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그는 헛된 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입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의 심장은 곧이어 멈췄고, 눈은 많은 감정을 담고 사그라졌다. 후회, 원망 모든 게 아지랑이처럼 사라진다.
TV가 꺼지듯 그는 빈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었다. 나의 감상은 거기까지였다. 내 손으로 끊어 낸 생명의 단말마는 매우 작고 초라했다. 그놈이 죽자 같이 따라 들어온 이진수가 멍한 얼굴로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채연이를 끌어안고,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거친 숨을 내뱉으며 뛰어오던 이혜인이 그제야 이 장면을 발견했는지 떨리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 냈다. 그리고 죄책감을 잠시 외면하며 스스로 마음속 한구석을 다독인다. 죽음은 내 가슴 앞에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애써 태연한 척해 보았다. 창을 잡고 있는 손이 덜덜 떨리자 반대쪽 손으로 꾹 잡았다.
고기를 가르던 감촉이 여전히 손에 남아서 머리까지 치고 올라온다. 침을 연신 삼키며 미약하게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에게 되묻고, 되새겼다. 그래, 난 강해야 했다. 죽음 앞에 태연해야 한다. 망설이면 안 된다. 나는 차갑고, 냉철하고, 무서운 괴물이 되어야 한다. 괴물들 사이에서 난 괴물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피를 가지고 있었다.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피를 바라보며 느낀 감상이다. 그리고 짙은 피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자 흐릿했던 정신이 또렷하게 돌아오고, 느슨했던 신경이 날카롭게 비려졌다. 그리고 온몸을 파고드는 이 불안감은 내 머리를 향해 끊임없이 빨간불을 울리고 있었다.
흥건한 피, 그리고 시체. 다 부서진 문. 결정적으로 총소리! 이 모든 조각들이 내 머리에 흩뿌려졌고, 난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기 시작했다. 그 조각들은 하나하나 모이자 내가 가지고 있던 모호한 불안감이 완전해진다.
난 바로 뒤를 돌아 여자에게 외쳤다. ‘짐 챙겨!’ 여자는 잠시 넋을 놓다가 이내 깜짝 놀란 얼굴로 황급하게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도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진수에게 등산 가방을 뺏어 들었다.
바쁘게 짐을 챙기는 여자를 제외하고,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빠진 얼굴로 무언가 말하고 싶은지 입술을 달싹거리는 진수, 여전히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혜인. 그리고 어느새 다가와 내 손을 꼭 부여잡는 채연이.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음에도 나는 마치 등대가 없는 바다 위를 표류하는 기분이었다. 손에 느껴지는 온기가 묵직하게 내 책임감을 짓눌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망설임은 독이었고, 갈림길에서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여기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난 정신이 없는지 짐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여자에게 일단 따라오라고 말하고, 다른 손으로는 채연이 손을 잡으며 황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피부로 느껴지는 공기가 괜히 기분을 나쁘게 한다. 그리고 몸을 옥죄는 불안감이 내 정신을 날카롭게 채찍질한다. 뒤를 돌아보자 일행 모두가 불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즉시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채연이를 끌어안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채연이는 갈수록 가벼워지고 있었다. 부족한 식량과 불균형한 식단. 그리고 수시로 찾아오는 불안감에 채연이는 점점 메말라가고 있었다. 내 품 안에서 얼굴을 가리고 꼼지락거리는 채연이를 안타까운 눈으로 보면서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우리가 잠시 머물던 공용 화장실은 그렇게 서서히 멀어져 갔다. 나를 선두로 일행은 나를 따라 뛰어오기 시작했다. 내 귀로 거칠게 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숨소리 중 가장 거칠게 들려오는 숨소리는 내 소리였다.
묵직한 가방과 채연이의 무게 때문에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한 10분 정도 거리를 벌렸을까. 뜀박질은 속도가 줄어들고, 저 뒤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속도도 천천히 느려진다. 그리고 한계가 다가온 듯 넘어갈 듯한 숨소리가 내 입에서 들려왔다.
이제는 멈춰도 되지 않을까? 이제는 쉬어도 되지 않을까? 달콤한 속삭임이 마음속을 노크한다. 나를 따라오는 일행들 마음도 같은지 내 뒤통수를 따갑게 찌르는 원망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난 뛰는 걸 멈추지 않았다.
