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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7화 (7/313)

[7]

다행히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건 코끝을 찌르는 썩은 냄새였다. 전기가 끊겨 냉장이 돌아가지 않았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없는지 옅은 먼지가 쌓여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안심하고 작은 목소리로 채연이를 불렀다.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채연이는 내 목소리에 반응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웃으면서 그 손을 잡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음료 칸으로 향했다. 당연히 음료를 진열해 둔 냉장고는 꺼져 있었다. 하지만 물이 상할 염려는 없는지라 빠르게 문을 열고, 작은 물통 여러 개를 챙기기 시작했다. 이 작은 키티 가방에 이것들을 챙겨 넣을 수는 없어서 무언가 담을 것을 찾아 편의점 내부를 이리저리 뒤지고 다녔다.

그리고 운 좋게 카운터에서 큰 백팩을 발견했다. 그 백팩 안에는 전공 책과 종이와 펜이 가득했는데, 아마 알바를 하던 직원이 학생이었나 보다. 일기를 써야 하는지라 펜 몇 자루를 챙겼고, 가장 중요한 식수를 가방 한편에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전에 가지고 있던 키티 가방에도 물통을 몇 개 넣어서 채연이에게 메어 주었다. 아이는 이게 뭐냐는 듯 물끄러미 나를 봤고, 난 웃으면서 비상용이라 말해 주니 아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가장 먼저 생각난 건 통조림이었다. 통조림은 보존 기간이 길고 안전하다. 그리고 보존식품치고는 영양분도 풍부하고, 맛도 준수했다. 난 아이의 손을 잡고 통조림 칸으로 향했고, 보이는 통조림을 손에 잡히는 대로 쓸어 담기 시작했다.

내가 가방 속에 통조림을 차곡차곡 쌓는 동안 옆을 바라보니 아이가 사라져 있었다.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채연이는 멍하니 과자 칸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가락을 입에 물고 과자 칸을 바라보고 있는 게 영락없는 꼬마 아이였다.

내가 작은 목소리로 하나 집으라고 말해 주니, 아이는 빠른 동작으로 알록달록한 과자 하나를 집었다. 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채연이를 위해 부피가 작은 비스킷 과자들을 몇 개 챙겨 뒀다. 그렇게 한참을 챙기다가 가방을 들여다보니 가방에는 내가 즐겨 먹던 통조림으로 반쯤 차 있었다.

통조림을 더 담으려 했지만 남은 통조림을 보니 부피도 쓸데없이 크고, 조리가 없으면 맛이 없어 먹기가 힘든 종류였다. 내가 챙긴 통조림과 같은 상품을 찾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편의점 안쪽에는 진열하기 전 물건을 쌓아 놓는 창고가 존재한다. 그곳에서 몇 개 더 챙기고,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야겠다. 난 채연이에게 과자를 마저 먹고 있으라며 말하고 창고 앞으로 걸어갔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잠겨 있지는 않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고, 문을 열자마자 콧속으로 퀴퀴한 냄새와 먼지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상하게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음식물이 썩었나? 하고 생각해 봤지만, 이 냄새는 음식물 썩는 냄새보다 더 고약하고 끔찍했다. 난 인상을 찡그리며 코를 막았다.

난 어두운 창고 안을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리고 눈이 어둠에 서서히 익숙해질 때쯤 창고 한쪽에서 무언가 웅크려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숨이 턱 하고 막혀왔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져 비명이 나올 것 같았지만, 나는 그 비명을 참으려 서둘러 입을 막았다.

그런 노력에도 웅크린 무언가는 나를 인식했는지 몸을 들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기괴한 울음소리에 내 정신이 아득히 멀어졌다. 그놈이다.

포식자를 마주한 듯 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죽음의 공포가 다시 한 번 내 눈앞에 나타났다. 입술을 깨문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나는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굳은 머리를 굴려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비명같이 터져 나오는 고함을 내질렀다.

‘채연아!!! 도망가!!’

