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20화 (20/313)

[20]

많은 시체들이 나에게 말했다. ‘꼭 그래야 했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끌려 지옥으로 들어갔다. 모든 게 불타올랐고, 정신은 심연 저 아득한 곳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나는 시체를 장작 삼아 타오르는 불의 바다에서 끝없이 표류했다.

수없이 많은 시체들 사이에서 나도 그렇게 썩은 냄새를 풍기며 불타오른다. 손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개미가 갉아먹는 고통이 느껴진다. 나는 재가 되고 있었다. 많은 시체와 많은 눈빛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입을 열어 또 나에게 물어본다. ‘꼭 그래야 했어?’

나는 이제 모두 불타 재가 되었다. 형태는 없어지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나는 눈을 뜨고 있음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득한 정신을 겨우 붙잡고 타오르는 불에 힘없이 떠다닌다.

그리고 어디인지 모르는 길에 도달했을 때, 저 멀리 불타오르는 오피스텔 위에 한 여성이 보였다. 떨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난간 위에 서 있는 그녀는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녀의 입이 열렸고, 무언가 나에게 말하려 입술을 달싹인다.

‘…….’

‘뭐?’

‘…….’

나는 다시 바닥으로 빨려 들어간다. 여자가 나를 붙잡으려 손을 뻗지만, 나는 그녀와 천천히 멀어진다. 그녀가 열심히 소리치는 게 보인다. 하지만 난 여전히 그녀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바닥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녀는 점점 멀어져 점이 되었고,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바닥 속은 공허하고 외로웠다. 가장 보고 싶은 채연이의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자는지. 눈앞이 흐릿해지고, 속에서 울컥 무언가 올라왔다. 그것은 슬픔이었을까, 분노였을까. 아니면 끊어질 듯 너덜거리는 마지막 미련이었을까. 나는 울컥 올라오는 그것을 입 밖으로 뱉어냈다.

* * *

눈을 뜨자 사방이 컴컴했다. 난 눈을 뜨자마자 죽을 듯이 기침을 했다. 입안은 바싹 말라 있어 메마른 기침만이 나왔고, 기침할 여력도 없어 기침 한 번에 숨은 넘어갈 듯 거칠었다. 나는 발작하듯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바닥을 이리저리 짚어보자 손에 낙엽과 흙들이 잡혔다.

그것과 동시에 오른쪽 귀에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나는 작은 신음을 내뱉으며 오른쪽 귀를 손을 감싸보았다. 하지만 그곳에 있어야 할 온전한 귀는 존재하지 않았다. 반이 사라져 버린 너덜너덜한 귀는 불로 지지듯 뜨거웠다.

상처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손을 확인하니 끈적하게 피가 묻어 나온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장면은 총이 발사되는 모습이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총은 내 머리를 관통하지 못했나 보다. 군인의 어설픈 사격이 내 목숨 대신 귀 반쪽을 가져갔다.

나는 소매로 피와 상처 부위를 막았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총은 그들이 가져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출혈 때문인지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은 흐리다. 띵한 머리를 한 손으로 잡다가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결국 땅바닥을 기어가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힘겹게 전진하고 있었는데, 손에 느껴지는 흙길이 포장된 돌바닥으로 변했다. 그리고 손을 들어보니 물기가 촉촉하게 묻어 나왔다. 나는 익숙한 느낌에 그 돌을 따라 열심히 기어갔다.

그리고 손을 뻗자 철제로 된 물건이 잡혔다. 그리고 그것을 더듬어 이것이 무엇인지 곰곰 하게 생각했다. 잠시 뒤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물 펌프, 맞아 내가 기어온 이곳은 세족장이었다.

쉼터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나는 메마른 입을 달싹이며 중얼거렸고, 심한 갈증에 물 펌프에 손을 올렸다. 펌프질을 하려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고 펌프 앞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손에 촉촉한 감촉이 느껴졌고, 그곳을 바라보자 펌프 아래에 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그곳에 얼굴을 박아 넣고 남은 물기를 열심히 입으로 빨았다.

