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작은 텐트에서 3명이 몸을 구기고 들어가 잠을 청했다. 온도가 점점 내려가는 게 체감이 된다. 자전거 센터에서 챙겨온 담요 두 장으로 채연이를 덮어 줬고, 여자는 자신이 가진 담요가 있는지 그걸로 몸을 덮었다. 내가 채연이에게 담요를 주자 그녀는 눈치를 보며 자기 담요를 나에게 권했지만 난 거절했다.
채연이는 자신에게 두 장을 주는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다 왜 나는 두 장이지? 하는 얼굴로 나에게 한 장을 내밀었다. 난 웃으며 일단 받는 시늉을 했고, 아이가 잠들자마자 다시 담요 한 장을 더 덮어 줬다. 모두가 잠들고 밤이 되자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밤에 추위를 떨면서 난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추위가 이어지고 제대로 된 난방 시설이 없다면, 나는 물론이고 채연이가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의료 시설이 없는 지금, 그것만큼 최악의 상황은 없었다.
처음에는 불을 피울까 하다가 이내 생각을 접었다. 난 그들이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시각과 후각에 반응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말 그대로 확실치 않은 정보를 가지고 불을 피워 스스로 위험한 상황을 만들기 싫었다. 그리고 혹시나 다른 생존자가 이곳에 접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을 피우는 건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리고 추위에 떨면서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핫팩이었다. 처음 편의점을 털 때 매우 많은 양에 핫팩을 발견했었다. 식수와 식량을 챙기느라 자연히 가져올 생각을 못 했다. 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다.
바닥에 깔 이불과 덮을 이불 몇 장 그리고 핫팩을 다량으로 가져오면 아마 이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대책 없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조잡한 계획일지라도 어찌 되었든 겨울을 지낼 준비를 해야 했으니까.
추위에 떨며 새우잠을 자다가 아침 해가 보이자마자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버너로 물을 끓이고, 가방에서 통조림 3개를 꺼냈다. 영양 부족도 큰 문제였다. 언제까지 통조림 하나로 식사를 때울 수는 없다. 완벽한 식단까지는 아니어도 성장기인 채연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배가 부를 만큼 음식을 먹여 줘야 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물품으로는 부족했다. 날씨가 더 추워지고 눈이 오기 전에 다시 도시로 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무서웠다. 난 아직도 그놈들이 내 목을 물어뜯는 상상을 하니까. 하지만 난 더는 단칸방 시청자가 아니었다. 채연이와 살아남기 위해 난 이제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내가 부스럭 소리를 내자 그 소리를 듣고 깬 건지 여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채연이를 흔들어 깨웠다. 채연이는 역시 군소리 없이 일어나 눈을 비비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는 게 ‘우리 또 걷는 건가요?’라고 물어보는 듯했다.
나는 그 둘에게 끓인 물과 통조림 하나씩을 주면서 내 계획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부족한 난방 시설, 그리고 언제 바닥을 드러낼지 모르는 식량들. 그것을 말해 주며 수급을 해야 한다는 말과 그리고 혼자 갈 것이라는 말을 했다. 마음 같아선 채연이를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위험할뿐더러 비효율적이다.
바보 같은 미소를 헤 지으며 음식을 먹던 채연이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울먹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나에게 안겨 왔다. 그리고 가지 말라는 듯 내 옷깃을 꽉 잡으며 보챘다. 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입맛을 쓰게 다셨다. 여자는 눈치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난 아이를 달래면서 여자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그녀를 믿을 수 없어 수급에 함께 데리고 갈까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녀는 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채연이를 이곳에 혼자 두고 갈 수는 없다. 난 그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이제부터 채연이를 보살펴야 한다. 내가 없는 동안 채연이 식사를 챙겨 주고 올바른 시간에 잠을 재워라. 그리고 채연이가 외롭지 않게 해야 한다. 등등, 난 그녀에게 동행시켜 주는 조건으로 암묵적인 거래를 했다.
물론 그녀를 믿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난 이 상황을 적절하게 이용할 뿐이었다. 여자는 이곳을 제외하고 몸을 맡길 장소는 없다. 그리고 그녀가 머리가 있다면 이곳을 벗어나는 게 얼마나 멍청한 행동인지 알 것이다.
난 그녀가 멍청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돌려 말하며 당부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그녀의 나약함과 겁쟁이 같은 마음이 당분간 지속되길 빌었다. 채연이도 그녀가 싫은 눈치는 아니니 서로 의지하며 내가 올 때까지 버텨 주었으면 좋겠다.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난 애써 마음속에서 지웠다. 혹시나 나를 따라나섰다가 전부 죽는 상황보단 좋을 테니.
