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27화 (27/313)

[27]

노인은 내 어깨를 두어 번 토닥여 주고 차 밑으로 들어가 시체를 끌어냈다. 그리고 흉물스러운 물건을 치우듯 그놈 시체를 한쪽으로 밀어 내버린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쪽 발에 힘을 주는 순간 짜릿한 고통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나는 고통 어린 신음을 내뱉었고, 그 모습을 본 노인은 착잡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총을 지팡이 삼아 잠시 몸을 기대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해가 지려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오후가 대부분 지나갔다. 나는 노인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기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노인은 한숨을 푹 내쉬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다시 차 밑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물을 한 모금씩 마시고 지겨운 비스킷으로 배를 채웠다. 노인은 사양했지만 난 반쯤 강요하듯 노인 손에 물과 비스킷을 넘겼다. 그가 없었으면 난 진작 죽었으리라. 이렇게라도 고마움을 표해 봤다.

우리는 5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들고, 춥고, 지친다. 몸에는 힘 하나 없었고, 추운 날씨에 몸은 달달 떨린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손을 한 번 더 뻗고, 쉬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다리를 한 번 더 박찬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렇게 인내의 시간이 지나고 한참을 기어서 겨우 관악 IC 표지판이 보이는 지점까지 도달했다.

신서울대 입구 교차로를 들어서자 도로가 넓어지고, 양쪽을 가리던 가림막이 사라졌다. 확연하게 넓어진 차 간격에 나는 조심스럽게 양쪽 눈치를 살피고 노인을 뒤돌아봤다. 노인도 내가 멈추자 따라 멈췄는지 조금 긴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리라고 입 모양으로 중얼거린 뒤 천천히 차 밖으로 기어 나왔다. 역시나 주위에는 차가 많았지만 특이하게도 인위적으로 차를 치운듯한 흔적이 간혹 보였다. 빼곡한 차 사이로 사람 두 명은 너끈하게 지나갈 간격이 길처럼 나 있었고, 그 길은 분명히 신서울대를 가리키는 표지판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난 그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고 주먹을 꽉 쥐었다. 원하는 바를 향해 이제야 한 걸음 도착한 느낌을 받았다. 난 거친 숨을 내뱉고 차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앞쪽과 양옆을 열심히 살폈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난 노인을 바라보며 손짓했다.

노인은 내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내가 손짓하자 차 밑에서 기어 나왔다. 그리고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아 교차로에 한 방향을 가리키며 작게 중얼거렸다.

‘저곳만 지나면 바로 신서울대 정문이야.’

나는 피곤함을 느끼며 마른세수를 했다. 그리고 노인에게 물었다.

‘그놈들이 막고 있을까요?’

그러자 노인은 입을 꾹 다물고 그저 고개만을 끄덕였다. 너무 당연한 질문을 한 모양이다. 내가 헛기침을 하고 다시 정면을 바라보자 노인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작게 말했다.

‘보면 알 걸세.’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차 옆 인도로 걸어가더니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나는 통증에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히 발이 아프긴 했지만, 통증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총을 양손에 들고 발을 절어가며 조심스럽게 노인을 따라갔다. 괜히 조급함이 들었지만, 저 앞에 걸어가는 노인을 믿기로 했다. 난 고통을 꾹 참으며 발을 바쁘게 놀렸다. 긴장감 때문에 손에서는 식은땀이 묻어 나왔다.

역시 걷는 속도는 기는 속도에 비해 굉장히 빨랐다. 교차로에서 벗어난 우리는 서울대학교 정문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고, 신서울대 정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난 신서울대 정문을 보자마자 할 말을 잃어 입을 꾹 다물었다.

서울대 입구로 향하는 길들은 차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차가 없는 대신 많은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정문을 상징하는 구조물은 빽빽하게 버스로 막혀 있었다. 앞뒤 간격이 없게 버스를 주차해 정문을 틀어막고, 그 주위 또한 들어오지 못하게 버스들로 막아 두었다. 버스를 이용해 만든 바리케이드는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주위 풍경 또한 을씨년스러웠다. 주위 풍경을 꾸미던 나무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전부 잘려져 있었고, 버스 창문은 말라붙은 피로 가득했다. 노인은 나에게 엎드리라 말했다. 내가 의문을 표하자 노인은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잡으며 꾹 눌렀고, 난 힘없이 바닥에 엎어졌다.

그리고 노인도 나를 따라 엎드리고는 잔뜩 굳은 얼굴로 속삭였다.

‘버스 창문하고, 버스 위를 봐.’

난 눈을 좁게 뜨고 보이는 시야에 정신을 집중했다. 멀리 있어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버스 위에는 사람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서 있었고, 창문에서도 드문드문 그림자들이 보였다. 움직임과 걸음걸이. 그리고 서 있는 모습은 사람이 분명했다.

그리고 창문 사이로 내밀어져 있거나 그들이 들고 있는 그 무언가. 내 머리를 단번에 스치고 지나가는 단어는 딱 하나였다. 분명히 총이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노인 쪽을 바라보자 노인은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시체들로 가득한 길가였다.

‘시체들을 잘 봐.’

나는 순간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자세히 보기 위해 천천히 기어 시체 쪽으로 접근했다. 나는 이 시체들이 전부 그놈들 시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난 그것이 틀린 생각이었다는 걸 지금 깨달았다.

