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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45화 (45/313)

[45]

무언가 나를 흔드는 게 느껴졌다. 나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고 필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를 둘러보니 쉼터 로비였다. 아마 나는 잠에 들었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자 눈을 두어 번 감고 뜨기를 반복하자 노인이 잔뜩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입을 열려고 할 때 노인은 황급하게 내 입을 막으며 눈을 빛냈다. 난 본능적으로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두운 로비 안에는 노인과 내가 내는 숨소리만 가득했다.

난 거친 숨을 내뱉으며 그 숨소리 속에서 다른 소리를 듣기위해 노력했다. 그러자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밖에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풀들과 낙엽을 거침없이 헤치며 돌아다니는 소리. 너무나 고요하게 움직여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 바람을 가르며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난 침을 꿀꺽 삼켰다. 오지 않았으면 했던 최악의 상황이 지금 도래했다.

노인은 침착하게 엽총을 들고 탄환을 하나하나 넣으며 총을 장전한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되도록이면 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저놈,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데 발소리가 안 들려.'

그 소리에 나도 떨리는 손으로 총을 부여잡고 창문 옆에 찰싹 붙었다. 그러자 노인은 천천히 반대쪽으로 기어가 창문 옆에 붙어서 밖을 살폈다. 난 떨리는 손으로 커튼을 살짝 들췄다.

그리고 밖을 바라보자 바리게이트가 있었고 그 사이로 쉼터 밖이 보였다. 유난히 달빛이 밝은 날이었다. 그래선지 쉼터 밖 구조물들과 나무들 윤곽이 너무나 잘 보였다. 그리고 난 발견했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지나가는 무언가를.

그것은 나무에 매달려 순식간에 나무와 나무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발소리가 안 들리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긴 팔로 나무를 잡고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달빛에 그림자가 언뜻 언뜻 보일 때마다 난 오금이 저려 숨을 삼키지 못했다. 하지만 몰려오는 두려움에 눈을 감지도 못했다. 눈을 감는 순간 그것이 이곳에 들이닥칠 것 같았다.

‘아히이…….’ ‘아히이…….’

그놈은 마치 우리를 조롱하듯 쉼터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특유의 기분 나쁜 괴음을 내뱉었다. 마치 귓가를 간질이듯 울리는 소리는 나를 더욱 미치게 했다. 난 떨리는 손으로 대검을 꺼내 착검했다.

무언가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들릴 때마다 소름이 쫙 돋고 식은땀이 주룩 흘렀다. 그것은 마치 사냥감을 몰아넣듯 쉼터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공격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 쪽을 바라보자 노인도 얼굴을 굳히고 쇠꼬챙이를 꺼내들었다.

* * * * * *

노인이 준 낡은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한 시간이 지났다.

그것은 여전히 공격해오지 않았고 끊임없이 쉼터 주위를 돌았다. 우리가 약해질 때를 기다리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우리를 그냥 가지고 노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장난감. 그놈 눈에는 우리가 장난감으로 보일 것이다.

긴장감을 잔뜩 머금은 상태에서 긴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한계가 온다. 근육은 빳빳하게 굳어 고통을 호소하고 날카롭게 선 정신은 서서히 몸을 지치게 만든다. 마치 오래 달리기를 하듯 숨도 거칠어진다.

떨리는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자 노인도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적이 당장이라도 공격해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어두운 방안과 어두운 밖. 모든 상황이 우리를 한계 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시간이 지났다.

당장이라도 저 문을 뛰쳐나가 소리를 지르며 총을 난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이성이 그 충동을 붙잡았다. 저 문은 지옥문이다. 저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목숨을 잃는 것이다. 난 끊임없이 읊조리며 총을 양손으로 꾹 잡았다.

불안한 눈빛으로 다시 노인 쪽을 바라봤다. 노인은 여전히 내 반대쪽에서 자리를 잡고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상당히 지친기색을 보였다. 노인도 한계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없다. 어찌해야 하지? 이대로 지쳐서 녹초가 된 상태로 죽어야 하는 걸까?

내가 듣고 있는 소리는 저쪽 창고에서도 듣고 있을 것이다. 다행히 그놈이 침투할 큰 창문은 없었지만 작은 환풍구가 존재했다. 분명 저쪽에서도 이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잠은 잘 수 있을까? 아니 두려움에 떨며 나와 같은 상황이겠지.

타개할 수단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감. 마치 새장 속에 갇혀서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는 병아리처럼 지독한 상실감을 느꼈다. 이내 그 상실감은 긴장을 서서히 무디게 만들었고 우리는 그것이 의도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시간이 더 흐른다.

