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이현우 (2) >
"이현우 저 새끼, 같은 죄목으로 벌써 여기 세 번이나 들어온 놈이야. 웬만한 교도관들은 다 알아.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될 일은 절대로 안 하는 녀석. 사기치는데 탁월한 능력을 타고났는데 배짱이 없어서 매번 잡혀 들어오는 새끼지. 전에 두 건은 확실한 증거도 없었는데, 몇 번 겁주니까 알아서 술술 실토했다던데?"
"쫄보네요?"
"어, 쫄보."
그 대화는 이현우를 정확히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이현우의 능력은 잘 활용할 시, 교도소에 수감될 일 없이도 떼돈을 벌 수 있었다. 다만, 이현우가 이런 면에서 초짜에 불과하단 것이 문제였다. 누군가를 속이는 것에 양심적 가책을 느끼며 경찰 조사에 언제나 익숙해지지 못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교도관의 평가대로 이현우는 쫄보였다. 겁 많은 청년.
'그래도 이 사람 옆에 있으면 감방 생활 좀 편할 것 같은데. 웬만하면 주변에서 건드리지 않을테고, 소문과 다르게 사람도 꽤 괜찮아 보이니······.'
이현우는 옆쪽에 선 유성연을 슬쩍 쳐다보았다.
난폭해 보이지 않았다. 뭔가 큰 사건을 일으킬 인물처럼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현우의 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았다. 그는 여론의 평가보다 자신의 눈을 더 믿었다. 그래서 라인을 타기로 했다.
"그러니까···협조 좀 합시다, 예?"
물론 교도소란 사건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으며, 유성연은 모든 죄수들의 관심을 받는 슈퍼스타였다. 의외로 얌전하든 말든 누군가 접근해 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현우는 덩치 큰 남자 넷이 다가온 것을 보며 침을 삼켰다. 이딴 사건에 휘말리는 건 딱 질색이었다. 중앙각성자교도소의 교도관들은 가차없기로 유명하다. 변명을 대봤자 이해해주지 않을 것이다. 이현우는 사고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탈옥 계획에 동참할 것을 강요해오는 네 명의 남자는 제대로 작정한 놈들이었다.
게다가, 능력을 봉인하는 팔찌를 찼음에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평균 신장 195cm에 몸뚱아리 대부분이 근육으로 이루어진 놈들. 악명 높은 살인마라도 단숨에 목을 비트는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작자들이다.
하지만 유성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감정 없는 어조로 그 사형수가 말했다.
"저는 이 팔찌 차고도 여기 교도관들 죄다 상대할 자신이 있어서."
이현우는 이 사형수가 얌전한 성격이 절대 아니요, 언론에서 말했듯이 어딘가 결여된 정신병자라는 것을 그 순간 눈치챘다. 하지만 묘하게 허세 같아 보이지 않았다. 다툼이 일어나려던 때,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거기까지만 하지. 소란스러운 건 질색인데···."
거물이었다. 이 원예반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할 인물.
브라더후드의 2인자, 강윤식.
그 중년의 한 마디에 모여있던 사내들이 꼬리를 내렸다. 물론 유성연은 강윤식에게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다.
이현우는 그 모습을 보며 침을 찔끔 삼키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과는 다른 족속이었다. 물러서지 않고 부딪혀서 맞서는 인물. 자신과 완전히 반대되는 듯한······그런 특이한 사람. 저지른 죄가 무엇이든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봤자 사형수. 여기서 평생 나가지도 못하고 죽을 사람이지만······.'
이현우는 돌아가는 길에도, 돌아가서도 유성연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이 남자가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란 걸 깨달았다. 하지만 언론에서 말했듯 어딘가 결여된 것은 분명했다. 이 남자는 위험하다.
'계속 함께하면 나도 말려들지 모른다. 슬슬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현우는 난데없이 떠오른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알림이나, 본 게임이니 하는 이상한 일들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여길 나가 할머니의 회복을 지켜보고 싶을 뿐이다. 그러던 와중, 교도관이 이현우의 이름을 불렀다. 정확히는 죄수번호 3831번.
접견이었다. 이현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걸어나갔다.
그리고 접견에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말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돌아온 유성연이 무슨 일 있었냐며 물었다.
이현우는 넋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길 나가야 될 일이 생겼어요. 무슨 일을 저지르더라도."
공범이 도망쳤다. 빼돌린 돈 전부를 자기가 갖고 잠수탔다. 보호자가 사라졌으므로 할머니는 방치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세는 악화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돌아가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들과 며느리를 일찍 떠나보내시고 손자는 교도소에 쳐박힌 탓에 이리 쓸쓸하게 돌아가신다고? 그럴 순 없다. 절대로.
하다못해 마지막 임종이라도 지켜야 한다. 이렇게 할머니를 떠나보내면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이 따위 최후는 있을 수 없다. 이현우는 저번에 대화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유성연이 건넸던 허무맹랑한 계획.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안이 엄중한 이 교도소를 탈옥하겠다던 그 계획. 거기 동참해야 한다. 후폭풍이 어떻게 날아오든 지금은 알바가 아니었다.