내가 소리를 지르자마자 그놈은 고개를 빠르게 돌렸고, 재빠르게 나에게 뛰어왔다. 그놈의 눈은 그때의 밤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놈이 나에게 달려들자 나는 반사적으로 그놈의 어깨를 잡았다. 엄청난 힘이 그놈에게서 느껴졌다. 나는 형편없이 밀려서 벽에 부딪혔다. 필사적으로 그놈을 밀어내려 발버둥 쳤지만,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내 어깨를 통해 그놈의 완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놈은 나를 씹어 먹으려 하는지 끊임없이 이빨을 딱딱 부딪쳤고, 시선은 오직 내 목만을 향하고 있었다.

그놈 이빨에 낀 살점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놈의 입에서는 시체 썩은 내가 진동했다. 나는 올라오는 토악질을 삼키며 그놈에게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그리고 목을 힘겹게 돌려 채연이가 있던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입으로는 애처롭게 아이를 불렀다.

채연이는 주저앉아 있었다. 과자를 먹고 있었는지 입가에는 과자 부스러기가 묻어 있었다. 내가 도망가라 소리 질렀지만, 채연이는 두려움 때문에 힘이 풀렸는지 꼼짝도 하지 못했다.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고, 입을 힘없이 벌리며 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아이는 그때의 악몽을 연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점점 빠지는 힘에 아무리 도망가라고 외쳐 봐도 채연이는 움직이지 못했다. 멍하니 주저앉아 나를 바라보는 채연이를 보다가 다시 내 목에 다가오는 이빨을 보니 많은 생각이 머리를 교차했다.

내가 죽으면 다음은 채연이 차례겠지. 만약 채연이가 도망간다 하더라도 그 어린 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혹시, 혹시 그냥 그곳에 있어야 하는 게 맞았던 걸까. 너무나 허무한 결말이었다. 난 마지막으로 채연이와 눈을 마주치고 눈을 감았다.

여기서 죽어 버리면 이 악몽도 끝이 나겠지. 어쩌면 그날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조금 아플지는 몰라도 한순간일 거야. 눈을 감고 천천히 손에 힘을 풀기 시작했다. 그놈의 이빨이 단숨에 내 목을 내려치는 단두대처럼 보였다. 그래, 이제 그만하자.

‘아빠.’

채연이는 그때 분명 그렇게 말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그날 죽었다. 가족을 뒤로하고, 자신 혼자 살기 위해 도망가다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채연이는 죽는 순간에 그 아버지를 부르는 것일까? 혹은 온전치 않은 정신에 나를 아빠라고 착각하는 걸까?

분명한 건 그 상황에서 나를 깨워 준 건 아빠라는 그 한 마디였다. 마치 머리에 벼락이 친 듯 죽어가던 정신이 번쩍 깨어났고, 뒤로 밀려나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동정, 자책, 기쁨, 착각.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런 감정이 내 몸에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아득했던 정신은 이상하게 또렷하게 들어와 시야를 환하게 밝혀줬다. 그놈 얼굴이 눈앞에 들어온다. 입술을 씹듯이 꽉 물었다. 그러자 입술이 찢어져 피가 맺혔다. 맺힌 피는 주르륵 흘러 입안으로 들어왔다. 그 피는 죽어 있던 장작에 휘발유를 뿌린다. 가슴이 급격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머리에 아드레날린이 서서히 퍼진다. 그리고 그놈을 향한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

여기서 끝내기 싫었다. 쓸모없는 인생이었다. 난, 난 그런 쓰레기로 죽고 싶지 않았다. 난 입으로 그렇게 읊조리며 필사적으로 그놈을 밀어냈다. 아이를 살릴 거야. 그리고 나도 살아갈 거야. 고개를 돌려 채연이를 바라봤다. 나는 이제 채연이에게 도망가라 소리치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라고 했다. 내가 곧 갈 테니까.

