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72화 (72/313)

[72]

달콤한 그 맛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 기억의 단맛은 속에서 올라오는 쓴 내와 섞여 서서히 흐릿해진다. 좋은 향수를 하나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시궁창 같은 삶속에서 유일하게 지니고 있던 일상의 향수가 재처럼 흩날린다.

울음? 터무니없다. 죽음은 이제 슬프지 않았다. 그저 허망함만이 남아 내 닳아버린 정신을 건조하게 비비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이었다. 종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딱딱한 시체만을 남기고 우리와는 다른 에덴으로 사라졌다.

이대로 두면 밤 사이 시체는 없어지겠지. 난 주차장을 뒤져 자동차를 덮는 커버를 발견했다. 난 그 큰 커버 위에 시체를 올려놓고 빈틈이 보이지 않게 꽁꽁 감쌌다. 그리고 시체를 들어 올렸는데 무거운 마네킹을 드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나는 그 시체를 들어 주차장 한곳에 숨겨놓고 온갖 잡동사니를 가져와 사방을 막았다. 그리고 지도 위에 이 위치를 표기하며 머릿속에 각인시켜뒀다. 나는 에덴으로 복귀하는 길에 시체를 수거할 것이다.

이유?

나도 모르겠다.

‘시간이 얼마 안 지났어.’

노인이 모닥불에 재를 만지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모닥불에는 물을 부어버린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물을 맞지 않은 나무에는 아직 옅은 온기가 남아있었다. 그들이 이곳에서 벗어난 지 1시간이 체 지나지 않았을 거라고 노인이 말했다.

‘부랑자.’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그러자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확률이 높지.’

난 분주하게 움직이며 주위에 널린 옷가지를 모았고 수량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것을 조합해보니 성인 남녀가 입는 평상복 두 세트와 아동복 두 세트가 맞춰졌다. 이 옷들은 분명 내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다들 잡아먹힌 걸까? 하지만 쌓여있는 뼈들로 봐서는 잡아먹힌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사람 하나를 먹어치웠다. 그렇다면 배가 충분히 불렀을 것이고 애들 두 명과 부모 중 한명은

살려뒀을 가능성이 높다. 살려두기만 했을까? 아니, 나중에 먹기 위해 끌고 갔을 확률이 더 높았다. 난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고 흥분으로 가득한 숨을 훅 내뱉었다.

‘추격합시다.’

용팔이와 두식이는 대답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강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노인만은 날카로운 눈빛을 유지하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생존자를 구출하라. 우리가 대가를 받으며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하지만 이것은 경우가 다르다는걸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넌 영웅이 아니야.’

‘알아요.’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겠지. 그냥 없었다고 보고만 해도 그들은 모를걸?’

‘그것도 알아요.’

노인은 상황의 요점을 정확하게 짚었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다. 교리라는 것을 가슴에 품고 있거나 남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안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이타성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여기까지 살아올 수 있었을까?

노인도 알고 나도 안다. 조금만, 조금만 내려놓으면 편해질 수 있다. 하지만 내 속에 끓어오르는 검은 찌꺼기는 내 신경을 자극하고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이 흥분은 사람을 구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숭고함이 아니었다.

살의.

사람을 죽이고자 마음을 먹는 확고함에서 오는 살의!

나는 그들을 죽이고자 한다. 어쩌면 그것이 이 살의에서 오는 정당함이 아닐까 싶다. 정당함? 말이 너무 좋았다. 이것은 모순을 내 방식대로 재정립 하는 변명이다. 죽이고, 죽이고! 죽이면……. 그리고 운이 좋다면……. 아마 끌려간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첫날인데 성과가 있어야죠.’

난 너무나 차갑게 읊조렸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서 오는 혐오감을 더욱더 채찍질 한다. 그 채찍질은 종말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나 자신을 끝없이 몰아붙인다. 나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나쁜 사람이다. 그저 대가를 위해 사람을 구하는 그런 나쁜 사람인 것이다.

나는 나를 정의했다. 정의(定義)를 위하여. 그리고 합리화된 정의(正義)를 위하여.

노인이 장비들을 챙기며 용팔이를 향해 외쳤다.

‘용팔아, 두식이 챙겨라. 이제부터 뛰어야 된다.’

* * * * * *

그 녀석들은 흔적을 남겼다. 굳은 눈 위에 발자국 혹은 바닥에 뱉은 침과 같은 사람의 흔적을. 노인은 그런 흔적들을 귀신같이 체크했고 빠르게 그놈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턴 속도전이다. 우린 죽어라 뛰기 시작했다.