‘아저씨……!’, ‘잠시만요!’ 거친 산길에 들어서자 이제는 한계가 왔는지 뒤에서 나를 부르는 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그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뛰기 시작했다. 진수는 연신 거친 숨을 내뱉으며 포기하지 않고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인내심이 다 했는지 빠르게 뛰어와 내 어깨를 붙잡는 진수 때문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내가 뒤를 돌아보자 진수는 거친 숨과 침으로 범벅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조금 멀리서는 자리에 주저앉은 이혜인과 여자가 보였다.
마른 침과 콧물로 범벅이 된 그들을 보고서야 난 폐 안에 묶은 숨을 내뱉었다. 땀은 온몸을 적셨고, 숨은 터질 듯이 치고 올라왔다. 채연이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난 진수를 바라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때 저 멀리서 그놈들이 내뱉는 끔찍한 괴성이 산속을 뚫고 들려왔다. 성대를 찢고 나오는 증오심 가득한 비명은 지친 몸과 신경을 강하게 자극했다. 벌써 공용 화장실에 도착한 모양이다. 내 머리를 찌르던 불안감이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총소리가 그놈들을 불렀다.
하지만 일행들은 설마 이곳까지 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는지 잔뜩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혜인은 잔뜩 겁을 먹었는지 빠르게 동생 곁으로 다가왔고, 여자 또한 얼굴에 걱정을 한가득 매달고 내 곁으로 왔다. 진수도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들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몸을 돌려 다시 뛰기 시작했다. 거칠게 숨이 넘어오지만, 그 숨을 막으려 입술을 꽉 깨물었다. 겨울 산속에 해는 너무나 빠르게 내려앉는다. 한참을 뛰던 우리는 해가 지기 시작하자 몰려오는 두려움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놈들이 내뱉는 괴성이 멈추고 싶은 다리를 끊임없이 채찍질했다.
산은 완전히 어두워진다. 이제는 길이 보이지 않기 시작하고, 옅은 윤곽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돌부리에 걸리며 아슬아슬한 뜀박질이 계속된다. 저 뒤에서도 넘어지고 일어나길 반복하는 듯 작은 비명과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도 일행은 멈추지 않고 다시 일어나 나를 따라왔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되었다. 식은땀과 뜨거운 땀이 내 옷을 모두 적신다. 목적지 없는 밤 속의 표류였다. 우린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혹시 그놈들이 우릴 따라오고 있는 걸까? 막연한 공포 때문에 우린 멈춰 서지도, 방향을 잡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를 더욱더 힘들게 하는 건 지쳐오는 몸도 아닌 머리를 지배하는 절망이었다. 내 걸음은 서서히 느려졌다. 그러다 이내 길 한가운데 멈춰 섰다. 너무나 막연하게 뛰기만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목적지를 찾기에는 주위가 너무 어두웠다.
하필 흐린 날씨에 달도 뜨지 못한 밤. 우리는 그렇게 어둠 속에 미아가 되었다. 나는 숨을 연신 내뱉으며 숨을 골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허공을 바라본다. 일행도 내가 걸음을 멈추자 내 주위로 몰려와 거친 숨을 고른다.
다들 많이 지쳐 있었다. 더 뛰었다간 몸이 완전히 녹초가 돼 버려, 이 어둡고 추운 산속에서 밤을 드러누울 판이다. 난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며 지형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가 등산로를 벗어나 뛰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경사로를 보아하니 우리는 점점 산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숨을 곳이 필요했다. 그놈들이 지르는 괴성과 고함은 이제 들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그놈들의 인지 범위를 좁게 만드는 해가 없어진 이상 우리는 안전하지 못했다. 난 채연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등산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우리……. 어디로 향하는 거죠?’
뒤따라오던 진수가 나에게 물었다. 음성에는 두려움이 잔뜩 끼어 있었다.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기운이 없었다. 이제야 반동이 오는 듯 축 늘어지기 시작하는 몸. 그리고 그놈들이 어둠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내 정신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시야도 미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난 손을 천천히 떨었다.
내가 손을 떨기 시작하자 갑자기 내 손을 당기는 감촉이 느껴졌다. 채연이의 손을 잡고 있는 왼손. 난 무슨 일인가 하고 채연이를 내려다봤다. 채연이는 맑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무어라 웅얼웅얼하고 있었다.