피곤이 겹쳐오니 눈이 감긴다. 그리고 굶주리고 목마르다. 아침은 언제 오는 걸까? 아히이 아히이. 끊임없이 울리는 저 괴음이 지금은 마치 자장가처럼 들린다. 난 어느새 총을 내려놓고 있었다.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던 긴장감이 서서히 늘어진다.

천근만근 같은 눈꺼풀. 그리고 머리는 너무 무겁다. 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인다. 의식이 천천히 멀어진다. 마치 가위에 눌린 듯 내 육체와 정신이 서서히 동떨어진다.

지끈지끈한 머리와 뻑뻑하고 피곤한눈. 그 눈을 감아버리자 마치 구름위에 누운 듯 편안하기만 하다. 그래, 잠깐 자는 건 괜찮지 않을까? 몰려오는 수마가 나를 안일하게 만든다.

그놈은? 노인은? 채연이는? 머리에선 끊임없이 경고 신호를 보내지만 내 몸은 그 경고를 무시하고 잠속으로 빠져든다. 깊고 아주 깊게. 그렇게 내 정신은 수면 아래 저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다.

무전기 잡음이 시끄럽게 울린다. 노이즈가 내 귀를 괴롭힌다. 그리고 천둥 같은 음성이 내 고막을 강렬하게 때린다.

곽동윤이!

형님?

허억 숨을 들이킨다. 머릿속에 천둥이 울린 듯 커다란 고함이 내 정신을 깨웠다. 누가 부른 거지? 무슨 일이 있는 거지? 나는 잠결에 눈을 뜨고 정신없이 사방을 둘러봤다. 흐릿한 시야에 들어오는 이곳은 쉼터 로비였다. 조용했고 어두웠다. 나를 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꿈을 꾼 걸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지? 잠속에 파묻혀 있던 머리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마치 짙은 노이즈가 낀 듯 흐릿했다. 난 고개를 빠르게 흔들고 상황을 파악하기위해 애썼다. 나는 잠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순간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그리고 무의적으로 주변을 훑어 황급하게 총을 잡았다. 잠들었다. 잠들고 말았다. 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기위해 근육을 움직였다. 딱딱하게 굳은 근육은 내 의식을 듣지 못하고 뜸을 들인다.

시야를 황급하게 돌려 노인이 있던 쪽을 바라본다. 노인은 다행히 무사했고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내가 잠이 들었듯 노인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잠이 들어있었다.

끼이이

그리고 들려오는 괴음.

그리고 난 발견했다.

노인 옆쪽 창문 사이로 보이는 그것을.

우리가 잠들기를 기다린 것이다. 쉼터 주위를 돌아다니며 정신을 사납게 하던 그것은 마치 거짓말처럼 쉼터에 매달려 조용히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냥의 막바지! 그것이 흉측한 코를 벌렁거린다.

끊임없이 사냥감을 쫓아 달려왔던 포식자가 사냥감이 잠들자 마지막 행동을 개시한다.

그것은 히죽 웃더니 노인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두쿵두쿵. 마치 내 옆으로 커다란 기차가 지나가듯 심장이 미친 듯이 울리며 내 고막을 강타했다. 난 아직도 나른함에 빠져 흐물거리는 몸을 박차고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마치 물속에 빠진 듯 뭔지 모를 저항감이 내 몸을 밀어낸다. 이것은 두려움 혹은 공포. 하지만 난 그것과 직면한다.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다짐. 그리고 지키겠다는 본능이 그 두려움을 몰아낸다. 난 두려움을 가로지른다.

쨍그랑!

크고 날카로운 손톱이 유리창을 박살내고 어설프게 막아둔 가림막을 부순다. 그리고 그 거대한 흉기는 정확하게 노인의 머리로 향한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난 필사적으로 발을 박차며 그 장면을 노려봤다.

그리고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그것은 이쪽으로 뛰어오는 나를 발견하자 얼굴에 웃음을 지우고 천천히 일그러트리기 시작한다. 사냥감의 반항! 포식자는 분노를 느낄 것이다. 그 분노와 마주한 나는 온힘을 다해 노인에게 손을 뻗었다.

닿았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노인을 밀쳐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비산하는 유리조각은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지고 거대한 손은 내 머리 위를 스치듯 지나간다. 노인과 나는 뒤엉켜 로비 한쪽으로 굴렀다. 노인도 깜짝 놀란 듯 나를 바라보며 허둥지둥 몸을 버둥거린다.

그러다 창문 사이로 얼굴을 들이민 그것의 얼굴을 발견했다. 노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린다. 그리고 신속한 동작으로 한쪽에 놓아둔 엽총과 쇠꼬챙이를 잡는다.

