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시체를 한곳에 모으고 흙을 뿌려 피를 지웠다. 그리고 그놈들 몸을 수색해봤지만 별다른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먹을 식량이라도 찾아보려 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건 담배 한 갑과 라이터 두개가 전부였다. 혹시 모르니 전부 챙겨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가벼운 옷차림인 아이들을 보고 시체에서 옷을 벗겨내 내밀었다. 최대한 피가 덜 묻은 부분을 벗겨서 준거지만 시체가 입고 있던 거라 그런지 아이는 좀 꺼리는 기색을 보였다. 여학생도 잠시 머뭇거렸지만 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들이 받지 않자 옷을 바닥에 내려놓고 다시 시체를 뒤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런 것까지 입을 열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내가 아무 말 없이 옷을 바닥에 던지자 여학생과 아이는 두려움이 묻어나는 눈빛으로 옷을 보다가 이내 주워서 입었다.
시체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끌고 가 경사가 급한 산 아래로 굴려버렸다. 시체를 모두 처리하고 대검에 묻은 피를 천으로 닦아냈다. 그리고 은신처로 걸음을 옮겼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새벽이 점점 지나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산 사이에 미세하게 보이는 여명이 곧 해가 뜰 거라는 소식을 전해온다.
해가 완전히 뜨면 쉼터 찾기를 시작할 생각이다. 그 전에 조금이라도 쉬어야 했다. 내가 걸음을 옮기자 그 뒤로 여학생과 아이가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난 막지 않았다. 그들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난 자세를 숙이고 임시 은신처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따로 챙겨온 나뭇가지를 재위에 올려두고 다시 불을 붙였다. 모닥불은 다시 타오르고 은신처 내부는 환하게 밝아왔다. 훈훈한 열기가 잔뜩 굳어있는 내 몸을 녹이기 시작했다.
잠시 시간이 지났고 그 둘이 들어오지 않는걸 이상하게 여겨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러자 여학생과 아이는 은신처 밖에서 눈치를 보며 떨고 있었다. 난 그 둘에게 손짓했고 그 둘은 그제야 고개를 숙이며 따라 들어왔다.
'앉아.'
난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는 그 둘에게 모닥불 한쪽 자리를 양보했다. 그 둘은 여전히 눈치를 살피며 모닥불 옆에 조심히 앉았다. 그리고 온기가 느껴지자 조금 안심한 얼굴로 몸을 녹이기 시작했다.
한참 시간이 흘렀지만 난 입을 열지 않고 불을 바라봤다. 그러자 아이는 무척이나 피곤한 듯 여학생 품에 안겨 꾸벅 꾸벅 졸기 시작했다. 여학생은 조금 아련한 눈빛으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친동생?'
그러자 여학생은 흠칫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그녀가 대답하자 난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추격하던 남자들은 누구지?'
우연히 길에서 만난 건 아닐 것이다. 집요한 추적과 그놈 손에 달려있던 끊어진 수갑 그리고 그놈들이 했던 말을 종합해보면 이 학생과 다른 연관이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 물음에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 눈에 눈물이 고이자 난 아무렇지 않은 척 시선을 돌려 불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는 울음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랑자……. 우린 그들을 부랑자라고 불러요.'
'부랑자?'
내가 반문하자 그녀는 쌓인 게 많은 듯 울음을 삼키며 울분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생존자는 꽤 많았어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규격 외 괴물들이 밖을 돌아다니는데도 인간들은 바퀴벌레 같은 생존력을 자랑했다. 생각보다 많이 살아남은 생존자의 흔적과 모습은 자주 목격했었다.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초기에는 모든 게 괜찮았어요. 소음만 내지 않으면 일단 기본적인 안전은 보장되었으니까요……. 생존자들은 하나둘 뭉치기 시작했고 나중 가서는 큰 쉘터들도 생겼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녀는 말을 흐렸고 난 대답했다.
'그렇지 않은 무리가 있었겠지.'
그녀는 내 말이 끝나자 눈물을 삼키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은 알고 지내던 생존자 무리가 하나 둘 없어지는 걸로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괴물 놈들에게 습격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시체가 남아 있었거든요.'
그녀는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품에서 곤히 자고 있던 아이도 누나가 울음을 터트리자 잠에서 깨어나 울먹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는 마치 버릇처럼 숨죽여 울고 있었다.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괜히 입안이 씁쓸했다.
'생존자 무리가 하나 둘 사라지고……. 우리는 고민 끝에 결국 쉘터를 떠나기로 했어요. 그러다 그날 밤 습격을 받은 거예요.'
그녀는 그날을 회상하듯 멍한 눈으로 불빛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놈들이 저희를 지키려던 아저씨들이랑 선생님을 다 죽였어요……. 그리고 불을 지르고……, 또 악마처럼 우릴 강간하고 때리고…….'
여학생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내 눈을 꼭 감았다. 때가 묻어 더러워진 볼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 내렸다.
'그리고 동생이랑 잡혀왔어요. 살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어요. 그곳에 있는 매일 매일이 악몽 같았으니까요. 가축 취급 받으면서 자살하는 친구, 목이 졸려 죽는 친구.'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다 이내 바닥에 토악질을 시작했다. 먹은 게 없는지 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누나가 토를 시작하자 엉엉 울면서 누나를 끌어안았다. 난 서둘러 그녀를 제지했다.
