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30화 (30/313)

[30]

나는 다시 대검을 착검하고, 시체를 내려다봤다. 눈을 뜨고 죽어있는 남성은 무엇이 그렇게 억울한지 아직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비틀거리며 다가가 남자의 몸을 뒤졌지만, 특별한 물건은 없었다. 나는 남자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찾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었다. 혹시 몰라서 전원은 꺼둔다. 필요한 때가 올지도 모른다.

침을 꿀꺽 삼키자 목이 따끔하고 아려온다. 소매로 흘린 눈물과 콧물을 닦아 내고, 조금 크게 숨을 훅 내뱉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로 가득 차오르자 정신이 조금 되돌아옴을 느꼈다.

나는 다시 그림자 속에 숨어 길옆을 걸어간다. 그리고 더 오는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보며 확인한다. 체육관 내부에 사람이 더 있는지 옅은 불빛과 말소리. 그리고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난 시간이 굉장히 촉박함을 느꼈다. 이 시체를 숨긴다고 해도 조장이라 불리는 이 남자가 장시간 자리를 비운다면 찾아 나설 게 뻔했다. 조금이라도 이상함을 느낀다면, 침입자가 있다는 걸 눈치챌 것이고 무전기라는 빠른 수단으로 모든 이들에게 보고할 것이다.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뛰어갔다. 나는 오직 한곳만을 보고 있었다. 수의과 건물, 눈앞에 드디어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잠깐 거리가 굉장히 멀리 느껴졌다. 난 건물 문 앞에 도착하자 무너지듯 앉아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주위를 빠르게 돌아봤다. 건물 주위는 조용했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문 앞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당겨 봤지만,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는 쇠사슬로 잠겨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키고, 유리문을 통해 안쪽을 바라봤다. 빛 한 점 없는 내부는 어두웠다. 그리고 혹시나 하고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것인가? 나는 최대한 뒤로 멀어져 건물 위를 바라봤지만, 빛이 새어 나오는 창문은 없었다.

이곳에는 아무도 없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잠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여자가 알려 줬던 말을 머릿속에 되새긴다. 수의과 건물……. 건물 뒤. 그 순간 내 눈에 반짝하고 옅은 불빛이 들어왔다. 아주 작은 불빛이었다.

거리가 꽤 멀었다. 하지만 주위가 워낙 어두웠기에 점멸 같은 불빛은 우주 속에 별처럼 아주 또렷하게 보였다. 난 그곳을 놓치지 않았다. 수의과 건물 뒤는 길이 없는 산이었다. 하지만 난 저기가 여자가 말하는 그곳임을 직감했다.

난 정신없이 그곳을 향해 뛰었다. 길이 없어서 발이 푹푹 빠지고, 경사가 급했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산으로 가면 갈수록 나무들을 자른 흔적들이 보였다. 가스와 전기가 끊긴 지금 사람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연료는 목탄이었다.

그놈들은 여기서 목탄을 공급하는지 건물 주위 나무들은 몽땅 잘려져 있었고, 사람이 머물렀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불빛은 좀 더 멀리 있는 숲속 깊은 곳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거친 산길을 가로지르며, 그 불빛에 조금씩 접근했다.

험한 길 때문에 입에서는 연신 거친 숨이 뿜어져 나왔다. 얼굴을 스치는 나뭇가지들이 얼굴에 생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난 그것을 무시하고 보이는 작은 별을 향해 끊임없이 질주했다. 어느새 가까워진 그곳에는 작은 모닥불이 있었다.

나는 살짝 자세를 숙여 어둠 속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아주 조용하고 은밀하게 모닥불로 접근했다. 이제 눈앞에 모닥불이 보였다. 주위에는 나무들을 다 잘라 냈는지 인위적인 공터가 있었고, 그 모닥불 근처로는 무언가 옹기종기 모여서 뭉쳐 있었다.

작은 모닥불이라 주위가 그렇게 밝은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윤곽들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다시 주의 깊게 살펴보자 그들이 사람인 걸 알 수 있었다.

작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이 칼바람이 불어오는 산속에서 작은 모닥불을 의지하며 모여 있었다. 시선을 돌리자 한쪽에는 장작들이 쌓여 있었고, 도끼며 톱이며 장작을 만들기 위한 공구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여자가 말했던 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여자애들은 산에서 땔감을 가져오게 해요. 이들은 그 여자가 말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채연이가 있을 것이다. 재회가 다가온 순간에 심장은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주위에 다른 어른들은 없었다. 이 추운 산속에 박혀 있는 미친 짓은 하고 싶지 않았겠지.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런 일을 시키는 것이고. 난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그들에게 접근했다.

나뭇가지를 밟았는지 옅은 소음이 주위에 울렸다. 자기들끼리 조용히 떠들던 아이들은 소음이 들려오자 놀랐는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를 피하듯 한쪽에 몰리기 시작했는데, 그 앞에는 무리 중에 제일 큰 여자아이가 있었다. 난 그제야 아이들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잔뜩 겁에 질려 퍼렇게 변한 얼굴들. 얼마나 굶었는지 깡마른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제일 큰 여자아이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더니 갑자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손을 비비며 싹싹 빌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이들도 울음을 터트리며 여자애 뒤로 숨었다.

‘너무 추워서 그랬어요. 죄송해요. 아저씨 제발 살려 주세요.’

여자애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빌고 있었다. 아마 나를 그놈들이랑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나 보다. 그리고 그놈들은 이 추운 날씨에 불조차 피우지 못하게 했던 모양이었다.

