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그놈들은 생존을 위해 우리를 포식하는가? 굶주림은 느껴서? 살육을 위해 뛰고, 피를 향한 끝없는 갈증을 느낀다. 지치지 않고, 추위를 느끼지도 않는다. 명령하는 사람도 필요 없이 공통된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집착한다.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눈앞에 생명체를 모두 먹어 치우고서야 움직임을 멈춘다.
후퇴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포식자, 육식동물, 그저 인간만을 죽이기 위해 나타난 킬링머신. 그들을 정의할 수식어가 있는가? 그들만큼 인간에게 위협이 되었던 생물체가 있는가? 아니, 과연 그들은 ‘생물체’ 가 맞는가? 어디서, 대체 무엇을 위해 왔으며 목적이 뭔지. 그리고 왜 ‘인간’ 이었는지 모든 게 의문이다.
많은 의문과 혼란이 교차한다. 사실 그동안 그놈들을 정의하면서 애써 고개를 저었고 무시했다. 생각하기 싫었으니까. 그만큼 나에게 그놈들은 공포였고,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에 난 생각하기를 거부했다. 그런데 트럭 운전석에 본 진실의 단편은 생각과 이성을 두려움 속에 흠뻑 적셨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기 위해 영화에서 나오는 좀비가 아닐까 생각했다. 언데드, 구울, 괴물. 서로 물고, 죽여서 감염시킨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게 편하고, 정의하기 쉬웠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아님을 오늘 알게 되었다.
머릿속에 있던 로직들이 하나하나 합쳐진다. 그놈들은 살점과 뼈까지 모두 먹어치운다. 그놈들의 목적은 단순한 포식이다. 그렇기에 시체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고, 감염이 될 본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그놈들이 생겨난 원인은 감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놈들은 자신들이 인간이었다는 단서를 남겼다. 낡고 찢어졌지만, 옷을 입고 있고, 사람 형태를 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그놈 몸에서 발견한 오래된 주민등록증과 영수증. 1971년 8월 2일.
그냥 오래된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게 취미인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이 그놈들은 과거의 인간이란 정의를 내리게 했다. 내가 보았던 그놈들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기억나기 시작했다. 겨울임에도 철 지난 복장. 유행을 한참 지난 로고와 메이커들.
하나같이 다 똑같다.
그냥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내가 왜 이런 것에 혼란을 느껴야 하는지 의문마저 들었다. 차라리 누구라도 붙잡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말해 주고 싶었다. ‘이봐요 혹시 저놈들 지갑이라도 열어봤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골목 구석 벽에 기대서 총을 끌어안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하늘을 바라보자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머리가 혼란스러움에도 본능처럼 은신처를 찾아야 함을 깨달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주위를 둘러봤다. 얼마나 정신없이 걸어왔는지 육공 트럭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도림천이 보이는 거로 보아 익숙한 지형이었고, 이내 한 번 다녀 본 기억이 있는 길을 찾았다.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려 몸을 움직였지만, 저 멀리 차 옆에 모여 있는 그놈들이 보였다. 뭔가 하고 한참을 지켜봤지만 5~6명이 차 근처에서 멍하니 서 있는 게 괜히 꺼림칙해 다음 골목으로 들어섰다.
겨울이라 해가 짧고 금방 진다. 그리고 날씨가 흐려서 해가 얼마큼 떠 있을지 체감도 가지 않는다. 서둘러야 한다. 일단 총을 구한다는 첫 번째 목적을 달성했으니 은신처를 찾아 체력을 보존하고, 다음 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놈들에 대한 의문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상념은 몸을 둔하게 한다.
두 번째 갈림길에서 작은 동네 슈퍼를 발견했다. 길 끝에 있는 마지막 골목이라 그런지 한쪽 길가는 도림천을 향하고 있었고, 슈퍼 근처에는 작은 상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건물들이 아주 낡아 있었고, 간판도 오래되어 보인다.
그렇기에 왠지 인적이 드문 느낌이 들었고, 거주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걸음을 옮겨 슈퍼 쪽으로 향했고, 몸을 숙여 주위를 확인했다. 이 거리는 한산했다. 소리만 주의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천천히 슈퍼로 다가갔다. 이미 내부는 생존자들로 인해 털렸는지 문 한쪽 손잡이가 뜯겨 있었다. 손잡이가 없어 의미가 사라진 문을 조심히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창문이 적어서 어두웠다. 역시 내부는 어질러 있었고, 남은 물품은 없었다. 문을 천천히 닫았다. 문손잡이가 없는데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놈들에게는 잠금장치가 의미가 없었다. 그놈들이 이미 이곳에 들어온 순간 나는 죽은 목숨이니까.
