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110화 (110/111)

< 외전. 이현우 (3) >

"조금만, 조금만 진정해요. 지금 쟤네 죽이면 후폭풍 장난 아니란 말이에요······."

오랜만에 만난 감방 동기는 과연 기억 속에 남은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상대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싸우고 있었다. 게다가, 채워졌던 팔찌가 사라지자 그 힘은 놀라울 정도로 강해졌다. 이현우는 인터넷에서 보았던 네크로맨서들의 장엄한 언데드는 유성연에 비하면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집과 크기만 키우는 것들과 달랐다. 유성연의 언데드들엔 본능적으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있었다. 과시하기보단 오로지 살육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 극도로 효율만을 추구하는 언데드는 무척이나 그로테스크한 외모를 자랑했다.

이현우는 유성연을 설득했다.

다행히도, 그 감방 동기는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상황에 잠식당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대로였다. 대화가 통하는 상대였고 여러 근거를 덧붙이자 유성연은 금세 이해했다.

그리하여 적들이 머리를 조아린 채 목숨을 구걸하는 가운데, 이현우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일단 감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진짜로."

세계에 일어난 이 혼란스러운 사태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

이현우가 보기에 유성연은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이 격변에 휘말리지 않고 어디 들어가서 혼자 수련만 하다 온 사람처럼. 그러니까, 옛날 양판소 소설에 등장하는 귀환자들처럼.

나름의 신념이 있는 까닭일까? 아니면 죽을 거라고 확신했던 그 지진에 휘말리며 무슨 일을 겪은걸까? 이현우로써는 감히 추측할 수 없었다.

막연하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자신만 해도 한 달 전과 비교하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악인이었다 한들, 누군가를 죽이는 경험은 끔찍했다. 더해서 매일 같이 피와 살육 속에서 살며 피곤함을 견디는 것은 괴로웠다. 때때로 살인 충동이 솟는 순간도 있었다.

질서를 망가뜨리고 쓰레기 짓을 벌이는 것들은 모두 죽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덤벼오는 것들 죄다 죽이는 게 맞는 일이 아닌가, 죄다 목을 비틀어 죽이고 싶다······.

교도소에 쳐박혀 형량이 늘어날까 숨죽여 살던 때와는 달랐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를 중퇴하고 남들 등쳐먹으며 돈을 벌던 이현우는 더 이상 없었다. 회사의 사장이요, 생존자 집단의 무리를 이끌고 있는 남자만이 남았다.

그 남자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법과 도덕을 지킨다며 누군가는 칭송하지만, 원래 세상이었다면 용서받지 못할 죄들을 지었다.

꾸물거리는 감정에 익숙해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한 달만에 익숙해질 순 없었다.

'대단한 사람······.'

이현우와 유성연, 생포한 이들까지 함께 모두 생존자 캠프로 돌아왔다.

거기서 성연은 한 달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고백했다. 그 붕괴에 휘말려 지하에 갇혀있었으며,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해서. 그 말들을 들으며 이현우는 어렴풋한 죄책감을 느꼈다. 죄책감을 내려놓으려 자기합리화를 조금 해보았다. 그 웅장한 괴수 앞에선 누구도 침착하게 행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재빨리 움직이지 못해 유성연을 제때 구하지 못했던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고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입장이 바뀌었어도 그랬을까?'

하지만 자신이 떨어지는 입장이었으며 유성연이 땅 위에 있는 입장이었다면?

저 감방 동기는 손쉽게 구해냈을 것이다.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을 한 채 단숨에 구출해서 안전한 곳으로 탈출했겠지. 결국 합리화를 할 것도 없이 내 능력이 부족한 탓에 구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유성연은 그 상황에 대해 별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이현우는 복잡한 마음을 숨기며 웃었다. 그러곤 말했다.

"유성연 씨 부탁이라면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뭐든 들어드릴게요. 애초에 교도소에 난리 벌어졌을 때, 유성연 씨 아니었으면 전 이미 뒈졌을테니까 은인이나 다름없어요······."

***

이현우의 집단은 서서히 성장했다.

그 가파른 성장을 할 수 있던 원동력엔 유성연이 있었다.

대단한 네크로맨서를 앞세워 거래에서 이득을 취했고, 그 작은 이득을 굴려 커다랗게 이루었다. 던전이라 명명된 지하미궁을 공략하며 회사의 일원들 몇이 지나치게 강력해진 덕분도 있었다. 불씨나 겨우 피우던 박수한은 일대를 휩쓰는 마법사가 되었고, 김윤기는 웅장하기 그지 없는 흑염룡으로 괴수들을 쳐부술 수 있었다.

