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68화 (68/313)

[68]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을 여는 순간 따뜻한 공기와 함께 유자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나는 코를 킁킁 거리며 주위를 둘러봤고, 이내 긴 탁자 중앙에 있는 남성 한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이는 50대? 반쯤 백발이 된 머리를 멋들어지게 올린 중년 남성은 우리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은테 안경은 일행들에게 자리를 안내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쭈뼛거리며 각자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탁자는 우리 모두가 앉을 수 있을 만큼 크고 길었으며 반들반들한 고급원목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탁자 장식은 여자들의 시선을 뺏을 만큼 화려했다.

일행들이 모두 착석하자 주위에 서있던 남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년 남성은 조용히 상석에서 내려와 나와 노인이 앉아있는 탁자 맞은편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웃음을 지어보이며 은테 안경을 향해 조용히 손짓한다.

그러자 음식들이 하나 둘 들어오며 방안에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방안 곳곳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멋들어진 방 분위기와 더불어 음식도 전문 주방장이 만든 듯 고풍스럽고 먹음직스러웠다. 그중에 압권은 거대한 스테이크였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선 꿈도 못 꿀 음식이었다.

도대체 생고기를 어디서 구한거지? 난 의문이 들면서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테이크 앞에 반쯤 혼이 빠져있었다. 이 남자가 우리를 음식으로 유혹할 생각이었다면 반쯤 성공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었다.

중년남성은 우리를 향해 말했다.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 식사부터 합시다.’

그러자 모든 일행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마치 먹어도 되죠? 이거 진짜죠?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 스테이크를 향해 돌진했다. 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걸 느꼈다.

아이들은 어른들 사이에 앉아 아기 새처럼 입을 벌렸고 두 마리 돼지들은 벌써부터 고기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잖게 앉아있던 노인마저 식사가 시작되자 정말 미친 듯이 고기를 썰었다. 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풍겨오는 유자냄새를 코 안 가득 담았다.

‘동윤 씨도 드시죠.’

아, 순간 내 시선이 중년 남성에게로 향했다. 유자 냄새는 분명 그에게서 풍겨오고 있었다. 그나저나 내가 이름을 말했던가? 난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고 이내 내 앞에 놓인 나이프와 포크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스테이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포크에 짓눌린 스테이크는 육즙을 줄줄 흘렸고 이내 황홀한 냄새를 풍겼다. 난 황급히 고기를 썰어 입으로 가져갔고 이내 혀에 고기가 닿는 순간 눈물을 찔끔 흘릴 뻔했다.

먹는 기쁨, 너무나 오래 잊고 지내던 기쁨이다. 우리 일행들은 침묵을 지키며 식사를 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나도 이 순간만큼은 의심도 경계도 모두 치우고 한 덩이 고기를 먹어치우는 것에 모든 신경을 쏟았다.

식당에는 오직 쩝쩝 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식사가 곧 끝이 났다.

중년 남성은 살며시 웃음을 머금고 우리가 식사를 끝내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식사시간 내내 적당한 자리에서 애매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고 덕분에 우리 일행들은 부담감을 버린 채 편안한 식사를 끝낼 수 있었다. 이내 아이스크림이라는 충격적인 디저트는 덤이었다.

아이스크림과 잡다한 다과가 나오자 식당은 어느새 친목의 장으로 바뀌었고 일행들은 바쁘게 수다를 떨며 평화로운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노인은 말없이 차를 마시며 중년 남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손님을 대접하기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했을 리가 없다. 원하는바가 있거나 혹은 우리가 예상 못한 제안을 하거나. 둘 중 아무거나 상관없으니 빨리 본론을 말해주기를 우리는 원하고 있었다.

그러자 내 눈빛을 느낀 중년 남성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말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실수 있겠습니까?’

