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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13화 (13/313)

[13]

난 천천히 컨테이너 집 문을 열었다. 공사장은 여전히 조용했다. 내가 먼저 몸을 내밀어 그놈들이 있나 없나를 확인했고, 그놈들이 보이지 않자 고개를 돌려 남매에게 손짓했다. 그리고 이혜인은 내 옆에 조용히 붙어서 전에 있던 편의점에 잠깐 들렀다가 갈 수 있냐고 나에게 물어 왔다.

나는 당연히 ‘왜?’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이혜인이 말하길 ‘제가 처음에 가지고 왔던 가방이 아직 거기에 있어요. 그 가방에 챙길 수 있는 건 더 챙길게요.’ 아마 자신들이 먹을 건 스스로가 챙기려는 모양이었다. 난 나쁜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은밀한 걸음으로 천천히 벽을 따라 걸었다. 그 둘은 마치 내 모습을 따라 하듯 그림자처럼 내 뒤를 바짝 쫓아 왔다. 이진수는 걷는 게 좀 불편해 보였지만, 그래도 곧잘 따라오는 게 보였다.

방향을 잡아 일단 지나쳐 왔던 편의점으로 향했다. 먼 거리는 아니었기에 금세 편의점 앞까지 도착했고, 난 편의점 앞에서 잠깐 몸을 숨겨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소리를 내지 않도록 주의하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기절시켰던 그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물건을 챙기고 떠난 모양인데, 난 그놈들이 그 남자를 최대한 빨리 발견하기를 빌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남매가 천천히 따라 들어왔는데 이내 짜증 섞인 목소리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그 남자가 이혜인의 가방을 들고 간 모양이었다. 이혜인이 ‘시발놈’ 거리며 욕을 하는데 많이 분한 모양이다. 난 그녀의 욕을 듣고 깜짝 놀라서 애써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컨테이너 집에서 소비한 물품을 다시 채워 놓고, 주머니도 사탕으로 가득 채웠다.

남매도 내 눈치를 보면서 편의점에 구비된 비닐봉지를 챙겨서 물품을 담고 있길래 일단 만류했다. 비닐봉지는 움직일 때마다 소리도 나고, 들고 움직이기도 불편하다. 차라리 다시 오고 말지, 위험요소를 지니고 다닐 필요는 없다. 난 남매에게 너희들이 덮고 잘 담요 몇 장만을 챙기라고 말했다. 남매는 조심히 담요를 챙겼다.

난 빠르게 편의점 밖을 나섰다. 그리고 혹시나 그놈들이 이쪽을 지나갈까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뒤를 돌아 남매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고, 자세를 숙여 성큼성큼 걸어갔다. 뒤에서는 내 빠른 걸음에 분주하게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또다시 뒤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주위를 살피며 긴장감을 놓지 못했다. 이 추운 날씨에 100m를 전력 질주한 듯 땀이 줄줄 흘렀고, 숨도 차올랐다. 그리고 혹시 지나가는 그놈들을 만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초조한 발걸음을 계속해서 옮겼다.

어느새 포장된 길을 지나고, 내가 출발했던 산 초입에 들어섰다. 그리고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등산로를 선택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허억 허억 숨을 내뱉으며 급한 경사를 오르고 또 올랐다. 가방이 너무 무거워 어깨가 아팠지만, 꾹 참고 걸음을 걸었다.

빠른 속도였고, 곧 도착할 거란 생각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하지만 그 순간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아저씨 잠깐만요!’ 남자 목소리인 게 이진수가 나를 부르는 게 분명했다.

나는 왜 이 중요한 때 나를 부르냐고 짜증 섞인 얼굴로 돌아봤다. 돌아보면서 절대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걸음을 멈추지 않자 이진수는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빠르게 누나를 지나쳐 나에게 뛰어왔다.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 보였지만 무척 중요한 일이라는 듯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아이…….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려요.’

난 발끝과 손끝의 신경이 몸을 관통해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빨리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작게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바람을 타고 내가 듣지 못했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들린다. 분명히 들린다.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내 거친 숨에 가려졌던 아이 우는 소리가 내 고막을 뚫고, 머리를 강타했다. 뒤통수를 맞은 듯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그리고 이내 격정이 속에서 끓어올라 아득한 정신을 끊임없이 불태웠다.

난 가방을 뒤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필사적인 등산로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뛰면 뛸수록 아이 우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숨은 터질 듯이 치솟았다. 난 손에 들고 있는 창을 부서질 듯 잡았다.

방구석에 박혀 있기만 했던 몸이 원망스럽다. 몸이 한계 신호를 보내 왔지만 난 그것을 외면하고, 뛰고 또 뛰었다. 폐는 끊임없이 산소를 요구했고, 난 결국 숨을 멈췄다. 정신이 아득하고 시야가 흐릿했다. 마치 주마등처럼 채연이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이 모든 게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아서, 너무나 무섭고 너무나 두려웠다. 아이 우는 소리가 이제는 크게 들려왔다. 눈앞에 우리가 머물던 공용 화장실이 보인다. 멀리서 본 공용 화장실은 문이 반쯤 박살이 나 있었고, 문 앞을 막아 두었던 자재들은 침입의 흔적을 보여 주는지 이곳저곳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반쯤 박살 난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갔다. 그리고 분노로 떨리는 창날을 꽉 부여잡았다. 채연이는 강하게 얻어맞은 듯 멍이든 뺨을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그리고 자전거 센터에서 만난 여성은 채연이를 등 뒤에 두고 침입자로 보이는 남성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사실상 몸싸움이 아닌 약자의 발버둥으로 보였지만 처음에 봤던 연약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그녀는 한 마리 암사자처럼 남자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이빨로 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채연이는 그 모습을 보며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애처로운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난 고시원에서 탈출할 때 그놈들이 지르던 괴성을 기억한다. 마치 모든 핏줄에서 증오란 증오를 모두 짜 모아 터트리는 괴성. 목적을 향해 한 줌의 망설임도 없이 무조건적인 살의만을 느끼던 그 새까만 증오. 난 그놈들과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분노에 손발이 덜덜 떨리고 피가 머리끝까지 솟구친다.

