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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111화 (외전 완결) (111/111)

< 외전. 레베카 블런트-End >

레베카 블런트는 영국 태생의 소녀이다. 그 소녀는 어릴적부터 유난히 빼어난 외모를 갖고 있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이 특히나 그러했다. 푸르게 반짝이는 눈동자는 바다를 박아넣은 듯 아름다웠다. 그 눈을 마주한 또래 아이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감탄했다.

넌지시 풍기는 분위기마저 그러했다. 레베카는 다른 세계에 사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일곱 살 생일 때에 부모님이 선물해 주신 책.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시리즈 소설, 영국을 배경으로 한 마법사 소설의 열렬한 팬이었던 까닭이다. 레베카는 평범한 옷차림 대신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상인물들처럼 특이한 옷차림을 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니까, 마법사 같은 차림. 레베카에게 그 옷들은 썩 잘 어울렸다. 소녀는 거울을 보며 스스로도 만족했다.

부모님은 어린 레베카를 보며 이런 말을 자주 해주곤 했다.

"레베카, 그러고 있으니 정말 마법사 같구나. 책 속에 나오는 마법학교 학생 같은······."

레베카는 그 칭찬을 가장 좋아했다. 언제나 환하게 웃곤 했다.

그 밝은 미소를 보며 부모님은 정말 하늘을 날아다닐 것 같다느니, 당장이라도 빗자루를 타야겠다느니 농담을 건네셨다. 모두가 재미있겠다며 웃었다.

하기야, 재미있는 농담이었다.

마법 같은 건 판타지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따위에 등장하는 것들이었으니까.

실존하지 않는 허구의 것.

"엄마, 마법은 진짜 있다니까요. 꿈에서도 막 나와요. 내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하지만 레베카는 왠지 자신의 옷차림과 매체에 등장하는 마법의 묘사들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데자뷰처럼 느껴졌다. 마치, 언젠가 직접 해본 적이라도 있는 것처럼. 당연히 누구도 믿지 않았다. 어린 아이가 상상력이 뛰어난 탓에 그러는 것이라 생각했으며, 예쁘장한 소녀가 그리 말했기에 귀엽게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레베카는 한참을 열변을 토하다 이내 토라지기 마련이었다.

입을 삐죽 내민 채로 기다란 금발을 매만지며 투덜거렸다.

"진짠데. 마법사들은 진짜 있는데. 거기선 나도 마법사였는데······."

물론 자라나며 그런 생각들은 점점 흐려졌다.

과학이나 수학 따위를 배우며 알게 되었다. 마법은 인간의 상상 속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 역사적으로 그런 인물은 등장한 적이 없다는 사실. 그러니까 가끔 꿈 속에 등장하는 초인들과 거대 집단을 지배하는 슈퍼맨, 괴수들은 허구의 존재라는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그 꿈 속에서 반경 41Km를 지배할 수 있는 터무니 없는 레베카 블런트도 당연히 상상 속의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레베카는 이따금씩 그 달콤한 꿈이 현실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곤 상상했다. 그러다 문득 한 인물을 떠올리며 아련한 감상에 빠졌다.

흐릿한 형체에 불과한 인물. 묘하게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인물.

'누구야, 대체?'

***

레베카는 어느덧 소녀를 지나 여인이 되었다.

타고난 아름다움은 조금도 퇴색되지 않았다. 오히려 레베카는 더 빛나는 보석이 되었다.

거리를 걸을 때마다 시선이 쏟아졌다. 사진 몇 장을 찍어 SNS에 게시하는 것만으로도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십대가 된 레베카는 그런 관심을 받는 것들을 즐겼다.

예쁜 사람들이 예쁘단 말을 듣는 게 지겹다는 건 모르는 소리였다. 칭찬은 언제 들어도 달콤한 법이다. 레베카는 누군가에게 칭찬받는 것을 좋아했다. 특별한 인물이 된 것 같아서.

그러니까, 마치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공주님이 된 것 같아서 좋았다.

어릴 적부터 소설을 사랑했고 거기 나오는 인물들을 동경한 레베카는 평범을 싫어했다. 사회의 톱니바퀴 중 하나가 되어 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지길 원하지 않았다. 그럴듯한 대학과 직장, 좋은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기르는 일들은 지나치게 평범했다.

그럴 바엔 차라리 혼자 근사하게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소설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에도 그런 인물들이 많았다. 모두에게 대접받고 말 몇 마디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여인들. 레베카는 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너도 슬슬 남자를 만나야 하지 않겠니?"