게다가 안혜지의 합류도 큰 도움이 되었다. 헌터 출신의 여자. 그 여자는 아는 것이 무척 많았다. 생존자들의 전투력 향상을 위한 훈련이요, 체계적인 구조 따위를 구성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유성연이 다른 곳으로 떠나 치열하게 싸우던 때, 대한민국에서도 「회사」의 일원들은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그쪽만 처리하면 우리 구역이 넓어진다는 거죠. 협상은 절대 하지 않으려하고?"

"네. 항복하겠느니 다 죽겠다는데요? 어떡할까요. 회장님."

그리 말하며 안혜지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회장님이라 부를 때마다 늘 저런 표정을 짓곤 했다. 이현우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대답했다.

"죽입시다. 그쪽에서 죽인 우리 사람들이 몇인데, 계속 봐주다간 얕보입니다. 지금까지 최소한의 도덕은 지켰다고 생각하는데요?"

안혜지는 동의했다.

그리하여 날뛰는 미치광이들을 처리하기 위해 회사가 움직였다. 그 처리 과정에선 이현우도 함께했다. 포인트를 투자해 새로이 얻은 능력은 무척이나 유용했다.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상대의 기억을 꿰뚫을 수 있고, 신체를 접촉하면 그 각성 능력을 모방하는 힘.

이현우는 그 힘으로 적진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나? 그래서 그리 버릇이 없군. 쯧······나니까 자네를 써주는거야. 원래 세상이었으면 내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병신 같은······."

다른 무리의 리더나 높은 자리에 있는 인물의 얼굴과 목소리를 베꼈다. 그러곤 은밀하게 침투해 서로를 이간질시켰다. 눈을 마주치면 기억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활용하면, 상대를 어찌 흥분시켜야 하고 직접적인 트라우마를 건드릴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누구나 민감한 상처는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민감한 상처를 가까운 사람이 건드린다면 효과는 더욱 증대된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분명 알고 있을 인물이 조롱하듯 말하고 모욕한다?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충성심은 모조리 돌아설 것이다. 인간 관계는 그리 간단하다.

친분이 깊었던 인물이 상처를 건드린다면 그 동안의 친분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그만한 친분이 있는데도 그랬단 사실에 더욱 화를 낸다. 이현우는 그러한 연결 관계들을 이용하는 방법은 잘 알았다. 정말이지 아주 잘 알았다.

작업을 시작한 지 수 일만에 여러 무리에 내분이 벌어졌다. 리더의 머리가 쇳기둥에 뚫린 채 폐허 한복판에 걸렸다. 무리 안에서도 존재하던 여러 파벌들끼리 싸워대고 있었다.

그 싸움의 중심에 끼어들어서 승리를 거머쥐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현우는 생포한 이들에게 정보를 빼낸 뒤 손수 그들을 직접 죽였다.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병원에서의 첫 살인.

살인광들을 죽이고 피를 뒤집어 쓴 채 할머니를 업고 달렸던 순간. 요즘도 가끔 그 악몽을 꾸곤 했다. 하지만 도피할 순 없다. 이들의 리더를 맡기로 한 이상, 그러한 짐들도 모두 짊어진 채 함께 해야 한다. 모두가 나름의 악몽을 꾸고 있을 것이다.

집단의 수장이라면 가장 지독한 악몽을 꾸어야만 한다. 이현우는 방아쇠를 당겼다. 피와 뇌수가 튀어오르며 진한 혈향이 풍겼다. 회사는 빠르게 몸집을 불려갔다. 최소한 대한민국 내부에선 더 이상 그들을 건드릴 수 있는 집단이 없을만큼까지.

그렇게 이현우가 싸우는 것처럼 유성연도 싸웠다. 이벤트는 어느새 두 번째, 세 번째를 넘었고 유성연은 그 모든 이벤트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소설에 나올법한 주인공이요, 치트를 적용한 게임 캐릭터처럼.

오랜만에 만난 유성연의 모습을 보며 이현우는 확신했다.

이 사형수 감방 동기가 세상을 바꿀 거라고.

과거의 평화와 안식을 되찾고 모두를 구할 거라고······.

'가족들과 둘러 모여 저녁 식사하던······이번 시험을 잘 봤고, 선생님한테 이런 칭찬을 들었다며 자랑하던 그 시절······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이현우는 그 행복하기 그지 없었던 날들을 떠올렸다.

아마, 할머니도 그럴 것이다.

이현우의 기억력은 지나치게 비상했고, 여전히 그 순간을 또렷히 기억한다.

납골당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던 할머니. 그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던 온갖 감정들.

하늘이 무너지던 날.