마치 아이의 옹알이처럼 뜻을 알 수 없었다. 난 아이가 힘들어서 칭얼거리는 건가? 하고 의문을 표했지만, 채연이가 이런 적은 처음이라 좀 걱정이 들었다.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마치 짜증을 부리듯 내 손을 몇 번 당긴 채연이는 반대쪽 손을 천천히 들어 한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난 멍하니 그 손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어둠 속에 묻혀서 보이지 않던 작은 표지판 하나가 있었다. 두려움 때문에 시야가 좁아진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었지만, 채연이는 용케도 그 표지판을 발견하고, 나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다.
난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채연이를 다시 끌어안았고, 그 표지판 근처까지 다가가 표지판을 손으로 훑었다. 먼지가 자욱하게 묻어나는 그 표지판 안의 글자를 읽고, 난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 * *
경사는 사라지고 완만한 길이 보였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뛰어가자 표지판이 여러 개 보이고, 용도를 모르겠는 시설물들이 보였다. 난 잠시 멈춰 서서 그 시설물들을 유심히 들여다봤지만, 조약하고 조잡한 놀이기구가 대부분이었다. 아마 산속의 놀이터 같은 곳인가? 하지만 우리가 몸을 숨길만 한 곳은 아니라 판단이 되자 나는 망설임 없이 계속 앞으로 뛰어나갔다.
한 1분을 그렇게 뛰고 있었을까, 저 멀리 동그란 돔형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회색 페인트로 칠해진 건물은 어둠 속에서 마치 자신에게 오라는 손짓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급격히 몸을 틀어 그 건물로 향했다.
내려가는 계단에서 한 번 넘어질 듯 휘청하고, 이내 건물 문 앞에 도착했다. 거친 숨을 정돈하고 소매로 땀을 닦으며 문 앞에 잠시 채연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유심히 그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돔형으로 된 작은 건물이었다. 튼튼한 철문으로 제작되었고, 문 앞에는 큰 글자로 '청룡산 숲속 유아 쉼터'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밑에 작은 글자로 시설물 안내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너무 작은 글자라 이 어둠 속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난 천천히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문이 열리지 않아 아차 싶었는데 다시 힘을 주고 열어보니 녹슨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을 열자 밖보다는 훈훈한 공기가 훅하고 빠져나왔다. 그리고 장시간 사람이 드나든 적은 없는지 먼지가 훅하고 일어났다. 난 기침을 하면서 조심히 안쪽을 바라봤다. 그놈들이 내뿜는 피 냄새나 시체 냄새가 나는지 유심히 냄새를 맡아보았다.
다행히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더 확실한 확인을 위해 조용히 손가락을 튕겨 딱딱거리는 소리를 내보았다. 그리고 창날을 앞으로 내밀고 기다렸는데, 역시나 반응은 없었다. 난 안도의 한숨을 훅 내뱉으며 땀을 닦아 냈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잠시 기다리니 일행들이 하나둘 도착하고 있었다. 혹시나 나를 못 찾고 있으면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모두 이 건물로 들어가는 나를 잘 찾은 모양이다. 난 연신 사방을 둘러보며 남매를 먼저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진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누나를 부축하며 들어갔고, 자전거 센터에서 만난 여자도 머뭇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채연이의 손을 잡고 쉼터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여자가 문 근처에서 내 눈치를 보더니 채연이에게 손을 뻗었다. 채연이도 밝게 웃으며 그녀 품속에 들어왔다. 내가 없는 사이에 매우 친해진 모양인데 조금 섭섭했다. 그래도 아이가 웃고 있으니, 나도 바보같이 웃음이 나왔다. 여자가 채연이를 진심으로 대하는 것 같아 안심된다.
나는 천천히 문을 닫았다. 조금 묵직한 소리와 함께 철문이 닫히고, 나는 마지막으로 문을 잠갔다. 찰칵,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리자 건물 내부는 완전한 침묵에 빠졌다. 이제 안전하다는 게 실감이 난 것인지 사방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들려왔다. 나도 긴장이 풀려 몸에 힘을 빼고 자세를 풀었다.
일행은 잠시 말이 없었다. 나도 말없이 지친 숨을 내쉬었고 시간이 지나 숨이 조금씩 돌아오자 몸은 급격한 피로를 느꼈다. 그리고 근처에서 찰칵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곳이 환하게 밝아왔다. 그곳으로 시야를 돌리자 진수의 얼굴이 보였다.