채연이는 깜짝 놀란 듯 이쪽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울음을 터트렸고, 여자는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물고 있던 그놈의 팔을 놓았다. 괴한은 당황했는지 멍청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럽고 욕망으로 가득한 얼굴. 세상의 종말 앞에서 괴물이 되기를 선택한 쓰레기 같은 놈들. 나는 정확하게 심장을 노리고 창을 내질렀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몸을 틀었다.

창날은 그놈이 몸을 트는 바람에 심장을 찌르지는 못했지만 대신 아랫배를 정확하게 쑤셨다. 고기에 칼을 꽂아 넣는 기분이었다. 내 창날은 피부와 살을 가르고, 내장을 헤집었다. 그놈은 고통으로 찬 비명을 지르며 피를 쏟아 냈다.

난 마지막으로 그 남자의 목숨을 끊겠다는 생각으로 창날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그놈은 고통의 비명을 지르면서도 내 의도를 읽었는지 자신의 복부에 박힌 창을 잡았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바지 뒷부분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고는 나를 겨눴다. 그것이 무엇인지 인지한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리볼버다. 내 기억 속에 경찰이 들고 있던 리볼버와 똑같았다. 그것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무기에 내 몸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 괴한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리볼버를 나에게 겨눴다. 몸을 움직여서 뺏어야 하는데……. 내 몸은 마치 메두사를 앞에 마주한 듯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남자는 방아쇠를 당겼고, 그 순간 옆에서 무언가 휙 날아와 남자를 밀어냈다. 탕! 총성이 울렸고, 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뒤로 넘어졌다. 총성이 고막을 강하게 강타했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난 이명이 울리는 머리를 계속해서 흔들며 시야를 다잡기 위해 노력했다.

삐이이이이…….

내 귀에는 아직도 울리는 이명과 거친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난 멍하니 유리 조각이 떨어진 바닥을 보며 일어나기 위해 땅을 짚었다. 총은 나를 맞추지 못했고, 내 옆에 있는 거울을 산산조각으로 박살 냈다. 입을 멍하니 벌리고 다시 괴한을 바라보자 괴한은 피를 흘리며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총을 다시 쏘려는 괴한과 그것을 막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여자가 보였다. 자전거 센터에서 같이 왔던 그 여자다. 난 마치 꿈속의 한 장면처럼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채연이를 바라봤다. 채연이는 귀를 막고 구석에서 몸을 웅크려 떨고 있었다.

채연이가, 채연이가…….

욱하고 무언가 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정신이 다시 또렷하게 돌아온다. 그와 동시에 분노가 내 몸을 가열하기 시작한다. 난 정신없이 흔들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총을 잡고 버둥거리는 괴한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어설픈 동작으로 그놈 위에 올라타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한쪽 손으로는 그놈이 총을 잡지 못하게 최대한 밀며 몸싸움을 시작했다. 아직도 흔들리는 시야에 몸은 중심을 잡지 못했다. 내가 어설픈 공격을 하는 사이에 그놈이 자기 얼굴을 때리던 내 손을 잡았다. 하지만 난 지지 않고, 그놈의 얼굴에 이마를 들이박았다.

빡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이 번쩍했다. 그놈은 헉하는 신음과 함께 힘을 서서히 빼기 시작했다. 난 그것을 놓치지 않고 그놈에게 잡혔던 손을 빼내 연신 주먹으로 얼굴을 내려쳤다. 코가 부러져 뭉개지고 입술이 찢어진다.

난 그놈이 몸에 힘을 빼기 전까지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주먹은 찢어지고, 아파져 왔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그놈은 몸을 축 늘어트린다. 난 그제야 숨을 거칠게 내쉬며 주먹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쓰러지듯 그놈의 몸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순간 내 품 안겨 오는 작고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채연이다. 채연이는 울면서 떨고 있었다. 말은 안 하지만 왜 이제 왔냐고 나를 타박하는 거 같았다. 나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천천히 채연이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연신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아저씨!’

그리고 순간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황급하게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진수가 보였다. 진수는 내가 던지고 온 가방을 앞에 들고 피가 흐르는 배를 부여잡고 도망치려는 괴한을 문 앞에서 밀어내면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입술을 꽉 다물고 힘을 쓰는 게 참 다부져 보였다.

나는 안고 있던 채연이를 천천히 옆으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저쪽 바닥에 떨어져 나간 창을 찾아서 그것을 두 손 가득 잡았다.

내 사회의 끈은 오늘을 마지막으로 끊겼다. 나는 이제 나약해서는 안 된다. 내가 창을 들자 도망치려는 그놈의 눈에는 공포가 어렸다. 그리고 죽음이 눈앞에 오자 울음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손을 휘저었고, 최대한 여기서 도망가기 위해 발버둥 쳤다.

왜인지 그냥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그런데도 창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죽여야 할까? 그런 물음조차 없었다. 난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망설임 없이 그놈 목에 창을 꽂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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