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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65화 (65/313)

[65]

세상은 불타고 있었고 나는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꼈다. 내 육체와 영혼이 내지르는 비명이 불타오르는 지옥과 공명한다. 폐허가 된 도시에는 그놈들의 울부짖음과 살아남은 자들이 지르는 비명이 가득했다. 난 그 한가운데서 크나큰 절망을 느낀다.

이제는 현실이 되어버린 종말 앞에 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하지만 지옥의 도시는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고 그 이면에 있는 나의 도시, 아니 우리들의 도시가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불길이 서서히 사라지자 난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채연이가 내 팔을 흔들며 엉엉 울고 있었다. 그리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어라 말하고 있었지만 내 귀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채연아 왜 울고 있니? 아저씨가 금방 갈게. 일렁거리는 장면은 지속되었지만 내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이 어두워졌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온다. 난 고통을 이겨내며 힘겹게 눈을 떴다. 아까 있던 채연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그 자리에는 강수련과 노인이 앉아있었다.

강수련은 수건을 가져와 연신 내 얼굴을 닦으며 눈물을 삼킨다. 그리고 나를 향해 무어라 말했지만 역시나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노인은 무엇이 그렇게 화났는지 얼굴과 눈가가 붉어져선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웅웅거림으로 바뀌었고 시야가 다시 어두워졌다.

난 노인이 화가 난 게 아니라 슬퍼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온몸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무언가 나를 만지는 감촉도 느껴졌지만 난 아무 움직임도 취하지 못했다. 마치 몸에서 모든 게 빠져나간 사람처럼 난 그렇게 한참을 표류하고 있었다.

‘……형님 조금만 참으세요! 조금만!’

삐이이- 이명이 길게 울린다. 그리고 그 이명 사이로 용팔이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다. 이곳은 어디지? 가늘게 눈을 뜨자 흐릿한 시야 사이로 거리와 건물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어렴풋이 느껴지는 호흡과 흔들거림.

난 누군가에게 업혀 있었다.

내가 왜 업혀있지? 그리고 난 왜 움직이지 못하는 걸까. 난 필사적으로 눈을 굴려 사방을 둘러봤다. 그러자 주위에는 일행들이 있었고 모두 잔뜩 짐을 챙긴 상태였다. 어디로 가는 거야? 마트는 어떡하고?

난 묻고 싶지만 굳게 닫힌 입을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 내 손을 꼭 잡는 게 느껴졌다.

눈동자를 굴려 그곳을 바라보자 내 손을 붙잡고 있는 강수련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 무엇이 그렇게 슬픈 걸까? 그리고 긴 이명 사이로 훌쩍이는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강수련의 반대쪽 손에는 채연이가 있었다.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열심히 걸음을 옮기는 채연이가 시야에 들어오자 불안했던 감정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아장아장. 옳지, 잘한다. 이젠 넘어지지 않고 잘 걷는구나.

내가 웃고 있음에도 채연이는 저번처럼 웃어주지 않았다. 대신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눈빛은 내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했다. 채연이가 나에게 안아달라고 손을 내밀지만 난 족쇄에 묶인 사람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채연아,

채연아!

온몸이 타들어간다. 머리는 미칠 듯이 아파온다.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내가 움직여야 한다. 이러고 가만히 있을 틈이 없는데…….

아,

난 감겨오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세상이 다시 어두워진다.

* * * * * * *

허억-

차가웠던 필라멘트가 스파크와 함께 뜨거워진다. 그 순간 내 정신도 번쩍이며 깨어난다. 난 마치 갓 태동한 태아처럼 숨을 급박하게 몰아쉬었다. 신성한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우자 눈앞이 아찔해지고 발끝이 파르르 떨려온다.

삐이이-

들려오는 이명, 그리고 시야는 마치 카메라가 초점을 맞추듯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난 시점을 바로잡기 위해 연신 고개를 흔들었고 이내 정면에 보이는 전등에 시선을 집중했다. 마치 태양처럼 떠있는 전등은 흩어져있던 정신을 중심으로 몰아주었다.