그래도 자는 사이에 죽기는 싫었던지라 한쪽에 깨진 유리들을 모아 문 앞바닥에 천천히 뿌려놓았다. 밟으면 작은 소리라도 들릴 것이다. 그리고 가방에서 가져온 천 조각들을 꺼내 문을 가렸다. 슈퍼 안쪽은 어릴 때 많이 있던 전형적인 동네 슈퍼였다.
슈퍼 겸 가정집으로 사용하는지 슈퍼 안쪽에는 미닫이문이 있었고, 문을 열자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단칸방이 보였다. 작은 창문 사이로 서서히 어두워지는 밖이 보인다. 나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 먼지가 쌓인 바닥을 대충 훑어내고 앉았다.
단칸방이지만 가정집이라 그런지 있을 건 다 있었다. 먹통이 된 TV와 전화기, 그리고 바닥에 깔린 전기장판. 혹시나 하고 꾹 눌러 봤지만 역시나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선반에는 가족사진이 보인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과 할머니 한 분. 아마 슈퍼를 운영하는 할머니와 그녀의 손주들로 보였다.
다 어디로 간 걸까?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가방을 한쪽 구석에 밀어 넣고 장롱을 열었다. 장롱을 열자 다행히 이불들이 있었고, 난 그 이불을 꺼내 바닥에 깔았다. 옷과 물품들이 그대로다. 급하게 떠난 걸까? 나는 쓸 만한 것이 있나 하고 선반들과 장롱 서랍을 열어 뒤적였다.
좀도둑이 된 것 같아 양심이 찔리긴 했지만, 이미 도둑질은 많이 해 버렸으니……. 그냥 하기로 했다. 정전을 대비한 건지 대형 손전등과 건전지들 그리고 양초와 라이터를 발견하고 조용히 챙겼다. 그것을 제외하곤 나에게 필요한 물건은 없었다.
해가 완전히 지자 도시는 다시 어둠으로 잠겼다. 그놈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는지 저 멀리서 이상한 울음소리와 비명이 들려온다. 애써 귀를 막으며, 촛불을 들고 방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불을 몸 전체에 두르고, 작은 촛불을 조심히 켰다.
작은 촛불에서 나오는 열기와 빛이 손을 따뜻하게 적신다. 이불로 빛이 새어 나오지 않게 잘 가리고, 가방에서 꺼내 온 비스킷을 비적비적 씹기 시작했다. 물 한 모금, 비스킷 한 조각. 은은하게 나는 단맛이 나쁘지 않은 맛이었지만, 나는 입맛이 너무 없어서 반쯤 먹다 말고 다시 가방 안에 넣었다. 그리고 물 한 통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작은 촛불을 등불 삼아서 일기를 작성한다.
많은 일이 있었다. 고작 이틀이 지났는데, 한 달이 더 지난 착각이 들었다. 일기장을 한장 한장 훑어보자 채연이가 남긴 낙서가 보였다. 그 낙서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난 눈을 감았다. 그냥 채연이가 보고 싶었다. 힘들고 지치고 고독했다.
작게 빛나는 촛불을 바라보니 기분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마치 단칸방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도 들었다. 한쪽에 세워둔 총을 잡아 방아쇠를 당기면 편안해지지 않을까. 피곤과 고독이 나를 지치게 하지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채연이의 얼굴에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들을 찾아야 한다. 어디로 갔을까? 이런 상황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걸어서 가는 장거리 이동은 몹시 위험하다. 그렇다면 신림동, 아니면 그 근처일 확률이 몹시 높았다. 준수한 무장능력. 그리고 보급이 잘되는 듯 깨끗한 옷차림.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생존자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수용인원이 많다는 소리인데, 수용인원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건물을 생각해야 한다. 큰 건물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너무나 많고 다양하다. 하지만 마땅한 흔적과 장소가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대략 생각나는 장소를 하나하나 적었다.
리스트가 많다. 결국, 그곳을 다 수색하고 다녀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함이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난 너무나도 처절했으니까. 도림천을 건너 아래로 내려가면 3시 방향에 학교 군집 지역이 있다. 그리고 더 아래로 내려가면 신서울대학교가 존재한다. 가장 먼저 그곳들을 하나하나 수색해 볼 생각이다.
생각이 정리되자 난 힘없이 바람을 불어 촛불은 껐다.