이현우는 그 모든 나날들이 되감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무너진 하늘이 아니라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대학이나 취직 걱정을 하는 소시민.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사소한 고민 따위를 나누는 사람. 사회의 톱니바퀴처럼 살아가며 가족을 꾸리고 자식이 커가는 것을 보며 사진을 남기고 추억이라며 웃고 싶었다.

'유성연 씨. 감방 동기가 아니라 밖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 사형수가 아니라 나랑 나이 비슷한 또래로 만났다면······이렇게 바뀐 세상이 아니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던 이현우는 자신과 유성연이 술잔을 기울이며 사소한 고민 따위를 나누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러다 픽 웃었다. 아마, 유성연은 아무 말 없이 앉아있고 자신만 잔뜩 말을 털어놓고 있을 것이다. 익숙한 그림이다. 지금과 별 다를 것 없는 장면.

그 배경만 달라졌을 뿐이다. 둘은 친구였다.

협력자나 비즈니스 관계라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친구 관계.

"어, 저기······."

마침내 본 게임의 우승자가 결정되고 세상에 변화가 일어났을 때.

그 순간에 이현우는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 바뀌게 될 세상에서도 그 친구와의 연이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 바램은 운 좋게도 어딘가 닿았다.

하늘 위 초월자에게.

그러니까, 아랫것들의 기도 따위를 들을 수 있는 신의 귀에 들어갔다······.

【그래요?】

***

이현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이현우의 앞에는 커다란 남자가 있었다. 그 형체는 무척이나 흐릿했다. 하지만 이현우는 그가 누군지 곧장 알아보았다. 유성연. 그는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넘쳐 흐르는 존재감에서 이현우는 유성연이 신이요, 절대자라 불러야 하는 인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하지만 뭔가 특별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예전에도 이현우와 비교하면 유성연은 신이나 다름없었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데, 유성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현우 씨. 내가 왜 데려왔는지 아세요?】

"아, 아뇨······."

【선택권을 드리려고요. 마지막 선택권.】

"선택권요?"

【예. 시간 되감기는 것에 몸 맡기고 그대로 사실지, 아니면 저랑 같이 신 되셔서 아래 관리하는 일 맡으실지······.】

비현실적인 선택지들이었다.

이현우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뒤에서 한 여인이 소리쳤다.

이번에도 익숙한 목소리. 레베카였다.

【빨리 말해! 무게 잡지 말고!】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으로 보아 저 영국인도 신이 되었나보다. 자기 별명에 맞게 평화의 여신 같은 존재말이다. 그 순간 이현우는 잠깐 고민했다. 그러곤 문득 물었다.

"첫 번째 거 선택하면 어찌 됩니까? 소설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기억 있는 채로 과거로 돌아가서 주식, 로또 대박나고 이런 거에요?"

【······그걸 원하세요?】

"아뇨. 그냥 한 소리죠. 기억 이대로 가진 채로 옛날로 돌아가면 미쳐버릴걸요. 절대 적응 못할 거에요. 내 손에 묻힌 피가 이제 너무 많아요."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두 번째 거 선택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에요? 저 세상에서 살아갈 원래의 나는 완전히 사라져요?"

【아니요. 이현우 씨가 두 명 존재하게 될 겁니다. 재난 사태에서 회장님 된 이현우 씨와, 괴수나 초인 따위는 모르는 서울대생 이현우. 완전히 다른 인물로.】

"아······."

그 말을 들은 이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망설임 없이 답했다.

"신 되죠. 그럼."

【두 번째 선택지요?】

"예. 이대로 돌아가서 과거로 가봤자 비슷할테고, 그럴 바에 여기 남아서 아래 구경이라도 할랍니다. 그 구경 지겨워지면 은퇴해도 괜찮죠?"

유성연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함께 이현우의 가슴 안쪽에서 묘한 충족감이 차올랐다.

다음 순간 눈을 떴을 때 이현우는 유성연과 동등한 눈높이에 서 있었다.

뭐라 불러야 할 지 모를 초월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 된 이현우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흐릿한 구름 아래 펼쳐진 세상이 훤히 눈에 들어왔다. 세계는 어느새 대부분 되감겼고, 괴수나 초인이 사라진 평화로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현우는 가만히 선 채 어딘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지금보다 한참 젊은 어떤 여인. 그리고 그보다 더 젊은 여인과 남성의 품에 안겨 있는 자그마한 아이.

이제 신이 된 이현우는 그들을 어렴풋이 훑어보는 것으로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나.

그 모습을 보며 이현우는 어렴풋이 말했다.

【이번엔 좀 행복하게······.】

목소리는 웅장하게 울렸다. 이현우는 아래에 펼쳐진 그 가족들의 일상을 천천히 지켜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정말이지 아주 오랫동안이나······.

< 외전. 이현우 (3) > 끝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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