시야가 제자리를 찾자 난 사태파악을 위해 뻣뻣한 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온몸은 굳어 있었고 난 발 끝에 감각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누워있는 자리는 푹신하고 따뜻한 침대였다. 마치 천사의 옷을 벗겨다가 깔아둔 것 같은 깨끗한 시트는 극심한 괴리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난 몸을 버둥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내 팔에 링거가 걸려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병원?

난 사태파악이 되자 빠르게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춥지도 더럽지도 않은 방. 그리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깨끗한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는지 전등은 환하게 켜져 있었고 심지어 내 옆에는 가습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것은 꿈일까? 아니면 내가 꿈을 꿨던 걸까? 난 일단 몸 상태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노력했다. 뻣뻣한 목을 빠르게 움직였고 경직된 허벅지 근육을 연신 움찔거렸다. 그러자 팔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발끝에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몽롱했다. 약기운인지 피곤의 여파인지 모를 흐릿함이 내 정신에 노이즈를 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난 그런 정신 속에서도 내가 파악해야 할 것을 정확하게 기억해냈다. 일행들, 일행들을 어디 갔지? 일행들은 이 방에 없었다.

일행들이 내 곁에 없다. 무슨 일이 있나? 그렇다면 찾아야 한다. 너무나 단순한 공식처럼 내 생각은 단번에 정리되었고 느리게 뛰던 심장이 격한 펌프질을 시작했다. 눈앞에선 울고 있던 채연이의 얼굴과 마지막으로 보았던 일행들의 얼굴이 천천히 스치듯 지나갔다.

난 빠르게 이불을 치웠다. 그리고 침대를 손으로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아파오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모든 게 의문투성이다. 그리고 그 의문은 곧 불안과 경계로 발전했다.

여태 겪었던 모든 경험이 날 전투태세로 만들었다. 당장 일행들을 보지 않는 이상 난 지금의 현실을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다. 난 내 몸에 꽂혀있는 주사바늘을 뜯어내고 황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편안해 보이는 방은 순식간에 나를 가두는 감옥으로 변했다.

끼익

병실 문이 열렸다. 난 깜짝 놀라면서도 그곳으로 빠르게 시선을 옮겼다.

문이 열리는 순간, 풀려있던 근육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난 스타트 자세를 취하는 선수처럼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은 문을 열고 들어온 대상을 빠르게 스캔했다.

여자, 간호사옷, 그리고 무기는 없었다. 여자는 더럽지도 않았고 심지어 깔끔한 화장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서울대에서 겪었던 기억의 역린은 내 경계심을 더욱더 증폭시켰다. 그 여자는 무심히 차트를 보다가 이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일어나셨네요? 사람 불러야겠네…….’

불러? 누구를? 그렇게 말한 여자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고 그 여자가 든 물건이 무전기임을 알 수 있었다. 무전기를 본 순간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했다. 난 여자를 향해 빠르게 뛰어갔다.

‘꺄악!’

손을 휘둘러 무전기를 친다. 바닥에 떨어진 무전기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형편없이 부셔진다. 난 그때를 놓치지 않고 비명을 지르는 여자를 밀치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숨이 가파르게 올라오고 흥분으로 가득한 정신이 내 두통을 자극한다.

복도다.

이곳은 마치 새벽의 아파트 복도처럼 조용했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은은하게 들어오는 옅은 조명은 내가 가야할 길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난 다리에 힘을 주고 저 멀리 보이는 비상등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뜀박질은 얼마가지 않아 멈춰졌다. 바로 비상등 아래 문을 열고 걸어오는 남성 두 명 때문이었다. 그들은 마치 경찰처럼 검은색 정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복장은 내 경계심과 불안감을 강하게 자극했다.

그리고 순간 저 뒤에서 간호사의 외침이 들려온다.

‘이 사람 좀 진정시켜주세요!’

난 황급하게 뒤로 돌아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자들이 들어오는 반대 방향은 막다른 골목이었고 다른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의 외침을 들은 남자들은 나를 보고 당황하다 싶더니 이내 이쪽으로 빠르게 뛰어오기 시작했다.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 몸짓을 살피며 다가오더니 이내 나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난 저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얌전히 잡혀줄 생각이 없었다. 내 머리에는 온통 일행들 생각뿐 이였으니까.

