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73화 (73/313)

[73]

‘여보...’

여자는 조용히 우는 법을 알고 있었다. 소리 내서 울면 누가 혼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자는 손으로 입을 막고 오열을 시작한다. 그녀는 뼈 무더기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곳에 얼굴을 박고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부랑자들의 시체를 길거리에 뿌리고 왔다. 해가 지면 그놈들에게 모두 뜯어 먹혀 저 뼈 무더기처럼 변할 것이다. 복수의 수확은 달콤했고 그 달콤함은 이내 쓴 여운을 남긴다. 난 울고 있는 여인을 지나쳐 그놈들이 벗겨놓은 옷들을 다 챙겼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아이들에게 하나 둘 입히기 시작했다. 내가 이들에게 무엇을 말해줘야 할까? 어쭙잖은 위로는 집어치워라. 위선적인 동정은 저 멀리 던져버려라. 그러자 남은 건 이 옷가지뿐이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저기 어머님…….’

용팔이가 옷을 들고 천천히 여자에게 다가간다. 엎드린 채로 한동안 움직임이 없던 여자는 용팔이가 다가오자 움찔 거리며 고개를 든다. 그리고 엉거주춤 일어나며 용팔이가 건넨 옷을 받아들었다. 여자의 눈물이 더러운 볼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하지만 옷을 받아든 여자는 입을 기색이 없었다. 그리고 부끄러움조차 느껴지지 않는지 나에게 비틀비틀 걸어왔고 내 옆에 있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엄마 곁으로 모여들어 조용히 눈물을 훌쩍인다. 여자는 나를 올려다보며 잔뜩 쉰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때 그분이시죠?’

여자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넋이 나간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눈물 한 방울을 뚝 흘리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아이들도…….’

여자는 나에게 감사인사를 건네고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입고 있던 내 파카와 일행들의 파카를 하나하나 손수 돌려주며 일행들에게 감사인사를 건넸다.

강한 여자다. 그녀는 슬픔과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여자와 아이들이 안정을 찾을 동안 기다려주고 싶었지만 이 현실은 그런 잠깐의 틈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난 가방 하나를 통째로 비우고 방치된 뼈들을 모두 모으게 했다. 살점이 아직도 붙어있는 뼈들이지만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소중하게 담았다. 그리고 할머니의 시체는 두식이가 자진해서 들기로 했다. 원래 별다른 표정이 없던 두식이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슬퍼보였다.

시계를 확인하니 이제 오후2시다. 5시가 넘어가면 해가지기 시작하니까 지금부터 복귀를 시작해야했다. 나는 지도를 들고 직선경로를 표시한 다음에 방향을 잡았다. 이 길로 간다면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슬픔을 안고 그렇게 살기위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 * * *

‘팀 채연 복귀합니다.’

정문이 보이기 시작하자 난 무전기를 꺼내 에덴 측에 복귀를 알렸다. 그러자 저 멀리 보이는 보초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쌍안경으로 우리의 모습을 확인한다. 난 위태롭게 걷고 있는 여자와 아이들을 부축하며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정문 앞에 도착하자 무전기가 울리기 시작한다.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처음하곤 인원수가 다릅니다. 무슨일 있었습니까?]

‘구출한 생존자입니다. 의사 좀 빨리 불러주세요.’

[신원이 확실합니까?]

난 순간 짜증이 울컥하고 튀어나왔다. 그리고 넘어지려고 하는 아이를 꾹 잡고 아까보다 큰 목소리로 거칠게 외쳤다.

‘부랑자들 사이에서 구출한 생존자 맞습니다. 문 열어주세요.’

[신원이 확실하냐고 물었습니다.]

억지다. 난 이것이 노골적인 시비임을 알 수 있었다. 신원? 장난하나? 에덴에 있는 사람은 얼굴 가죽에 신용 등급이라도 박고 다니나보지? 난 감시탑 위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남성을 노려봤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그의 얼굴에 볼트를 처박고 싶은 욕구가 들기 시작했다.

난 무전기를 꾹 잡고 이를 악물었다.

‘동사무소 가서 등본이라도 떼올까?’

