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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4화 (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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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모순이다. 난 이 단칸방 창문에서 많은 죽음을 지켜봐 왔다. 나는 그 죽음 앞에 같이 저항하기도, 그리고 같이 싸우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방 한편에 앉아 얌전히 편한 죽음을 기다릴 뿐이다.

내가 보는 이 작은 창문이란 그저 죽음을 방송하는 작은 TV였다. 나는 마치 TV를 시청하듯 지켜보고 방관하며 모른척했다. 그리고 난 계속 자신을 이렇게 다독여 왔다. '넌 슈퍼 히어로가 아니야.' 맞는 소리다.

난 저들을 구원할 의무도 힘도 없었다. 그렇기에 난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그 아이를 구하려고 했다. 변덕이냐? 변태냐? 저 아이가 여자라서? 아니면 어리니까 불쌍해서? 혹시 소설에나 나오는 극적인 상황을 기대해서? 그 소설에는 배를 뜯기는 사람도 걸어 다니는 시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 앞에 난 선한 사람이 될 생각도 없다. 그래도 난 하려고 한다. 그래서 일기에 참회록을 쓰는 마음으로 작성한다. 내가 그동안 외면했던 사람들 앞에서 이제야 공포를 직면하고, 나처럼 좁은 곳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저 아이를 데려올 생각이다. 나는 여태 바라고 또 바랬다. 이 방구석에서 나를 꺼내줄 손을!

저 아이도 아마 같을 것이다. 아니 분명히 같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가두고 빠져나올 용기가 없어 걸어 나오지 못한다. 그것은 평범한 남들은 알지 못한다. 같은 동류끼리만 이해하고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구해야 한다.

난 반나절을 일기 앞에 앉아 침착하게 고민하고 계획했다. 작은 블록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는 마음으로 실수 없이 진행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서야 이성적인 생각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많은 문제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가장 먼저 문 앞을 막은 책상을 치워야 한다. 그리고 내 방문을 열고, 고시원 복도로 향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큰 문제점은 고시원 내부에 '그놈'이 존재 하느냐다. 난 그놈들의 모든 것을 두 눈 가득 지켜봤다. 그들은 일반적인 성인 남성을 능가하는 완력과 집착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공통적인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고 집착한다. 그리고 사람을 사료로 만들어야 만족하고, 제 자리를 찾아가는 마치 '악의 근원' 같았다. 그들은 휴식시간도 필요 없었고, 사기도 떨어지지 않는다.

지극히 인간만을 사냥하는 타고난 사냥꾼 같았다. 이렇게 그들에 대한 생각을 마치고 난 그들과 싸울 생각을 말끔하게 포기했다. 그들과 최대한 마주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또 고려해야 하는 문제는 내 몸 상태였다. 많은 시간을 굶었고, 수도가 끊긴 이후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목이 바싹바싹 마르고 정신은 어지럽다. 원래 운동을 하는 신체가 아니란 걸 대변하듯 온몸이 무기력하다. 이런 상태로 아이를 구하러 나갔다간 뜀박질 두어 번에 지쳐 쓰러질 판이다.

나에겐 먹을 것과 물이 필요하다.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고시원에 살면서 내가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플 때 향했던 장소를 생각해 보면 되니까. 바로 복도를 지나 중간쯤에 위치한 공용 부엌. 공동으로 쓰는 냉장고가 존재하고, 조리가 가능한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그리고 무료로 제공하는 라면과 밥이 있다.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당장 책상을 치웠다. 그리고 다짐하고 몸을 일으켰는데 손잡이를 잡자마자 내 몸은 시간이 멈춘 듯 그 자리에서 얼었다.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새, 아니면 수십 년을 있던 새장을 나오려는 새. 내게 찾아온 건 용기도 아니고 해방감도 아닌 단순한 공포심과 절망이었다. 난 왜 내 발로 이 안전한 곳을 떠나려 하는 거지? 그 애가 뭐라고? 그냥 여기서 얌전히 죽음을 기다리자.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저절로 손잡이에서 손은 멀어졌다.

이 문을 열자마자 그놈이 내 목덜미를 물어뜯는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식은땀이 흐르고, 힘없는 다리를 사정없이 떨렸다. 내가 본 죽음들이 마치 주마등을 스치듯 눈가에 아른거렸다.

아기의 울음소리 그리고 그 엄마의 비명.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먹먹한 음성이 내 머리를 스친다. 그리고 마치 달리기를 하듯 심장이 빠르게 요동친다. 먹히는 아버지, 포기한 어머니. 그리고 머릿속에 넘어져 울고 있는 여자아이가 차 밑으로 들어가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 눈을 기억할 때쯤 나는 문을 열고 있었다.