난 나에게 다가오는 손을 그대로 뿌리쳤다. 그리고 그 자세 그래도 남성의 어깨를 잡은 뒤 중심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어깨를 잡힌 남성은 금세 균형을 찾았고 이내 나를 물고 늘어지며 외쳤다.

‘왜 이러십니까! 진정하세요!’

난 남성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듣지 못했다. 또 다시 찾아온 이명과 두통은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마치 환각처럼 울고 있는 채연이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명 사이로 채연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난 온몸을 발작하듯 외쳤다.

‘채연아! 채연아! 어디 있어!! 대답해!’

그러자 나를 붙잡고 늘어지던 남성이 표정을 잔뜩 일그러트린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또 다른 남성에게 외쳤다.

‘뭐해, 새끼야!! 붙잡아!!’

욕설을 내뱉은 남성은 나를 잡아당겼고 이내 또 다른 남성도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 남성은 내 다리를 걸어 바닥에 넘어뜨리고 육중한 몸으로 나를 짓눌렀다. 혼란스럽다. 두통이 내 신경을 강하게 자극한다.

하지만 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걸 느꼈다.

난 본능처럼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나를 누르고 있는 남성의 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주먹을 뻗어 가볍게 후려 버린다. 대비하지 못한 공격을 받은 남성은 그대로 턱을 얻어맞고 머리를 비틀거렸다. 난 그때를 놓치지 않고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내가 자리에서 빠져나오자 처음 나를 붙잡던 남자가 욕설을 내뱉는다. 그리고는 다시 나에게 달려들며 나를 제압하려 했다. 아까처럼 중심을 잃게 만들려고 하는지 하반신을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은 상당히 매서웠다.

하지만 난 마치 한 마리의 짐승처럼 빠르게 반응했다. 그놈들과 비교하면 이것은 마치 애들 장난 같았다. 난 무릎을 들었고 달려오는 남자의 명치를 그대로 찍어올렸다.

남자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넘어졌다. 격한 움직임을 끝낸 나는 거칠게 숨을 내뱉었고 서둘러 몸의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다시 앞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저 뒤에선 간호사가 내지르는 비명과 함께 외침이 들려왔다.

‘꺄아아아악!! 여기 누가 좀 도와주세요!!’

난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문을 박차고 앞으로 뛰쳐나왔다. 내 귀에는 이제 옅은 이명과 심장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채연아? 채연아 어디 있어. 난 마치 이성이 없어진 괴물마냥 본능에 의존했다.

문을 박차고 나가자 눈앞에 보이는 건 병원 로비였다. 난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곳은 정말 병원인걸까? 난 극심한 괴리감을 느끼며 눈가를 찡그린다. 난 분명히 옥상에 있었는데? 옥상에서 그 녀석을 죽이고……. 죽이고? 다음은 뭐였지?

내가 생각에 빠진 사이 로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처음에는 의문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그들은 내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나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발견한 간호사는 무전기를 꺼내들고 다급하게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는 정복을 입은 사내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난 두통으로 참지 못해 머리를 부여잡았다.

‘잡아!’

내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를 알아챈 걸까. 처음에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던 그들도 동료가 당한걸 아는지 나에게 작은 적의를 드러냈다. 사람들 사이로 뛰쳐나오는 남자들만 10명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채연아! 강수련! 영감님! 용팔아!’

난 군중들 사이에서 목 놓아라 일행들을 불렀다. 무슨 일을 당한 걸까? 혹시 신서울대때처럼 그들에게 끌려간 게 아닐까? 이 상황은 내 트라우마를 강하게 자극했고 난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는 곧 분노로 변했다.

남자 하나가 나에게 달려들어 내 허리를 잡는다. 체중이 실리자 몸이 뒤로 확 쏠렸지만 난 발에 힘을 주고 버텼다. 그리고 그 상태로 무릎을 들어 올려 남성의 배를 올려 찍는다. 남성이 나가 떨어지자 사방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제압이 가해진다.

내 어깨를 잡는 녀석을 옆으로 넘겨버린다. 그와 동시에 내 목에 강한 압력이 느껴졌다. 난 온몸을 버둥거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놔! 놔!! 그러면 그럴수록 내 몸에 가해지는 압력은 더욱더 강해지고 있었다. 컥, 난 거친 숨을 내뱉으며 이를 악물었다.

