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얇은 옷을 겹쳐 입고 마지막으로 파카를 걸친다. 체온 유지를 위한 방한은 필수지만 그렇다고 움직임에 방해를 줘서는 안 된다. 신발도 에덴 측에서 제공한 워커를 착용하고 대검 두 자루를 다리와 허리에 하나씩 묶어둔다.
그리고 털보가 만들어준 볼트 20개와 각자가 쓰던 크로스 보우를 챙겼다. 물론 두식이와 용팔이에게는 털보가 제작해준 쇠파이프 창을 들게 했다. 우리에게 있던 총이 보이지 않기에 노인에게 물어봤더니 노인은 검지를 입술위에 올리며 조용하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총은 에덴에게 보여주기 싫은 무기다. 노인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요령껏 잘 숨긴 눈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우리는 완전무장을 완료했고 각자의 길을 나서는 나머지 일행들을 배웅했다.
채연이가 예쁜 책가방을 들고 나에게 손을 흔들기에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우리는 가만히 서서 멀어지는 일행들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그리고 일행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포근했던 공기가 차갑게 뒤바뀌는걸 느꼈다. 싸늘한 긴장감과 묵직한 침묵이 가슴을 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기분은 차갑게 가라앉고 손끝의 신경이 살아 움직인다.
노인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가자.’
4명은 불어오는 칼바람을 가로질러 에덴의 정문으로 걸어갔다.
* * * * * * *
정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견고하고 튼튼한 정문에는 경비들이 무기를 들고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정문 근처에는 20명쯤 되어 보이는 인원이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복장과 장비를 보아 우리와 같은 탐색조 같았다.
하나같이 얼굴이 흐리고 불안해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순식간에 시선이 쏠렸는데 그 시선에는 호기심과 약간의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웅성거림을 무신경하게 가로질렀다.
정문 옆에는 의자 하나가 외롭게 서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에는 익숙한 여자가 앉아 있었고 여전히 짜증과 피곤이 묻어나는 얼굴로 서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혜정, 어젯밤 봤던 탐색조 팀장이었다.
김혜정은 우리가 접근하자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든다. 그리고 이리 오라는 손짓과 함께 우리를 크게 불렀다.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에 여전히 짜증이 묻어나는걸 보니 오늘도 기분이 썩 좋은 편은 아닌가보다. 노인이 침을 퉤 뱉으며 그녀를 조용히 쳐다봤다.
그녀는 우리가 접근하자 서류에 무언가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자 옆에 있는 가방에서 무전기를 꺼내 우리에게 던졌다. 나는 무심결에 무전기를 받았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는 뭘 보냐는 얼굴로 조용히 읊조렸다.
‘연락책이에요. 가지고 다녀요.’
이상하게 존댓말을 한다. 하지만 태도변화가 없기에 괴리감만 느껴졌다. 나는 무전기를 가방에 챙기고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이제 가도 되는 걸까? 하지만 그녀는 용무가 끝나지 않았는지 서류를 나에게 들이밀었다.
‘사인해요. 그리고 팀명도 적고요.’
난 서류와 펜을 받아들고 그녀가 내민 서류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어떤 조가 몇 시 몇 분에 나갔고 언제 복귀했는지 빼곡하게 쓰여 있었는데 나름 체계적인 시스템이라 나는 작게 감탄했다. 그리고 펜을 들어 한쪽에 사인했고 팀명을 쓰라는 칸에서 한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채연이의 이름을 적었다.
옆에서 피식 소리가 들리는 게 노인이 분명했다. 솔직히 나도 웃겼는데 내가 적고 웃기가 좀 그래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 나는 김혜정에게 다시 서류를 건네며 조용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팀 이름이 채연입니까?’
‘네.’
‘장난하는 거 아니죠?’
‘네.’
난 단 답으로 일관하며 서류가 빠르게 통과되길 기다렸다. 그러자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서류를 반으로 접었다. 그리고 무전기를 꺼냈던 가방에서 작은 리볼버 하나를 꺼내 들었고 그것을 나에게 내밀었다. 난 이게 뭐냐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는 검지를 치켜 올리며 나에게 말했다.
‘호의 아니니까 착각하지 마요. 팀당 한 자루! 비상용으로 지급하는 거니까 절대 막 쓰지 말고요.’
우리 마트로 들어왔던 탐색조가 생각났다. 분명 그 미친 여자가 분명 카빈 한 자루를 들고 있긴 했다. 탐색 조에게 기본적으로 지급하는 총기인 모양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리볼버는 정말 호의가 아니긴 했다.