정신 차리라는 듯 12월의 찬바람이 내 얼굴을 스쳤다. 손잡이를 잡고 일어나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이 고시원에 살면서 수없이 걸어 본 복도지만 그날만큼은 무척이나 생소했고 어려웠다. 양쪽 복도를 확인하지도 않았다. 정신이 없었나 보다. 그놈들이 복도에 없었길 망정이지.

걸어 다니는 내내 고시원 내부는 조용했다. 모든 문은 닫혀 있었고, 조심히 들여다본 공용 부엌도 아주 고요했다. 아침이 지나고 점심 사이는 항상 이렇게 고요했다. 아마 사건이 터진 시간이 그때쯤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학생들은 공부하고, 성인들은 일을 하는 시간이니까.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황급히 발걸음을 옮겨 공용 부엌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잠갔다. 그리고 테이블을 옮겨 마치 버릇처럼 문 앞을 막았다.

가장 먼저 냉장고를 열어 봤다. 전기가 끊겼지만, 난방이 들지 않는 차가운 대기 온도에 이상하게 썩은 냄새는 나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열어 봤지만 이내 바로 문을 닫았다. 시큼한 냄새 때문에 정신이 확 들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다시 문을 열어 한쪽에 물통을 꺼내 황급하게 입으로 가져갔다. 물이 그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다. 당연히 전기는 끊겨 불을 들어오지 않았고, 가스레인지 또 한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따뜻한 라면을 먹지 못한다는 생각에 잠시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항상 밥으로 가득 차 있던 밥솥을 열어 보니 시큼한 냄새가 풍겨 바로 닫아 버렸다. 긴장으로 떨리던 다리는 긴장이 풀리자 참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한쪽에 놓인 라면박스를 뒤져 라면을 꺼내고, 라면 봉지를 뜯어 생라면을 정신없이 입으로 가져갔다. 고소했다. 오랜만에 들어온 음식에 배는 사정없이 요동쳤다.

생라면을 부숴 먹으면서도 내 정신은 온전히 밖에 쏠려 있었다. 천천히 창가로 걸어가 밖을 바라봤다. 그 아이가 있던 자리는 그놈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놈들 다리에 막혀 아이의 모습은 확인하기 힘들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가 지켜보지 않은 사이에 그놈들에게 당한 건 아닐까?

그렇게 불안한 생각에 계속해서 차 밑을 살펴봤지만, 그놈들은 비켜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놈들을 저기서 비키게 해야 이 계획에 모든 게 들어맞는다. 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전에 기록으로 그놈들은 청각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내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다. 최저 요금으로 맞춰 전화를 받는 기능만 가능한 3G 폴더폰. 스팸 전화만 걸려오던 이 고립의 상징물에 나는 작은 희망을 걸고 있다.

일기를 쓰는 지금은 공용 부엌이다.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 * *

눈을 감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아마 2시간 정도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긴장이 살짝 풀려서 피곤을 풀려 해도 계속 밖이 신경 쓰여 잠을 이루지는 못했다. 아이가 숨어 있는 차 근처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시작했고, 이내 도시는 어둠과 침묵으로 뒤덮였다. 지기 시작하는 해를 보고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마치 달리는 차량에 몸을 던지기 직전의 기분이었다. 내가 살 수 있을까? 아이를 구할 수 있을까? 생전 처음 느껴보는 아찔한 감각에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머리와 몸은 상당히 겁을 먹고 있었다. 예민한 감각은 계속해서 뇌와 신경을 건드렸고 숨을 거칠게 만들었다. 무서웠다. 배가 찢기던 경찰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죽음의 공포가 눈앞에 아른거렸고, 나는 처음으로 살아 있음을 느꼈다. 뛰는 심장을 가까스로 달래고 괜한 상상을 해 봤다. 아이 이름은 무엇일까? 제일 처음 만나면 뭐라고 인사하지?

마른침을 삼키고 어둠으로 뒤덮인 밖을 바라봤다. 고시원은 2층이다. 하지만 건축된 지 꽤 오래된 건물로 지대가 굉장히 낮다. 그래서 지상까지 높이는 통상적인 2층보다 살짝 낮은 높이에 불과하다.

가장 처음에는 1층으로 내려가 밖으로 나설 계획을 세웠지만, 1층은 편의점과 피시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람이 많이 다닐법한 구역이고, 통상적으로 당연하게 그놈들이 많을 게 분명했다.

그놈을 한 놈이라도 만난다면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긴다. 그래서 생각하다 결정한 루트가 바로 공용 부엌 한편에 존재하는 다른 창문이다. 밑으로는 화단이 보이고, 인적이 드문 뒷골목이다. 이 길은 뒤쪽에 창고로 향하는 길이라 건물주인 말고는 왕래가 없는 길이다. 가끔 담배를 피우러 들어오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낮에 확인한 길은 몹시 조용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유인책은 바로 이 핸드폰 벨 소리다. 핸드폰 타이머를 정확히 5분 뒤로 맞춰 놓는다. 그리고 아이가 숨어 있는 차 쪽 창문에 그 핸드폰을 올려둔다. 그놈들은 소리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차가 멈추고, 사람이 없어지자 항상 소음으로 가득했던 도시는 너무나 조용해졌다.