* * *
밤새 그놈들이 내뱉는 괴성과 비명에 잠을 설쳤다. 그놈들이 당장이라도 저 문을 부수고 들어올 것 같아서 긴장과 두려움에 휩싸였고, 잠이 들고 깨는 것을 반복했다. 나는 창문을 통해 여명이 보이기 시작하자 빠르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싸늘한 날씨에 잔뜩 굳어진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긴장과 추위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쪽에 놓인 촛불에 불을 켠다. 나는 잠시 멍하니 그 불빛을 바라보며 작은 온기에 손을 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배낭에서 비스킷을 꺼내 먹고, 물도 천천히 마신다.
차가운 속에 차가운 물과 음식이 들어가자 자연스럽게 따뜻한 음식이 그리워졌다. 하지만 냄새를 풍길 수는 없었기에 난 욕망을 애써 누르며 해가 뜨기를 천천히 기다렸다.
해가 뜨기를 기다림에도 나는 해가 뜨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마치 전쟁터 전열 가장 앞에서 뛰기 시작하는 병사가 된 기분이었다. 위험한 외길을 눈 감고 달려야 하는 기분.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뜬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부자리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원래 있던 자리에 넣어둔다. 그리고 배낭을 들고 총을 들었다. 미닫이문을 열자 어제 들어왔던 슈퍼 내부는 큰 변화가 없었다. 난 그곳을 조용히 지나치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잠깐 머물던 보금자리와의 작별은 건조하고 조용했다.
내가 문을 열자마자 한 행동은 잔뜩 몸을 숙여 주위를 확인하는 행동이었다. 혹시 밤새 이 주위로 온 놈들은 없는지. 그리고 눈여겨봐야 할 흔적은 없는지. 나는 그 자리에 한동안 서서 주위를 관찰하고 지켜봤다. 그리고 이내 다시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잔뜩 움츠리고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누군가 나를 본다면 지독한 겁쟁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실 맞다. 난 지독한 겁쟁이고, 이런 나의 부끄러운 모습이 여태 채연이와 내 목숨을 지켜줬다고 굳게 믿고 있다. 겁쟁이의 행진은 느리고 조심스러웠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주위를 수십 번 확인하고 바닥에 발바닥을 놓을 때도 신중을 다해서 놓는다. 100m를 걸었는데 1km를 걸은 착각이 들 정도로 심력과 체력을 소모한다. 초조함과 두려움에 잔뜩 스트레스받은 머리는 빨리 걸으라고 조급하게 행동하라 말하지만, 가늘게 늘어선 이성과 경험이 그런 행동을 막는다. 난 단 한 가지 목적, 생존을 위해서만 움직인다.
화랑교를 건너자 내가 숨 가쁘게 뛰었던 거리가 보인다. 그리고 바퀴벌레처럼 차 밑을 기었던 길도 보인다. 그리고 나는 무심하게 그 길을 외면한다. 그리고 도로 위에 표지판을 따라 천천히 움직여 대학 7길로 접어든다.
한쪽에는 아파트가 보였고, 아파트 밑에는 상당한 숫자의 그놈들이 모여 있었다. 이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를까 했는데 집결해 있는 그놈들을 보고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아파트 경계 담벼락을 따라 길을 건넜다.
이 근방의 그놈들은 다 저기 있는 아파트로 몰린 듯 내가 걷는 거리는 한산했다. 뜻밖에 찾아온 행운이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장감을 풀지 않고 살금살금 그곳을 지나쳤다.
그리고 걸어가면서 담 너머로 그놈들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봤다. 아파트 아래에 모여서 하염없이 어슬렁거리는 그놈들. 아파트 안에 생존자가 남아 있나?
그놈들이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초기에 알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아파트는 너무나 조용했다. 혹시 소리가 들려서 몰려온 걸까? 하지만 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거지? 그놈들은 그곳이 자기들 앞마당인 것 마냥 가만히 서 있었다.
소리가 들리는 곳에 광적인 반응을 보이던 평소 행동과는 영 딴판인 모습이었다. 꼭 몰이 사냥을 하는 노련한 사냥꾼의 면모를 보이는 그놈들. 난 그 생각을 한순간 소름이 돋아서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담벼락을 조심히 잡고 안쪽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놈들이 하염없이 아파트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지만 절대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침을 꿀꺽 삼키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군집 생명체 같은 모습을 보여 주던 그들이다. 하지만 지금 보여 주는 모습은 꼭 판단이라는 걸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놈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 혹은 포기하기를 기다리자.
