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76화 (76/313)

[76]

대검 손잡이에 손가락이 얹히는 순간 찌르르 전기신호가 근육을 타고 흐른다. 식은땀이 피부를 핥았고 따가운 불안감이 내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뒤에선 노인이 시위를 당기는 소리까지 세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검을 뽑는다. 대검이 뽑히는 순간 근육이 팽창하기 시작하고 내 머리끝을 찌르르 울린다. 그리고 다급하게 시선을 돌리자 그놈의 웃는 눈동자에 내가 비춰지다 서서히 사라졌다. 그놈은 나보다 빨랐다.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나이프는 어린 남자의 허벅지에 꽂혔고 이내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그리고 또 다른 나이프를 꺼내든 남자는 자기 앞에 떨고 있는 여자의 목에 나이프를 들이밀었다. 순간 여자가 헛바람을 들이켰고 이내 날카로운 칼날이 연약한 피부와 맞닿았다.

시간이 다시 빠르게 흐른다.

난 대검을 내지르려는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인질이란 메두사를 만난 것처럼 내 피는 빠르게 식었고 미친 듯이 쿵쾅 거리는 심장은 조용히 숨죽인다. 그놈은 여자 목에 칼을 겨누며 살며시 벽에 달라붙었다.

‘영감탱이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르네? 언제부터 알았어?’

‘사람한테서 개새끼 냄새가 나는데 모를 턱이 있나.’

노인이 지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크로스 보우를 정확히 그에게 겨누며 날카로운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에게 크로스 보우가 겨눠짐에도 여유롭게 웃었고 이내 여자의 목덜미에 코를 묻으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남자의 변태 같은 행각에 여자는 기겁하며 발작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반응을 지켜보던 남자는 만족했는지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에덴 순둥이들과는 다르네? 형씨들 어디 소속이야?’

‘주둥이 놀리지 말지.’

이딴 도발과 시간 끌기에 휘둘릴 우리가 아니었다. 노인의 거침없는 대답을 시작으로 나는 그 남자와 대치하기 시작했고 용팔이 형제는 빠르게 소리를 차단했다. 용팔이는 고통을 격하게 호소하는 어린 남성의 입을 틀어막았고 두식이는 지혈을 시작한다.

읍읍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고인 피 냄새가 코를 알싸하게 찌르기 시작한다. 이 현장은 내 신경을 더욱 자극시키고 머릿속에 살의는 끊임없이 경종을 울린다.

난 천천히 발을 끌어 노인과 눈을 마주치고 있는 그 남자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곁눈질을 치다 내가 접근하자 워워! 소리를 내며 여자 목에 칼날을 들이밀었다. 난 다시 한 번 움직임을 멈췄고 남자는 그런 나를 노려보며 입술을 살며시 핥는다.

‘그냥 보내주지? 그럼 여자는 살려줄게.’

‘죽여.’

난 차갑게 대답했다.

그러자 내 대답을 들은 노인이 옳다구나 외치며 크로스 보우를 견착했다. 그리고 곁눈질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여자를 정면으로 노려보며 독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너! 이 새끼 부랑자인거 알고 있었지?’

노인과 나의 생각이 또 다시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부랑자들이 이런 악독한 방법까지 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최악의 방법이다, 설마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하고 회피만 했었지 막상 눈앞에 그 상황이 펼쳐지자 생각보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여자와 어린 남자는 미끼였다. 그것도 어설픈 루어가 아닌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신선한 미끼. 그 미끼에 김혜정도 속았고 우리도 속아버렸다. 설마 하는 방심이 일행들의 희생을 가지고 올뻔한 것이다.

저 나이프가 용팔이 형제나 노인에게 향했더라면? 강한 적의와 함께 머리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어쭙잖은 인질극은 치워라. 아니 인질극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 여자와 어린 남자는 적어도 나에겐 부랑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죄, 죄송해요! 살려주세요…….살려…….’

여자가 처음으로 입을 열고 한말은 사죄와 목숨의 구걸이었다. 그리고 발작하듯 버둥거리기 시작했는데 여자를 잡고 있던 남자는 처음으로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 시발!’

남자는 웃음을 지우고 동요를 내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몸을 벽을 기대고 있었기에 쉽사리 움직이지 못한다. 그리고 지혈을 끝낸 용팔이 형제가 양옆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고 노인의 날카로운 볼트는 정확히 남자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진퇴양난.