진수는 라이터를 들고 있었다. 라이터 불빛이 칠흑 같던 내부를 조금이나마 밝혔다. 나는 그 옅은 빛으로 일행들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하나같이 땀과 피곤으로 절어 있었다. 나는 진수에게 라이터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진수는 망설임 없이 나에게 라이터를 내밀었다.
라이터 불빛으로 건물 내부를 살폈다. 건물 내부 구조는 굉장히 단순했다. 일단 그렇게 큰 공간은 아니었지만, 일행들 전부가 지내기에는 충분했다. 20평? 넓게 잡아 25평? 큰 공간에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보였고, 한쪽에는 ‘수유실’이라고 쓰여 있는 방과 화장실이 있었다.
그리고 대피소로도 운영이 되는지 한쪽 찬장에는 먼지가 자욱한 담요들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찾은 방 하나는 창고인지 잠겨 있었다. 난 먼지가 가득한 담요를 꺼내어 먼지를 털어내고 바닥에 깔아 채연이를 앉혔다.
일행들도 잔뜩 지친 얼굴로 내 행동을 똑같이 따라 했다. 쉼터 건물이 차가운 겨울바람은 막아 줬지만, 차가운 냉기는 막아 주지 못했다. 땀이 식기 시작하자 일행들은 덜덜 떨기 시작했고, 난 감기에 걸릴까 봐 가방에서 핫팩을 꺼내 하나씩 나눠 주었다.
채연이에게 핫팩을 주며 흔들어 보라고 말하자 채연이는 그게 마냥 재밌는지 헤- 웃으며 핫팩을 정신없이 흔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밝은 모습을 유지해 주는 채연이 덕분에 고된 상황과 반대로 얼굴에선 옅은 미소가 흘러나왔다. 나도 핫팩을 흔들며 체온 유지에 신경 썼다.
떨림이 멈추자 가방에서 물 한 통과 음식을 꺼내어 채연이에게 준 다음 일행들에게 나눠 줬다. 채연이에게 매일 이런 음식만 먹게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기에 난 입맛만 쓰게 다셨다.
쓴 입맛을 달래듯 난 비스킷을 입안에 구겨 넣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순식간에 비스킷을 먹어 치웠다. 이내 라이터 불을 껐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채연이와 일행들에게 쉬어도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일어나 창문 앞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창문 쪽을 확인했다. 창문은 두꺼운 커튼이 가리고 있었다. 커튼은 소리나 빛이 창문을 통해 새어나가는 것을 조금이나마 막아 줄 것이다. 그리고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찬 공기를 막아 주는 보온 효과도 있었다.
나는 몸을 살짝 틀어 커튼을 옆으로 살며시 치우고, 창문 밖을 바라봤다. 그놈들은 우리를 뒤따라오지는 않은 듯 보이지 않았다. 건물의 창문은 모두 4개였다. 그 창문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커튼 상태를 점검하고 모든 위치를 정찰했다.
이 근처에는 그놈들이 없는 걸 모두 확인했다. 난 긴장이 풀려 한숨을 푹 내쉬고 의자 위에 쓰러지듯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일행은 어느새 음식과 물을 다 먹고, 담요 위에 눕거나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채연이는 언제 그곳으로 갔는지 여자 품에 안겨서 손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자신을 바라보자 고개를 휙 들어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둠 때문에 채연이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매번 그렇듯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게 분명하다.
한쪽에선 벌써 잠이든 남매가 보였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채연이도 잠이 들었는지 작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여자는 채연이의 볼을 쓰다듬고 조심스럽게 채연이를 담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앉아서 허공을 바라보다 아직 잠들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우리 둘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 뒤 여자는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아이가 참 예쁘죠?’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대답이 없자 여자는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를 꼭 지켜 주세요.’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자는 힘이 드는지 피곤으로 가득한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담요를 깔더니 그 위에 몸을 뉘었다. 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머뭇거리며 그녀를 불렀다.
‘이름이 뭐예요?’
그녀는 살짝 놀란 듯 나를 돌아보더니 이내 ‘네?’하고 반문했다. 그 목소리에는 당혹감과 놀라움 그리고 작은 울음기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안도와 다행이라는 감정이 그녀의 얼굴에서 묻어 나왔다. 그녀는 내가 이름을 물어봤다는 것에 기쁨을 표하며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강수련……. 이요.’
나는 대답했다.
‘앞으로 그렇게 부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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