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3발을 끊어 쏜다. 처음에는 총알이 빈 허공을 갈랐지만 이내 연달아 날아간 총알은 사격을 하던 군인의 어깨를 관통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날아간 총알은 목을 뚫고 생명을 끊는다.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라 허공으로 천천히 흩어진다. 마치 물속에 들어간 듯 시야도 좁아지고 흐릿하다. 난 숨을 멈추고 모든 정신을 사격에 집중한다.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분비된다. 동공이 확장되고 심장이 쿵쿵 거리는 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세상이 너무나 느리게 흐른다. 군인이 내뱉은 침묵의 단말마가 또렷하게 들려온다. 단 3발로 사람의 생명을 끊자 이상한 감정이 손끝을 찌르르 울린다.
다시 조준간을 옮겨 그 옆에 있는 군인을 조준한다. 모든 게 본능처럼 빠르고 정확했다. 군인들은 갑자기 뒤에서 가해지는 공격에 당황한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조준간 사이로 나에게 고함을 지르는 군인 얼굴이 대형 tv를 확대한 듯 너무나 크게 보였다.
떨리는 눈을 사선에 걸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또 정확하게 3발! 두발은 스쳐 지나가고 마지막 한발이 그놈 이마에 박힌다. 피가 팍 튀기고 그놈의 머리는 퍽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간다.
한순간에 2명이 죽었다. 남은 3명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자 다급하게 총구를 돌린다. 총구가 나를 향하자 몸이 짜릿하게 울린다. 그놈들의 총구가 번쩍일 때 내 몸은 뇌보다 빠르게 반응해 엄폐물로 뛰어들고 있었다.
총알이 공간을 찢고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바닥에 처박히듯 몸을 숨기자 총알이 내가 있던 자리를 사정없이 때린다. 짙은 화약 냄새가 풍기고 귀가 먹먹해진다. 눈앞이 팽팽 돌고 손이 경련하듯 떨린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신발로 걷어차며 격한 숨을 내뱉는다. 탕 탕! 둔탁한 총소리가 두 번 울린다. 살며시 고개를 내밀어 바라보니 노인쪽에서도 응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명소리가 울린다. 군인 한명이 슬러그 탄을 맞아 다리가 끊어진다.
헉 헉 헉 필사적으로 숨을 내뱉고 난 구르듯이 옆으로 몸을 날렸다. 다리가 끊어진 한명은 자기 다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남은 2명은 양쪽에서 가해지는 공격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길 한가운데라 엄폐할 공간도 없다. 한명은 총알을 모두 소비했는지 허둥지둥 거리며 탄창을 꺼내고 있었고 나머지 한명은 노인 쪽을 향해 다시 응사한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유리한 상황이다.
흥분에 짓눌린 내 머리를 필사적으로 다독인다. 그리고 다시 총을 들어 시선을 조준간으로 옮긴다. 탄창을 갈던 군인은 나를 발견했는지 다급하게 동료에게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노인을 향해 총을 발사하는 그놈 뒷모습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다시 끊어 쏘는 3연발. 등판에 피가 터지며 군인은 그 상태로 꼬꾸라진다. 더 이상 움직임은 없었다.
으아아하고 비명을 지르며 탄창을 끼우는 나머지 한 놈이 보인다. 앳된 얼굴이다. 그리고 굉장히 익숙한 얼굴이다. 눈물과 콧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탄창을 끼우는데 탄창 방향이 반대라 들어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를 바라보며 구겨 넣기 바쁘다.
사정없이 떨리는 눈과 눈물. 공포에 질린 얼굴은 제발 살려 달라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야 숨을 내뱉는다. 쓰디쓴 날숨을 내뱉고 달콤한 들숨을 삼킨다. 땀이 눈가를 따라 또르르 흘러내린다. 손으로 슥 닦아보자 땀이 손가락에 가득 고인다.
그리고 침착하게 그놈 어깨를 향해 한발 발사한다. 어깨가 팍 터지고 탄창을 끼우려던 군인은 비명을 지르며 넘어진다. 그리고 난 빠르게 달려가 그놈 총을 발로 걷어찬다. 자세히 보니 역시 내가 알고 있는 얼굴이 맞았다.
나를 쏜 새끼!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진다. 마치 내 몸에 악귀가 들어온 듯 분노와 증오가 속에서 끓어오른다. 반이나 날아간 귀가 미친 듯이 아파온다.
난 내 눈을 똑바로 보라는 듯 그 군인과 눈을 마주쳤다. 그 군인은 총이 저 멀리 날아가자 필사적으로 손을 비비며 나에게 빌었다.
‘아저씨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저 아직 대학생이에요! 네? 제발 살려주세요…….’
군인은 내가 누구인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내가 누구고 왜 여기서 자신을 쏘고 있는지 묻지도 않고 그저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나 스스로 물었다. 동정하나?
그리고 난 대답했다. 아니, 너무나 역겨워.
‘내 얼굴 기억나지.’
내 입에서 나온 건지 의심이 될 만큼 거칠고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숨을 내뱉을 때마다 증오와 악의가 흘러나온다. 기억해야 할 것이다. 네가 아무런 생각 없이 쐈던 남자이자, 너희들이 죽였던 사람들의 얼굴을. 군인은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다.
‘……네?’
‘……넌 기억했어야 했어.'