성립하지 않는 인질극은 남자에게 최악의 상황을 선사한다. 딱 10초를 세자. 난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모든 신경을 남성에게 쏟았다. 숨소리, 눈동자, 동공의 움직임. 심지어 표정 변화 하나하나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노인이 먼저 쏠까? 아니야, 여자 때문에 각이 나오지 않는다. 장전시간이 긴 크로스 보우의 특성상 단 한발로 모든 걸 끝내야 하는데 아쉽게도 남자 앞에 여자라는 장애물이 존재했다.

그럼 용팔이 형제에게 맡길까? 이것도 아니다. 종말에 많이 능숙해졌다한들 사람을 죽이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분명 망설일 우려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한다.

땀으로 젖은 대검 손잡이를 손으로 꾹 잡는다. 모든 신경이 살아 움직이며 치솟는 살의와 이성이 비명을 지른다. 손끝에 느껴지는 손잡이의 감촉과 앞으로 쏠려있는 무게중심이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저돌적으로 기울어진다.

땀이 이마를 타고 주룩 흐른다. 그 땀은 콧등을 따라 흐르다 코끝에 살며시 고이기 시작한다. 난 이 상황에 100%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고 온몸에 흐르는 전기신호가 근육을 팽창시킨다. 카운터 다운이 줄어든다.

움직인다, 뛰쳐나간다. 내 근육은 예열되었고 뜨거워진 정신의 필라멘트가 끊어지기 직전까지 이른다. 그리고 불이 팍 하고 켜진다.

3, 2, 1!

그리고 지금!

‘이런 시발!’

내가 망설임 없이 달려들자 남자는 당황하며 몸을 버둥거린다. 그리고 재빠르게 여자의 목을 그어버리고 노인을 향해 밀어버렸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피가 흐르는 목을 막으며 힘없이 노인에게로 쓰러진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노인은 욕설을 내뱉으며 넘어지는 여자와 충돌한다. 비록 한순간이지만 볼트를 발사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눈동자를 또르르 굴리자 저 멀리 용팔이 형제가 놀라서 달려오는 게 보인다. 하지만 늦다, 이미 난 지척까지 접근해 있었다.

남자는 분명 나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빠른 몸놀림으로 여자를 밀치고 나에게 나이프를 내지르고 있었다. 날카로운 칼날에 시선이 고정된다. 저 칼날은 정확히 내 얼굴을 노리고 있었고 아마 내가 피하지 않는다면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것이다.

분명히 인식하고 있음에도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단 한수로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내 몸을 짓누른다. 마치 거대한 중력이 내 몸에 가해지는 듯 근육이 무겁기만 하다. 피한다, 피한다! 난 흐르는 시간 속에 끊임없이 독백을 내뱉었다.

눈앞으로 칼날이 지나간다. 난 칼날에 비추는 내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그 눈동자는 죽음 너머에 있는 내 눈동자와 같았다. 순간 내 상처부위를 감싸고 있던 붕대의 압박감이 사라지고 볼이 불로 지진 듯 화끈해진다.

피했나?

난 숨을 훅 내뱉었다. 그래, 숨이 붙어있다. 눈가에 고인 땀을 떨쳐내기 위해 눈을 감고 뜨자 그놈의 경악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난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그놈의 목을 움켜잡고 반대쪽 손에 들고 있던 대검을 앞으로 찔러 넣는다.

살벌한 소리와 함께 손가락 끝으로 피들이 고인다. 가슴팍 아래부터 추켜올린 대검은 정확하게 그놈 몸뚱이에 꽂혔고 그놈은 피가 섞인 숨을 내뱉으며 몸을 버둥거리기 시작한다. 난 거부감을 거부하며 필사적으로 대검을 비틀었다.

‘살, 살려…….’

그놈이 목숨을 구걸한다. 그리고 애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피와 함께 숨을 내뱉는다. 동정이 드는 걸까? 이놈도 인간이다. 나처럼 뜨거운 피가 흐른다면 다 인간일까? 죽음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면 다 인간일까?

그런데 왜 괴물 놈들을 찌르는 거랑 다른 것이 없을까?

그래, 이유를 알았다.

넌 구걸이 아닌 후회를 했어야했다.

끄르륵.

피 끓는 소리와 함께 그놈이 마지막 발버둥을 시작한다. 손을 필사적으로 뻗으며 내 손과 얼굴을 밀어낸다. 하지만 난 눈조차 깜빡거리지 않으며 그놈의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그놈 이마에 볼트가 날아와 꽂힌다.

재수 없게 웃던 얼굴은 더 이상 웃지 못했다.

‘나를 봐!’