공포가 가신다. 살고 싶다는 욕망과 그것을 뺏으려는 자에 대한 분노가 두려움을 밀어낸다. 내 눈앞에 있는 그놈이 붉게 눈을 빛낸다. 난 지지 않고, 그 눈빛 앞에 전의를 불태웠다. 여전히 그놈은 내 피와 살점에 집착하고, 강한 완력으로 내 손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놈은 지치지 않는다. 난 계속 이렇게 힘으로 씨름해 봤자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한쪽 손으로 그놈의 목을 잡고 밀어내며 다른 손으로는 옆을 훑었다. 마치 무언가를 잡으려는 그 행동은 운명처럼 내 손에 무언가 잡히게 해 줬다.

손안 가득 들어오는 그것을 꾹 잡고 내 시야 안에 들어 올렸다. 창고에서 박스를 뜯기 위해 갖춰 둔 것인지 볼품없는 가위 하나가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움켜잡고 망설임 없이 그놈 턱에 꽂아 넣었다. 처음 내지른 공격은 턱뼈에 걸려 막혔다. 하지만 난 한 번으로 끝내지 않았다. 두 번째 공격은 그놈 볼에 반쯤 박혔고, 난 필사적으로 다시 가위를 빼내 그놈 턱 아래로 꽂아 넣었다.

무언가 걸리는 느낌과 돼지고기가 갈라지는 느낌이 손끝을 타고 머리까지 전해진다. 작은 전율이 흘렀다. 가위는 날 부분이 반쯤 들어가 그놈 턱을 세로로 뚫고 있었다. 유효타가 들어갔는지 그놈의 썩은 피가 쏟아졌고, 나는 반사적으로 눈과 입술을 꾹 닫았다. 그놈의 힘은 점점 빠지기 시작했고, 난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난 발을 들어 그놈 복부를 한 번 걷어차고, 가슴팍을 힘껏 밀었다. 관통된 가위가 유효했는지 그놈은 형편없이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그놈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이 보였다. 난 이러고 있을 틈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난 비틀거리며 뛰어가 그놈 머리를 발로 찼다.

난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그놈의 숨을 끊어야 한다. 난 침착하게 사방을 둘러보며 그놈을 죽일 무기를 찾았다. 그리고 한쪽에 놓인 대걸레 자루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비틀거리며 뛰어갔다. 난 나무로 만들어진 대걸레 자루를 잡고, 발로 밟아 머리 부분을 부러트린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대걸레 자루를 들어 올리자 대걸레 자루 끝은 날카롭게 부러져 있었다. 난 지체할 시간도 없이 그놈이 쏟아내는 썩은 피를 밟으며, 그놈에게 다가가 거침없이 머리에 대걸레 자루를 찔러 넣었다.

하지만 이런 엉성한 무기로는 두개골을 뚫지 못했다. 난 결국 대걸레 자루를 방망이처럼 들고 힘껏 그놈 머리에 내려찍었다. 머리를 부셔야 한다. 한 번으로는 죽지 않는다. 나는 미친놈처럼 그놈 머리를 연신 내려찍었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무언가 푸석 하는 소리와 함께 그놈은 움직임을 멈췄다.

그놈의 붉은 눈은 방전된 듯 천천히 빛을 잃었고, 난 부러진 대걸레 자루를 잡고 거친 숨을 내쉬며 침을 삼켰다. 그리고 갑자기 치솟아 오르는 무언가를 한쪽에 토해냈다. 난 한참을 토악질을 하다가 천천히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일어났다.

황급하게 아이 쪽을 바라보자 채연이는 울면서 나에게 안아 달라는 듯 양팔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망설임 뛰어가 품속에 채연이를 안았다. 서로가 서로의 거친 숨을 공유하며 서서히 떨림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 * *

움직일 힘이 없어서 그놈 시체를 한쪽에 박아두고, 우리는 창고로 들어왔다. 그리고 두꺼운 창고 문을 잠그고, 무거운 상품 자재들로 입구를 막았다. 우리는 통조림과 물을 먹으면서 체력을 회복했고, 해가 지자 아이는 피곤했는지 금방 잠이 들었다.

편의점에서 찾은 손전등을 켜 오늘 있었던 일을 전부 일기에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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