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55화 (55/313)

[55]

여자가 사라지자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남자에게 말했다.

‘이제 불어.’

하지만 남자는 입을 열지 않고 우물쭈물 거렸다. 말하면 안 된다는 이성과 살고 싶다는 본능이 충돌하는 모양이다. 난 그를 이해하면서도 고려하진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노인은 헛웃음을 쳤고 난 작은 숨을 내뱉었다.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절대 그렇지 않다. 난 마치 그에게 무력시위를 하듯 천천히 옆으로 다가가 노리쇠를 당겼다.

차가운 장전음이 남성의 고막을 때린다.

그러자 남성은 기겁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황급하게 사방을 둘러보며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무언의 협박이 가해지자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생존자 규합.'

‘뭐?’

‘생존자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지도를 들어올렸다. 지도에는 빼곡하게 x자가 쳐져있었다. 하지만 간간히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있는 지역이 있었는데 그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옆에 작은 숫자들이 쓰여 있었다.

나는 노인에게 손짓했다. 그리고 이 숫자를 가리키며 노인을 바라봤다. 그러자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손가락으로 그것을 하나하나 짚으며 살펴보기 시작했다. 숫자가 맞다. 생존자 숫자인가? 노인은 내게서 지도를 뺏어들고 남자에게 들이밀었다.

‘이거 생존자 숫자야?’

‘……네, 맞습니다.’

‘이 사람들 다 어디 갔어?’

‘쉘터로 데려갔습니다.’

쉘터? 남자는 자연스럽게 쉘터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언젠가 한번 들어본 적 있는 단어가 남자의 입에서 튀어나왔고 노인도 쉘터라는 단어가 기억에 남는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봤다.

‘맞지?’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랑자들 사이에서 구출했던 이연경 남매. 분명 이연경의 목격담 중에 쉘터라는 단어가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용팔이를 향해 말했다.

‘가서 이연경 데려와.’

* * * * * *

짧은 평화였지만 이연경의 얼굴색은 많이 좋아져있었다. 동태눈깔 같던 눈은 조금씩 빛을 되찾고 있었고 표정 또한 다채롭게 변했다. 그리고 내일 당장 죽을 것 같던 분위기도 시간이 지나자 또래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변하고 있었다.

동생 준호도 아이들과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나에게 조곤조곤 근황을 말해주는 모습을 보아하니 트라우마를 조금이나마 극복한 것 같았다. 비록 전부는 아닐 테지만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 믿고 있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기분이라 말이 길어졌다. 난 지체 없이 그녀에게 물었다.

‘저번에 쉘터가 있다고 알려준 적 있지?’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그녀 입으로 직접 말해줬던 내용이다. 쉘터의 존재나 다른 생존자들의 정보를 모르는 우리로써는 이연경의 정보가 나름 절실했다. 나는 일단 앞에 남성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사람 알아?’

그러자 이연경은 남자를 유심히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하긴 당연했다. 아까 이 무리들을 봤을 때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으니까. 그러자 노인은 남자를 엄지로 가리키며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쉘터 소속이라는데 아는 거 없어?’

그녀는 쉘터 소속이란 소리에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남성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얼굴을 살피고 이내 복장을 살피기 시작하더니 긴가민가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쉘터도 각자 이름이 있거든요.’

‘그렇지.’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사람만큼 이름을 붙이기 좋아하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본인 스스로부터 시작해서 동물, 그리고 사물까지 모든 존재에게 명칭을 부여한다. 한낱 계모임조차 이름이 있을 텐데 생존자 단체가 이름이 없을까?

이연경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름을 들으면 알 것 같은데.’

이연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와 노인은 동시에 남자를 째려봤다. 남자는 우리의 시선을 느꼈는지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다. 말 안해도 알지? 닥치고 불어. 우리들의 시선에는 무언의 협박과 경고가 딸려 있었다. 남성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대답했다.

‘……에덴이요.’

노인은 허 소리를 내뱉으며 감탄했다.

‘이름 한번 거창하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에덴? 이름 한번 정말 거창하다. 내 옆에 가만히 서있던 이연경은 에덴이라는 소리를 듣더니 ‘아. ‘ 하는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 1분이 지나기도 전에 눈을 뜨고 박수를 조금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아요!’

그녀가 알고 있다고 대답하자 순간 남성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리고 무언가 간절한 눈으로 이연경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우리는 착해요, 제발 이 나쁜 놈들한테 말해줘요! 시선에서 그런 느낌이 전해져왔다.

‘우리 쉘터가 거기랑 합치기로 했었거든요. 아저씨는 알죠? 저번에 말했잖아요.’

말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다른 쉘터와 합친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부랑자들의 습격으로 쉘터들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와중에 이연경이 속해있던 쉘터는 소율 여상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습격을 당했던 것이고…….

‘쉘터중에 제일 큰 곳이에요. 생존자숫자도 제일 많고……. 태양광으로 전기도 생산한다고 들었어요.’

이연경은 기억을 더듬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한참 생각에 빠져 상념을 이어가고 있는데 조용히 있던 남성이 반색하며 외친다.

‘맞습니다! 최후의 보루, 에덴! 혹시 쉘터 소속이셨습니까? 어디 쉘터죠?

그러자 이연경이 움찔하며 나와 노인을 바라본다. 우리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 같은데, 난 잠시 기다리라 말하고 노인을 쳐다봤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노인은 조용히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이연경은 머뭇거리다 조용히 대답했다.

‘……소율 여상이요.’

대답을 들은 남성은 어!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바동거린다. 그리고 기다시피 이연경 쪽으로 다가가 고개를 들고 그녀를 올려다본다. 남자는 이연경와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침을 꿀꺽 삼키고 묻는다.

