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42화 (42/313)

[42]

난 침을 꿀꺽 삼켰다. 내 뒤를 따라오던 여학생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가 말한 곳 여기 맞죠?'

난 표지판을 발견했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청룡산 유아숲 체험관. 우리가 지냈던 쉼터가 있는 곳이자 일행을 만나기로 약속했던 지점이다.

난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표지판을 꾹 잡았다. 곧 채연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고 반대로 이곳에 일행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에 빠져있는 그 와중에도 길을 안내한 여학생은 불안한지 나에게 재촉하듯 말했다.

'여기 들렸다가 꼭 학교까지 데려다 주셔야 해요? 바로 옆이니까…….'

그 말에 난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지판 지점부터는 익숙한 길이다. 난 여학생과 아이를 지나쳐 빠르게 쉼터를 향해 뛰어갔다. 여학생은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아이 손을 잡고 나를 따라 달렸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머리는 지끈거리고 온몸에는 힘이 없었다. 하지만 난 채연이를 곧 만난다는 희망, 그 희망 하나만으로 견디고 또 견뎠다. 난 총을 한손으로 꾹 잡고 지친 몸을 이끌며 길을 가로질렀다.

체험장은 조용했다. 그리고 바람소리조차 없이 고요했다. 난 혹시나 일행이 있을까 체험장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내 쉼터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쪽으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뒤에서 여학생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난 무시하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쉼터를 가려주는 빼곡한 나무들은 여전했다. 그리고 그 나무들 사이로 못 보던 구조물이 있었다. 그것은 튼튼한 소나무 가지들을 잘라와 엮어서 만든 바리케이드였는데 급조한 티가 났지만 그래도 쉼터 주위를 막고 있는 것이 굉장히 든든해보였다.

그리고 어찌나 촘촘하게 엮었는지 사람이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또한 나무가 높은 만큼 바리케이도 상당히 높고 튼튼했다. 누구 작품인지 대략 예상이 갔기에 나는 심장이 뛰는걸 느꼈다.

그리고 나는 서둘러 입구를 찾아보려 쉼터를 한 바퀴 돌아봤다. 하지만 이상하게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틈새로 안쪽을 살펴보니 쉼터 창문은 무언가로 가려져 있었고 바리케이드에는 밧줄 하나가 걸려있었다.

아마 문 없이 이 밧줄 하나로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모양인데 밧줄이 없는 이상 밖에서는 출입이 불가능했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쉼터를 계속해서 돌았다. 소리쳐 일행을 불러야할까? 아님 그냥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그렇게 바리케이드를 붙잡고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뒤쪽에서 찢어지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꺄아악!!'

‘으앙!’

여학생이 내지르는 짧은 비명과 아이의 울음소리. 난 심장이 덜컥 내려앉음을 느끼며 총을 부여잡고 그쪽으로 뛰어갔다. 너무 안일했다. 너무 방심하고 있었다. 나를 뒤따라오는 그 둘을 챙겼어야 했다. 난 인상을 찡그리고 총을 앞세워 뛰어갔다.

꽤나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여학생은 엉덩방아를 찍고 바닥에 넘어져있었고 동생인 아이는 앙앙 울며 여학생 몸을 끌어안고 있었고 그 앞에서 누군가 여학생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는데 난 그곳으로 뛰어가며 총을 앞으로 겨눴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쳤다.

'총 내려!!!'

그러자 여학생을 겨누고 있던 그는 빠르게 총구를 옮겨 나를 겨눴다. 난 입술을 깨물며 방아쇠에 손을 올렸다. 총알은 없다. 교전은 불가능하다. 난 그 자리에 얼어붙듯 서서 총을 나에게 겨누는 그를 바라봤다.

온몸에는 위장하듯 풀이 걸려있고 얼굴은 천으로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낡은 엽총……. 엽총? 난 익숙한 엽총을 발견하고 숨을 흡 들이켰다. 그리고 몸에 힘이 서서히 빠져 들고 있던 총구를 내려놓았다.

천이 가리지 못한 그의 눈매와 눈동자를 바라봤다. 본적이 있다. 분명 익숙한 눈동자였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완전히 총구를 내렸다. 그도 내가 총구를 내리자 의문을 표하며 나를 바라보다 이내 깜짝 놀라며 얼굴을 가리고 있던 천을 내렸다.

그리고 나에게 빠르게 뛰어오며 외쳤다.

'살아있었어! 역시 살아있었어!! 하하하!!'

여학생에게 총을 겨눴던 그는 노인이었다. 노인은 평소 그답지 않게 웃음을 한가득 머금고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나도 격한 반가움에 총을 완전히 바닥에 내려놓고 힘없이 웃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루가 지났다. 그런데도 꼭 일 년이 지난 것만은 착각이 들었다. 난 노인은 만나자 그제야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실감했다. 뛰어온 노인은 총을 내던지듯 내려놓고 나와 포옹했다. 그리고 내 어깨를 팡팡 내려치며 소리 내서 하하 웃었다.

'잘 왔네. 잘 왔어!'

나도 노인이 웃자 괜히 웃음이 나와 하하하 웃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눈물이 찔끔 나왔고 애처럼 울기 싫다는 생각에 괜히 숨을 삼키며 눈물을 참았다. 온몸이 방전된 기분이었다. 내 몸을 이루던 근원이 모두 빠져나가 빈껍데기만 남아버렸다.

