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두식이가 들고 왔던 부상자들을 바닥에 거칠게 내려놓는다. 아니, 거의 내팽개쳤다. 아무리 모자란 두식이라도 이놈들이 부랑자랑 붙어먹은 배신자란 뜻은 이해하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고통을 호소하고 정신을 잃은 여자는 여전히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김혜정과 의료진들이 뛰어오기 시작했다. 미리 무전으로 의료진을 준비시켜두라고 말해두었지만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팔과 다리가 묶인 이들을 보고 당황한 듯 말을 더듬는다. 그리고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난 어쩔 수 없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와 의료진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절대 시선 떼지 말고 잡아두세요. 당신이 말한 구조신호 있죠? 그게 미끼였어요.’
‘네?’
평소에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던 그녀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난 볼에 느껴지는 고통과 상황에 대한 답답함 때문에 인상을 찡그렸고 내 지친 모습을 발견한 노인이 나 대신 대답해주었다.
‘이 새끼들이 부랑자랑 붙어먹었다고.’
노인은 바닥에 누워있는 그들을 노려봤다. 그리고 용팔이가 들고 있던 가방을 뺏어들고 그곳에 챙겨온 희생자들에 유품과 부랑자 녀석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을 전부 쏟아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곳에는 배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물품들도 있었다.
그러자 그녀도 대충 상황이 이해가 가는지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줬고 이내 노인이 바닥에 쏟아낸 물품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떨리는 눈으로 그것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경악한다. 아무래도 그곳에서 짐작 가는 부분이라도 찾은 모양이었다.
‘설마……. 말도 안 돼…….’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하게 무전기를 꺼내들었고 주파수를 조정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무전기 너머에 누군가를 향해 다급히 외치기 시작했다.
‘2팀 거주지 좀 파악해주세요!’
[네?]
무전을 받은 상대는 갑작스런 명령에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상당히 조급해 보이는 그녀는 항명 따윈 듣지 않겠다는 기세로 거칠게 외쳤다.
‘2팀 거주지 싹다 뒤지라고!’
의료진도 상황이 급변한걸 눈치 챈 건지 그들을 들것에 옮기다말고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김혜정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이내 표정을 잔뜩 구기며 얼굴을 붉혔다. 아마 무언가 짐작이 가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무전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녀가 분에 이기지 못해 지랄발광을 하는 사이 우리는 잠시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고 의료진도 살며시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에게 간단한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그 사이 완전히 정신을 차린 어린 남자는 창백해진 얼굴로 우리와 그녀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체념과 후회 그리고 짙은 공포가 섞여있었다. 난 그의 표정을 보고 대충이나마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지만 김혜정 그녀는 또 다른 확신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녀의 무전기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말은 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잡음만 내뱉는 무전기는 그녀를 더욱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녀가 거듭 그들을 불러봤지만 무전기 너머에 있는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의 노력이 빛을 발한건지 무전기에선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경악이 섞인 대답이 흘러나왔다.
[시체! 시체입니다! 화장실에 시체가 있습니다!]
‘야이 개새끼야!!!!!!!!!!!!’
그녀는 히스테릭이 섞인 비명을 지르며 어린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무전기는 이미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였고 그녀는 무서운 기세로 어린 남자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그 모습을 방관했다.
‘협, 협박 받았어요!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어린 남자는 콧물 눈물을 질질 흘리며 열심히 자신을 변호했다. 하지만 그것이 비겁한 변명이란 걸 그는 알고 있을까? 김혜정은 기필코 이놈을 죽이겠다는 듯 열심히 주먹을 휘둘렀고 어린 남자의 얼굴은 곧 피떡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의료진이 나섰다. 하지만 의료진도 상황을 다 알고 있는지 어린 남자를 걱정하는 것이 아닌 김혜정의 주먹 상태를 걱정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쳐 맞던 어린 남자는 그녀를 제지하러온 경비 덕분에 겨우 살 수 있었다.