‘그럼 이분들도 소율 여상에서 온 건가요?’

그러자 이연경은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지만 남자는 그녀의 표정을 살피지 못했는지 한참을 눈치 없이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갑자기 연락이 끊겨서 저희 쪽도 어리둥절한 상황입니다. 다 살아계십니까? 여기 계신……. 악!’

남자는 하던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점점 나빠지는 그녀의 표정을 노인이 빠르게 캐치했기 때문이다. 노인은 어쭈 하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으로 남자의 이마를 딱 치고 뒤로 밀어버렸다. 남자는 뒤로 발라당 넘어졌고 노인은 그를 향해 경고했다.

‘말꼬리가 길다? 언제 질문하라 했어?’

이마를 맞은 남성은 바닥에 주저앉아 끙끙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를 매섭게 노려보던 노인은 작게 콧방귀를 뀌더니 이연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굳었던 표정을 풀며 인자한 할아버지로 변신했다.

‘수고했다. 들어가서 쉬고 있어.’

그러자 이연경은 어두운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노인을 향해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고 나에게도 꾸벅 인사했다. 노인은 어이구 그래 들어가. 하고 웃으며 흐뭇하게 답해주었다.

이연경은 터덜터덜 걸어서 다시 휴게실로 향했고 이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나와 노인이 내뱉는 한숨소리가 한쪽에서 조용히 들려왔다. 성인이 되어간다지만 아직 어리다. 아닌 척, 괜찮은 척 하려는 모습이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다.

노인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용팔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두식이랑 잘 감시하고 있어. 잠깐 옥상 좀 다녀올게.’

‘……걱정 마세요.’

용팔이는 여전히 풀이 죽은 상태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노인은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향해 조심히 눈짓했다. 나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들고 있던 총을 뒤로 둘러메고 노인을 따라 나섰다.

노인은 나와 따로 싶은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ㅈ,저기요!’

하지만 우리들의 발길을 잡는 존재가 있었다. 몸은 그대로 두고 고개만을 돌려 뒤를 바라봤다. 그러자 아까 그 남성이 우리를 다급하게 부르고 있었다. 용팔이는 깜짝 놀라 남자를 제지했지만 아무 대처도 하지 않는 우리 눈치를 보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남자는 멈춰선 우리를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부랑자 아니거든요……. 이야기 들어보니까 그쪽도 평범한 생존자 집단인 것 같은데, 우리 대장한테 잘 말해보면…….’

‘말해보면?’

노인이 표정을 굳히고 작게 반문한다. 그러자 남자는 어깨를 움츠리고 입술을 달싹 거린다. 그리고 다시 우리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저희랑 같이 에덴으로…….’

남자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살벌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노인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결국 남성에게 한마디 대답 없이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올라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같이 느껴졌다.

* * * * * * *

옥상으로 올라오자 강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난 차가운 겨울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마치 답이 없는 수학문제를 푸는 기분이었다. 손목시계를 확인하자 벌써 오후가 되어 버렸다.

회색도시

변함없는 곳.

도시는 우리를 끊임없이 옥죄어오며 계속해서 문제를 던진다. 그리고 우리에게 답이 없는 답을 요구해온다. 원하던 정보는 충분히 얻었다. 당연히 정보를 얻고 나면 저절로 답이 나올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답은 문제를 만들고 우리를 고뇌 속에 던져 넣는다.

분명히 답은 있었지만 정(正)답은 없었다.

내 옆에선 노인이 흰 숨결을 내뱉으며 가만히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가 너무나 복잡했다. 난 조용히 도시를 바라보며 노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고 싶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별다른 고민 없이 대답했다.

‘살인멸구.’

노인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물론 나도 노인 쪽을 따라가고 있었다. 결국 그래야 하나……. 하고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갑자기 노인이 강하게 숨을 후 내뱉었다. 그리고 회한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순간 내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그냥 막연하게 나와 노인이 결정내리고 행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맞는 게 아닐까? 그게 최선이 아닐까? 하지만 노인의 말이 송곳처럼 내 심장을 찔러 들어갔다. 그리고 찔린 틈새 사이로 억울함이란 감정이 새어나왔다.

‘……우리 둘은 겪어봤잖아요.’

‘맞아.’

‘……ㅇ,이해해 주겠죠?’

내 말은 어느새 물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을 이해해줄까? 확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심장이 먹먹해진다. 갑자기 말을 더듬게 되고 시야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내 억울함은 어느새 슬픔과 회한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잠깐 잊고 있었던 장면들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손가락을 물고 나를 바라보던 채연이. 그리고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던 강수련. 죽이지 말자고 나에게 애원하던 용팔이.

그들이 나와 다른 점, 그들이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점.

아, 순간 무언가가 숨을 통해서 훅 빠져나가는걸 느꼈다. 난 옥상 난간을 벽삼아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일상의 복귀.

‘……다른 일행들은 원하고 있을지도 몰라.’

노인이 조용히 읊조렸다.

안전한 은신처를 구했다. 그리고 많은 식량도 구했다. 이제 좋다, 이제 다행이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빵을 쳐다볼 동안 다른 일행들은 저 멀리 희망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겁이 났다.

채연이가 그곳에 가고 싶다고 할까봐. 자신도 저들처럼 살고 싶다고 할까봐 너무나 겁이 났다. 마치 둥지 앞에서 날아가기 직전에 새를 보듯 나는 너무나 이기적인 걱정을 하고 있었다.

‘말해줘야지. 쉘터가 있다고, 그리고 기회도 있다고.’

노인은 조심히 내 옆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쓸쓸한 얼굴로 우리들이 지나왔던 회색 도시를 바라보았다. 우리들이 가로 질렀던 도시는, 너무나 작고 볼품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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