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66화 (66/313)

[66]

참 시원하게도 울었다. 불안함과 무거운 압박감이 눈물을 통해 모두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그리고 눈물이 멈추자 내가 왜 울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순간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부끄러움과 함께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난 그제야 현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노인도 내가 이성을 되찾은걸 눈치 챘는지 나중에 설명해 준다는 말과 함께 일단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노인을 100% 믿는 나로서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고 이내 숨을 크게 내쉬었다.

난동을 부린 직후라 그런지 정복을 입은 남자들은 나를 경계하며 천천히 다가왔다. 체포를 하려는 모양인데, 나는 당연하다 생각하고 일단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과를 건네며 저항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양손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 순간 한 남자가 들고 있는 무전기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다급하게 무전을 받았고 이내 쩔쩔매며 무전기 앞에서 굽실거리기 시작했다. 남자가 고개를 돌렸기에 자세한 내용은 듣지 못했지만 뭔가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걸 느낄 수 있었다.

무전기를 끊은 남성은 짧게 혀를 차더니 이내 불만이 섞인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마치 든든한 백을 잡은 낙하산을 쳐다보는 눈빛이었는데 영문을 모르는 나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내가 거듭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자 그 남자는 콧방귀를 뀌더니 다른 남성들을 데리고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걸로 끝? 그 난동을 부렸는데?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서히 멀어지는 남성을 바라봤다.

남자들이 사라지고 잠시 뒤 깔끔한 정장을 입은 남성이 인파를 헤치고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그 남성은 우리를 구경하는 인파를 향해 흩어지란 제스처를 취했고 사람들은 이 남성을 알고 있는지 순식간에 자리에서 흩어져 각자 할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두 흩어지자 정장의 남성은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곽동윤씨 맞으십니까?’

나는 얼떨결에 손을 들고 남성과 악수했다. 그러자 남성은 살며시 웃고는 끼고 있던 은테안경을 살며시 치켜 올렸다. 그리고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무사히 치료 마치셔서 다행입니다. 일단 이야기들 나누시고 두 시간 뒤에 찾아뵙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남성은 우리를 다른 병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쉬라는 소리와 함께 우리 3명 모두를 병실에 있게 배려해줬다. 나는 특별한 대우에 의문과 경계심이 들었지만 가만히 있는 노인과 강수련을 보며 일단 입을 다물었다.

내가 침대위에 눕자 강수련이 조심히 내 옆으로 다가와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불안해하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지금 에덴으로 온 거에요. 그리고 채연이랑 다른 일행들은 자고 있으니까 걱정말구요.’

에덴? 갑자기 에덴? 왜 왔고 어떻게 왔단 말인가? 나는 침대위에서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며 노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왜 에덴으로 온 겁니까??’

나는 분명히 옥상에서 그 녀석의 숨통을 끊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어떻게 된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하늘을 바라본 순간 세상이 어두워졌는데……. 눈을 떠보니 침대였다. 아니, 어쩌면 간간히 생각나는 기억의 편린들이 꿈이 아니었던 걸까?

노인은 차분한 어투로 나에게 말했다.

‘자네가 정신을 잃었어.’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기절을 한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다들 놀라기는 했겠지만 그렇다고 에덴으로 올 필요까진 없었다. 자세한 설명이 더 필요 했다. 내가 노인을 빤히 쳐다보자 노인은 갑자기 화를 내며 외쳤다.

‘그냥 기절한 게 아니야! 죽을 뻔 했다고!’

난 깜짝 놀랐다. 죽어? 내가? 나는 믿을 수가 없어서 멍하니 강수련을 바라봤고 그녀는 노인의 말이 맞다는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노인은 마치 그때를 회상하듯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나에게 읊조렸다.

‘열이 미친 듯이 올라갔어. 막 토악질도 하고……. 헛소리도 하고.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거야.’

‘약도 없고 의사도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다행히 그 탐색조 여자가 정신을 차렸는데, 에덴에 의사가 있다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래서 뭐, 그냥 앞뒤 생각 안하고 달려왔지.’

그렇게 말한 노인은 손을 들어 내 귀를 가리켰다. 총에 맞아 반쯤 사라진 내 귀. 그곳을 항상 감고 있던 더러운 붕대는 사라지고 깨끗한 새 붕대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벌레 수백 마리가 갉아먹는 것 같던 고통도 사라져 있었다.