분명히 그놈들 시체도 있었다. 아니, 그놈들 시체가 다수였다. 하지만 중간중간 끼어 있는 시체들은 그놈들이 아니었다.

여성은 무엇이 그렇게 분한지 잔뜩 일그러진 눈을 부릅뜨고 총에 맞아 죽어 있었다. 그리고 봇짐을 꼭 끌어안고 죽어 있는 할머니는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총알을 하도 맞아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남학생이 눈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모두들 참혹하게 죽어서 길가에 너부러져 있었다. 눈이 많이 내렸었지만, 그들을 전부 가리지는 못했다. 길은 그날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구조대가 아니야.’

노인이 내뱉는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내 심장에 꽂혔다. 처음에는 의심했고, 채연이를 데려갔다는 것에만 분노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나를 탓했다. 하지만 마음속 한구석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난 애써 부정했지만, 그 부정의 결과는 이렇게 참혹하게 다가왔다.

난 그 자리에서 토악질을 했다. 시체가 역겹거나 거부감이 들어서가 아니었다. 저놈들을 향한 증오. 그리고 끝없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저런 놈들에게 채연이를 뺏겼다는 자기비하가 내 몸속에서 모든 것을 토해내게 했다.

저 시체들 사이에서 채연이를 발견할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정신이 아득하니 멀어지고, 분노 때문에 눈이 뽑힐 것만 같았다. 난 매섭게 그곳을 노려보고 기어가기 시작했다. 다 죽이고 싶었다. 저놈들 하나하나 뜯어 삼켜 죽여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난 내 몸을 잡는 완력에 그 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홱 시선을 돌리자 날 잡은 노인의 손이 보였다. 그리고 노인은 마치 이성적으로 생각하라는 듯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해가 지고 있어, 머물 곳을 찾자.’

그 말에 나는 화를 내며 손을 뿌리쳤다. 채연이가 당장 저 시체 속에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쉴 곳을 찾자고? 난 처음으로 노인을 바라보며 분노했다. 하지만 그 분노 앞에 노인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붙잡았다.

‘네가 찾는 그 아이는 시쳇더미 속에 없어. 내가 장담하지.’

나는 그걸 당신이 어찌 아느냐고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고함을 지르지 못했다. 왜냐하면, 굉장히 슬퍼 보이는 노인의 눈과 직면했기 때문이다. 눈빛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 복잡한 감정을 느낀 나는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그리고 나는 분노를 천천히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적어도 말이라도 들어보고 싶었다. 사실 채연이가 살아 있다고. 분명히 살아 있다고 노인에게서 듣고 싶었다. 내 숨이 조금씩 안정되자 노인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나도 자네처럼 분노했네. 그리고 정신없이 앞으로 기어갔어. 혹시 손녀가 죽었으면 시체라도 거둬야겠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노인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치 그때를 회상하듯 손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다행히 손녀는 시체들 사이에 없었지. 그렇지만 난 편하게 잠들 수 없었어. 손녀가 아직도 잡혀 있었고, 그날 확인한 시체들의 얼굴들이 꿈에서까지 나와 나를 괴롭혔거든.’

‘꿈에서 수십 번 보았던 광경이야. 모두 그때와 똑같아. 새로운 시체는 없으니까 안심해.’

난 노인의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옴을 느꼈다. 안심했고, 또 너무나 분했다. 나는 혹시나 그들에게 울음소리가 들릴까 봐 소매를 꽉 물고 한참을 울었다. 노인은 말없이 내 어깨를 다독이며 슬픈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노인은 내가 울음을 그치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의 시도로 모든 걸 걸어야 해. 그다음은 없어.’

나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도 나를 마주 보며 굳게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일어나 나를 이끌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지고 있는 해를 바라보며 멍하니 걸었다. 우리는 다시 신서울대 입구 교차로로 향했고, 그때쯤 온몸이 녹초가 되어 있었다. 정신과 육체는 피곤함에 절었고, 한걸음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노인이 왜 나를 말렸는지 이해가 갔다. 이 상태로 갔다가는 채연이를 만나기도 전에 죽을 것이 분명했다. 실패는 없다, 꼭 구해야 한다. 우리는 내일을 위해서라도 체력을 보존해야 했다.

우리는 머물 곳을 찾아다녔지만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찾아다니다 인도 바로 옆에 문이 열려 있는 자동차를 발견했다. 주위 차들과는 다르게 피가 묻어 있지 않았고, 파손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중형차라 내부 공간이 넓었다.

노인과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중형차로 들어갔다. 그리고 빠르게 차 문을 닫고, 문을 잠갔다. 노인은 익숙한 듯 가방에서 신문지들을 꺼내 물을 묻히고 창문을 가렸다. 조용히만 하고 있으면 근처에서 돌아다니는 그놈들에게 들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뒷좌석으로 들어가 운전석과 보조석을 앞으로 완전히 밀고 좌석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노인이 내민 담요를 받아들고 온몸을 가렸다.

해가 완전히 지고 온도는 급격하게 떨어진다. 노인은 잠이 들었는지 조용했다. 나는 신문지로 막은 유리창을 멍하니 바라보며 작은 상념에 휩싸였다.

그리고 담요로 몸을 완전히 가리고, 그 속으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손전등을 켰다.

그리고 긴 일기를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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