기다리고 있었다. 난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내 옆에서 턱을 괴고 있던 노인과 눈을 마주친다. 그러자 노인은 숨을 훅 내뱉더니 나와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나 해서 일행 쪽을 바라보니 다들 간식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고 오직 강수련만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화내용을 다 듣고 있던 강수련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며시 눈을 깜빡였다. 말은 안했지만 서로가 원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난 빠르게 시선을 돌렸고 이내 다른 일행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살며시 자리에서 벗어났다.

남성과 나, 그리고 노인은 식당을 빠져나와 근처에 있는 작은 방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손님을 맞이하는 접객용 방인지 아담하고 조용했다. 경비들은 단체장을 따라 들어오려고 했지만 그는 호위를 단호하게 거절하며 천천히 문을 닫았다.

단체장이 문을 닫자 접객용 방에는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침묵 속에서 천천히 숨을 내뱉던 단체장은 우리에게 앉을 것을 권유했다. 우린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된 의자에 앉았고 이내 원형탁자에서 서로를 비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잠시 뒤 단체장이 헛기침을 하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손 경락입니다.’

‘……곽 동윤입니다.’

난 단체장이 내미는 손을 붙잡고 악수했다. 그러자 단체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을 힘차게 흔들었고 이내 노인에게도 자신을 소개하며 짧은 인사의 시간을 가졌다. 호의적인 태도로 우리를 대해주니 생각보다 자리가 불편하진 않았다.

‘식사는 입에 맞으셨습니까?’

‘본론부터 말하자고.’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려는 단체장의 말을 노인이 순식간에 잘라버렸다. 그리고 단체장이 원하는 본론을 빠르게 설명하길 요구했고 나도 그것을 원하고 있기에 별다른 말없이 단체장을 바라만보고 있을 뿐이다.

너무나 노골적인 태도에 당황할 법도 하지만 단체장은 능숙하게 웃어넘기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와 눈을 마주치더니 비굴하지도, 그렇다고 오만하지도 않은 태도로 말했다.

‘저희 에덴이랑 함께 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예상했던 부분이 반은 맞았다. 난 검지로 책상을 톡톡 두들기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풀기위해 거침없이 질문을 날렸다.

‘왜 하필 우립니까?’

물론 살아남은 생존자는 적다. 하지만 신림동을 뒤지면 우리보다 많은 생존자가 있을 것이고 그들은 누구나 에덴으로 들어오길 희망할 것이고 그중에는 나보다 뛰어난, 혹은 내 일행보다 유능한 인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근데 왜 하필 우리일까?

나에게 부상당한 인원만 5명이 넘는다. 하지만 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너무나 손쉽게 풀려날 수 있었다. 규율의 어긋난 행위는 독과 같았고 그것을 눈감아주는 행위는 모두가 그 독을 먹는 것과 같았다.

이런 큰 단체를 이끄는 사람이 규율의 중요성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왜 그런 리스크까지 감수하면서 우리를 특별대우 해주는 것일까? 당장 아까만 해도 귀한 생고기를 밥처럼 퍼먹으며 사치스러운 식사를 즐겼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흔하디흔한 합류 제의를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단체장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도 내가 말하고 있는 의도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난 별다른 사족을 달지 않고 얌전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체장은 조용히 읊조렸다.

‘……돌연변이를 죽이셨더군요.’

순간 쿠당탕 소리와 함께 노인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단체장을 죽일 듯 노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노인의 반응으로 보아 우리 일행이 퍼트린 정보는 아니다. 그렇다는 건 에덴 측에서 따로 정보를 모았다는 소리인데, 난 순간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걸 느꼈다.

순간 문이 덜컹 열렸고 소리를 듣고 온 경비둘이 우르르 몰려왔다. 하지만 단체장은 손을 뻗어 그들을 제지하더니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난 단체장을 노려보며 노인 쪽을 향해 조용히 중얼거렸다.

‘영감님, 그 녀석 시체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러자 노인이 아닌 단체장이 대답했다.

‘마트 뒤편에서 휘발유로 태우셨더군요. 두시간전에 온 보고입니다.’

그러자 노인은 책상을 쿵 내려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마트로 사람을 보냈나?’

