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그래서 몇 명입니까?’
단체장의 말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나를 볼 때마다 웃는 상이던 그는 슬픔과 분노가 섞인 얼굴로 참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단체장의 물음에 그 옆에 서있던 은테 안경이 서류를 꺼내들고 보고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파악한 인원만 15명입니다.’
상당한 숫자에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경악했고 김혜정 그녀는 손을 떨다 못해 몸까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할 말을 잃었는지 방안은 침묵으로 휩싸여있었다. 하지만 내 건너편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중년남성이 침묵을 깨며 크게 외쳤다.
‘다 탐색조입니까?’
그러자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웅성거림과 눈빛은 분명 김혜정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아무런 대응과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항상 당당하고 지랄 맞던 그녀가 저런 모습을 보여주니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같은 탐색조라고 그새 동질감이라도 느끼는 걸까?
중년남성의 질문에 은테안경은 보고서를 넘기며 대답했다.
‘탐색조는 이번에 체포한 두 명을 포함해 모두 6명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른 직업군에 다양하게 퍼져있었고 지금은 단체장님이 지시한 심문과 자백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부랑자의 잠식은 충격과 공포의 연속이었다. 에덴은 부랑자들을 어디까지나 잠재적인 적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폐쇄된 책상머리에서 오는 착각에 불과했고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에덴이란 거대한 성은 서서히 공격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무언가 일이 터지기 전에 부랑자들을 잡아냈다는 것인데, 물론 그 과정에서 탐색조들의 희생과 아직까지 파악 못한 사망자가 있었다.
그래도 그 짧은 시간동안 부랑자와 첩자들의 신변을 확보했다는 건 에덴의 시스템이 아직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분명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비록 이번 사건을 통해 깊은 상처와 작은 불신이 생겼지만 에덴이라는 튼튼한 본체는 아직 건재했다. 고름을 짜고 상처를 소독한다. 단체장은 강하게 의견을 표출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한다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우리는 심문을 마치고온 검은 옷의 사람들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일기에 작성한 내용은 그 사건의 간략한 정보였다.
* * * * *
총원 15명, 하지만 지금까지 자백을 받아낸 건 3명에 불과했다.
우연인지 아니면 신나게 쳐 맞은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백을 한 인원 중에는 우리가 데려온 어린 남자와 여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얼굴이 피떡이 된 남자는 에덴 측에서 심문을 유도하기도전에 빠르게 자백했고 그것을 떨면서 지켜보던 여자도 울면서 범행을 인정했다.
[후에 그가 기록한 내용이지만 어린 남자와 여자는 부랑자들에게 가족들이 인질로 잡혀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들을 용서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고 그는 말했다.]
자백을 받아낸 이상 사건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이내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아낼 수 있었다.
부랑자들이 그들에게 지시한 내용은 꽤나 잔혹했다. 그들은 자신이 탐색조라는 것을 이용해 다른 탐색조들의 이동경로를 알아낸 뒤 그것을 부랑자들에게 제공했다. 뒤를 밟힌 탐색조는 이 넓은 도시에서 영문도 모른 채 습격을 당할 수밖에 없었고 별다른 목격자가 없는 이상 임무 중 사망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은 바로 탐색조를 목표로 한 함정이었는데 그들이 탐색조를 유인하는 방법은 그때그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진행 되었다. 하지만 대표적인 방법을 두 개 꼽자면 첫 번째는 생존자 미끼가 있었고 두 번째로는 구조요청 미끼가 있었다.
그 두 개 모두 탐색조의 약점을 기가 막히게 노린 방법이었다. 서로를 아군과 혹은 구출해야하는 대상으로 봤던 탐색조는 자연스럽게 긴장을 풀고 방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방심은 탐색조의 전멸과 점점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가지고 온 것이다.
치밀하고 비열한 그들은 꼬리를 남기지 않기 위해 지휘본부로는 무전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철저하게 개인채널만을 이용했는데, 중앙을 거치지 않은 무전내용은 당연히 기록이 남지 않았었고 지휘본부에 있던 김혜정은 그들의 정체를 눈치 채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희생자들이 속출했다. 그러던 와중에 탐색조 소속이던 우리 앞에 미끼 하나가 떨어졌고 우리는 그것을 덥석 물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우리가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그들이 실수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구조요청 무전이 우리가 아닌 지휘본부로 향했었다. 그 무전을 받은 김혜정은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고 우리는 그 무전 덕에 이상한 점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다른 탐색조들이 무전을 꺼두지 않았더라면, 혹은 두식이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그 썩은 고름을 발견하지 못한 채 똑같은 방법으로 당할 수도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조금 섬뜩해졌다.
그리고 15명 전원이 가지고 있는 공통분모는 바로 외부유입이었다. 어쩌면 에덴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이자 아킬레스건을 부랑자들이 잘 찌르고 들어온 것이다. 15명이 전부 부랑자인지 혹은 그들에게 협력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른 자백내용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화장실에서 발견된 시체 두 구. 하나는 어린 아이였고 또 다른 시체는 성인 여자였다. 그리고 체포한 사람들의 집을 모두 뒤져보니 이런 시체들이 대다수 발견되었다고 한다. 단체장은 그 대목에서 크게 분개하며 책상을 내려쳤다.
‘……왜 하필 아이랑 여자였을까요?’
나와 굉장히 근접해있던 여자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여자인지라 이름은 몰랐다. 하지만 의중을 정확하게 찌르는 그 질문에 모두가 웅성거림을 멈추고 그 여자를 바라봤다. 그러자 시선을 느낀 여자는 어깨를 살짝 으쓱이더니 조용히 단체장을 바라본다.
왜 하필 아이랑 여자였을까?