‘가만히 있으십……. 악!’

내 목을 잡고 있는 그놈의 안면을 뒤통수로 찍어버렸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내 목을 묶고 있는 팔이 풀렸다. 그리고 난 입을 벌려 내 어깨를 잡고 있는 녀석의 손을 꽉 물어버렸다. 비릿한 피가 이빨을 타고 내 입술을 적셨다.

앞에 있는 남성의 명치를 차버렸다. 그리고 내 몸을 구속하고 있는 팔과 손을 거침없이 물어뜯었다. 원초적인 싸움, 처절한 발버둥. 난 고함과 고인피를 내뱉으며 미친 광인처럼 날뛰었다. 그리고 일행들 이름을 부르는걸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나에게 손이 물어뜯긴 남성이 허리춤에서 삼단 봉을 꺼내 들었다. 착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두 눈은 늘어난 삼단 봉에 고정되었다. 남자는 피가 줄줄 흐르는 손을 꽉 잡으며 나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개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삼단 봉이 나에게 날아온다.

‘조장님!! 안돼요!!!’

주위에선 다른 남자들이 경악을 하며 고함을 내지른다. 하지만 삼단 봉을 든 남자는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흥분으로 가득한 눈동자에 내 모습이 거울처럼 비춰졌다. 나에게 날아오는 삼단 봉이 내 시선위에 걸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이명사이로 내 심장소리가 격하게 울려오고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솟구친다. 그리고 동시에 세상이 느려지기 시작한다.

아,

근육에 스파크가 튀듯 모든 전기신호가 내 몸을 움직인다. 내가 살며시 몸을 꺾자 삼단 봉이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난 그 짧은 순간에 몸을 비틀어 삼단 봉을 피해내고 있었다. 남자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었고 내 주먹은 어느새 앞으로 뻗어있었다.

남자의 대가리를 날려버린 나는 떨어진 삼단 봉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삼단 봉을 움켜잡고 쓰러지는 남자를 낚아챘다. 인파들 사이로 더욱더 많은 남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난 팔로 남자의 목을 움켜잡으며 삼단 봉을 주위 남자들에게 겨눴다.

오지 마.

난 남자의 목을 붙잡고 천천히 뒤로 물러난다. 나를 포위한 남자들은 내가 인질을 잡자 머뭇거리며 거리를 벌린다. 난 팔에 힘을 주고 남자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컥컥 거리는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문이 어디지? 어디로 나가야하지?

난 버둥거리는 남자를 질질 끌고 뒤로, 더 뒤로 향했다.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고 나는 벽에 등을 기대며 불안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인파속에서 뛰쳐나온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다.

울컥하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

‘동윤아!!’

‘동윤씨!’

노인과 강수련이었다. 둘 다 급하게 뛰어왔는지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숨은 거칠어 보였다. 난 바쁘게 눈을 굴려 그들이 다쳤는지, 그리고 무사한지 확인했다. 난 완전히 쉬어버린 목소리로 둘을 향해 외쳤다.

‘다들 무사해요? 내가 구해줄게요! 조금만 기다려요!’

그러자 강수련이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그리고 고개를 도라질 치며 나에게 외쳤다.

‘아니에요 동윤씨! 제발, 제발…….’

왜……. 왜 울지? 무슨 일이 있던 거지? 난 흐릿한 눈을 닦으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흔들리는 시야를 붙잡으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 내가 다시 정면을 바라보자 노인이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동윤아.’

난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영감님?’

나에게 다가오는 노인을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복은 입은 사내들도 마치 길을 터주듯 조심히 옆으로 비키기 시작했고 노인은 다시 한 번 나를 불렀다.

‘동윤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난 덜덜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했다. 힘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고 남자를 감싸고 있던 내 팔은 천천히 풀렸다. 그러자 남자는 바닥에 털썩 쓰러졌고 어느새 다가온 노인이 내 팔을 감싸 쥐었다.

‘이제 놓아도 된다.’

삼단 봉을 잡은 손이 거짓말처럼 풀려버린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삼단 봉처럼 내 긴장과 두려움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노인은 천천히 팔을 벌려 나를 끌어안았고 내 몸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제 괜찮아, 다 무사해.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제 내려놔도 괜찮아.’

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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