 했다.

‘너무 들떠서도 곤란합니다. 잘 추슬러주십쇼.’

강 형사는 알고 있다는 듯 쓴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정문을 살피더니 이내 안으로 들어가려 했고 순간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강 형사가 가지고 있는 숄더 홀스터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아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은색 수갑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으로 그간 겪었던 기억들이 순식간에 지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놓치고 있던 것 하나, 그 정체는 여태 흩어진 퍼즐처럼 나를 불안하고 답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연치 않게 실마리를 발견한 순간 난 자동적으로 반응해 그 장면을 기억해냈다.

‘저기요.’

그리고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입이 먼저 떨어졌다. 난 지구대 안쪽으로 걸어가려는 강 형사를 불러 세웠고 그는 의문 가득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난 노인과 용팔이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이곳에 남은 작업을 맡겼다. 그리고 조금 조급한 발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 * * * * *

아무도 없는 비품 창고에 그를 데리고 들어왔다. 우리가 에덴에서 온 구조대인걸 확신한 강 형사는 처음과는 다르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없는 곳에서 따로 이야기를 하자는 내 제안에도 쉽게 수긍하며 이곳까지 따라와 줬다.

‘무슨 일입니까?’

내가 한참을 말이 없자 강 형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눈을 잠시 감고 생각을 마친 끝에 강 형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혹시 수갑도 가지고 다니십니까?’

수갑을 가지고 있는 건 아까 확인했다. 하지만 강 형사의 도움이 필요한 나로서는 의심을 줄만한 행동을 자제해야 했고 내가 원하는 용건을 꺼내기 전에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강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난 조용히 속삭였다.

‘수갑 좀 잠깐 볼 수 있습니까?’

뜬금없이 수갑을 보여 달라는 나의 말에 강 형사는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장난이 아닌 분위기와 진지한 내 눈동자를 읽었는지 머쓱해하며 뒷머리를 긁적였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총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짤랑 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품에서 은색 수갑이 빠져 나왔다. 난 손을 내밀어 강 형사가 내미는 수갑을 받아들었고 이내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기억을 붙잡고 내 시야와 끊임없이 대조하기 시작했다.

분명 그때 봤던 수갑이 맞았다.

내가 처음으로 부랑자와 만났던 날. 달빛이 시릴 만큼 쏟아져 내리던 숲은 아직도 뇌리 속에 강하게 박혀 있었다. 분수처럼 쏟아 나와 흙바닥을 흥건히 적시던 피. 그리고 인간 같지도 않은 자들에게서 유일하게 발견한 실마리.

그들은 분명 줄이 끊어진 수갑을 팔찌처럼 차고 있었다. 경황이 없던 나는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넘겼지만 아까 수갑을 다시 본 순간 중요한 것 같은 기억이 내 머리를 벼락처럼 스쳐지나갔다. 난 수갑을 잘그락 거리며 다시 강 형사에게 내밀었다.

‘……다른 수갑도 비슷한 종류입니까?’

강 형사는 내가 내민 수갑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런 건 왜 물어보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대부분 같습니다.’

부랑자들이 범죄자였을 확률이 높아졌다. 아니, 거의 맞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세상이 망하고 종말이 찾아오긴 했지만 이제 겨우 한 달이 넘었을 뿐이다. 하지만 세기말에나 발견될 식인이나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범죄가 집단적으로 이뤄졌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비정상적인 속도였다.

인간 대부분은 법과 윤리의 테두리에서 살아간다. 물론 종말이 찾아와 그 테두리는 순식간에 벗겨지고 말았지만 그 흔적만큼은 아직 우리 곁에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생존자 대부분은 그 테두리의 흔적 곁에 머물거나 혹은 그 테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부랑자들은 달랐다. 마치 법과 윤리가 태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람을 먹고 심지어 타인을 가축처럼 대한다. 일반인이라면 상상도 못할 행위, 말 그대로 준비된 ‘악마’처럼 부랑자들은 이 종말에 착실히 적응해가고 있었다.

종말이 그들을 변하게 했던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원래 그런 존재였을 뿐이다.

그 순간 강 형사가 나에게 외쳤다.

‘이봐요, 사람이 부르면 대답 좀 해주세요! 괜히 불안하게…….’

내가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자 강 형사가 똥줄 탄 강아지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나를 불렀었나? 생각에 깊게 빠져 주위에 소리가 들리지 않았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멋쩍게 웃으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조사해야할게 좀 있어서요.’

내가 대충 얼버무리자 강 형사는 더욱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행위긴 했다. 갑자기 사람을 불러 수갑을 보여 달라고 하지를 않나, 그러다 갑자기 혼자 생각에 빠져 가만히 있지를 않나.

강 형사가 나를 이상하게 보아도 충분히 이해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함부로 남에게 말해줄 사안은 아니었기에 난 대충 얼버무리고 그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하지만 강 형사는 이상한쪽으로 눈치가 동했는지 나에게 계속 무슨 조사냐고 물어봤다. 그럼에도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이내 포기하고 지구대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난 후련하면서도 찝찝한 기분을 안고 지구대 문으로 향했다. 분명 그토록 원하던 실마리를 찾았을뿐인데 이제 갓 출발선을 벗어난 기분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함이 오늘도 내 발목을 붙잡았다.

일행들이 있는 지구대 문 앞으로 향하자 튼튼하게 재조립된 바리케이드와 천과 종이로 완벽하게 가려진 창문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선 일행들이 가만히 바닥에 앉아 정신없이 밖을 감시하고 있었다.

노인은 시선을 밖으로 떼지 않고 이곳으로 다가오는 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찾았냐?’

많은 말이 함축되어 있는 말이었다. 난 담요를 들고 노인 옆으로 다가가 바닥에 철퍼덕 앉았다. 그리고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찾았습니다.’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나를 믿고 있다는 무언의 뜻이기도 했고 더 들어봐야 뭐하겠냐는 단순함도 있었다. 모래사장에서 유리조각을 찾는 작업은 이제 강물에서 물고기를 잡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물론 전자와 비교하면 굉장히 쉬워졌지만 그렇다고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게 쉽다는 말은 아니었다.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난 담요를 덮고 몸을 웅크리며 들려오는 바람소리에 천천히 몸을 맡겼다.

채연이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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