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3화 (3/313)

[3]

난 아직도 살아있다.

어제 그녀의 죽음 이후로 이 도시는 침묵에 빠진 것만 같다. 가끔 멍하니 벽을 바라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창밖을 바라보면 숨이 턱 막혔다. 막힌 차들 사이로 어슬렁거리는 그들은 내가 사는 고시원 근처 길가를 빼곡하게 수놓는다.

무엇을 그렇게 찾는지 연신 두리번거리는 그놈들은 가끔 무언가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그곳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아무것도 없거나 포식을 끝냈다면 다시 제 자리를 찾아와 이상한 괴음을 내뱉는다.

그들의 행동 패턴은 그만큼 단순했다. 하지만 인간은커녕 단순한 생명체 같지도 않은 행동에 난 도리어 더한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낮이 되면 그놈들을 하염없이 관찰하다가 밤이 되면 공포에 떠는 시간이 계속된다.

오늘 아침부터 수도가 끊겼다. 단칸방에 딸려 있는 화장실이 이제는 쓸모가 없어졌다. 사실 핸드폰이 먹통이 되고 전기가 끊겼을 때, 수도가 곧 끊길 것이라는 생각은 어렴풋이 했었다. 그리고 물이 없으면 난 곧 죽는다는 것도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다.

난 그저 이렇게 말라 죽어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젠 어찌 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들에게 고통스럽게 물어뜯기기는 싫었다. 그렇기에 나는 죽기를 원하면서도 밖을 계속해서 관찰한다.

그러다 또 목이 너무나 마르면 혹시나 수분이 남아 있을까 싶은 세면대를 혀로 핥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죽고 싶다며, 차라리 메말라 죽고 싶다며. 하지만 내 몸은 내 생각과는 너무나 다르게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방구석 히키코모리, 그리고 겁쟁이.

맞다. 나는 이 악몽을 끝내고 싶지만, 눈을 뜰 용기가 없는 그런 겁쟁이다. 문을 열고 나가던가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던가. 하지만 나는 그럴 용기가 없어 예전도 지금도 내가 제일 잘하는 짓을 하고 있었다.

방관! 하염없이 썩어가는 정신! 지금은 전기가 끊겨 나오지 않는 TV를 대신해 창밖을 TV 화면이라 착각한다. 그리고 매일 매일 같은 프로만 보고 있는 나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멍청이다.

오늘은 특별한 일이 없었다. 마치 같은 화면을 재생한 듯 거리에는 작은 변화조차 없었다. 혹시 구조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봤지만, 하늘은 죽어가는 우리를 조롱하듯 흐린 날씨만을 보여 주고 있었다.

힘이 없다. 오늘 일기는 여기까지 쓰고 지독한 삶을 연명하기 위해 빨리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 * *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이상하다. 지금은 해가 지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둠이 자욱하게 깔리면 도시는 제일 조용할 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도시를 잠에서 깨우는 소음은 나를 저절로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다.

밖에서 큰 소음이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분명 인간이 내뱉는 비명과 고함이 들려온다. 살아 있다! 누군가 분명히 살아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갈겨쓴 흔적이 남아 있다.]

* * *

내가 들었던 소리는 인간이 내는 소리가 맞았다. 나는 비명이 들리자마자 침대를 밟고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뒤 소리의 주범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 발견한 그들의 모습은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윤곽을 보아 그들이 사람인 것만은 추측할 수 있었다. 난 어둠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어둠이 낀 안개 숲을 정신없이 훑어보았다. 그리고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내가 발견한 3명이 그놈들을 피해 황급하게 뛰고 있는 것을 눈으로 좇을 수 있었다.

어두운 길에 빼곡한 차들은 그들의 진로를 방해했고, 시야를 막았다. 그러자 선두를 달리던 한 형체가 황급히 무언가를 꺼내 들더니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동시에 주변이 환해졌고, 손전등 빛 덕분에 도망 다니는 그들의 모습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아니, 곧 다가올 죽음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남성과 여성 각각 한 명씩.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난 자연스럽게 그들이 가족일 거라고 생각하며 숨을 죽였다. 도망쳐라, 더 빠르게 도망쳐라. 난 조용히 중얼거리며 창문에 얼굴을 바싹 붙였다.

아이는 엄마로 보이는 성인 여성의 손을 잡고 뛰고 있었고, 그 뒤를 그놈들이 맹렬한 기세로 따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그 커다란 가방이 뛰는 걸 방해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가방을 길가에 버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길가에 형편없이 떨어진 가방은 뒤쫓아 오는 그놈들에게 짓밟혀 걸레가 되어 버린다. 묵직한 가방을 보아 사건이 터진 뒤 탈출을 작정하고 나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선택이 곧 치명적인 실수였음을 죽음의 위기 앞에서 깨달았을 것이다.