아이들 얼굴을 다 확인하고, 그중에 채연이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모닥불이 있다 해도 모닥불이 작아 불빛이 옅었다. 그리고 다 여자애 뒤로 숨어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구별이 되지 않았다.

모든 인원은 여자애를 포함해 5명. 너무나 적었다. 이 중에 채연이가 있을 것이다. 아니 있어야 한다. 나는 천천히 그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나는 그동안 겪었던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고통을 담아 내가 그토록 보고 싶던 아이를 나지막이 불렀다. 잔뜩 쉬고 갈라진 목소리, 울음에 젖어 먹먹한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채연아…….’

한쪽에 서 있던 아이가 움찔하는 게 보였다. 맨 앞쪽에 있던 여자애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단 얼굴로 나를 바라봤고, 나머지 아이들도 천천히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난 가장 처음 움찔했던 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아이는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무리에서 빠져나와 절뚝이며 모닥불 앞으로 다가왔다. 옅은 불빛이 그 아이를 밝히자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손을 벌렸다. 입고 있던 파카는 어디 갔는지 낡은 거적때기를 걸치고 있었다.

얼마나 먹지 못했는지 얼굴을 깡마르고, 얼굴에는 눈물 자국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맞기라도 했는지 볼 한쪽은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채연이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잠시 뒤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입을 천천히 벌렸다.

그리고 이내 얼굴을 잔뜩 찡그리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채연이는 절뚝이며 나에게 다가왔고, 나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빠르게 무릎으로 기어가 채연이를 품속에 꼭 안았다.

아이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채연이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내 품속에서 내 옷을 꼭 잡았고, 나는 애처럼 엉엉 울었다. 다시는 놓지 않을 거야. 다시는, 다시는 내 품 안에서 내보내지 않을 거야.

후회가 물밀듯 몰려온다. 그때 왜 총을 버렸고, 난 그들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내가 조금 더 강하고 똑똑했다면, 채연이가 이 꼴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난 그동안 품고 있던 고독과 후회. 그리고 외로움과 고통을 눈물에 담아 하염없이 내보냈다.

채연이는 내 옷을 잡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나는 채연이가 진정이 되자 가방에서 핫팩과 물, 그리고 비스킷을 꺼냈다. 빠르게 핫팩을 흔들어 채연이 손에 꼭 쥐여 주고, 천천히 마시라고 당부하고 물병을 내밀었다. 따뜻한 물로 주고 싶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비스킷 포장지를 까고 채연이 입속에 넣어 주었다.

채연이는 배가 고팠는지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입은 바쁘게 움직임에도 눈을 나한테서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어디 도망이라도 갈까 봐 나를 꼭 잡고 있었다. 나는 내 파카를 벗어 채연이를 감싸 안았고, 채연이는 눈물과 콧물을 훌쩍이면서도 열심히 비스킷을 입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아이가 말을 못 해요…….’

그리고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에 난 고개를 들었다. 처음 아이들의 앞을 막고 있던 여자아이였다. 중2에서 중1? 이 아이들보다 나이가 있어 보였지만, 그렇다고 체구가 큰 건 아니었다. 그 아이는 조심스레 내 눈치를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아이를 구하러 오신 건가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자애는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다행이네요…….’

그러자 채연이가 내 팔을 잡아당기는 게 느껴졌다.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채연이를 바라봤다. 채연이는 자기가 먹던 비스킷을 들고 그 여자애를 가리키고 있었다. 난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나는 채연이를 향해 웃어 보이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처음에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였던 여자아이다. 분명 채연이도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가방에서 얼마 남지 않는 비스킷과 물통을 꺼내 여자애에게 내밀었다. 여자애는 깜짝 놀라면서 나를 바라보다 이내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채연아 고마워.’

의젓해 보였어도 아직은 아이다. 그동안 고통과 서러움에 여자애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내가 내민 물건들을 받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다른 아이들을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도 진즉 노인과 만날 시간이 지났을 거란 생각에 초조함을 느꼈다. 그리고 채연이를 끌어안고 이곳에서 빨리 빠져나가려 하는 순간. 채연이가 손을 들어서 내 이마를 찰싹 때렸다.

난 어안이 벙벙해 채연이를 바라봤고, 채연이는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지 연신 오물오물했다. ‘같이 가요.’ 채연이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이는 이 시궁창 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돕는다. 어쩌면 인간이 잊어버린 마음을, 이 아이는 짙은 어둠 속에서도 소중히 지니고 있었다.

나는 망설였다. 채연이를 포함해 5명이나 되는 인원들이다. 이 아이들을 다 데리고 어떻게 빠져나간단 말인가? 채연이를 설득해야 할까?

그리고 순간 뒤쪽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시바, 내가 울지 말랬지~? 어쭈 불도 피웠어?'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바라봤다. 시야에 들어온 건 사복을 입은 한 남성이었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었고, 껄렁껄렁한 얼굴로 몸을 긁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발견하자마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뜬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나는 채연이를 내려놓고, 허둥지둥 총을 들었다. 그리고 대검을 그놈에게 겨누려는 순간 그놈도 허둥지둥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그놈이 무전기를 꺼내 든 순간 난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저놈에게 달려가긴 늦었다. 내가 이곳에 침입한 걸 들키고 말 것이다. 난 그놈이 무전기에 입을 가져다 댄 순간,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놈의 머리는 터지고, 뒤에서 아이들이 지르는 비명이 울린다. 총소리는 멀리멀리 울려 퍼졌다. 난 총을 꽉 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고요한 어둠이 잠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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