나는 여자에게 등산용 가방을 내놓으라고 말했다. 여성은 화들짝 놀라며 잠시 거부반응을 보이다가 이내 서둘러 가방 안에 물건을 빼내었다. 그리고 조금 싫어하는 눈치지만 나에게 가방을 내밀었다.
내가 헛기침을 하며 많은 물건을 담아오기 위해서다. 라고 말해 주자 그제야 그녀는 안심하는 눈치였다. 생각보다 좀스러운 여자다. 그리고 나는 가방 안에 하루 먹을 물과 통조림을 담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제외한 모든 걸 이곳에 두고, 그녀와 아이에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식량을 아껴 먹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울고 있는 채연이를 강하게 안아 주고 내가 가야만 하는 이유를 조곤조곤 말해 주었다. 아이는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건지 고개를 도리도리하면서도 마지막엔 결국 끄덕끄덕 고개를 흔들었다.
난 내가 올 때까지 이곳에 벗어나지 말라고 당부하며 문을 나섰다. 그러자 그녀가 채연이 손을 잡고 문 앞까지 걸어와 내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가르쳐 준 방법으로 문을 단단히 잠그고 잡동사니로 막아 두었다. 난 그 모습에 조금 안심하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난 그놈들이 이 근처에 없는 걸 확인하고 올라왔던 등산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내리막길이라 그런지 힘도 많이 들지 않았고, 산 입구까지 내려가는 시간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난 산 입구에서 천천히 도시를 바라보았다. 마치 지옥의 앞에 도달한 것 같았다. 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움직여 걸으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도시 안으로 걸으면 걸을수록 그놈들 숫자가 많아지는 게 보였다. 난 최대한 외곽으로 돌며 그놈들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놈들은 한 방향을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거나 혹은 왔다 갔다 했다. 또 자기 혼자 뱅뱅 도는 녀석도 있었고, 벽을 보고 가만히 서 있는 녀석도 있었다.
내가 나름대로 근접 거리에 도달해 숨소리를 내어 보아도 그놈들은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확실히 해가 뜨면 그놈들의 움직임은 둔해지고 인식 범위도 줄어든다. 역시 낮에 움직이는 게 옳다는 걸 확인하고 나 스스로가 기특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골목 담벼락을 따라 주위를 둘러보며 계속 걸었다. 그리고 편의점이나 슈퍼가 있나 하고 두리번거리기를 반복했다. 직선 경로 500m도 걷지 않은 거 같은데 예민해진 신경과 불안한 마음에 땀이 주룩주룩 흘렀고, 벌써부터 다리가 아팠다. 난 경직된 몸을 겨우겨우 옮기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학교 밀집 구역을 벗어나자 주택 지역이 나타났다. 신림동치고는 꽤 한산한 구역이었다. 아직 공사하는 공사장도 많았고 재개발 구역도 보였다. 나중에 공사장 위치를 기억해 뒀다가 다시 돌아올 길을 찾기 위해 작은 지도를 그려 그곳에 표시해 두었다.
간혹 보이는 건물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거나 문이 부서져 있었다. 창문이 모두 깨진 건물을 볼 때마다 두려움이 몰려와 서둘러 지나갔다. 서울시에 많던 그 인구가 모두 증발이라도 해 버린 듯 거리에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그놈들을 피하며 숨고 기다렸다. 그리고 한참을 걸었을까? 저 앞에 CU 편의점 간판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 시간이 더 걸리겠구나 하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근접 거리에 편의점을 발견하자 괜히 기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무엇을 챙겨야 할지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식량, 그리고 핫팩. 혹시나 있으면 좋은 생필품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식수. 난 생각을 마치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가깝게 다가갈 무렵, 난 편의점 내부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보이는 사람 그림자로 이곳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알았다.
피가 싸늘하게 식고, 가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생존자다.
* * *
분명히 사람이 내는 소리가 맞았다. 간혹 들려오는 고함은 나를 긴장 시키게 했다. 흐르는 긴장 속에 나는 나무로 된 창날을 꽉 잡았다. 심장이 빠르게 요동쳤다. 그냥 확인만 하고 가자, 위험을 감수하지 말자. 그렇게 속으로 되뇌면서 천천히 편의점 쪽으로 접근했다.
혹시나 해서 주위를 둘러봤다. 이 근처에는 그놈들은 없었지만, 저 멀리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 그놈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해가 떠 있어서 그런지 인지 범위가 상당히 줄어 있었다. 먼 거리라 그런지 편의점 내부에서 들리는 소리는 듣지 못한 모양이다. 하긴 놈들에게 들렸으면 저들은 벌써 죽었다.
그런데도 괜히 불안했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조금 닥쳐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천천히 접근해 자세를 잔뜩 웅크리고,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있는 곳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들어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안쪽을 바라보았다. 난 긴장감에 침을 삼키고 창날을 양손으로 꾹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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