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창문 안으로 보이는 채연이는 침대위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눈은 퉁퉁 부어있었고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창문을 조심히 어루만진다. 아이한테 큰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다.
옆에선 강수련이 내 옷깃을 잡고 흔들며 조용히 속삭였다.
‘들어가 봐요. 당신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난 떨리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는 문 앞으로 조용히 걸어가 문손잡이를 밀었다. 문은 부드럽게 열렸고 난 아이가 깨기라도 할까, 한걸음 한걸음에 모든 신경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한쪽에 놓인 의자를 들고 와 아이 옆에 조심히 앉았다.
쌔액- 쌔액- 아이가 내쉬는 숨소리가 조용히 울려온다. 채연이는 꿈이라도 꾸는지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었고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침대 시트를 꼭 부여잡고 있었다. 난 살며시 손을 뻗어 아이의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주었다.
채연이는 깨끗해져 있었다. 목욕을 했는지 머리에선 좋은 냄새가 났고 피부는 뽀송뽀송해져 있었다. 그리고 더러운 옷 대신 깜찍한 아동복을 입고 있는 채연이는 평범한 일상 속에 존재하는 풍경 같았다. 나는 곤히 자고 있는 채연이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빠.’
채연이는 조용히 웅얼거렸다. 누구를 찾고 있는 걸까? 그날 도로에서 죽었던 남자를 부르는 걸까? 채연이가 입술을 물고 웅얼거리던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흘러내린 이불을 끌어올려주었다.
반나절을 울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아이를 깨워서 내가 괜찮다는 걸 보여줄까 했지만 곤히 자고 있는 채연이를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난 아이가 깨지 않게 조심하며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채연이를 바라보다 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발목을 붙잡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아빠!’
내가 다급하게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채연이가 상반신을 일으키며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에 아빠가 아닌 지금의 나를 보면서 말이다. 안아 달라고, 빨리 안아 달라고 양손을 내밀고 있는 채연이를 향해 난 빠르게 달려갔다.
난 아빠가 아니야 채연아. 난 그날의 끔찍한 기억을 되새기며 아이에게 강한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죄책감속에는 너무나 이기적인 기쁨이 감춰져 있었다. 난 아빠가 아니야, 난 이 한마디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난 아이를 품속에 안았다. 그러자 채연이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울음을 터트리며 내 품속에 얼굴을 묻었다. 항상 반복되는 위기와 재회 앞에 아이의 정신이 피폐해질까봐 걱정이 들었다. 안전한 일상, 괜찮다는 확신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밥은 먹었어? 잠은 좀 잤어? 많이 놀랐어? 난 아이를 달래며 끊임없이 질문했고 아이는 훌쩍이며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입안이 너무나 씁쓸했다. 난 한참을 그렇게 침대위에 앉아 있어야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채연이는 울음을 그쳤다.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다시 밝은 모습을 되찾았고 내 허리를 꼭 잡으며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 오늘은 계속 이 자세를 유지할 것 같았다. 난 채연이를 안아들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부터 창문 밖이 어수선했다. 밖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자주 보이던 실루엣이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소식을 들은 일행들이 하나둘 도착한 모양인데 난 반가움을 느끼며 빠르게 문 앞으로 다가가 문손잡이를 당겼다.
‘……형님?’
문을 열자마자 용팔이가 보였다. 용팔이는 갑자기 문이 열릴 줄 몰랐는지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용팔이와 눈을 마주친 나는 기겁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용팔이의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왜 그러냐?’
용팔이의 화려하던 금발머리가 몽땅 잘려 없어져있었다. 말 그대로 삭발이었는데 두상이 못생겨서 그런지 꼭 꼴뚜기 왕자 같았다. 본인도 그런 모습을 아는지 부끄러운 기색을 보이며 얼굴을 붉힌다. 그리고 뒤통수를 긁으며 나와 눈을 피하는 것이 상태가 영 이상했다.
얘는 또 왜이래? 노인한테 혼나기라도 했나?
난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용팔이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노인을 바라봤지만 노인은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노인이 아니라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난 어깨를 으쓱하며 용팔이의 반짝이는 머리를 찰싹 때렸다.
내가 아무 말 없이 대답을 재촉하자 용팔이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들릴 듯 말듯 한 목소리로 작게 웅얼거렸다.
