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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1화 (1/313)

나는 아직 살아 있다 - 미스터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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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

사흘 전에 모든 TV 채널이 먹통이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뉴스는 다급한 아나운서의 음성이었다. 그 다급한 음성이 지금도 내 귓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지만, 이상하게 자세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한다. 모든 언어와 단어에 찌꺼기 같은 노이즈가 낀 기분이었다.

나는 뉴스가 들려오는 그 날 창문 밖에 보이는 광경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하루가 지났고, 또 하루가 지났다.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이 지나 오늘 낮에는 결국 전기가 끊겼고, 해가 진 저녁부터는 밖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들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소리는 이상한 괴음이었다.

나는 이 소리가 인간이 내는 소리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인간이 낸다고 하기에 이 소리는 너무나 이질적이고 생소했다. 난 도대체 이 소리가 무엇이 내는 소리냐고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이방에 혼자다.

정신이 혼란스럽다. 조금 정신을 가다듬어 본다.

일주일 전에 보험 회사에서 받은 달력을 기억해내 빠르게 쓰레기통에서 찾아왔다. 그리고 침대 밑에서 다 써가는 낡은 모나미 볼펜을 발견했다. 그저 잠을 자기 위한 용도였던 고시원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있었다.

난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만히 공포에 질려 있다. 본능처럼 펜과 종이를 양손에 잡았다. 아마 지금 작성하는 이 기록마저 없었다면 나는 지금 혼자라는 공포와 치닫는 두려움에 미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기록을 시작한다. 이 기록은 내가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그리고 단순한 일기이자 훗날을 위한 지침서. 그리고 자서전이다. 현실회피를 위한 나만의 대화는 기록이 되고, 이 달력에 써가는 일기가 내가 삶을 이어가는 마지막 단추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전화는 전기가 끊겼던 오늘 낮에 모두 먹통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 전에도 통화에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모든 상황에 집중하며 미친 듯이 119, 112를 눌러 봤지만, 그들은 응답하지 않았다.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나를 꺼내달라고 필사적으로 빌어보았다. 하지만 나 같은 인간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할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기도할 신조차 내 옆에 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경찰? 그들은 단순히 사건 해결을 위해 바쁜 것이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 나를 구출하러 내 고시원 문을 노크할 것이다. 하지만 그 합리화가 지난 직후 창문 밖으로 경찰이 그놈들에게 배가 찢기는 걸 보았다. 그가 지르는 비명은 내 악몽 속에 나타나 온종일 나를 괴롭혔다.

그놈들은 그 경찰관을 단숨에 죽여 주지 않았다. 배를 찢어 모든 걸 뜯어내고 삼키고 파헤쳤다. 그놈들은 단순히 육식동물이 아니다. 아니, 그보다 더 지독한 존재였다.

그놈들은 사냥감의 숨이 끊기든 말든, 자기 몸에 총알이 박히든 말든 그저 원초적인 굶주림만을 느끼며 피와 살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했다.

그리고 그놈들은 경찰관이 쉽게 죽는 것조차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는 내장이 모두 없어져 갈 때까지 손을 휘저으며 발버둥 쳤고, 이내 죽음을 맞이한 듯 비명을 멈췄다. 난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마지막에는 결국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나 그곳을 다시 바라봤을 때는 경찰관의 시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흥건한 살점과 피를 보며 이것이 분명한 현실임을 자각했다.

모든 것을 지켜본 나는 본능처럼 책상을 옮겨 문 앞을 막아 뒀다. 근래 가장 실천이 빨랐던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안심은 되지 않는다. 맨손으로 배를 찢던 그들은 저 얇은 문마저 파헤치고 나에게 올 것만 같았으니까.

나는 창문 너머로 많은 죽음을 지켜봤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여성, 엄마의 손을 놓쳐 그 자리에서 찢긴 살점이 되어 버린 아이. 그리고 베란다에서 그들과 몸싸움을 하다 떨어지는 회사원. 사회에서 얼마나 돈이 많던, 무슨 직위를 가지고 있던, 그놈들 앞에서는 모두 공평한 고기가 되었다.

훗날 지옥도가 무엇이냐면 난 당당하게 이날 있었던 그 장면을 고스란히 보여 줄 것이다.

그들? 그것? 도대체 그놈들을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까?

그들은 사람을 죽인다. 살인마인가? 그리고 그들은 사람을 먹는다. 식인종인가? 아니 그들은 내가 아는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정의하지 못하는 그것은 내가 살면서 처음 봐 왔던 종류였다.

분명한 건 그들은 이 도시를 점령한 포식자이며 끊임없이 이 어두운 도시를 떠도는 살인기계 라는 것이다. 일기를 쓰는 지금 창문 밖으로 발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가 아직도 고픈 걸까? 혹시 그들이 나를 찾고 있는 건 아닐까? 발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난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아직도 울부짖던 경찰관의 모습이 생생하다. 겨우 삼일이다. 겨우 사흘 만에 이 도시는 그들로 가득하다. 이제는 탈출도 생존도 점점 어려워져 간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고시원은 좁다. 밖으로 나서는 문을 제외하고는 이 작은 창문이 유일했다. 개인 화장실이 딸려 있다는 드문 옵션에 바로 계약을 했던 기억이 남는다. 그나마 무료로 제공하는 라면과 밥은 복도를 꽤 걸어 공용식당으로 들어가야 보인다.

나는 굶주렸다. 사흘 동안 세면대에서 나오는 물로 배를 채웠다. 몸과 정신은 끊임없이 먹을 것을 요구했지만 나에게는 이 현관조차 열 용기가 없었다. 몸에 힘이 없다. 이대로 굶어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이소에서 구매한 이 싸구려 손전등이 얼마나 갈지 걱정이다. 이 손전등이 꺼지면 어둡고 긴 밤을 혼자 보낼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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