김혜정 그녀는 분노를 표출하다 마지막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생환율 50%. 갈수록 희생자가 나오는 탐색조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부족한 게 아닐까? 장비가 더 좋았으면 희생자가 안생기지 않았을까?
우리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지원을 요청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죽어가는 탐색조들을 바라보며 무전밖에 할 수 없는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은 너무나 무심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희망대신 극심한 불신과 절망을 안겨주었다.
그녀가 아무리 노력 해봐도 에덴은 이미 속부터 곪아 있었던 것이다.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배신자들은 경비들 인솔 하에 의료진을 동행한 후 어딘가로 끌려갔고 멍하니 바닥에 앉아있던 김혜정은 무언가에 홀린 듯 천천히 일어나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전부 바라보고 있던 우리는 옅은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고서를 써야하나? 난 별다른 말이 없는 그녀를 대신해 스스로 할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큰 폭탄이 터졌으니 이제 에덴 내부에서도 큰 소란이 있을 것이다. 목격자이자 폭탄을 발견한 당사자인 우리는 상당히 피곤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쪽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윤씨! 상처 좀 봅시다!’
의시가운을 팔랑이며 달려오는 그는 김철이었다. 항상 부상자 곁에 있던 그였지만 오늘만큼은 이 자리에 남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내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고개를 흔들자 누군가 잽싸게 달려와 내 뒤통수를 후렸다. 윽 하고 뒤를 바라보자 노인이 매섭게 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입을 꾹 다물고 김철에게 상처부위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김철이 혀를 차며 말하길 상처가 꽤 깊다고 한다. 단순한 소독이 아닌 바늘로 꿰매야할 상처였는데 난 결국 노인에게 이끌려 병원까지 가고 말았다.
병원으로 가는 시간동안 나는 열심히 주위를 살폈다. 확실히 에덴의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거리를 열심히 뛰어다니는 경비들의 표정이 굳어있었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주민들도 서둘러 귀가를 선택하고 있었다.
그 불길한 분위기는 꼭 거대한 이변이 생길 것만 같은 징조였다.
난 병원에서 빠르게 치료를 받고 다가오는 저녁시간을 위해 조금 일찍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는 학교를 다녀온 아이들과 일을 마친 여자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는데 내 상처를 발견한 강수련과 채연이가 울면서 나를 때리기 시작했고 나는 한동안 도망 다녀야 했다.
* * * * * *
배급소 아줌마 말대로 저녁 식단은 꽤 괜찮았다. 비록 묵은쌀이었지만 따뜻한 쌀밥이 나왔고 반찬도 2가지나 되었다. 물론 맛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영양적으로는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이 보였다.
아이들은 투정 없이 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고기반찬, 좋아하는 햄 반찬 하나쯤은 해주고 싶은 게 어른들의 마음이었다. 내일은 우리가 지내던 마트 쪽으로 돌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과 식품들을 좀 가지고 올 생각이다.
식사시간이 끝나자 조용했던 분위기는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수다를 떨었고 아이들은 한군데 모여 놀기 시작한다. 난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봤고 곧 에덴에서 올 연락을 기다렸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났을까, 우리가 모여 있는 숙소 문을 누군가 조심히 두드렸다. 노크 소리를 들은 일행들은 전부 입을 다물었다. 나와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 겉옷을 챙겼고 우리를 따라오려는 용팔이 형제는 그냥 이곳에서 쉬게 했다.
‘무슨 일 있어요? 해가 졌는데…….’
내 상처 때문일까? 강수련은 유독 불안해하며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강한 걱정이 묻어나왔는데 난 나중에 말해주겠단 소리와 함께 그녀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채연이는 내가 옷을 입자마자 쪼르르 달려와 내 다리를 붙잡는다.
‘가치가!’