‘……형님 죄송합니다.’
‘뭐 잘못했어?’
난 정말 몰라서 물었다. 물론 용팔이가 평소에 깐족거리고 가벼운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 말을 듣지 않는다거나 불량한 태도를 취하는 건 아니었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착한 놈, 노인도 나도 그 점을 알고 있기에 용팔이에게 큰 화를 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용팔이가 자진해서 사과를 한다? 왜? 난 채연이를 잠시 천천히 내려놓고 용팔이가 알아서 대답해주기를 기다려줬다. 그러자 용팔이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잔뜩 주눅이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형님이 절 믿고 맡겨주셨는데, 거기서 실수나 하고…….’
실수? 아, 기침을 말하는 건가?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물론 당시에는 어이가 없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와서 용팔이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결국 용팔이는 제 역할을 했고 그녀석도 무사히 잡았으니까.
내가 쓰러지고 나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인데, 본인이 알아서 반성하고 있으니 하려고 했던 잔소리도 쏙 들어가 버렸다. 분명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을 게 뻔했는데, 그 마음이 기특하다 느껴 나는 말없이 용팔이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고맙습니다, 형님.
우리는 말없이 시선을 교환했고 용팔이는 이내 꿋꿋하게 눈물을 삼키며 굳센 눈동자로 날 올려다봤다. 꼴뚜기 왕자가 돼 버린 용팔이는 예전보다 더 든든해 보였다.
* * * * * * *
‘다 모였습니까?’
내 말이 끝나자마자 모든 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트에 있던 일행들은 단 한명도 빠지지 않고 모두 내 곁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괜찮은 상황인 에덴을 봤다면 조금 혹하는 마음이 있었을 텐데, 일행들은 그 유혹을 너무나 쉽게 물리쳤다.
나를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눈빛이 꼭 강아지들을 보는 것 같아서 부담감이 들다가도 속이 든든해짐을 느꼈다. 이들은 모두 내편이다. 내가 얼굴에 웃음을 머금자 일행들도 히히덕 웃으며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저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은테 안경의 남자가 조심히 나를 불렀다.
‘이제 가도 되겠습니까?’
‘아, 예.’
조금 미안해졌다. 아까부터 나를 기다리느라 2시간은 넘게 서 있던 것 같은데, 우리를 재촉하거나 짜증을 내는 기색 하나 없었다. 그만큼 절박한 것인지 혹은 사람이 순한 건지……. 난 일행들을 이끌고 남자의 인솔을 말없이 따랐다.
병원 정문을 나오자 흐린 하늘과 싸늘한 날씨가 우릴 반겨주었다. 난 남자를 따라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이 많았는데 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길을 지나다니고 있었다.
아마 에덴이랑 단체는 길 자체를 틀어막고 한 지역을 쉘터로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상상했던 쉘터를 아득하니 뛰어넘는 규모 앞에 난 조용히 감탄사를 내뱉었고 일행들도 안전한 길을 걷는다는 게 영 어색한지 연신 주위 눈치를 살폈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고 얼굴 또한 희망에 가득 차있었다. 어른들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다들 분주하게 뛰어다녔으며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려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탐색조 무리중 우리에게 합류 제의를 했던 남성의 말이 기억났다. 내 기억 속에 그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었다. 인간이 남긴 최후의 보루 에덴. 그 말을 결코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이 아니었다. 내 눈 앞에는 분명 인간의 낙원인 문명이 남아있었다.
난 천천히 걸음을 늦춰 대열 맨 끝 쪽에 있는 노인에게로 향했다. 노인은 내가 다가온 것도 모르는지 건물 옥상에 빼곡히 달려있는 태양광 패널들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팔꿈치로 허리를 쿡 찌르자 노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나를 바라봤다.
난 노인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뭐 좀 알아낸 거 있습니까?’
내가 쓰러져 있을 동안 가만히 있었을 노인이 아니다. 노인도 내 의도가 뭔지를 단번에 알아채고 조용히 내 옆에 붙어 걷기 시작했다. 사실 의심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먼저 드는 의구심은 바로 이들의 거대한 규모였다.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는 병원시설과 태양광 발전기들. 그리고 안전하게 확보된 구역과 체계화된 체제는 마치 하나의 작은 나라 같았다. 고작 한 달이다. 고작 한 달 만에 이정도 체제를 갖췄다는 게 나는 믿기지 않았다.