가끔 그놈들이 머리가 부셔진 채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그 녀석들은 그놈들을 피하는 요령 따윈 없어보였다. 격한 싸움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기 시작했고 덕분에 우리는 그놈들과의 충돌 없이 추격을 지속할 수 있었다.

가까워진다. 점점 가까워진다. 내 날카로운 신경이 끊임없이 경종을 울린다. 눈앞에 건물들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골목에는 우리들의 거친 숨소리밖에 들려오지 않는다. 다 잘 따라오고 있나? 난 노인의 등만을 쫓으며 미친 듯이 발을 놀렸다.

‘……멈춰.’

노인이 갑자기 멈춰서며 주먹을 들어올린다. 난 순식간에 반응하며 차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멈춰서는 용팔이와 두식이를 양손으로 잡아끌었다. 차 옆에선 노인이 침을 뱉으며 저 멀리 골목을 가리키고 있었다.

보인다.

거리가 꽤 멀었다. 하지만 직선 경로가 계속되는 골목 덕에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인원은 총 6명이었다. 아니, 끌려 다니는 사람을 제외하면 3명이었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천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거리는 좁혀지고 그들이 점점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선두에는 남자 한명, 맨 뒤에는 남자 두 명. 그리고 그 사이에는 발가벗고 있는 여자 한명과 아이 두 명이 걷고 있었다. 아니 그들은 질질 끌려가다시피 하고 있었다. 마치 가축처럼.

제대로 찾았다. 난 서둘러 볼트를 꺼내 들었고 보우를 장전했다. 하지만 노인이 내 손을 꾹 잡으며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리고 내 귀에 조용히 속삭인다.

‘멈출 때를 기다려.’

그게 정석이다. 사냥꾼은 사냥감이 방심할 때를 기다린다. 난 그것에 수긍하며 살며시 보우를 내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자. 내가 잘하는 거잖아? 난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우리는 끝없이 그들을 뒤쫓았다.

노인은 노련했다. 아니, 정말 귀신같았다. 그들은 우리가 뒤쫓아 가고 있음에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걸으면 걷고 그들이 주위를 둘러보면 황급히 숨는다. 노인은 기가 막힌 타이밍을 계속 유지하며 우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20분을 뒤쫓았을까,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기회가 찾아왔다.

덜덜 떨던 여자가 울기 시작한다. 그러자 선두에 있던 남자가 여자의 배를 걷어차 버린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리지만 남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아이들 입에 무언가를 쑤셔 넣는다. 그러자 울음소리는 줄어들었다.

그들은 휴식을 취하려는 건지 자리에 멈춰 선다. 그리고 험악한 행동을 취하며 한구석에 여자와 아이들을 밀어 넣는다. 손이 묶인 가족들은 작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차가운 콘크리트에 머리를 박았다.

남자 3명은 주위를 한참 둘러보더니 이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라이터와 담배로 보였는데 그들은 겁도 없이 담배를 주둥이에 물었다. 그리고 곧 옅은 담배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사냥을 시작한다.

‘두 놈은 죽이고 한 새끼는 살려.’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우리가 숨어있는 차 보넷위를 가리켰다. 난 조심히 몸을 낮추고 그 위로 올라가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 안정적인 자세로 보우를 견착하고 볼트를 장전했다. 노인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한곳을 향해 빠르게 뛰어갔다.

그리고 1분이 흘렀을까. 우리 옆쪽에 있는 건물 2층에서 창문 사이로 노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고개를 내민 노인은 보우를 들었고 나를 향해 수신호를 보낸다. 나는 왼쪽, 너는 오른쪽. 난 고개를 끄덕이며 용팔이와 두식이에게 준비신호를 보냈다.

심장이 거칠게 뛴다. 옅은 담배냄새가 내 신경을 자극하고 치솟는 흥분이 내 이성을 틀어막는다. 내 위에서 볼트가 발사되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반사적으로 그 소리에 반응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작은 발사음과 함께 날카로운 볼트가 허공을 가르고 동시에 용팔이와 두식이가 앞으로 뛰쳐나간다. 노인이 발사한 볼트는 정확히 한 놈의 대가리를 뚫었고 내가 발사한 볼트는 그 옆에 앉아있는 놈의 목을 뚫었다.

머리를 관통당한 남자는 보우의 장력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픽 쓰러졌고 목에 볼트가 꽂힌 남자는 황급히 목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봇물 터지듯 흘러내리는 피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는 피가 끓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 마리. 그는 일행들이 순식간에 당하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지 물고 있던 담배를 툭 떨어뜨린다. 그리고 자리에서 빠르게 일어났지만 지금 사태파악을 하기에는 조금 늦은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용팔이 형제가 벌써 지척이니까.