노인이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자 멈춰있던 경비들이 깜짝 놀라며 다시 이쪽으로 접근하려 했다. 하지만 단체장은 다시 한 번 그들을 제지하며 노인을 향해 살며시 양손을 들어 올려 보인다. 싸우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분명 그는 그런 제스처를 취했다.

‘죄송합니다, 당신들이 부랑자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탐색 2조를 전멸시킨 범인도 정확하게 알아야 했고요.’

그들은 정의롭고 순진한 단체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너무 허술했던 걸지도 모른다. 난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빠르게 돌아본다. 삼단 봉으로 무장하고 있는 경비들의 숫자를 세고 어떻게 움직여야 이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순식간에 해냈다. 그러자 근육에 힘이 들어갔고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내가 일어난 순간 단체장이 갑자기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싸우려는 의도가 아니란 것만 알아주십쇼.’

그렇게 외치던 단체장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우리를 향해 거침없이 고개를 숙였다. 난 주위를 경계하는 자세 그대로 멈췄고 노인도 얼굴을 찡그린 체 꼬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단체장은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이렇게 말했다.

‘……탐색조 생환률이 50%를 겨우 넘습니다. 아무리 훈련을 시키고 준비를 해봐도 무사히 도착하는 탐색조가 거의 없었습니다. 갈수록 사망자는 늘어나고……. 지원자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날카롭게 물었다. 그러자 단체장은 살며시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보더니 책상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눈을 감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희에겐 풍족한 장비와 무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생산과 수급이 가능한 물자도 많습니다.’

그렇게 말한 단체장은 눈을 뜨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경험과 노하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나와 노인은 이 남자가 이러는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살기위해서 그놈들을 피해가던 경험, 그리고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쳤던 발버둥이 이들 눈에는 조금 다르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동윤씨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언쟁은 없었다. 단체장이 고개를 숙이고 있자 그 근처에 있던 경비들도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난 익숙지 않는 대접에 어색함과 당황함을 참지 못하며 그들에게서 시선을 치웠다.

난 한숨을 내뱉으며 의자에 다시 앉았다. 노인도 나를 따라 앉으며 천천히 흥분을 가라앉혔다. 단체장은 우리가 흥분을 가라앉히자 조심히 눈치를 보더니 본인도 의자위에 다시 착석했다. 난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남자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탐색조의 목적은 생존자를 확보하는 것에 있었다. 아니, 정말 좋게 말하면 사람을 구하는 숭고한 행위였다. 충분히 자급자족이 가능해 보이는 에덴이 탐색 조를 만들면서까지 생존자를 구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2명을 구해도 3명이 죽는 큰 리스크까지 안고 말이다.

단체장은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문 사이로 살며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며 말없이 한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도착한곳에는 작은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그 안에는 예쁘게 짜인 십자수가 들어있었다.

‘교리 때문입니다.’

교리……. 신을 믿는 이들에겐 그분의 말씀이고 진리와 같았다. 과연 신은 이들에게 무어라 말하고 행동하게 했을까? 물론 신을 믿지 않는 나에겐 그것이 신의 위선 같았다. 하지만 구태여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었다.

‘그분께선 모든 이들을 구하라 하십니다.’

남자는 조용히 양손을 겹쳤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기도를 하는지 입술을 오물거렸고 한참을 침묵을 유지했다. 노인이 내 허리를 연신 찌르기 시작했지만 난 빠르게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그만큼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으니까.

‘깨끗한 거주지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음식과 좋은 옷을 항시 제공하겠습니다. 병원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위해 전문 인력을 통한 교육도 시켜드리겠습니다. 에덴은 모든 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동윤씨.’

남자는 내가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마치 뱀처럼 다가와 나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 유혹 하나하나가 나를 강하게 끌어당길 만큼 매혹적이었다. 그것이 독 사과일지, 아니면 맛있는 꿀 사과일지는 아무도 몰랐다.

나만 고생하면 일행들이 모두 편해진다. 그 전제가 나를 끊임없이 고뇌하게 만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긴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난 침으로 마른 목을 적시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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