이현우는 간절하게 자신을 어필했다.
고민하던 유성연은 머지않아 대답했다.
"···좋아요. 같이 갑시다."
그리하여 이현우는 실현 가능성이 적어보이던 그 계획의 일원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현우는 이기적으로 움직였다. 자신을 위해서. 아니 할머니를 위해서.
악착같이 무리를 따랐다. 폭음과 비명이 난무했다. 교도관들은 사람을 향해 총을 쏴 갈겼고 짓눌리고 터져 죽은 시체들이 즐비했다. 이현우는 억지로 구역질을 참아야했다. 비릿한 피냄새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멈출 순 없다. 이미 시작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무리의 리더격인 사형수 감방동기는 자신에게 구속구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양보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현우는 그 양보를 거절하지 않았다.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이현우는 팔찌를 풀었다. 총 네 명으로 이루어진 죄수들은 기어이 탈옥에 성공했다. 대부분이 저 사형수 네크로맨서가 활약한 덕분이었다. 이현우는 유성연이 교도관들을 전부 상대할 수 있다고 했던 것이 허세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바깥의 풍경이 드러났다.
쌓아올린 것은 무너졌고, 살아 움직이던 이들은 널브러지고 뭉개져 괴수들의 아가리 속으로 삼켜지는 광경들. 현실이 아니라 아포칼립스 장르 영화에나 어울릴 장면. 이현우는 그 모습을 보며 끊임없이 속으로 되뇌었다. 할머니가 있는 병원은 저러지 않을 거라고.
'거기 병실 값이 얼만데. 할머니는 무사하실거야. 내가 늦지만 않으면, 구할 수 있어······.'
그때였다.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뭔가가 등장했다.
산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생명체였다. 지나치게 거대한 생명체.
마주치는 것만으로 절망과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걸어다니는 재앙. 패닉에 휩싸인 강윤식이 방아쇠를 당겼다. 자살행위였다.
벼락에 가까운 포효가 터졌다. 더해서 굉음과 함께 녀석의 팔이 땅을 내려찍었다.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회색으로 점철된 건물, 그 무너진 잔해, 사동의 죄수들과 교도관, 군의 지원을 기다리던 교도소장까지 모조리 집어삼키는 붕괴가 발생했다. 그 붕괴엔 이 탈옥이 성공할 수 있게 만든 네크로맨서도 휘말렸다. 이현우는 아래로 떨어지는 유성연과 눈을 마주쳤다. 뒤늦게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어둠. 깊은 어둠으로 그 사형수가 빠져들었다.
"아······."
한참 멍하니 서 있던 이현우는 곧 방금의 붕괴는 끝이 아닌 시작이란 걸 알아챘다. 구멍을 중심으로 커다란 지진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여기 있으면 무사할 수 없으리라.
이현우는 뭔가에 홀린 듯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탈출할 수 있게 힘을 합쳤던 동료들을 모조리 버린 채로. 그러면서 이현우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나 누가 살아서 따라오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없었다.
결국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정말 아무도······.
'신경 쓸 시간 없어. 내가 살아야 해. 내가 살아야만······할머니도······.'
이현우는 끊임없이 자기합리화를 했다. 하지만 그가 타고난 비상한 기억력은 마지막 순간 사형수 감방동기가 지었던 표정을 머릿속에 생생히 새겼다. 당황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 무의식적으로 내뻗은 손. 구해달라던 말. 이현우는 그 순간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초월적인 괴수, 난데없는 붕괴에 몸이 굳어버렸다. 조금만 더 빨랐다면. 그랬다면 그 사형수는 죽지 않았을텐데. 구할 수 있었을텐데. 내가 이런 겁쟁이가 아니었다면, 병신같이 벌벌 떨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리 스스로를 자책하며 이현우는 달렸다. 정말 미친듯이 달렸다.
주변에 운 좋게도 버려진 자전거가 있었다. 핏자국이 선명히 묻어있었으나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이현우는 페달을 밟으며 폐허가 된 도로를 질주했다.
병원은 멀지 않았다. 호흡이 미친듯이 가빠진 가운데 이현우는 도착한 병원의 절반 가량이 무너져 있는 장면을 보았다. 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군인들 시체······.'
병원 입구로 들어서던 이현우는 부근에 군인들이 널브러져 죽은 모습들을 보았다. 피 묻은 무기들이 방치되었다. 망설임 없이 그 총기를 쥐었다. 최소한의 장비는 필요했다.
교도소에서도 마주했듯, 망가진 세상에선 괴수만이 적이 아니다. 누구를 마주칠 지 몰랐다. 이현우는 가쁜 숨을 최대한 억누르며 걸어갔다. 다행히 할머니의 병실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곳으로 향하며 아이러니하게도 이현우는 할머니가 거기 없기를 바랬다.