방아쇠를 당겼고 마지막 군인의 머리가 터진다. 이제 총성은 멈췄고 다리가 끊어진 군인이 지르는 비명만이 그 빈자리를 차지한다. 총구에서 나오는 화약 연기가 허공으로 아지랑이처럼 흩어진다.
난 비틀거리며 법과대 건물로 걸어갔다. 그 순간 저 멀리서 총성이 울려오고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군인들이 들고 있던 무전기는 시끄럽게 울리고 무전 내용은 고함으로 가득했다.
탄피와 피로 낭자된 거리를 지나며 군인들 시체를 하나하나 눈에 담는다. 다리가 끊긴 군인은 과출혈로 쇼크가 왔는지 눈을 까뒤집고 경련을 일으킨다. 난 그것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자 노인은 어느새 내 쪽으로 다가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이 물었다.
'괜찮은가?'
나는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또 물었다.
'왜 왔는가?'
그리고 내가 대답했다.
'후회하고 있습니다.'
노인은 힘없이 웃었다. 그리고 이내 한없이 맑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하하 웃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옵니까? 하구 물었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시간이 잠시 흘렀다. 둘 다 웃음을 멈추고 한없이 서로만을 바라봤다. 노인은 담담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구해줘서 고맙네.'
아, 나는 작게 숨을 파 내쉬며 허공을 바라봤다. 가슴속에 뭉쳤던 덩어리 하나가 천천히 사라진다. 괜히 눈물이 나와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킨다. 설명 못할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눈물이 볼을 타고 뚝뚝 떨어진다. 속으로 울음을 내뱉으며 하늘만을 바라봤다.
가슴이 너무나 시원해서 눈물이 너무나 후련해서 나는 그렇게 울었다. 고맙다는 말이, 너무나 깊숙이 다가와 내 마음을 녹였다.
노인이 건물 문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손짓한다. 그러자 문에서 한 여성이 조심스럽게 걸어 나온다. 그동안 많이 굶주렸는지 깡 말라있었고 걸음은 위태위태했다. 노인이 황급하게 달려가 여성을 부축한다.
더러운 옷에 꼬질꼬질한 머리. 그리고 창백한 얼굴. 그 여성은 얌전히 걸어 나와 거친 숨을 내뱉었고 나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마주보고 고개를 숙였다.
'손녀일세.'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을 해보이며 조용히 읊조렸다.
‘아이는 찾았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찾았습니다. 여기서 멀지 않는 곳에 숨어있습니다.'
노인은 웃으며 대답했다.
'다행이군.'
그리고 나는 노인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다 조금 걱정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같이 있던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래, 데려가지.'
내가 무언가 더 말하기 전에 노인은 내 말을 끊고 대답했다. 나는 말하려던 입을 헤 벌리고 노인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괜찮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자네답군.'
나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괜한 어색함이 들어 허공을 바라보며 기침했다. 그 와중에 폭발 소리는 더 커지기 시작했고 총성은 급박하게 들려왔다. 내가 다급하게 그쪽으로 총을 들어 올리자 노인은 내 어깨를 잡으며 침착하라는 듯 말을 건넸다.
'군인 놈들이 더 올 것 같지는 않아.'
나는 의문이 들어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주머니에서 무전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볼륨을 높이며 나에게 무전 내용을 들려준다.
무전기에서 연신 고함과 비명 그리고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한줄기 작은 울음소리가 내 고막을 스쳐 지나간다.
이상한 괴음, 소름끼치는 울음소리!
그놈들이다. 그놈들이 이곳으로 몰려온다.
나는 총을 부여잡고 노인에게 말했다.
'옆쪽 건물 뒤편에 도랑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 가면 애들이 있습니다.'
'자네는?'
'거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침을 삼킨다. 그러자 노인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손녀를 부축하며 내가 왔던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그리고 나에게 늦지말라고 말하며 서서히 멀어진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법과대 건물로 돌린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그곳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 아직 볼일이 남아있다. 그 단서가 없었다면 난 그 쉼터에서 삶을 끝냈을 것이다.
아직 마음속에 남아있는 마지막 한 덩어리. 그게 내 발길을 재촉했다.
건물로 들어가자 몹시 어두웠다. 가방에서 플래시 하나를 꺼내 앞을 밝힌다. 복도에는 의자와 책상들이 빼곡했고 문들은 쇠사슬과 두꺼운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복도를 빠르게 걸어가며 플래시로 강의실 창문을 밝혔다.
빈 강의실과 무언가 쌓여있는 강의실. 하나하나 빠르게 확인하며 난 끝없이 복도를 뛰었다. 그리고 맨 끝에 강의실에 플래시를 밝히자 강의실 한 구석에 무언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내가 불을 밝히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살며시 일어나 창문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후레시를 더욱 들이밀어 빛을 밝혔다. 그것은 눈이 부신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고 이내 손을 치우고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개머리판으로 강의실 유리창을 가격해 깨뜨린다.
숨이 거칠다. 나는 창에 손을 넣어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강수련은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강의실 내부는 싸늘했는지 그녀의 손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역시나 그녀의 얼굴도 창백했고 말라있었다.
그녀는 채연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때처럼 저항하고 또 저항했을 게 뻔했다. 한쪽 눈은 퍼렇게 멍들어 있었고 긴 머리는 어디 갔는지 짧게 잘려 있었다. 학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얼굴을 숙이며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열어 그녀에게 말했다.
'채연이가 기다려요.'
그녀는 울면서 대답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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