내 생각이 맞는다면 이제 인간들은 뭉치지 못한다. 인류는 태초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했던 행위를 그놈들에게 아주 천천히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사회’, ‘협동’, ‘응집’ 인간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무기. 그것이 서서히 사라지면 세상은……. 저들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놈들은 고립된 우리를 수확하기 시작할 것이다. 마치 그물에 들어간 물고기처럼, 하나하나.
난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내가 그놈들을 과대평가한 것이다. 난 자기합리화를 하며, 그곳에서 시선을 떼고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저절로 돌아가는 시선에 난 뛰어가면서 아파트를 바라봤다.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진 집이 많았다. 분명히 생존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아파트에 고립되었다. 편하게 쉴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어 준 저 회색 건물이 이제는 그들의 생존을 가로막는 감옥이 돼 버린 것이다.
예민한 신경이 움찔거린다. 마치 많은 사람이 나를 지켜보는 착각에 빠진다. 시선이 느껴져 아파트 창문 하나하나를 살펴봤지만, 멀리 보이는 창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그들은 고시원에 처박힌 나처럼 창문을 통해 지옥 같은 밖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었다.
난 눈을 질끈 감고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한참을 뛰었을까, 아파트가 보이지 않자 난 차 옆에 주저앉아 다시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 거친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시야에는 내가 찾던 초등학교가 보였다. 내가 처음 계획했던 두루뭉술한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초등학교로 발걸음을 옮기고, 적당한 거리에서 멈춰 쭈그려 앉았다.
초등학교 운동장은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 접근해 초등학교 담벼락 주위를 반쯤 돌았다. 경계하는 인원도 없었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문 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건물 창문에 흐릿한 사람 그림자들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난 반갑지도 더 접근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하염없이 서서 이상하게 몸을 흔들고 있었으니까. 결국, 나는 그곳에서 빠르게 멀어졌다.
이곳은 전형적인 아파트 단지 거주 주역이다. 아파트가 몰려 있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모두 한곳에 있다. 다 같은 계열인 듯 학교 앞에 명칭이 다 같았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놈들이 보이는 빈도수가 늘어났고, 밀집도도 확연하게 늘어났다.
어떤 한 아파트는 4~5층 구역에선 불이 났는지 시커먼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고 있었다. 난 가깝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곳에 다가가는 건 자살행위와 같았으니까.
처음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들러 모두 확인하고 싶었으나 점점 많아지는 그놈들 숫자에 그러지는 못했다. 하지만 확인은 해야 했기에 멀리서 학교 두 개를 확인했다. 자세히 지켜볼 필요가 없음을 직감했다. 그곳은 먼저 발견한 초등학교와 다르지 않았다.
신림로 3가길을 지나면 갈림길이 크게 보인다. 한쪽은 관악문화관으로 향하는 길이고, 다른 한쪽은 신림로로 향하는 길이다. 그리고 신림로로 향하는 그 길, 그 길로 향하다 보면 만남의 광장이라는 도로 위 휴게소가 보인다.
도로인 정면 신림로는 차들로 가득했고, 역시 만남의 광장 휴게소 주차장 또한 차들로 가득했으며, 휴게소에서 빠져나가려는 차와 들어오려는 차들이 혼선을 만들었는지 주인 없는 차들이 빼곡했다.
나는 그곳으로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일단 내 계획은 이러했다. 빙 둘러서 돌아가지 말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만남의 광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만남의 광장을 지나쳐 서울대 입구 교차로로 지나 서울대로 향한다.
위험한 길임을 당연히 알고 있지만, 도로를 돌아서 가는 게 더 위험했고 멀었다. 그나마 차가 빼곡한 저곳에서 차들 사이로 몸을 숨기거나 위험한 상황에는 차 밑을 기어갈 수도 있다. 경험상 이것이 더 안전하고, 생존 확률도 높았다. 그리고 직선 경로라 신서울대와 거리도 가까웠다.
걸음을 옮기자 담이 보였고, 난 그 담을 힘겹게 넘었다. 그리고 주차장에 들어서자 빼곡한 차들이 시야에 가득했다. 황급히 빠져나간 듯 문이 열린 차들도 있었고, 창문이 깨진 차들도 있었다.
차들 위에 널린 핏자국과 내장 조각들이 추운 날씨에 썩지 않고 마치 냉동실에 고기처럼 걸려 있었다. 차들 중간중간 하늘을 올려다보며 비틀거리는 그놈들도 눈에 들어왔다.
사실 확신이 없었다. 신서울대로 향해서 그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 마치 사막 위를 하염없이 표류하는 이 느낌에 몸에 힘도 빠지고, 머리도 복잡했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만남의 광장
낡은 간판을 읽고 난 총을 꼭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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