물론 바란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레베카는 특출난 재주가 없었다. 정확히는, 열심히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의욕이 나지 않았던 까닭이다. 특별한 것이라곤 눈에 띄는 외모뿐이었다. 그 외모를 보고 여러 인물들이 접근해왔다. 모델이나 배우를 권했다.

레베카는 배우가 되길 원했다. 물론 연기가 지나치게 형편없었기에 배우가 될 순 없었다.

모델은? 레베카가 거절했다.

어딘가에 나올 것이라면 살아 숨쉬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깊은 스토리가 없는 모델이 되는 것은 절대로 싫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부모님이 레베카의 미래를 걱정하는 가운데, 레베카만 태연히 걱정이 없었다.

어디서 비롯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레베카는 미래는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그녀를 부르는 별명이 있었다. 신이 보살피는 여인.

그 말대로, 레베카의 주변에선 신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원래라면 행운. 그러니까 운이 좋다고 말해야 할 일들이 말이다.

위험한 상황은 아슬아슬하게 언제나 피했다.

머리 위로 화분이 떨어졌을 때도, 야구공이 날아들 때도, 학교에 커다란 화재가 났을 때도 레베카만 운 좋게 피해갔다. 상처 하나 입은 적 없었다.

'이 일들도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레베카는 눈을 감은 채 그리 생각했다. 막연하게.

***

"한국? 그게 어디 있는 나라인데?"

레베카는 눈살을 찌푸린 채 그리 물었다.

친구가 함께 여행을 가자고 권유한 까닭이다. 동양인 유학생이었다.

이번주 주말에 함께 가자고 말했다.

"거긴 왜 가는데?"

"우리 엄마 나라에 한 번 가보고 싶었어."

레베카는 그 친구가 당연히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는 사실에 충격먹었다.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일단 제안을 승낙했다.

안 그래도 요즘 무력하던 차였다. 뭔가 자극이 필요했다.

낯선 땅에 가서 새로운 풍경을 본다면 충분한 자극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레베카는 대한민국으로 향했다. 동양인 친구는 고향이라고 말했음에도 그 나라에서 꽤나 길을 헤맸다. 일단 둘은 가까운 음식점에서 배를 채웠다.

영국에서 먹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음식들이었다. 레베카는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생각보다 괜찮다느니, 먹어줄만 하다느니 허세를 떨었다. 물론 친구는 레베카의 성격을 잘 알았기에 음식이 입맛에 썩 맞았다는 뜻이라는 걸 금세 알아챘다.

레베카는 그 음식들을 삼키며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영국과는 사뭇 다르다. 늦은 시간에도 환한 밤의 풍경을 바라보며 레베카는 또 다시 이상한 데자뷰를 느꼈다.

그 화려한 야경 위로 폐허의 모습이 덧씌워졌다.

가볍게 맥주를 마신 탓일까?

아니다. 취기는 올라오지도 않았다. 엄마가 가끔씩 지나치다고 말하는 상상력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장소에 왔으니, 이 상상력이 또 멋대로 새로운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오늘따라 상상들이 굉장히 또렷하게······.'

레베카는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을 잤다. 그리고 삼 일 동안 친구와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꽤 재미있는 나라였다.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닐 수 있으며 새벽에도 문 닫지 않는 곳이 많다는 사실도 신기했다. 거기서 먹고 마시며 레베카는 편히 마음을 추스렀다.

'이런 여행은 당시엔 좋지만 돌아가고 나면 허무해져서 싫은데.'

함께 보낸 여행이 끝난 직후에 밀려오는 공허함. 레베카는 그 공허함이 싫었다. 자신의 삶은 언제나 찬란하게 채워져 있길 바랬다. 하지만 이제 이십대가 된 레베카는 자신이 동화 속 공주님이 아니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녀는 머지않아 늙을 것이고 이 아름다움이 퇴색되기 전에 곧 연애를 시작하고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어떤 일이 될 지는 모른다. 레베카는 일단은 당장의 즐거움에 빠지기로 했다.

"Ah······."

그러던 와중이었다. 멍하니 걷던 레베카가 누군가와 부딪혔다. 그녀는 표정을 찌푸리며 넘어졌다. 화를 내려던 레베카는 자신과 부딪힌 남자의 상황이 더 심각하단 걸 보았다. 뭔가를 잔뜩 들고 있던 남자가 주저앉아 있었다. 색연필이니, 물감이니 할 것들이 죄다 쏟아졌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그것들을 짓밟았다. 그 사이엔 그림도 있었다.