내 바뀐 태도와 반말 때문인지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참을 서로를 노려보며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무전기에서 거친 잡음이 들리더니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친 새끼들아 빨리 문 열어!]

김혜정 그녀였다. 그녀는 무전기를 통해 욕을 얼마나 찰 지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범을 몸소 보여줬다. 하지만 그 주된 목적은 저 위에 남자를 향해 있었는데 듣고 보면 다 맞는 말이라 남자는 입도 뻥긋 하지 못했다.

남자는 얼굴이 붉어져선 표정을 잔뜩 일그러트린다. 하지만 대꾸할 구석이 없었는지 이내 무전기를 내리고 빠르게 감시탑 아래로 내려간다. 그러자 눈치를 살피던 경비 하나가 힘차게 팔을 돌렸고 이내 정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무전기에선 김혜정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린다.

[개문!]

정문이 열리자마자 안에 있던 경비 3명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그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고 우리를 호위하듯 주변을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들은 후위를 연신 살피며 우리가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주변을 경계했다.

난 아이들을 번쩍 들었고 용팔이는 여자를 부축한다. 그리고 열린 정문을 향해 재빠르게 뛰어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5시가 넘어 황혼이 하늘에 걸려있을 때였다. 우리가 제일 늦게 도착한 건지 정문 근처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짐들을 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곳으로 뛰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였다. 그리고 선두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의사. 분명 나를 치료해줬던 그 남자다. 이름이 뭐였지? 김철? 호철?

‘위급한 환자 있습니까?’

나는 재빠르게 용팔이가 부축하고 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아이들은 별다른 상처가 없었지만 아이들의 엄마는 온몸이 멍 자국이었다. 타박상은 기본이고 혹시 장기손상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영양실조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간호사가 재빠르게 들것을 펼친다. 난 정확하고 빠른 대처에 작은 찬사를 보내며 아이들과 여자를 들것위에 올려두었다. 그러자 김철은 들것을 들어 올리며 나에게 눈인사를 건넸고 나도 말없이 고개만 꾸벅 숙였다.

그리고 그들은 들것을 들고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빠른 대처와 신속한 행동. 절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분명 이런 방식으로 많은 생존자들을 치료했을 게 분명했다. 난 한동안 느꼈던 에덴의 대한 실망이 조금씩 사그라지는걸 느꼈다.

‘이봐요!’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천천히 그들이 멀어지는걸 지켜보던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바라봤고 그쪽에는 김혜정이 인상을 찡그리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저 여자는 항상 짜증으로 가득한 것 같아 상대하기가 귀찮다.

‘……다친 곳 없어요?’

어라? 난 그녀가 우리를 보자마자 시비나 짜증을 부릴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을 짜증도 시비도 아닌 걱정이었다. 난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로 노인과 용팔이 형제들을 가리킨다. 보다시피 아주 건강하다.

‘저분들은?’

‘부랑자들 사이에서 구출했습니다.’

그러자 김혜정은 찡그린 얼굴을 풀고 조금 놀란 듯 우리를 바라봤다. 그리고 들리지 않게 조용히 중얼거리더니 이내 구출한 가족들이 향한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볼일은 끝이 난건가? 저 멀리 건물들 사이로 석양이 보이기 시작한다.

석양을 바라보자 짙은 피곤이 몰려왔다. 하루일과가 드디어 끝이 난 것이다. 나는 빨리 숙소로 돌아가 채연이를 만나고 싶었다.

‘이제 가도됩니까?’

그러자 넋을 빼고 있던 김혜정이 깜짝 놀라며 우리를 바라본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미간에 손을 올려두더니 우릴 향해 손짓한다.

‘정산하고 가세요.’

정산? 하긴 출발할 때 무언가를 막 적긴 했다.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이런 체계적인 시스템에서 기록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혜정은 모두가 갈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고생한 용팔이 형제를 먼저 숙소로 돌려보냈다.

* * * * * *

그녀가 향한 곳은 정문과 그렇게 멀지않은 텐트였다. 단순한 캠핑 텐트가 아닌 막사처럼 크게 지어진 텐트였는데 텐트 안에는 그녀 말고도 다른 사람이 열심히 할일을 하고 있었다. 곳곳에 보이는 무전기들과 큰 지도로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를 예측하게 해주었다.

