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44화 (44/313)

[44]

‘네?’

이연경은 깜짝 놀라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내가 표정 없는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자 남매는 잔뜩 주눅이든 얼굴로 서로 눈치를 살핀다. 그녀의 입을 달싹거리다 싶더니 이내 입을 꾹 다문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가만히 서서 남매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2분정도가 지났을까. 생각이 정리된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린 거래를 했지?’

그녀는 내가 말을 꺼내자 우물쭈물 거리며 대답했다.

‘……네.’

그녀의 대답을 들은 나는 숨을 길게 내쉬며 총을 들어올렸다. 사람을 죽이는 철뭉치는 차가운 소리를 내며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겁이 먹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남매의 얼굴을 마주보고 난 너무나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둘을 구해준건 단순한 호의고 동정이야.’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을 구해주고 여기까지 데려다준 착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는 건 그녀에게 충격적으로 들리지도 몰랐다. 하지만 난 그녀에게 이 말을 꼭 해야 했다.

‘여기까지 온 일은 전부 잊어. 일행들에겐 혼자 탈출했다고 말해. 그리고 머릿속에서 나의 존재와 우리의 존재. 그리고 우리가 어디 살고 있었는지! 모든 기억을 전부 잊는 거야.’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준호는 갑자기 바뀐 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 나와 누나를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다. 난 그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나머지 말을 내뱉었다.

‘만약……. 그것을 잊지 못하고 선을 넘게 된다면…….’

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노리쇠를 당겼다. 총알이 죽음의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싸늘하게 울려 퍼졌다. 눈을 감았는데도 눈앞에선 이혜인의 얼굴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속에서 검은 찌꺼기가 욱 하고 올라와 내 입안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두 번 실수는 없다. 실수하면 죽는다. 만약이란 말도 없었다. 이 세상은 고민하는 순간 죽게 되는 세상이다. 리셋도, 재시작도 없었다. 내 어깨위에는 이제 내 목숨만 달린 것이 아니다. 내가 실수하는 순간 나뿐만 아니라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그렇기에 난 모질고 강해져야한다.

난 내 입안에 담긴 검은 찌꺼기를 모두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강한 경고를 남기기 위해 마지막으로 남매를 노려봤다.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마.’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을 푹 숙여 내 눈을 피했다. 경고는 확실하게 전해진 듯 했다. 하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 짙은 벽 하나가 생겼다.

그렇다고 후회할 수는 없었다. 난 다시 총을 뒤로 메고 그녀에게 앞장서란 말을 했다. 그녀와 거래를 한 이상 마지막까지 약속을 이행해야 했다. 남매는 여전히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허둥지둥 낮은 문을 넘었다.

문 너머로는 연식이 오래되어 보이는 돌계단이 있었고 그 돌계단은 흙과 낙엽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은밀한 비밀통로였다. 난 그 뒤를 조심히 따라 걸었다. 주변 풍경은 굉장히 음침하고 어두웠다. 난 괜한 불안감에 주위를 둘러보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계단은 낭떠러지 아래로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조심조심 그 계단을 걸어가 마침내 학교 아래에 도착했다. 학교 뒤쪽이라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 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해가 완전히 떠있는 아침임에도 산이 해를 가려 어둡고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럼에도 이연경은 일행들과 재회하는 게 너무 기쁜지 아까보다 활발해진 걸음으로 학교 뒤쪽에 존재하는 낡은 철문 앞에 걸어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찾는지 열심히 몸을 뒤적였다. 아마 열쇠를 찾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도 살짝 긴장이 풀려 총을 한편에 내려놓고 자세를 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고막을 간질이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귀에 속삭이듯 울리는 소름끼치는 괴음이었다.

‘아이이……. 아이히…….’

난 순간 소름이 쫙 돋아 빠르게 총을 잡았다. 그리고 본능처럼 이연경과 준호의 어깨를 잡고 내 쪽으로 끌었다. 내가 자신들을 잡자 남매는 무슨 일이냐는 듯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열려는 걸 내가 손으로 막았다.

'조용히.'

난 입모양으로 그렇게 말했다. 이연경과 준호는 갑작스레 바뀐 내 행동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괴음이 또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이이……. 아이…. 히.‘

맥이 빠지는 여성의 목소리. 여성? 아니, 인간이 맞는가? 이연경과 준호도 그 괴음을 들었는지 헉 숨을 삼켰다. 이연경은 비명이 나올 것만 같은 입을 황급하게 막았고 준호는 빠르게 누나 품으로 가서 안겼다.

난 자세를 완전히 낮추고 천천히 총구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괴음이 들려오는 근원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시 들려오는 괴음.

'아히이…….'

학교 뒤쪽 복도 3층. 그리고 4번째 깨진 창문. 난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아니, 그것은 눈이 없었다. 그것은 눈알이 없는 빈 눈으로 마치 우리를 조롱하듯 이상한 괴음을 뱉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내뱉는 소름끼치는 괴음이 복도와 어두운 학교 뒤쪽에 천천히 울려 퍼졌다. 인간이 아니다. 분명히 인간이 아니다. 그놈? 그것? 내가 봤던 그놈들이랑은 다르다. 갑자기 오금이 저려온다. 쏴? 쏘면 죽일 수 있어? 식은땀 때문에 흥건한 손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것이 히죽 웃는다. 입이 찢어진 그것은 입 꼬리가 귀까지 올라가 있었다. 난 터져 나오는 비명을 욱 하고 참으며 손을 떨었다. 그것은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를 관찰하듯 구멍이 뻥 뚫린 눈으로 시선을 고정한다.

그것은 여태 내가 봐왔던 그놈들의 행동과 다른 양상을 취하고 있었다. '포식' '사냥' '굶주림'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듯 그것은 기분 나쁜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자 마치 신기루처럼 어둠속으로 스르르 사라졌다.