노인이 말했다.

‘그 상처 때문이야.’

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손을 살며시 들어 올려 상처 부분을 어루만졌다. 사실 상처가 덧나고 있다는 건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다. 점점 강해지는 고통과 새어나오는 진물. 그리고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역한 냄새는 감염의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아니, 사실 진실을 알면서도 외면했다. 약이 없으니까, 그리고 의사 같은 게 있을리 없으니까. 그리고 어느 샌가 부터 귀는 들리지 않았고 난 내 마음이 외치는 비명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마치 막혀버린 귀처럼, 내 통증도 무감각해졌다.

그리고 문 쪽에서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상처부분 만지지 마세요!’

나는 반사적으로 그곳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차트를 들고 있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정말 깨끗한 하얀색 의사가운을 입고 있었다. 난 의사가운을 발견하자마자 몸을 움찔 했지만, 그를 경계하는 건 이중에서 나밖에 없었다.

노인은 환하게 웃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의사를 향해 빠르게 걸어가며 열심히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동윤이 아주 쾌차했습니다!’

그리고 노인은 고개를 돌려 나를 째려본다. 그 눈빛과 마주한 나는 자동적으로 고개를 숙였고 노인은 마치 나에게 들으라는 듯 잔소리가 섞인 투덜거림을 이어간다.

‘근데 저놈은 은혜도 모르고, 깨자마자 사람이나 패고 다녔으니…….’

그러자 의사는 하하 소리 내서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는 노인을 천천히 잡으며 상냥함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대로 설명 못해준 우리들 잘못도 있어요. 그리고 동윤씨가 하루 만에 일어날 줄 누가 알았습니까? 서로가 오해한 거니까 걱정하지마세요.’

그렇게 말한 의사는 노인과 강수련을 마주보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웃는 낯을 유지한 체 나에게로 걸어왔다. 난 잔뜩 긴장하며 걸어오는 의사를 빠르게 스캔했다. 그러다 의사와 눈이 마주쳤고 나와 눈이 마주친 의사는 다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대단합니다, 동윤씨.’

‘네?’

뜬금없는 칭찬 앞에 난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차트를 잠시 침대위에 내려놓았고 손을 의사가운에 슥 닦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건가? 난 얼떨결에 손을 내밀어 그와 악수했다.

‘제 이름은 김 철이라고 합니다. 보다시피 의사죠.’

‘……아, 네.’

난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악수한 그는 격하게 손을 흔들며 아주 힘찬 악수를 했다. 그리고 다시 차트를 들어 올리더니 볼펜으로 무언가 열심히 적기 시작했다. 볼펜을 움직이는 내내 그는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이런 몸으로 그런 움직임이 가능합니까? 아직 많이 아프실 텐데……. 혹시 무술 같은 거 하시는 분인가?’

무술? 단증이라곤 군대에서 딴게 전부다. 아까 내가 하던 개싸움을 못 본 걸까? 난 괜히 부끄러움을 느껴 빠르게 시선을 피했다. 내가 시선을 피하자 의사는 내 행동을 잘못 이해했는지 작은 감탄을 내뱉으며 히죽 웃는다.

그리곤 자기 입술을 검지로 가리며 고개를 흔들기 시작한다. 마치 비밀인거죠? 라 하는 것 같은데 제대로 오해한 모양이다. 난 딱히 해명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의사는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자리를 떠나는 것도 아니었다. 의사는 연신 차트와 나를 살펴보며 무언가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고 나는 괜히 불안해져 힐끔힐끔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의사는 조금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안일했던 거 아시죠?’

당연히 알고 있다. 쓰러지고 나니까 더더욱 실감이 간다. 그렇기에 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강수련은 내가 고개를 숙이자 갑자기 울분을 터트리며 그동안 쌓아뒀던 걱정과 원망을 모두 쏟아냈다.

‘채연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반나절을 울다가 겨우 잠들었어요……. 네? 왜 말 안했어요. 아프다고, 나 힘들다고! 말해줬어야죠! 내가, 내가 너무 미안해서…….’

그녀는 나에 대한 원망과 자신이 무심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후회가 짙게 묻어나오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의사는 나를 음흉하게 쳐다보더니 이내 눈치 없이 휘파람을 불어댄다.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 옆에 있던 노인이 자기 가슴을 탁탁 치면서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노인은 옅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는데 아마 나를 놀리고 있는 게 뻔했다.