우울한 색채로 그려진 그림들. 회색과 검은색으로 점철된, 그 어둠들 사이에 약간만 쓰인 밝은색들. 몸을 일으키려던 레베카는 문득 그 그림들에 눈을 빼앗겼다.

그래서 저 그림들이 밟혀서 망가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레베카는 그쪽으로 다가가 그림들을 주웠다. 안타깝게도 몇몇 그림들이 찢어지고 뭉개졌다.

"Sorry······."

레베카는 사과의 말을 건넸다. 남자는 자기와 부딪힌 인물이 외국인이라는 걸 알고 뭔가 따질 엄두도 나지 않았던 것 같다. 머리를 긁적이며 짧은 영어로 뭐라 중얼거렸다. 발음이 무척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남자의 얼굴이 뭔가 익숙했다.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완전히 다른 타국에서 이런 데자뷰를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가? 그리 생각하던 와중, 넘어진 남자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는 영어실력이 아주 유창했다.

자신을 현우라 소개한 남자는 자기 친구의 그림이 망가진 것에 대해 따져왔다. 어딘가에 출품할 작품이며, 무척 공을 들였다는 이야기였다. 레베카는 다시 사과했다. 진심이었다.

그녀가 보기에도 저 작품들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으므로.

그리하여 몇 번의 사과를 한 레베카는 자기도 모르게 뭐라 말했다. 그 남자의 연락처를 묻는 말이었다. 어울리지 않게도 연락처를 물으면서 나중에 보상을 하기 위해서라느니, 그림들이 마음에 들어서 궁금했다는 변명을 덧붙였다. 평소라면 그냥 쿨하게 물었을텐데. 레베카는 내뱉고 나서 그리 후회했다. 하지만 남자는 흔쾌히 연락처를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이현우는 남자의 말을 통역해 덧붙였다.

"어차피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작품이니 괜찮다네요. 아마추어 작품이니 보상은 괜찮고 잠깐 여행 오신 게 아니라 여기 머무르시는 거면, 언제 식사라도 한 번 같이 하자네요. 자기 그림 괜찮다는 말 처음 들어봤다고."

그러면서 구겨진 그림을 품에 안은 남자는 자기 이름을 말했다.

유성연.

이번엔 무척이나 또렷한 발음으로.

***

레베카는 그 날 숙소로 돌아가 복잡하게 솟은 감정을 애써 추스르며 잠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낯선 세상의 인물이 되어서.

그 꿈 속에서 레베카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레베카는 한국인 소년이 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험난한 사정을 겪고, 복수를 거친 뒤 새로운 목표를 가져 살아가는 네크로맨서. 그 삶은 왕도적인 모험 소설이라 평가하기엔 지나치게 잔혹했다.

레베카는 숨을 헐떡이며 그 꿈에서 깨어났다.

친구가 걱정하는 목소리로 악몽을 꾸었냐고 물었다. 레베카는 괜찮다 말한 뒤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밖은 새벽이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하늘.

뺨에 서늘한 공기가 맞닿았다. 새벽 공기였다. 잠깐 그 공기를 맡던 레베카는 왠지 모르게 오늘은 꾸었던 꿈이 흐릿해지지 않고 여전히 선명하게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되었던 한국인 소년의 이름이 유성연이라는 사실도 금세 떠올렸다. 그 그림이 그렇게 머릿속에 강렬히 남았나? 아니면 진부한 소설들처럼 한눈에 반하기라도 했나?

모르겠다. 레베카는 얼굴에 두 손을 올렸다가 문득 붉게 달아올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레베카는 가방에서 노트 한 권을 꺼냈다. 오래 전부터 떠오르는 것들을 써내려가던 일종의 습작노트였다. 레베카는 이번에 꾼 꿈이 흐려지기 전에, 그 꿈의 내용을 소설로 적어두기로 했다. 그 동안은 늘 중간에서 뚝뚝 끊긴 탓에 완결된 이야기로 써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왠지 이번만큼은 느낌이 좋았다.

레베카는 첫 문장을 써내렸다.

.

.

「약 칠십 년 전, 세상은 변했다.」

< 외전. 레베카 블런트-End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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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asdasd8954님 후원금 마지막까지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그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머리 빡빡 밀었으니 이제 전 떠나갈 준비를 하겠습니다.

여러 이야기들까지 끝까지 따라와주신분들 감사합니다.

21개월 뒤에 뵙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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