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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2화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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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

밤에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밤에 일어난 모든 일을 지켜봤고, 한참을 자리에 누워 공포에 떨었다. 시간이 지나 새벽이 되었고,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이불 안으로 달려와 이른 새벽에 일기를 작성한다.

지금은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라 모든 게 컴컴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손전등을 입에 물고 펜과 일기를 잡았다. 나는 빛이 새어 나오지 않게 이불을 최대한 둘렀다. 어제 분명 손전등 배터리를 아껴야지 다짐했는데 이대로 가만히 앉아 아침 해를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아직도 몸에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기록을 시작한다. 어젯밤 정면에 보이는 아파트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환청일까 싶을 정도로 작게 들려오던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이내 내가 지내는 고시원까지 들려왔다.

겨우 악몽에서 벗어나 새우잠을 자던 나는 그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임을 자각하자마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재빠르게 창문에 붙어 밖을 살펴봤다. 하지만 어두운 밤이 내려앉은 도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난 결국 귀를 기울여 청각에 모든 신경을 쏟아부었다. 그래, 이건 분명 아이 울음소리가 맞다.

아이 엄마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 걸까? 혹시 내 근처에서 들리는 소리는 아닐까? 나는 굉장히 불안했다. 그리고 정신없이 손톱을 씹고 손을 떨며 다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가로등 하나 켜져 있지 않은 거리는 내 공포심을 자극했고, 암흑 속에 들려오는 아이 울음소리는 굉장히 을씨년스러웠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거리 위에 있는 건물들과 차들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는 마치 명절의 고속도로처럼 차들로 가득했는데 해가 뜬 상태에서 봤던 풍경과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차들 사이로 그림자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혹시 사람이 아닐까 하는 헛된 희망을 품어 봤지만,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와 사정없이 흔들리는 팔다리 그리고 이상한 괴음은 그들이 인간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 소리가 들리는 아파트를 향해 거침없이 뛰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 우는 소리에 반응한다. 그렇다면 소리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102동? 101동? 이 어둡고 조용한 도시에 아이 울음소리만큼 크게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또렷하게 들려오는 큰 소리에 그놈들은 너무나 정확하게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러 셔츠로 여러 번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10분가량 멍하니 서서 그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침대를 밟고 서 있었는데도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고, 목이 쉴 새 없이 말라 왔다. 하지만 난 공포에 떨면서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리고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그 자리를 필사적으로 지켰다.

혹시 그들이 이곳으로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공포에 질려 다른 사람의 위기를 지켜봤고, 한동안 눈조차 깜빡이지 못했다. 그놈들은 마치 파도처럼 아파트를 향해 몰려갔고 아이 우는 소리를 따라 정확히 102동 아래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놈들은 102동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걸 확신했는지 기분 나쁜 괴음을 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 울부짖음은 마치 맛있는 음식 앞에 기도를 올리는 그들만의 의식처럼 아파트 아래서 공명하고 있었다. 욕이 나온다. 난 아이가 울음을 그치길 빌고 또 빌었다.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그 자리에서 아이를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단칸방에 갇혀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고 굶어 죽어가고 있으면서 아이의 안부를 걱정하는 걸까? 이 창문이 TV처럼 보였던 걸까?

그 자리에 서서 모든 걸 지켜보는 것은 멍청한 행위였다. 나는 차라리 그 장면을 보지 말았어야 했고, 언제나 그렇듯 한구석에 처박혀 공포에 떨었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 울음소리와 더불어 여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공포에 사로잡혀 크게 내뱉는 비명은 멀리 있는 이곳까지 전해졌다. 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는 사람과 감정이 동화되어 눈을 질끈 감았다. 여자가 느끼는 공포심이 그대로 전해진다. 난 그 비명에 집중하고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아파트에서 단 한 줄기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102동 11층(왼쪽에서 두 번째 베란다.)이 분명하다. 그곳에는 손전등으로 추정되는 것을 들고 있는 무언가가 베란다로 뛰쳐나왔는데 시각에 정신을 집중하고 한참을 그곳을 들여다보자 그 손전등을 들고 있는 것이 여자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여자는 무언가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가 베란다 밖으로 나오자 아이 울음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왔다. 저 여자가 안고 있는 것은 울고 있는 아이가 분명했다.