물에선 짙은 흙냄새와 내 얼굴에서 흐른 비릿한 피 맛이 났다. 나는 그 물에 얼굴을 박고, 살고자 물을 빨아 삼키고 있었다. 눈물이 나왔고, 그때가 돼서야 서러움이 섞인 고통이 폭발했다. 나는 손을 바닥에 내리쳤다. 기침이 나왔고, 눈물이 나왔다.

내가 살려고 죽였어. 그리고 채연이를 살리려고 죽였어.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도 나는! 내가 옳다고, 내가 잘했다고 말하지 못했어. 옳은 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틀린 줄 알면서도 그래야 했던 거야. 나도, 나도 도망치고 싶었어.

분노와 슬픔, 서러움. 그리고 채연이를 향한 그리움이 한곳에 엉켜 복잡한 감정으로 뒤섞였다.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연신 돌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내가 어떻게 해야 했는데? 난 그렇게 중얼거리며 바닥에 얼굴을 박아놓고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울다가 지쳐 펌프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보이지 않던 별이 조금씩 보였다. 모든 차들이 멈추고, 사람들이 사라지자 별은 언제 모습을 감췄냐는 듯 반갑게 모습을 드러냈다.

별들은 저 먼 하늘에 둥둥 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난 별과 눈을 마주치며 입술을 달싹였다. 채연이는 어디로 갔을까? 구조대가 있다는 건 안전한 곳이 있다는 거겠지. 지금까지 구조 활동을 벌인다는 건 다른 대피소처럼 허술한 곳이 아니라는 거겠지.

그리고 강수련 그 여자도 구조대를 따라갔어. 그 정 많은 여자는 채연이를 잘 보살펴 줄 거야. 그래, 당장 내일 죽을지 모르는 상황을 벗어난 거야. 이제, 이제……. 다 잘 된 거야. 모든 게 끝이 난 거야.

난 안심이 되면서도 지독한 허무함을 느꼈다. 그리고 지독한 공허함이 내 주위를 떠돈다. 울면서 나를 바라보던 채연이의 얼굴이 내 머릿속을 괴롭힌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천천히 일어났다.

삶은 항상 고통스러웠다. 지금도 삶이 족쇄처럼 나를 묶었다. 나는 이제 살 이유를 찾지 못하면서도, 살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끔찍한 본능에 나 자신이 한심해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나는 피가 흐르는 귀를 틀어막았다.

비틀비틀 걸어 쉼터 앞에 섰다. 그리고 문고리에 손을 올리고 열었다. 쉼터 안은 어두웠고 차가웠다. 나는 쉼터 안으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봤지만, 가방과 식량을 모두 가져간 듯 쉼터 내부는 황량했다.

몸이 너무 차가워 핫팩을 찾아보려 했지만, 그것들도 전부 들고 갔다. 등산로 중간에 벗어두고 온 가방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 몸 상태로는 그곳까지 갈 자신이 없었다.

나는 쉼터 내부에 무엇이 남아 있나 주위를 둘러보다 저쪽 한구석에 박혀있는 캠핑 도구들을 발견했다. 발견하지 못했는지 이것들은 가져가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추위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곳을 부스럭거리며 뒤졌다. 그리고 공용 화장실에서 한 번 썼던 버너를 발견했다.

나는 그 버너를 들고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빛이 창문 밖으로 나가면 안 되기에 창문이 작은 화장실이 적당했다. 담요도 전부 가져갔는지 덮을 담요가 없는 것도 확인했고, 나는 처량하게 웃으며 버너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나는 한쪽 구석으로 걸어가 벽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버너를 켜자 가스가 얼마 남지 않은 듯 미약한 불이 새어 나왔다. 그 불은 작지만, 화장실 내부를 천천히 밝혔다. 그곳에 손을 대보자 옅은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그 불로 몸을 녹이며, 멍하니 불빛을 바라봤다. 차라리 총을 맞고 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대로 여기서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것도 좋겠지. 마지막으로 채연이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차갑게 식었던 몸이 천천히 녹는 걸 느끼자 나는 눈을 반쯤 감고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불이 타오르는 걸 천천히 바라봤다. 원래라면 가스를 아끼려 불을 꺼야겠지만 난 내일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에 불을 끄지 않았다. 오늘 밤은 불을 바라보다 잠이 들고 싶었다.