하지만 그녀는 토악질을 하면서도 나에게 끝까지 말해야 겠다는 듯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악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들은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어요. 그놈들이 탈진한 제 친구를 보고 이제 쓸모가 없다며 데려갔어요. 그리고 그들이 뭘 했는지 알아요?'
그녀는 다시 헛구역질을 하며 눈물을 쏟았다. 입에선 울음과 토악질이 서로 나오겠다고 나서며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울면서도 입술을 히죽 히죽 흘리며 실없이 웃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흐리고 탁했다.
그리고 그녀는 모든 걸 포기한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토해냈다.
'먹기 시작했어요. 돼지처럼 토막 내서요.'
맙소사, 식인이다! 난 심장과 손이 떨리는 걸 느꼈다. 세계 전쟁사를 살펴보면 식인을 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극한으로 몰리는 인간, 그런 인간이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 그간 역사가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종말과의 전쟁. 일부 인간은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다.
그녀는 벽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손으로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학교에 있는 목사님이 말해줬어요. 우리는 벌을 받는 거라고, 우리가 너무나 죄를 많이 저질러서 지옥에 방이 부족했다고! 그래서……. 그래서 그놈들이 이곳으로 기어 올라온 거라고!'
그녀는 웃음을 실실 흘리다가 이내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무언가를 씹어내듯 입술을 꾹 다물고 증오가 뒤섞인 무언가를 목소리와 함께 뱉어냈다.
'목사님이 틀렸어요. 그 괴물들은 이곳을 지옥으로 만들려고 올라온 게 아니에요. 그놈들은 그냥 다른 지옥을 왔을 뿐이죠. 우리 인간들이 만든 지옥을요. 그들은 잠시 우리를 보러 왔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난 대꾸하지 못했다. 그저 그렇게 서로 모닥불만을 바라보며 침묵을 유지했다. 난 그녀에게 앞으로 좋아질 거라고 다른 내일이 기다릴 거라고 위로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내일은 오지 않을 세상이었으니까.
가방과 나뭇가지들로 막은 입구에서 옅은 빛이 쏟아져왔다. 새벽이 지나가고 해가 뜨기 시작했다.
'아, 아저씨……. 혹시 어디로 가세요?'
실성한 사람처럼 웃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그녀는 겁에 질린 여고생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동생을 품속에 꼭 안은 뒤 내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눈치를 살피면서도 처절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저, 저 혹시 학교까지 데려다주시면 안 될까요? 학교에 그날 잡히지 않고 숨어있는 친구들이 있어요……. 저 좀 데려다주세요…….'
그녀는 다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빌었다. 그녀는 내가 데려다주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는지 최대한 자세를 굽히며 자세한 내용을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녀가 있던 곳은 소율 여상. 그 뒤는 청룡산이고 이 위치도 청룡산이라 했다. 그리고 학교까지 금방 간다는 설명과 함께 빌면서 나를 설득했다.
말 그대로 인접한 구역에 신서울대가 있었고 그 위로는 산을 넘어 소율 여상이 있었다. 내가 가려는 위치도 청룡산에 위치하는 어린이 쉼터. 하늘이 도운건지 일행들과 만나려는 위치와 그렇게 멀지 않았다.
나는 망설였다. 여학생과 아이가 불쌍하기는 했다. 도와주고 싶었고 동정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넓은 청룡산을 뒤져 일행들이 있는 쉼터를 찾아야 했다. 식량도 없었고 그만큼 시간도 없었다. 분명한 우선순위가 있었고 그녀를 도와줄 상황이 아니었다.
난 씁쓸한 입안을 다시며 그녀에게 어설픈 거절을 해야 할까 끝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가 내뱉은 소리에 나는 말하려던 입을 꾹 다물었다.
'저 여기 지리도 잘 알아요! 어렸을 때부터 이 동네에서 살았어요! 주말이면 부모님한고 같이 등산하던 곳이라 학교까지 금방 갈 수 있어요! 제발요. 둘이 갈 자신이 없어요……. 너무 무서워서…….그냥 같이 가주기만 해주세요……. 네?'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표류하던 바다위에서 등대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담아 그녀에게 물었다.
'청룡산 어린이 쉼터.'
내 대답에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대답했다.
‘네?’
난 다시 한 번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청룡산 어린이 쉼터. 정확하게 어디 있는지 알아?'
그녀는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생각을 하는지 두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잠시 뒤 두 눈을 번쩍 뜨고 조금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네! 네!! 알아요! 우리 학교랑 별로 안 멀어요! 위치도 정확하게 알아요.'
좋다, 좋아. 모든 게 다 들어맞는다. 일행들과 만나는 시간을 대폭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난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입구를 막아둔 가방을 챙겨들고 불을 발로 밟아 꺼트렸다.
그리고 총과 대검을 챙기고 그녀를 조용히 내려다봤다.
‘먼저 그곳으로 갈 거야. 그곳까지 안내해주면 학교까지 데려다줄게.’
정당한 거래다. 나는 그녀를 필요로 했고 그녀도 나를 필요로 한다. 이성과 감성이 오랜만에 하나로 들어맞는다.
그녀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닦으며 아이를 끌어안고 일어났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