왜냐하면 그 미친 여자에겐 쓸 만한 카빈을 줘놓고 나에겐 이딴 리볼버나 지급했으니까 말이다. 보아하니 이 여자 뒤끝이 장난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 주기에 받기는 했다. 난 리볼버를 가방에 대충 찔러 넣고 김혜정을 다시 바라봤다.
그녀는 내 무표정이 거슬리는지 눈썹을 찡그렸고 이내 콧방귀를 뀌며 정문을 가리켰다. 시간이 된 모양이다. 우리가 마지막에 왔으니 가는 순서도 가장 마지막이다. 보초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이내 큰 정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무전기가 시끄럽게 울린다. 정문 근처에 그놈들이 없다는 신호와 함께 팀들이 순차적으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마치 상륙작전을 펼치는 병사처럼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두려움일까? 아니면 긴장감이라도 몰려오는 걸까?
하지만 이 감정마저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용팔이가 내뱉는 입김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담배 연기처럼 흩어진다. 우리가 긴장으로 몸을 흠뻑 적시고 있을 때 가방에 꽂아둔 무전기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김혜정의 목소리였다.
[팀 채연, 팀 채연. 출발합니다.]
정문 옆 감시탑에서 한 남자가 미친 듯이 팔을 돌린다. 그리고 무전기 잡음과 함께 노인이 내 등을 미는 감촉이 느껴졌다. 내 몸은 마치 순풍을 만난 돛처럼 순식간에 앞으로 밀려나갔다. 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발을 박찼다.
눈을 감고 뜨자 정문이 보였고 이내 도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마지막 한숨소리를 끝으로 에덴에서 벗어났다.
* * * * * *
에덴 탐색조의 역할을 단순했다.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찾아라. 그리고 지도에 표시하라. 정찰대와 같은 개념이었는데 일단 생존자를 구조하는 것까지 겸하니 탐색이란 이름이 애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가 할일은 너무나 쉽게 정해져 있었다. 매뉴얼 첫 장 가라사대.
1. 생존자를 구출하라.
2. 식량이 존재하는 곳을 파악하라.
3. 위험요소를 발견하라.
물론 나였다면 이 순위를 반대로 바꿨을 것이다. 하지만 그 교리라는 것을 신처럼 받드는 단체장이 만든 것이니 대충 머리로는 이해해줬다. 대가를 받았으면 그의 맞는 일을 해주면 되는 것이다. 난 매뉴얼을 대충 읽고 일행들에게 넘겨줬다.
우리들에게 이동이란 개념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잘 피하고 잘 숨으면 된다. 최대한 충돌을 피하고 한 마리 벌레처럼 몸을 웅크린다. 사람들이 사라진 이 회색 도시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미로와 같았다. 그리고 그 미로는 우리들의 존재를 착실하게 숨겨줬다.
‘…….’
그놈들은 여전히 이상한 괴음을 내뱉으며 흐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길가에 두 명, 그리고 담 너머 세 명. 우리는 발소리를 줄이며 그 근처를 조심히 지나친다. 그리고 그놈과 완전히 멀어졌을 때 나는 펜을 꺼내 우리가 지나왔던 경로를 지도에 표시한다.
해가 떠있는 시간이면 그놈들의 움직임은 수동적으로 변한다. 우리는 그 요소와 시간을 적절하게 이용해야했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이런 것이 있다.
[지나왔다면 다시 지나갈 수 있다.]
지금 지나가는 길가에 그놈들이 없다면 다음날에도 없을 확률이 높았다. 그들은 밤이 되면 사냥을 시작하고 해가 밝아오면 자신들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 버린다. 그 바보 같은 귀소본능은 우리의 이동을 완성시켜주는 중요한 열쇠와 같았다.
3시간을 걸었음에도 볼트한발 쏘지 않고 이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단 한 번도 쉬지 않은 강행군이라 일행들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고 난 어쩔 수 없이 휴식을 지시하며 골목 한구석으로 일행들을 이끌었다. 점심이 다가오니 간단한 요기라도 해야겠다.
내가 바닥에 앉아서 초콜릿을 씹는데 저 옆에 있던 노인이 조용히 다가온다. 그리고 내가 들고 있는 지도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래서 성과는 있어?’
물론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 오는 내내 생존자는커녕 거지같은 그놈들만 구경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시간을 낭비한 것만은 아니었다. 난 그 증거로 내가 여태 기록한 결과물을 노인에게 보여줬고 노인은 내가 내민 지도를 받아들며 작게 감탄했다.