같이 가! 채연이는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채연이가 쓴 글씨로 이름을 알게 된 게 엊그제 같았는데……. 난 가슴이 벅차 내 다리를 붙잡고 있는 채연이를 들어 올려 품속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주자 채연이가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한동안 말없이 채연이를 바라봤다. 그러자 채연이는 우는 소리를 내며 내 목을 끌어안는다. 착한 아이다. 아이는 분명히 자신이 같이 가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을것이다. 난 짧지만 깊은 교감을 나눈 뒤 숙소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 * *
숙소 문을 두드린 건 오랜만에 보는 은테 안경이었다. 그는 여기까지 급하게 뛰어왔는지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었고 동시에 얼굴은 흥분으로 가득차 있었다. 우리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던 그는 갑자기 양손을 뻗어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큰일을 하셨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면서 황급히 손을 빼냈다. 하지만 은테 안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안경을 추켜올렸고 일단 가자는 제스처를 취하며 조용히 우리를 이끌었다. 나와 노인은 일단 짐작을 하고 있었기에 아무 말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우리가 향한 곳은 탐색조 건물이 아닌 단체장이 머물고 있는 중앙 본관이었다. 에덴에 처음 들어온 이후로 다시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건물이었기에 생각보다 사태가 커졌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단체장이 개입한 건가? 그렇다면 일이 쉬워진다.
조용히 내 뒤를 따라 걷던 노인은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은테 안경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놈들 정체가 뭐였어?’
그러자 은테 안경은 숨길 이유가 없는지 거침없이 대답했다.
‘부랑자들 끄나풀이 맞았습니다.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시죠.’
은테 안경은 지금 여기서 말할게 아니라는 듯 우리들의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반쯤 뛰다시피 걸어서 우리는 본관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꼭대기 층으로 서둘러 올라갔다. 그리고 은은한 조명이 있는 복도를 지나 익숙한 방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은테안경은 문 앞에서 경건한 손짓으로 흐트러진 머리와 옷을 정리했다. 그 모습을 떨떠름하게 바라보던 우리도 일단 옷차림과 머리를 바르게 했다. 노인이 짧게 투덜거리긴 했지만 황급하게 가르마를 넘기는 꼴을 보니 속으로는 꽤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우리가 준비를 마치자 은테 안경이 헛기침을 하더니 이내 조심히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그림자 사이로 은은한 조명과 향긋한 유자냄새가 확 하고 풍겨져 왔는데 난 본능처럼 코를 킁킁 거리며 빠르게 방안을 둘러봤다.
단체장 방 안에는 기다란 탁자가 하나 존재했고 그 양쪽으로는 꽤 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다들 입을 다물고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게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나는 한쪽에서 우울한 얼굴로 앉아있는 김혜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들어오는 나와 눈이 마주쳤고 이내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넨다. 평소와는 굉장히 다른 분위기에 나도 노인도 어……. 하는 소리를 내며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다.
경비들과 직원들을 제외하면 모두 8명이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회의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모두 에덴에서 한축을 담당하는 간부들이란 소리였는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난 정신없이 눈동자를 굴려 그들의 얼굴을 파악하기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 순간 탁자 중앙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크게 울려왔다.
‘동윤씨! 식사는 하셨나요?’
나를 부른 건 언제나 인상이 좋은 단체장이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표정을 잔뜩 굳히고 있던 단체장은 내가 들어오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나에게 뚜벅뚜벅 걸어와 손을 내미는데 난 그것을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예……. 배급 받았습니다.’
난 쏟아지는 시선에 머쓱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악수를 하자 단체장은 하하 웃으며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나에게 손수 자리를 안내했는데 그 자리가 하필 자신과 가장 가까운 자리였다.
단체장을 따라 걸어가는데 아까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전투조 팀장이 선글라스를 쓰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저녁인데 선글라스를 왜 씁니까?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분위기가 있는지라 꾹 참았다.
하지만 노인은 참을 생각이 없었는지 자신을 노려보는 남자에게 주먹감자를 날렸다. 우울해하고 있던 김혜정은 풋 웃음을 터트렸고 난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며 단체장에 뒤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분위기는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 분위기를 읽은 단체장은 천천히 한숨을 내뱉었고 이내 회의가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