김혜정은 서류들 사이에서 아침에 들고 있던 서류를 빼들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줄 무언가를 찾는지 한참을 그곳에서 서성거렸다. 노인은 하품을 길게 하며 적당한 자리에 앉았고 나는 텐트 내부를 조심히 구경했다.

한가운데 펼쳐져 있는 큰 지도에는 다양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난 그것들을 흘깃흘깃 훔쳐보며 내 지도와 대조해보기 시작했다. 내 지도만큼 자세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뭘 그렇게 훔쳐봐요? 그냥 대놓고 봐요.’

‘그래도 됩니까?’

‘왜요? 당신들은 탐색조 아니에요?’

그럼 좀 살갑게 굴던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뒷말은 내뱉지 않았다. 왜냐하면 허락을 받은 이상 한번이라도 더 지도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난 손을 뻗어 큰 지도를 조심히 쓰다듬었고 탐색조가 그동안 만든 결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집중했다.

그렇게 한 십분 정도가 지났을까? 내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지도 앞에 깔끔한 양식으로 만들어진 빈종이 몇 장과 펜 한 자루가 던져졌다. 난 그것을 조용히 받아들고 김혜정을 바라봤다.

‘보고서 알죠?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다 써야 해요.’

‘지금 말입니까?’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일 주셔도 되요.’

그리고 그녀는 텐트 한쪽으로 바쁘게 걸어가더니 무전기 옆에 있는 상자에서 익숙한 종잇조각들을 한가득 들고 왔다. 그것은 배급소에서 봤던 식권이었는데 대충 봐도 30장이 넘어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 많은 식권을 나에게 넘겼다.

‘정산 끝났으니까 이만 가보세요.’

정산이란 뜻이 이런 것이었나? 난 멍하니 내 손위에 식권을 바라봤다. 이 작은 종이 쪼가리들이 사람 3명을 구한 대가였다. 실망이 아니다. 그냥, 그냥……. 허무했을 뿐이다. 눈앞에 살점들이 붙어있던 사람의 뼈들이 아른거렸다.

내가 점점 허망이라는 상념에 빠져들고 있을 때 내 어깨위로 손 하나가 올라왔다. 묵직한 감촉에 놀라며 그곳을 바라보니 언제 내 곁에 왔는지 모를 노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은 마치 내 생각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가야지.’

노인은 시간이 날 때마다 나에게 생각을 줄이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자책에 빠지기 전에 나를 멈춰 세웠다. 난 굳어버린 고개를 억지로 끄덕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식권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 * * * * *

숙소로 돌아오니 모든 일행들이 도착해있었다. 여자들은 밝게 웃으며 우리를 반겼고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공손히 인사를 해온다. 그리고 내가 가방을 벗자마자 저 멀리 있던 채연이가 스케치북을 들고 나를 향해 도도도 뛰어왔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나를 향해 스케치북을 펼쳐 보이는데 그곳에는 알록달록하고 예쁜 그림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아이들 전부가 스케치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아 오늘 간 학교에서 그려온 그림들로 보였다. 채연이는 내 걱정과는 다르게 잘 적응하고 있었다.

‘아빠! 아빠! 바져 바져!’

채연이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얼굴에 웃음꽃을 머금었다. 그리고 혀 짧은 소리를 어눌하게 내뱉으며 나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유난히 잘 그린 그림을 가리키며 외쳤다.

‘아빠! 아빠야!’

그림 속에는 한 남성이 서있었다. 그는 슈퍼맨처럼 한손을 위로 올리고 밝게 웃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모두를 구하는 영웅처럼 보였다. 채연이는 서툰 말과 몸짓으로 그 남자를 나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족한 얼굴로 히 웃어 보인다.

그림 밑에는 삐뚤삐뚤한 글자로 아빠라고 쓰여 있었다.

나를 그린 모양이다.

난 손을 뻗어 채연이를 끌어안았다. 채연이는 깜짝 놀라나 싶더니 이내 헤헤 웃으며 내 품속에 얼굴을 비볐다. 난 한참을 그렇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기장 사이에는 이날 언급된 그림이 끼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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