그렇기에 작은 소리도 평소와 다르게 멀리 그리고 크게 퍼진다. 그러니 이 핸드폰 벨 소리는 이 근처는 물론 저 도로 위 차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놈들에게까지 들릴 게 분명하다. 놈들은 이 고시원 건물로 몰려들어 이 핸드폰 소리에 정신이 팔릴 동안 난 다른 창문으로 뛰어내려 아이가 있는 차로 향한다는 굉장히 조잡한 유인 계획이었다.

숨을 크게 내쉬고 뱉었다. 어젯밤 부엌 구석구석을 뒤져 발견한 어린이용 키티 가방에 남은 물과 생라면을 담았다. 작은 공간 때문에 제일 작은 물병 2개와 라면 두 개가 한계였지만 굶주리고 목말라할 아이를 생각하니 이 가방조차 기꺼웠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난 바로 행동을 시작했다.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핸드폰에 빠르게 타이머를 맞춰 놓고 창문에 몸을 들이밀며 잠시 고민했다. 한동안 운동과는 담을 쌓고 있던 자신이다. 1년 전으로 돌아가 2층에서 몸을 날릴 용기가 있었는지 나에게 묻고 싶었다. 그리고 난 창문 앞에 매달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게 처음으로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낙법은 고사하고 형편없이 떨어져 화단에 몸을 박았다. 다행히 작은 나무들과 흙이 내 받침대가 돼 주었다. 나는 떨어지자마자 주위를 살펴봤다. 하지만 어둠에 싸인 골목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공포에 질려 흙과 화단에 몸을 박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장이라도 그놈들이 내 목을 잡고 뜯어 먹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흙이 묻든 말든 꼼짝없이 흙 속에 머리를 박고, 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천천히 지나고 골목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넓어진 동공에 어둠 속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맞춰둔 알람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들어본 기상 알람은 몹시 맑고 고왔다. 따르릉거리는 소리가 고요한 도시를 가로질러 괴물들을 눈 뜨게 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던 사실이지만 그들은 어둠 속에서 눈을 무섭게 빛내고 있었다.

마치 맹수처럼 눈을 번쩍 뜨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은 굉장히 기괴했다. 처음에는 그저 작은 담뱃불 같던 빛들이 하나둘 모이더니 이내 빛무리가 되어 파도처럼 고시원 앞쪽으로 몰려들었다.

눈을 가늘게 떠 아이가 있던 차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엔 더는 눈을 빛내는 그놈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난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지만 이내 입을 꾹 다물고 천천히 일어나 몸을 반쯤 숙이고 이동했다.

건물 근처를 벗어났을 무렵 고시원 건물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공용 부엌의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분명했다. 그리고 곧 시끄럽게 울리던 핸드폰 소리도 조용해진다. 나는 시간이 없음을 깨닫고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그리고 이내 들려왔다. 그들이 분노하는 소리가.

사람의 전신을 망치로 다져 놓으면 그런 비명을 지를까? 혹시 속에서 증오라는 감정을 끄집어내면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일까? 그들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고, 이내 고시원 건물에서 부수고 박살 내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지금 조용히 갈 때가 아님을 빠르게 자각했다. 그리고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그냥 뛰었다.

거리는 상당히 가까웠다. 멈춰진 차들을 피하고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싸구려 손전등을 꺼내 키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급하게 기억을 뒤져 차 종류를 빠르게 기억해 냈다. 도로 중간! 흰색 아반떼! 나는 속으로 그렇게 외치고 식은땀을 잔뜩 흘렸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한 숨을 급하게 삼켰다.

시간이 없다. 흔들리는 동공을 잡고 하나하나 차 종류를 전등으로 비춰보며 확인했다. 그리고 1분이 지나서야 나는 발견했다. 도로 중간에 있는 흰색 아반떼. 주위에는 찢어진 살점과 뼛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차 밑을 손전등으로 비춰봤다.

아이는 깨어 있었다. 밤이 왔음에도 자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눈앞에 지나가는 그놈들의 다리와 울음소리에 공포에 떨었겠지. 아이는 갑자기 비치는 빛에 눈을 가리며 마치 작은 새처럼 떨고 있었다.

그 아이는 몹시 작은 아이였다. 이제 막 초등학교 저학년이 되었을 어린 여자아이는 눈앞에서 아빠와 엄마의 죽음을 지켜봤다. 그리고 두려움 앞에 적응하지 못해 막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나처럼 새장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그 아이에게 나는 처음으로 손을 내밀었다. 나와 같은 아이, 작은 공간에 공포에 떨었을 아이. 그때 처음으로 나는 웃었다. 망설이던 아이도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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