장전속도가 빠른 노인이 벌써 다음 볼트를 발사했다. 그 볼트는 용팔이 형제를 발견하고 도망을 선택한 나머지 한 놈에게 정확히 향했다. 날아간 볼트는 그놈 허벅지를 파고들었고 이내 남자는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기 전에 가해지는 용팔이의 공격. 용팔이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는지 움직임에 망설임이 없었다. 쇠파이프를 방망이처럼 들고 그대로 가하는 풀스윙. 하지만 한 놈을 살려두라는 지시를 기억하고 있었는지 머리가 아닌 등판을 가격한다.

살벌한 타격음과 함께 그놈은 몸부림쳤고 이내 뒤따라 달려온 두식이에게 정신을 잃었다. 난 그 장면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고 천천히 보넷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뜨거운 숨을 훅 내뱉고 조용히 노인에게 손짓했다.

* * * * * *

역시 산에서 만났던 그 가족이 맞았다. 잡아먹힌 건 아버지였는지 지금은 엄마와 자식 두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빠르게 파카를 벗었고 아이에게 걸쳐주었다. 노인과 용팔이 형제 또한 망설임 없이 파카를 벗어 그들의 발가벗은 몸을 가려줬다.

여자와 아이들은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눈동자는 텅 비어있었고 벌려진 입에선 침이 줄줄 흐른다. 아버지가 잡아먹히는 광경을 눈앞에서 봤을 것이다. 그리고 한 마리의 가축 취급을 받으며 여기까지 끌려왔다 이미 인간의 존엄성은 무너졌다.

‘……구해드리러 왔습니다.’

난 그 가족을 바라보며 메뉴얼에 적혀있던 대사를 그대로 읊었다. 맞다, 이건 일이다. 정해진 일을 끝내자. 난 나에게 최면을 걸듯 끝없이 읊조렸다.

그리고 순간 고개를 든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이 가족은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동자는 이미 방향을 잃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으며 안개가 낀 듯 흐릿한 그들의 눈동자를 피했다. 그리고 구역질 같은 말을 이어갔다.

‘이제 안전합니다. 당신들은 에덴으로…….’

우웨에에엑

난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빠르게 뒤돌아 구역질을 내뱉었다. 머리가 아찔했고 눈앞이 핑 돌았다. 사람을 죽일 때보다 지금이 훨씬 역겨웠다. 난 벽을 손으로 짚으며 속안에 남아있는 검은색 찌꺼기들을 계속해서 뱉어냈다.

‘형, 형님…….’

용팔이가 말을 더듬으며 내 옆으로 다가온다. 눈동자가 끊임없이 떨리는 게 나를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난 대답하지 않았고 재빠르게 용팔이가 들고있는 쇠파이프 창을 뺏었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놈에게 다가갔다.

가슴팍을 발로 밟는다. 그리고 다른 발로는 볼트가 꽂혀있는 그놈의 허벅지를 밟는다. 힘을 줄때마다 스펀지가 물을 내뱉듯 피가 쭉 쭉 흘러나온다. 정신을 잃었던 그놈은 극심한 고통 속에 눈을 번쩍 뜬다.

‘끄…… 큭…… 컥!’

그놈이 비명을 내지르기 전에 쇠파이프 창날을 그놈 목구녕에 쑤셔 넣었다. 입안에 있는 목젖 앞에서 창날은 멈췄고 그놈은 강제로 벌려진 입과 이물감에 고통을 호소했다. 난 그놈과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물었다.

‘왜 그 노인은 안 먹었지?’

궁금했다.

그 할머니는 목이 깔끔하게 찔려 죽어있었다. 치명적인 일격이라 분명 고통도 짧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체는 식인 같은 훼손 없이 한곳에 가만히 죽어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혹시 이들이 그 할머니를 동정하진 않았을까?

이딴 새끼들도 사람이라고, 아직 일말의 인간성을 가지고 있어서 노인을 먹지 않은 건 아닐까? 혹시, 정말 혹시나 그러진 않았을까?

그놈은 컥컥 거리기 시작하더니 무언가를 웅얼거렸다. 난 그놈의 대답을 듣기위해 쇠파이프 창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놈은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어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 질겨서…….’

난 손에 힘을 줘 쇠파이프 창을 내려찍었다. 꾸둑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찌르는 감촉이 손끝에 찌르르 느껴졌다. 생선 대가리를 자르는 느낌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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