더 이상 괴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기분 나쁜 울음소리는 귓가에 윙윙 울렸다. 난 그것이 없어지자마자 숨을 파 내뱉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힘없이 총구를 떨어뜨렸다.

결국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것이 이곳으로 오는 순간 우리는 찢겨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말 그대로 원초적인 공포였다. 진정한 포식자 앞에 선 대책 없는 두려움. 나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여기서 최대한 멀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풀린 다리를 부여잡고 기어가듯 걸어가 이연경과 준호를 잡았다. 이 둘은 넋이 빠진 듯 입을 헤 벌리고 그 창문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공포와 두려움에 풀려버린 동공은 이 둘이 제정신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난 그 둘을 끌듯이 잡고 일으켜 세웠다. 넘어지고 끌고 일어나길 반복하며 내려왔던 계단을 걸었다. 힘들게 이 둘을 계단 중간까지 끌고 올랐을까.

학교 창문에서 기이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연경아…….' '우리 여기 있어…….' '가지마! 연경아…….'

사람 목소리였다. 난 돌아가지 않는 목을 힘겹게 돌리며 멀어지는 학교 창문을 바라봤다. 그것이 있던 3층에는 사람 머리로 보이는 형태가 복도 창문에 보였다.

그들은 창문에 반쯤 얼굴을 들이밀고 크지도 작지도 않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을 본 이연경은 발작하듯 몸을 떨더니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나한테 말했다.

'다들 살아있어요! 구해야 돼! 데려가야 해요!!'

그리고선 그녀는 내 손을 뿌리치고 그곳으로 달려가려 했다. 준호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고 난 필사적으로 그녀를 붙잡고 내 쪽으로 끌었다.

제발, 제발. 여기서 도망쳐야해. 난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듯 말하며 필사적으로 그녀의 옷을 잡고 내 쪽으로 끌었다. 공포 때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다리는 풀려왔지만 그저 살고 싶다는 본능이 나를 이끌었다.

그녀가 연신 비명을 지르며 나에게서 떨어지려고 했고 내 팔과 얼굴을 할퀴었다. 그럼에도 난 그녀를 놓지 않았다. 준호는 연신 앙앙 울면서 내 옆을 따라왔고 난 그녀를 끌면서 결국 계단 위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낡은 문을 부수듯 발로차고 그녀를 끌고 필사적으로 뛰었다. 우리를 부른 건 사람이 맞았다. 아니, 목소리만 맞았었다. 창문에 내밀고 있던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목이 잘린 사람의 머리통이었다.

고통스럽게 죽었는지 흉측하게 일그러진 사람 머리통. 그것이 어떻게 말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나는 보고 말았다. 복도 끝 창문에서 얼굴을 들이밀고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하는 그것을.

나와 눈이 마주친 그것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는 내가 하는 건지 알고 있지?'

식은땀으로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잠시 들여다본 심연은 지독한 공포를 선사했다. 그녀는 나에게 벗어나려 발버둥 치다 지쳤는지 힘없이 울음을 내뱉고 있었다. 그녀는 공포와 두려움에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녀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난 연신 '도망가야 해. 여기서 벗어나야해.' 그렇게 읊조렸고 준호와 그녀를 이끌고 빠르게 왔던 길을 다시 뛰었다.

난 풀려오는 다리 때문에 넘어지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가까스로 쉼터 근처에 도착했다. 그리고 쉼터가 시야에 들어오자 난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입에선 이상한 신음이 나오고 오금이 저려왔다.

노인은 쉼터 근처에서 내내 보초를 서고 있었는지 우리를 발견하고 이곳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난 입을 열어 노인은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노인에게 이끌려 쉼터로 되돌아왔다.

[이 아래로는 그날 목격한 그것의 모습이 낙서처럼 그려져있다.]

외형은 여자랑 비슷했고 팔이 기형적으로 길었다. 그리고 기존에 그놈들과는 달리 머리카락이 있었다. 그리고 눈알은 없었고 텅 비어있었다. 입은 귀 아래까지 찢겨있었고 징그럽게 웃고 있었는데 찢긴 입 때문에 벌린 입이 얼굴 반을 차지했다.

소름끼치는 외형과 더불어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오금이 저렸고 몸에 힘이 풀렸다. 그것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다. 마치 가지고 놀듯……. 우리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우리를 장난감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난 저녁이 돼서야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일행들 모두 무슨 일이 있냐는 듯 불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연경과 준호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난 일행들에게 이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일단 노인을 데리고 창고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부 했다. 노인은 사태가 심각한걸 알았는지 거듭 나에게 질문했다. '왜 바로 자네를 공격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사람처럼 말했다고?' '지금……, 그것이 웃었다고 말했나?'

내가 모두 대답을 했지만 우리 둘은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다. 노인은 얼굴을 굳히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도 안전하지 못해.'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창고에서 나오자마자 채연이가 또 울면서 나에게 매달렸고 난 채연이를 품속에 안으며 한참을 달랬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일행들에게 전했다.

일행들 사이에 가장 먼저 퍼진 것은 두려움이었다. 여자들은 얼굴이 퍼렇게 질렸고 아이들은 오들오들 떨었다. 쉼터에 오면 그만이라 생각했던 안일한 생각들이 한순간에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소율 여상과 이곳은 가까운 거리였다. 그것이 이곳으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밤이 깊도록 이연경과 준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우리는 창문과 문을 단단히 막으며 일행들을 좁은 창고로 이동시켰다.

아이들과 채연이는 강수련과 김시은에게 맡기고 창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노인과 나는 쉼터 로비에서 밤새 보초를 서기로 했다. 지금 일기를 쓰는 이 시각은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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