순간 시야가 급변하고 노인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노인은 인상을 찡그리며 내 상처부위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고 이내 용팔이를 불러 붕대 하나를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흐르는 피를 지혈하며 피식 웃었다.

‘흉터 남겠네. 더 못생겨지면 어쩌려고?’

지금 농담이 나옵니까? 하지만 난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그러자 노인은 내 볼을 툭툭 치며 나를 끌어당겼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게 도와줬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그놈이 있던 자리를 바라봤고 이내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그놈을 발견했다.

‘영감님! 아직 숨이 붙어있어요!’

한쪽에선 용팔이가 노인을 황급히 부른다. 용팔이가 보고 있는 것은 목에 상처를 입은 여자였는데 운이 좋았는지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내가 다가가 목을 살펴보니 깊은 상처가 아니었다. 다만 정신을 잃었고 출혈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내버려둬.’

노인은 싸늘하게 말하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것은 그녀와 어린남자를 구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노인의 말을 들은 우리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배신자를 향한 적의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 이들을 살려둬야 했다.

‘지혈해.’

그러자 용팔이가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봤고 노인은 표정을 굳히며 나를 바라봤다. 설마 동정을 주는 거냐? 라는 표정이었는데 난 강하게 부정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끌고 가서 심문합시다.’

이미 한번 붙어먹은 놈들이다. 아니, 사실 이들이 탐색조 소속인지도 정확하지 않다. 가서 신분을 정확하게 대조해보고 정체를 확인해야했다. 탐색조가 아니라면 그놈들의 끄나풀, 그리고 탐색조 였다면 첩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혹 둘 다 해당이 안 된다 할지라도 이들은 같은 팀원을 사지로 몰아넣은 쓰레기들이다. 이것은 이미 죽은 희생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생길 희생자들을 위해서 정확하게 알아내야 하는 사항이었다.

용팔이는 아……. 하는 소리를 내뱉더니 열심히 지혈을 시작했고 노인은 살며시 고개를 돌리며 하늘을 바라본다. 어린 남자와 여자, 둘 다 정신을 잃고 있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손을 노끈으로 묶었다.

상황종료, 복귀할 시간이다.

* * * * * * *

에덴 정문이 보이기 시작하자 난 용팔이에게 물었다.

‘용팔아.’

‘네?’

내 뒤에서 걷고 있던 용팔이가 빠릿하게 대답하며 내 옆으로 다가온다. 용팔이는 조금 피곤해보였지만 그래도 밝은 얼굴과 처음 만났던 그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난 버릇처럼 손을 올려 용팔이의 민머리를 만졌다.

‘너희 할머니 한분 계시냐?’

그러자 용팔이는 움찔거리다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에 난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다시 정면을 바라봤고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걷기만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용팔이가 한숨을 푹 내쉬며 나에게 말했다.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어요. 우리같이 모자란 놈들 뭐가 그리 좋다고 그렇게 잘 키워주셨는지…….’

난 말을 아꼈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며 용팔이 어깨위에 천천히 팔을 둘렀다. 저 앞에선 노인과 두식이가 낄낄 웃으며 걷고 있는 게 보였다. 두식이는 사람 두 명을 들고도 힘든 기색이 없었고 노인은 그런 두식이를 칭찬하며 엉덩이를 토닥인다.

용팔이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히히 웃었고 이내 그 웃음은 쓴웃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제가 한참 돈 벌겠다고 공장 다닐 때였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받아보니 두식이 그놈이 웬일인지 울고 있더라고요.’

‘아니 글쎄, 강도래요. 폐지 주워 다가 한두 푼 모은 돈을 뺏겠다고 우리 할머니를 골목에서 칼로 찔렀다는 거예요.’

‘흐흐, 우리 할머니가 피 흘리면서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도 안 도와줬어요. 한 시간이나 숨이 붙어있었는데…….’

‘그리고 범인을 잡아놓으니 뺏은 돈이 4800원이래요. 4800원! 그리고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까 그놈이 뭐라는 줄 알아요?’

용팔이는 웃고 있음에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 손자들 과자 사줄 돈이라고 하니까! 그게 거짓말인줄 알고 찔렀대요!’

용팔이는 이젠 웃음을 지우고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양손으로 꾹 쥐었다. 손이 덜덜 떨렸지만 용팔이는 굳센 눈동자로 두식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곧 나와 노인, 그리고 일행들이 있는 에덴으로 향했다.

용팔이는 햇볕같이 따뜻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하늘 사이로 석양이 걸쳤다.

‘형님은 좋은 분이세요.’

용팔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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