눈이 천천히 감긴다. 이 모든 게 그냥 끝났으면 좋겠다. 눈앞에 불이 천천히 약해지는 게 보였다. 그 순간, 무언가가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처음에는 그냥 휴지 뭉치인 줄 알았다. 하지만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을 바라보자 저 구석 무언가 하얀색 종이 한 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헛것을 보았나 하며 잠시 의심했지만, 이내 불빛에 보이는 그것이 종이가 맞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가늘게 뜨고 있던 눈을 완전히 번쩍 뜬다. 그리고 황급하게 그곳으로 기어갔다. 어둠 속에 손을 뻗어 그 물체를 잡아보자 역시 종이가 맞았다.

곱게 접힌 종이는 먼지가 묻어 있지 않았다. 최근에 놓인 종이인 것을 추측하고 떨리는 손으로 다시 불 앞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불빛 앞에서 종이를 열자 급하게 갈겨쓴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난 떨리는 손으로 그 글을 읽었다.

* * *

당신 이름을 알려 주지 않아서 섭섭해요. 그래서 그냥 당신이라 부를게요. 당신이 떠나고 하루가 흘렀어요. 우린 당신이 오지 않아서 모두 걱정했어요. 그렇게 밤새 당신을 기다리다 잠이 들었는데, 해가 뜨기 직전에 그들이 우리를 찾아왔죠.

그들이 처음 쉼터 문을 두드렸을 때 당신인 줄 알고 기뻐했지만, 곧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우리는 공포에 질렸어요. 우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그들이 문을 다시 두드리며 말했죠. 자기들은 구조대고, 우리들을 구출하려고 왔다고. 우리는 모두 기뻐했어요. 당신이 빨리 왔으면 했고요.

서둘러서 창문 밖을 바라봤는데, 군인들하고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보였어요. 그래서 의심 없이 문을 열었고, 그들을 맞이했죠. 우리는 모두 기뻐하며 안도의 눈물을 흘렸어요.

근데 전 이상함을 느꼈어요. 그들은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우리가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정확히 이곳을 찾아왔어요.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아는 듯 당연하게 노크했고요.

그리고 그들이 쉼터 내부를 둘러보더니 말했어요. 일행 한 명이 더 있죠? 그리고 난 거기서 이들이 구조대가 아님을 짐작했어요. 그리고 겁을 먹고 입을 꾹 다물었죠. 근데 진수는 이들이 구조대라고 한 사실이 기쁜 건지 밝은 목소리로 일행 한 명이 더 있다고 말했어요.

그러고 나서 이혜인이 바로 그 사람들에게 말했어요. 당신이 군인을 죽인걸요. 그 군인들은 당신이 어디 있냐고 물어봤고, 이혜인이 곧 온다고 말했어요.

비명을 지르고 싶었어요. 솔직히 이혜인 그년의 얼굴을 내려치고 싶은 걸 수십 번 참았죠.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채연이도 무척 불안해하는 게 눈에 보였어요. 당신에게 도망가라고 알려야 하는데 전해 줄 수단이 없었어요.

결국, 난 그들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말했고, 채연이도 동의했어요. 근데 그들은 절대 안 된다고. 무조건 가야 한다고 강요했어요. 그리고 당신이 오길 기다려야 한다고 무섭게 말했죠. 남매는 절 이상하게 바라봤어요……. 그리고 군인들이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알겠다고 했죠.

그리고 잠시 배가 아프다고 하고 화장실로 들어왔어요. 이 편지를 급하게 써서 당신한테 남겨요. 당신이 꼭 이 편지를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그들은 구조대가 아니에요. 그 의사들은 상처 하나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마치 일반인이 의사 가운을 입은 느낌이었어요.

또한, 군인들도 행동이 하나하나 어색했고, 눈빛마저 이상해요. 그들이 나한테 채연이를 내버려 두고 가자고 했어요. 나는 분노하며 그 군인한테 미쳤냐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러자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어요.

혼란스러워요.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 * *

글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편지는 강수련이 남긴 것이다.

나는 천천히 종이를 접었다. 그리고 동시에 불이 꺼졌다. 화장실은 어둠으로 물들었고, 나는 그 속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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