모두가 그 고민에 빠져있을 때 나는 저절로 입이 열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고기가 연하니까.’
그 말은 잔잔한 호수위에 돌멩이를 던지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순간 거대한 파장이 일어났고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단체장은 순간 눈을 번뜩였고 중얼거렸던 여자는 경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무슨 미친 소리를!’
그 순간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전투조 팀장이 일어나 나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만큼 내 발언은 충격적이고 적절하지 않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난 내 발언에 후회하지 않았다. 인간 같지도 않은 짐승 놈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였으니까.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전투조 팀장을 노려보고 있는데 갑자기 김혜정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는 알고 있어요! 이중에 부랑자를 상대해본 사람은 동윤씨 일행들밖에 없어요!’
그렇게 외친 그녀는 재킷 지퍼를 열고 옷 안쪽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급하게 무언가를 찾기 시작하더니 이내 종이 한 장을 꺼내 단체장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 종이를 대신 받은 은테안경은 곧 단체장에게 그 종이를 전달했고 방안은 침묵으로 휩싸였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모두의 시선은 단체장에게 향했고 단체장은 그 시선을 느꼈는지 조용히 종이를 내려놓았다.
‘……동윤씨.’
‘예.’
나를 부르는 단체장을 향해 난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단체장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고 이내 나에게 질문했다.
‘부랑자들이……. 사람을 먹습니까?’
‘예.’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쩌면 이들은 그놈이 말했던 것처럼 순한 양일지도 모른다. 목장 울타리를 믿고 절대 밖으로 나오지 않는 순한 양. 한 번도 늑대를 만나본적 없는 순한 양들은 지금 이 순간, 당황하고 무서워하며 겁에 질려있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합니다!’
선글라스가 외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었지만 그것을 애써 감추려고 하는지 불같이 화를 냈다. 그리고 그 외침을 시작으로 찬성하는 의견과 반대하는 의견들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책임을 져야합니다!’
‘아니, 이 상황에서 뭔 책임입니까? 김혜정 팀장도 피해자에요!’
호전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김혜정을 비난했고 그나마 온순해 보이는 일부 간부는 김혜정을 감싸고돌았다. 나와 노인은 가만히 앉아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봤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말싸움은 심해져만 갔다.
난 조용히 눈동자를 돌려 울먹이고 있는 김혜정을 조용히 쳐다봤다.
그녀의 잘못일까? 아니면 이들 모두의 잘못일까? 난 스스로 대답을 회피했다. 그리고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단체장이 책상을 내려치며 거칠게 외쳤다.
‘조용!’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던 손이 멈췄다. 그리고 치솟던 흥분과 고성도 한순간에 사라져버린다. 아무리 유순하고 다정한 단체장이라고 해도 이 많은 무리를 이끌고 있는 리더였다. 그들은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단체장은 한숨을 푹 내쉬고 이내 김혜정을 쳐다봤다.
‘……오늘부로 탐색조는 해산합니다.’
희비가 엇갈린다. 김혜정은 단체장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으며 김혜정을 옹호하던 간부들은 얼굴을 붉게 붉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단체장은 그 말을 들어줄 생각은 없어보였다.
흐흐.
한쪽에서 조용히 웃음소리가 들린다. 시선을 돌려 그쪽을 바라보니 전투조 팀장새끼가 재수없게 웃고 있었다. 알력다툼을 하던 탐색조가 해산되는 꼴을 보니 스스로가 굉장히 만족한 모양이었다. 나는 주머니에 조용히 손을 넣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하지만 단체장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단체장은 웅성거리는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크게 외치더니 이내 시선을 돌려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동윤씨.’
‘예,’
난 또 다시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단체장은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갔다.
‘숙소를 더 좋은 곳으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정신치료 시간과 선생님들 더 배정하겠습니다. 일행 분들은 이제 아무런 걱정 없이 에덴에서 지내게 될 겁니다.’
내 품에서 웃고 있는 채연이의 얼굴이 생각났다. 아빠! 아빠! 앙증맞은 입으로 나를 부르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항상 불안 불안하던 걸음마는 앙증맞게 변한지 오래고 창백했던 얼굴은 포동포동한 복숭아 빛으로 변해있었다.
아이는 계속 그렇게 커야한다. 아무런 걱정 없이, 아무런 위협 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행복하게 자라야 한다. 비록 그 대가가 온몸을 짓누르는 공포일지라도 상관없었다. 그 짐은 내가 대신 가져가고 싶었다.
난 에덴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믿는 신도 싫다, 나를 구원해주지 않는 교리도 싫었다. 재수 없는 선글라스 새끼, 그리고 우리에게 텃세를 부리던 새끼들. 맨날 목숨을 걸어야하는 탐색조 생활! 아, 도망가고 싶었다.
내 에덴은 어디에 있을까? 존재하기는 한 걸까?
만약 내 에덴이 없다면, 원래부터 내 에덴이란 게 없었다면!
원래 그런 거라면.
내 손으로 채연이의 에덴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다.
난 버릇처럼 일기장을 꺼내 빠르게 넘겨본다. 낡은 종이들은 마치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파르르 넘어가기 시작했다. 일기장에 기록해온 모든 일이 영화처럼 눈앞을 지나간다. 무섭고 죽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행복했다.
곽동윤의 삶이 지나 또 다시 찾아온 곽동윤의 삶. 난 그 삶 앞에 겸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체장은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전투조와 동일한 장비를 지급합니다. 아니,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지 요구하십쇼. 직속상관도 없으며 명령을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결정과 지시는 동윤씨가 합니다.’
노인이 웃었다. 그리고 전투조 팀장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이를 간다.
‘동윤씨를 포함한 4명은 독립된 팀을 이룹니다. 그리고 전담할 목표는 부랑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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