뭐랄까……. 마치 이 종말을 대비한 것처럼 모든 게 완벽했다. 그리고 너무나 완벽했기에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노인은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품속에서 작은 수첩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낡은 수첩에는 글자가 빼곡하게 쓰여 있었고 이내 내 시선은 수첩 맨 윗부분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분명 이렇게 쓰여 있다.
진리회.
‘진리회라고 들어봤어?’
진리회? 순간 생각난 것은 우리나라에 많고 많은 종교 단체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에는 정말 수없이 많은 종교 분파와 단체가 있었고 그중에는 사이비라 불리는 단체, 또는 규모가 커서 재단이나 학교를 세우기도 하는 단체도 있었다.
진리회는 그런 단체 중 하나였다.
물론 크고 작은 논란이 있었고 과연 그들이 사이비냐 아니냐에 대한 이슈도 시끄러웠다. 하지만 나같이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본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신경을 꺼버리거나 혹은 혀를 차고 지나가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그런 무관심을 경고하듯 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여기 간부들 대부분이 진리회 사람들이야. 병원도 학교도 그쪽 재단이고.’
아, 입에서 작은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퍼즐들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는 기분이 들었다. 정부도 하지 못한 대처를 이들은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짧은 시간동안 어떻게 조직을 꾸릴 수 있었는지. 그 의문이 천천히 풀리기 시작했다.
종교만큼 조직적인 단체는 없었다. 그들은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원래 이러면서 살고 있었을 뿐이었다. 신들이 말하는 낙원을 만들면서……. 말이다.
에덴.
분명 이곳은 그들이 말하는 에덴이 맞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노인에게 물었다.
‘……여기 다른 생존자들도 진리회를 믿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수첩 몇 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모를 하나하나 살피며 나에게 속삭였다.
‘그건 또 아니란 말이지……. 여기에는 우리 같은 일반적인 생존자가 더 많아. 심지어 기독교, 천주교, 그리고 불교까지, 믿는 종교도 다양해.’
그렇다는 건 적어도 믿음을 볼모로 한 보호는 아니란 뜻이었다. 참 가면 갈수록 정의하기 힘든 단체다. 여태 보여준 행적으로 봐서는 정말 정의롭고 인간적인 단체였지만 내 머릿속 한편에 박힌 의심은 그걸 불신하게 만들었다.
내가 걸음을 옮기며 고민하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들 앞에 있는 건물은 크고 모던한 건축물이었는데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위치상 중앙에 존재하고 있고 정복을 입은 경비도 많은걸 보니 우리가 제대로 도착한 모양이었다.
은테 안경이 우리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가시죠. 식사 준비가 되었습니다.’
* * * * * * *
건물 내부는 신축한 건물처럼 깨끗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말소리나 기도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아마 이들이 이용하는 본당이 아닌가 싶었다. 나야 교회나 절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인지라 이런 분위기가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1층을 지나 이내 위로 향하는 계단을 걸었고 꼭대기 층인 4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4층에 도착하자 주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숫자도 현저히 적어졌고 어쩐지 비장한 기운이 감도는 경비들이 곳곳에 서있었다.
은테 안경은 우리를 복도 끝에 방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주위 방들과는 다르게 생긴 문 하나가 있었는데, 그 문 양쪽에는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경비들이 서있었다. 은테 안경은 조심히 문 앞으로 다가가 노크했다.
‘단체장님, 손님 오셨습니다.’
난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리고 일행들을 보호하듯 내 뒤로 서게 만들고 난 제일 선두에서 그 문을 올려다본다. 내 눈앞에 있는 문은 에덴의 위세를 자랑하듯 너무나 크고 화려하게 느껴졌다. 나는 마치 왕 앞에 서있는 거지처럼 볼품없고 초라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어깨 펴!’
노인이 내 등을 치며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시선을 살며시 돌리자 그곳에는 모든 일행들이 모여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향한 믿음과 신뢰, 그 무형의 존재는 눈빛을 통해 나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내 어깨는 순풍을 만난 돛처럼 크게 펼쳐졌다. 나는 그 순풍을 타고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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