‘……잘하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고시원을 탈출했을 때부터가 아닐까? 나는 그날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내가 겪은 모든 것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지금 쓰는 이 일기는 물론이고 내가 겪은 쓸데없는 정보까지 전부.
그리고 그 기록에는 지금과 같은 지역의 정보가 있었다.
우리가 이 길을 몇 번 다녔는지, 그리고 이 길에 그놈들 숫자는 몇 명이었고 몸을 숨길 곳은 없는지. 하다못해 그놈들이 서있던 위치까지 빨간 펜으로 전부 표시를 해뒀다. 내가 지니고 있던 지도는 점점 더러워졌지만 그만큼 많은 정보를 내포하기 시작했다.
경험해보지 못하고는 알아내지 못할 정보. 나는 그것을 만들고 싶었다.
노인은 희미하게 웃으며 지도를 되돌려줬고 나는 그것을 소중하게 접어서 일기장 사이에 끼워 넣었다. 노인은 나를 조용히 쳐다보나 싶더니 이내 길게 하품했다. 이제 이동할 시간이 된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나는 출발하기위해 용팔이 형제를 조용히 불렀다.
하지만 웬일인지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찾아가보니 용팔이가 한쪽에서 두식이와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그런 용팔이를 부르자 용팔이는 코를 킁킁 거리며 나를 바라봤고 이내 수상하단 얼굴로 조용히 대답했다.
‘형님, 어디서 이상한 냄새 안 납니까?’
냄새? 난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킁킁거리며 용팔이가 말한 이상한 냄새를 맡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자 뭔가 타는 냄새와 함께 역겨운 누린내가 났고 난 인상을 찡그리며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도 냄새를 맡았는지 황급히 코를 막는다.
‘뭔 냄새지?’
맡아본 것 같으면서도 생소한 냄새다. 난 사방을 둘러보며 이 역겨운 냄새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고 이내 일행들을 데리고 그것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냄새의 진원지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곳은 오피스텔의 주차장이었다.
주차장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해가 들어왔기에 어둡지도 않았고 그놈들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진하게 풍겨오는 매캐한 냄새는 눈가를 저절로 찡그리게 만들었다. 우리는 사방을 경계하며 천천히 주차장 뒤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모닥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놈들이 모닥불을 피웠을 리가 없다. 그렇다는 건 다른 생존자가 피웠다는 것인데 중요한건 그것이 아니었다. 바로 역겨운 누린내의 근원지가 이 모닥불 근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옷가지들이 주위에 널려있었고 우리는 그 근처에서 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용팔이가 큰 뼈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엥 누가 고기라도 구워먹었나 봅니다.’
고기. 그래.
모닥불이 피워져 있고 근처에 뼈가 있다면 누구나 상상하는 장면은 똑같을 것이다. 뭐 누가 즐겁게 동물이라도 구워먹었구나.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런 상상이 들지 않았다. 난 메마른 목구녕 사이로 침을 억지로 밀어 넣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팔이 내려놔라 그거.’
‘네? 왜요?’
‘사람 뼈다.’
어……?
용팔이는 노인의 말을 듣고 잠시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이게 마치 꿈이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들고 있던 뼈를 천천히 떨어트렸다. 용팔이는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찍었고 난 참담함을 감추지 못하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우웨에에에엑
한쪽에서 용팔이가 토악질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역겨움 때문에 토가 올라왔지만 필사적로 토악질을 참았다. 주위에 널려있는 옷가지와 뼈들. 그리고 사람의 살이 타는 냄새. 그놈들은 살아있는 사람을 먹고 또 다른 그놈은 살아있는 사람을 구워먹는다.
차이가 무엇일까.
‘동윤아.’
노인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나는 넋을 뺀 상태에서 고개를 돌렸고 한곳을 조용히 가리키는 노인을 바라봤다. 그리고 노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 옷가지 사이로 쓰레기처럼 버려진 시체 한구를 발견했다.
난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갔다.
주름살 가득한 얼굴, 그리고 백발의 머리는 이 시체의 나이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 시체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봤고 이내 기분이 싸늘하게 가라앉는걸 느낄 수 있었다. 한번 본적이 있는 얼굴이다. 그리고 입안에선 그때 느꼈던 고구마의 단맛이 아른거렸다.
난 조용히 손을 뻗어 할머니의 감기지 않은 눈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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