그것은 분노한다. 분명히 눈알이 없었음에도 이상하게 붉은 안광이 이글거린다. 그 안광은 어둠속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빛났다. 그리고 그것은 기다란 손을 쉼터 안쪽으로 넣은 상태에서 거침없이 휘두른다.

마치 큰 전봇대를 휘두르듯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온다. 난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노인에게 이끌려 바닥을 구른다. 눈앞에서 날카로운 손톱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우리는 허겁지겁 바닥을 기어 미친년처럼 휘두르는 무자비한 공격을 피했다.

캉!

내가 정신없이 바닥을 구르고 있는 사이에 철과 철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난 황급하게 그쪽으로 바라봤다. 그러자 노인이 한쪽 벽에 몸을 기대고 엽총을 들어 올려 공격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필사적인 힘겨루기.

그놈은 마치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주겠다는 듯 노인을 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노인은 힘겹게 엽총을 들어 올렸지만 천천히 밀리는 팔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난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어 내 총이 떨어진 곳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노인이 허공으로 날아가 책상에 처박힌다. 그것을 바라본 그놈은 만족한 듯 흉측하게 웃으며 괴기한 울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내 쪽을 바라보며 이빨을 갈기 시작한다. 까드득 까드득 그 소리를 듣자 오금이 저려 나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소리와 동시에 창고에서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그놈의 얼굴이 그쪽으로 향했고 찢어진 입은 흉측하게 올라갔다.

난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느꼈다.

창고에 숨어있는 여자와 아이들도 이 소리를 다 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간을 기다리며 저 좁은 창고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리고 공포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울음소리.

마치 둥지 속 어린 새끼를 노리듯 그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창고로 향한다.

안 돼!

난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놈이 저 날카로운 손으로 일행들을 찢는 상상이 생생하게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저곳으로 향하게 하면 안 된다. 그게 비록 내 목숨을 건다고 해도 절대 저 문을 열게 해서는 안 된다.

내 몸 안에 꽁꽁 감춰뒀던 무언가가 폭발한다. 오금을 저리게 만들던 두려움은 날아가고 내 몸을 밀어 넣던 죽음의 공포는 한순간 신기루처럼 달아나버린다. 전의는 내 몸을 가득 채웠다.

난 비틀비틀 일어나 총을 들어올렸다. 방안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대검은 날카롭게 빛난다. 난 자리를 박차고 총구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창고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그놈의 팔로 시선을 정조준 한다.

입에서 참고 참았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웅크리고 있던 언더독의 분노. 근육은 한계까지 팽창했고 머리를 가득 채운 아드레날린은 내 증오를 끊임없이 채찍질한다. 그리고 정확한 일점.

난 대검을 앞으로 찔러 넣었다.

대검 끝이 그놈 피부를 관통한다. 저항감이 느껴졌지만 이내 그것마저 부수고 깊게 안쪽으로 관통한다. 그놈이 섬뜩한 괴음을 내지른다. 그 괴음에는 만족도 살의도 아닌 고통에서 오는 지독한 공포가 섞여 있었다.

사냥감에게 물린 그놈은 격하게 몸을 움직인다.

하지만 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총구를 돌려 그놈의 근육을 헤집어놓는다. 그리고 있는 힘껏 총을 들어 올려 대검을 그놈 팔에서 빼낸다. 더러운 피가 팍 튀기고 살 속에서 빠져나온 대검은 살점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근육이 반쯤 뜯겨 너덜거리는 팔을 그놈은 황급하게 빼낸다.

그리고 그놈은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바라본다.

나도 지지 않고 그놈과 마주한다. 생각을 하게 된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고통일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냥감으로 봤을 것이고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나를 증오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자신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든 존재. 그 존재를 두 눈 가득 각인시킨다.

우리는 사냥감이 아니다!

삶이 걸린 죽음의 사선. 우리는 외나무다리에서 마주하듯 서로에게 모든 증오와 악의를 쏟아 부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판을 내려는지 창문 유리와 가림막을 모두 박살내고 쉼터 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왔다. 붉게 타오르는 안광은 오금을 저리게 만든다.

하지만 두려움과 마주했을 때 난 꿋꿋하게 선 고목처럼 몸을 바로 세웠다.

그놈의 피가 묻은 대검을 다시 앞으로 내민다. 그리고 완전히 쉼터 안쪽으로 기어 들어온 그놈을 향해 달렸다. 그놈도 긴 손톱으로 바닥을 긁으며 나에게 빠르게 기어온다. 난 있는 힘껏 총을 앞으로 들이밀며 대검을 내질렀다.

하지만 방심을 버린 그놈이 본격적으로 가하는 공격은 내 목숨을 단번에 취할 만큼 날카롭고 매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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