‘늙어서 주책이지……. 아이고……. 늙으면 죽어야지, 괜히 동윤이한테 민폐만 끼치고…….’

이 사람들 내가 미안해서 죽어야지 만족할 기세다. 난 내가 아프고 남에게 사과해야하는 괴상한 상황을 맞이했다. 난 울음을 터트리는 강수련을 달래며 아직도 나를 놀리고 있는 노인을 노려봤다. 노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개를 휙 돌리며 휘파람을 불렀다.

내 오랜 노력으로 강수련은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의사는 아직 떠나고 있지 않았고 할 말이 더 있다는 듯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괴사한 피부조직은 제거했어요. 고열하고 다른 증상은 세균감염 때문입니다. 그러니 붕대 자주 갈아주시고 약 꾸준하게 드세요.’

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아프고 나니 의사라는 존재가 얼마나 귀중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끝까지 남아 내 증상과 건강을 챙기는 그를 보니 의심이 조금씩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말한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며 피식 웃는다. 그리고 몸을 틀어 자기가 왔던 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가는 걸까? 내가 작별인사를 하려는데 의사가 갑자기 아, 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그는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꼭 말해야겠다는 듯 어두운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동윤씨, 혹시 PTSD 라고 알고계십니까?’

난 눈을 감으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처음에는 나도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지만 소방관 동료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 따로 찾아본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왜? 난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의사를 바라봤다. 그러자 의사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동윤씨도 PTSD 증상이 있습니다. 아니, 거의 확실합니다.’

PTSD? 내가? 한 번도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다. 그냥 좀 피곤하고 지쳤을 뿐이다. 그래, 잠을 못잘 때도 있었고 매일 같은 악몽을 꾸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PTSD 까지는 아니었다. 난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지만 주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내가 왜 그러냐는 얼굴로 강수련을 바라보자 강수련은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꼭 잡아준다.

‘……그냥 좀 피곤한 겁니다.’

내가 애써 부정하자 의사는 씁쓸한 얼굴로 자기 턱을 만졌다. 그리고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더니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내 대답을 반박했다.

‘스스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순간 그 말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찔렀다. 그리고 난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사실 방금 같은 상황도 그랬다. 그렇게까지……. 꼭 그렇게까지 흥분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내 트라우마는 그런 행동을 정당화 시키고 이성을 뺏어갔다.

마치 내가 아닌 기분이었다. 귀신에 쓰이기라도 하듯 난 공격적이었고 마치 한 마리 짐승 같았다. 나는 분명 이성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다시는 그런 일을 겪기 싫은 사람처럼 난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의사가 나에게 말했다.

‘동윤씨. 우리 에덴에도 PTSD 환자가 많습니다. 세상이 이지경인데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 쉽게 적응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동윤씨 잘못 아닙니다.’

그렇게 말한 의사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스스로가 말한 PTSD 환자들을 생각하는 모양인데 난 그런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의사는 이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조용히 읊조렸다.

‘나중에 시간 나시거든 꼭 상담받으러 오세요. 다음에 뵐게요.’

짧은작별 인사였다. 하지만 난 그 속에서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들은 의사가 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고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난 조용히 내 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고작 한 달 지났는데, 되게 오래된 기분이네요. 병원이라는 거…….’

노인과 강수련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작은 동의를 보냈다. 누군가 내 병을 진단하고 알아준다는 것. 뭔가 가슴을 간질이는 이상한 자극이었다. 난 괜히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 전환을 위해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단체장님이 저녁 같이하자고 하십니다. 가능할까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우리를 이곳까지 안내해줬던 남성이었다. 그는 은테 안경을 슥 올리며 조용히 우리를 바라봤다. 제안을 들은 나는 고개를 돌려 강수련과 노인에게 허락을 구했고 이내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안을 수락했다.

단체장이면 에덴을 이끄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궁금했다. 나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나를 따로 만나기를 원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해줬던 특별대우는 내 의문을 더욱더 증폭시켰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 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난 망설임 없이 정면 돌파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전에 할일이 있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문 앞에 서있는 남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머지 일행들을 보고 가도 되겠습니까?’

남성은 희미하게 웃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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