잡힐 듯 말 듯 한 거리는 속도가 느린 아이 때문에 서서히 좁혀졌다. 아이와 엄마는 연신 비명을 질렀고, 남성 또한 생존의 가로막길 앞에서 죽음을 예상한 절망의 고함을 내질렀다. 멍청한 짓이 분명하다. 그 소음을 듣고 그놈들이 더욱더 몰려들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도로를 반쯤 달리다가 반대쪽에서 뛰어오는 그놈들 사이에 포위되고 말았다. 먼 곳에서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죽음이 예정된 순서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손전등을 들고 있던 남성은 결국 이성을 잃었는지 가족들을 버리고 도로 옆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남자는 몇 걸음 가지도 못해 차들 사이에서 튀어나온 그놈들에게 머리카락을 붙잡혔다. 그리고 머리 가죽이 뜯기고 동시에 목이 부러졌다. 남성은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렇게 온몸이 찢긴다.

사람 하나가 빠르게 육편으로 변했다. 그리고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성은 남자가 죽는 걸 확인하자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고, 곧 그 자리에서 떼로 달려드는 그놈들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그녀는 나약한 반항 한 번 하지 못했다.

나는 거기서 고개를 돌려야 했다.

잔혹한 죽음? 그것은 나흘 동안 계속 봐왔던 풍경이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라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계속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오늘 마지막 본 광경은 여태까지 저 상황을 지켜본 이 순간을 후회하게 했다.

남성이 들고 있던 손전등은 운 좋게 옆으로 떨어져 그들 가족을 전부 비추고, 죽음을 세세하게 보여 줬다.

그리고 난 보고 말았다. 뒤따라 달려오던 아이는 너무 빠른 속도에 엄마 손을 놓치고 넘어졌다. 넘어진 아이는 아빠가 그놈들에게 잡히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한참을 그 자리에서 덜덜 떨다가 이내 재빠르게 차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본능적인 행동인 것 같았는데 너무나 시기적절했다. 미친 듯이 가족을 쫓던 그놈들은 아이가 차 밑으로 들어가든 말든 다른 곳에 놓인 만찬에 신경을 쏟았다. 아이는 차 밑에서 벌벌 떨며 엄마와 아빠의 죽음을, 아니 포식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놈들은 시체 하나를 순식간에 지워간다. 마치 피라냐처럼 순식간에 살코기를 해체 시키고, 뼈조차도 막대사탕을 씹듯 으득으득 씹어 삼킨다. 아이는 육편이 곤죽으로 변할 때쯤 이것이 지독한 현실임을 알게 되었다.

만찬이 끝나고 그놈들은 아이를 찾지 않았다. 당최 숫자조차 세지 못하는 그놈들의 단순함이 차 밑에 있는 아이를 살린 것이다. 그놈들은 그곳을 한참을 맴돌다 서서히 자리에서 벗어났고, 이내 새로운 사냥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아이는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차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눈앞에서 엄마와 아빠가 먹혔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대가로 자신은 생을 연명할 수 있었다.

아이는 그놈들에게 들킬까 봐 찍소리도 못하고 벌레처럼 웅크렸다. 절망 속에서 울음을 참고 있을게 눈앞에 그려진다. 저 아이는 죽게 되겠지? 저 아이도 나처럼 저곳에 갇혀 스스로 나갈 용기도 목숨을 끊을 용기도 없이 그렇게 말라 죽겠지?

아, 입에서 짙은 숨이 뿜어져 나왔다. 바로 새장 밖에서 나처럼 죽어가는 다른 새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근데 혹시 내가 구하면?

뭐? 내가 뭐라고 쓴 거지?

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설마 아이를 걱정하고 있나? 단칸방에 갇혀 언제 죽을지 숫자를 세는 내가?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던 내가? 겁쟁이, 넌 영원한 겁쟁이야. 그런 생각 절대 하지 마.

나는 열심히 자기 부정을 해 봤지만, 아이가 어디에 있고 무슨 차종 밑에 있는지 또렷하게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그 장면에 내 머릿속에 각인처럼 틀어박혀 버렸다. 그래, 나는 마치 그 아이를 구할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겁쟁이, 멍청이 지금 또 헛된 상상을 하는 거지?

* * *

[일기 밑에 도로 상황을 그대로 옮겨둔 그림이 그려지고, 아이 위치가 별표로 찍혀 있다.]

아이는 차 밑에 있다. 그리고 아직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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