몸에 힘이 빠져 순간 비틀거렸다.

그동안 굳세게 다잡고 있던 마음속의 기둥이 노인을 만나자마자 모래알로 이루어진 듯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노인은 다 안다는 듯 나를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내 어깨를 양손으로 꽉 잡으며 뿌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덕분에 다 산거야. 자네가 다 살렸어.'

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래, 내가 다 살린 것이다.

내가 한참을 노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저 뒤에서 여학생과 아이가 흙은 탈탈 털며 일어났다. 그리고 조금 쭈뼛 쭈뼛거리며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자 노인은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다 이내 나를 바라봤다.

‘누군가?’

나는 남매를 뭐라 설명을 해야 할까를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고민 끝에 결국 짧게 대답했다.

'여기까지 오게 도와줬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흠 하는 소리와 함께 여학생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마치 나를 도와줘서 고맙다는 듯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며 감사를 표했다.

'고맙네.'

그러자 여학생은 움찔 하면서도 당황스러운지 고개와 팔을 휘저으며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무언가 말하려고 말을 더듬다가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부끄러움을 타는 모양인데 노인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이내 나에게 말했다.

'빨리 일행들을 만나지. 다들 기다리고 있었어.'

그리고 조금 조급한 걸음으로 앞장서 걸었다. 일행들과 빨리 만나게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난 노인을 쫓으며 여학생과 아이에게 따라오라 말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걷던 나는 순간 궁금증이 들어 노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나와 계십니까?'

그러자 노인은 나를 돌아보지 않고 걸으며 대답했다.

'혹시 몰라서 주위를 정찰했어. 자네를 발견할지도 몰라서.'

그 소리에 나는 알 수 없는 유대감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노인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고 왠지 내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마저 느꼈다.

우리는 쉼터 앞에 도착했고 노인은 익숙하게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빠르게 담 안으로 넘어가 밧줄을 잡고 이쪽으로 던진다. 나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 밧줄을 낚아채고 먼저 여학생과 아이를 올려 보냈다.

그리고 나도 그 밧줄을 타고 바리케이드를 넘었다. 겨우 이거 하나 넘는 것에 나는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아니 채연이를 만난다는 기대 때문이었을까? 내가 쉼터 안쪽으로 진입하자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 쉼터 안쪽 문을 두들겼다.

그러자 안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고 노인이 대답했다.

‘왔어.’

노인의 대답을 들었는지 잠금장치를 푸는 소리와 함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은 강수련이었다. 온몸은 여전히 말라 있었고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그리고 얼굴 한쪽에 깊은 수심이 어려 있었는데 그녀는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셨어요.…··?'

강수련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노인과 마주했고 그리고 고개를 든 순간 노인 뒤에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반쯤 감겨있던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고 그 맑은 눈망울에선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내 삶과 비교하면 그녀와의 만남은 짧은 인연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인연은 삶과 죽음을 넘어 나와 그녀를 끈끈한 유대감으로 묶었다. 그래서일까? 난 그녀가 너무나 반가웠다.

내가 환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무사했냐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는 비틀거리며 나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나비처럼 날아오듯 뛰어서 내 품에 폭 안겼다.

그녀는 내 품에 안겨 나를 꼭 끌어안았고 엉엉 울며 눈물을 흘렸다. 난 얼떨결에 나에게 안긴 그녀를 끌어안고 잔뜩 당황하며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은 그저 흐뭇하게 웃으며 여학생과 아이를 데리고 쉼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는 무엇이 그렇게 서러운지 내 목을 끌어안고 한참을 엉엉 울었다. 길던 머리는 짧게 잘리고 고된 상황에 몸은 앙상했다. 그럼에도 그녀가 흘리는 서러운 눈물은 자신의 처지가 아닌 나의 대한 걱정 때문에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 만난 그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난 당황하면서도 이내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괜히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쉼터 안쪽이 시끄러웠다. 갑자기 들려오는 소란에 잠에 들거나 쉬고 있던 아이들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며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대학교에서 데려왔던 여자아이도 보였고 그녀 주위에 붙어있는 아이들도 보였다.

노인의 손녀는 노인에게 미리 말을 들었는지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나에게 다가왔고 그리고 저 멀리 혼자 서서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아이가 보였다.

내 품에 안겨있던 강수련은 눈물을 닦으며 안고 있던 나를 놓았다. 그리고 마치 가보라는 듯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난 멍하니 걸어 쉼터 안쪽으로 들어갔다. 훈훈한 공기가 몸을 훅 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난 그 자리에서 긴장감이 풀려 주저앉았다. 일어나기 힘들었다. 이제야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에 다리가 풀려버렸다. 나는 천천히 팔을 벌렸다. 그러자 그 아이는, 아니 채연이는 울음을 터트리며 나에게 뛰어왔고 나에게 안겼다.

터질듯 말듯한 내 울음이 채연이와 마주한 순간 결국 터져버리고 말았다. 미안해, 미안해. 내가 널 두고 가서 미안해. 난 채연이에게 한참 사과를 했고 채연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말없이 눈물만을 흘렸다.

차가운 현실이 내 몸을 꽁꽁 올렸었다. 꼭 산송장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운이 내 몸을 시체처럼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채연이의 따뜻한 체온이 나와 맞닿는 순간 그 현실도, 그 기운도 모두 사르르 사라져버린다.

내 어깨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내가 들고 있던 무거운 짐은 그날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