멀리서는 그녀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보이지 않음에도 그녀의 창백한 얼굴과 절망 앞에 놓인 감정이 느껴졌다. 그녀는 한참을 베란다에서 서성였고, 끊임없이 집안을 들여다봤다. 울음소리를 듣고 그놈들이 11층까지 올라온 모양이었다.

그녀의 다급한 몸짓이 느껴졌다. 그녀는 베란다에서 손전등을 연신 흔들며 크게 구조를 요청했다.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여기에요. 제발 살려 주세요. 나는 그녀가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보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녀가 내 앞에 서서 도움을 청하는 것만 같았다. 제발 살려 달라고. 나와 아이를 여기서 구해달라고. 그녀는 있지도 않은 구조대를 향해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입을 틀어막고 창문틀에 얼굴을 묻었다.

여자는 울고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울음소리가 섞인 비명은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놈들이 침투를 시도하는지 그녀는 처절하게 비명을 내지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 연약한 베란다의 문을 꼭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경첩이 밀려 뜯기는 둔탁한 파괴음이 여기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현관문이 금방 부서질 것 이란 생각에 나도 같이 그녀처럼 발을 구르며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내 입술이 짭짤했다. 아마도 난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쾅쾅거리는 소리가 커질수록 그녀의 불안감이 여기까지 느껴져 왔다. 그녀는 탈출구를 찾는지 정신없이 베란다를 돌아다녔고, 연신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도 상황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고, 그녀는 헛된 움직임을 지속했다.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경첩이 뜯기는 소리와 함께 베란다 창문 안으로 수십 구에 그림자들이 드리운다. 그것을 발견한 여자도, 그리고 나도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이제는 최후였다.

여자는 비틀비틀 일어나 베란다 밖으로 아이를 던진다. 그리고 아이를 따라가듯 자신도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그놈들이 원하던 돼지고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내 고막을 강타했다. 그것이 그녀와 아이의 최후였다.

그리고 그놈들은 바닥에 떨어진 고기 찌꺼기를 찾아 아파트 밑으로 미친 듯이 몰려들었고, 숨이 끊긴 아이와 엄마를 씹으며 맛있는 식사를 시작했다. 고통 없이 죽었을까? 순간 난 토악질이 올라와 그 자리에 정신없이 토를 내뱉었다.

먹은 것이 없어서 묽은 액체만이 나왔고 속만 쓰려 왔다. 난 위액과 침을 줄줄 내뱉으며 떨리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창문을 닫을 수 있었다.

정신이 흐릿했다. 그 어떤 죽음보다 보기 싫은 광경이었다. 난 더는 창문 밖을 바라보지 못하고,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내가 뱉어낸 토가 옷에 묻든 말든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누워 있었다. 난 아마 힘에 부쳐 덜덜 떨면서도 그 장면을 끊임없이 회상했다. 작은 고기가 바닥에 떨어지고 그다음으로 큰 고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먹으려는 아귀 떼들이 미친 듯이 몰려온다.

사람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그것을 먹으려 탁탁탁 바닥을 박차던 소리가 너무나 생생해서 기억난다. 난 꺽 꺽 울며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말았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공포와 두려움이 뒤섞인 진창의 찌꺼기가 내 속을 더부룩하게 만든다. 혹시 나는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왜? 내가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는데? 난 그저 그 장면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방관자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난 이불을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와 말하지 않는다면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난 자신을 새장에 가두고 다시 한 번 일기장을 펼쳤다. 떨리는 손으로 손전등을 켜자 밝은 빛이 나와 일기장을 비췄다.

일기를 핑계로 손전등을 켜 봤지만, 전혀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손전등에서 나오는 환한 빛과는 반대로 내 마음은 서서히 썩어가고 있었다. 난 한동안 일기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내 최후는 저것과 다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일기가 조금 구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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