군인들이 잘 지켜내서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셨기를, 어딘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셨기를 바랬다. 그러나 병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현우는 걸음을 멈춰야 했다.
"식량 있는대로 다 챙겨."
"이 병원 쪽에 있던 새끼들은요?"
"몇 명만 살리고 죄다 죽여. 많아봤자 좋을 필요 없어. 포인트로 회복약이란 물건 살 수 있게 된 거 알지? 전문적인 의사들이나 간호사들 싹 죽이고 협조적이고 노예처럼 굴 놈들만 살려. 의사들 대접받던 시대는 끝났다 이거야······."
복면을 뒤집어 쓴 사람들이 보였다. 이현우는 벽 뒤에 숨은 채 그들이 뭘 하고 있는지 살폈다. 그리고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 끔찍한 몰골로 죽은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박제한 듯 해체하여 벽에 걸어놓은 시체들이 줄줄이 보였다. 그 시체들은 환자복이나 의사 가운, 간호복을 입었다. 죽은 이들 대부분이 병원 사람들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이현우는 할머니도 저들 손에 죽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 순간 두려움보다 분노가 먼저 솟았다. 하지만 떨림은 멎지 않았다. 군훈련도 받아본 적 없으므로 이런 불안정한 자세로는 절대 저 살인귀들을 처리할 수 없으리라.
조용하게 숨을 몰아쉰 이현우는 이내 능력을 발동했다.
"거기 누구 있어요? 도와주세요······."
가녀린 여성의 목소리였다.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듯한 목소리. 하지만 그 음성 안에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어조를 추가했다. 남성이라면 한 번쯤 돌아볼 수 밖에 없도록.
이현우의 의도는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뒤이어 발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즉시 이현우는 능력을 한번 더 발동시켰다. 이번엔 목소리가 아니었다.
군훈련을 받은 적 없기에 어설픈 자세를 교정하기 위함이었다.
이현우는 교도소를 탈출하며 손을 얹었던 시체. 싸늘하게 죽었던 교도관이 생전에 가졌던 '습관'을 모방했다. 그러니까, 총기를 훈련하고 탁월한 전투 능력을 기르며 몸에 자연스레 배게 된 습관들. 장기간의 전투라면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순간의 승패를 가르는데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몇 초에 불과하겠지만 이현우는 이 순간 꽤나 '그럴듯한'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발소리가 완전히 앞까지 다가온 순간 벽 바깥쪽으로 총구를 내밀었다.
실실 웃고 있는 남자 둘의 얼굴이 보였다. 이현우는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정확히는, 적을 포착하는 즉시 사살하는 훈련을 받은 '교도관의 습관'이 그리 작용했다.
"뭐······."
뒤에 부상당한 여자가 있을 거라 생각하던 두 남자는 그대로 미간에 구멍이 뚫린 채 뒤로 넘어갔다. 피가 격렬하게 튀었다. 이현우는 그제서야 숨을 몰아쉬었다. 사람을 죽였다. 한 번에 두 사람이나 죽였다. 가슴이 시끄러이 뛰고, 주변이 빙빙 도는 가운데 이현우는 할머니의 병실로 걸었다. 시체들이 박제되어 걸린 복도 사이를 넘어, 병실로.
이현우가 바랬던 것과 달리 할머니는 병실 안에 계셨다. 그 안색이 기억 속의 모습보다 훨씬 창백했다. 위태로워보였다. 그 순간 이현우는 죽은 두 남자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포인트로 회복약을 구매할 수 있다. 의사들의 시대는 끝났다······.
'포인트? 내게 포인트가 있나?'
그리 생각하던 와중, 눈 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살인하는데 성공했고 그로 인해 포인트를 약탈했다는 문구였다.
이현우는 자기가 죽인 두 남자가 꽤 많은 살육을 한 이들이었으며, 포인트를 많이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즉시 이현우는 회복약을 구매했다. 그런 뒤에 할머니의 입을 벌리고 그 약을 흘려넣었다. 피부에 맞닿은 할머니의 살결은 차가웠다.
이미 돌아가신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현우는 포기할 수 없었다.
회복약을 흘려넣은 뒤, 곧장 이현우는 할머니를 들쳐업었다.
이 지옥에 계시게 할 순 없었다. 나가야 한다. 여길 나가야 한다.
"아······."
다 쉬어버린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할머니가 깨어나신 걸까?
모르겠다. 이현우는 그저 달렸다. 그러던 와중 뒤편에서 흐릿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가······."
"······."
"이게 무슨······."
그제서야 이현우는 이 주변에 끔찍하게 죽은 시체들이 널브러졌으며, 자신도 피투성이의 몸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그 이후로 설명을 바라시지 않으셨다. 입을 다무신 채 등에 얼굴을 파묻으셨다. 젖은 물기가 느껴졌다.
그리 한참을 달리던 이현우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할머니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리 침묵이 가라앉은 가운데 이현우는 무릎을 꿇은 채로 울음을 터뜨렸다. 정적 속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울렸다. 할머니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대신 머리에 손을 얹고 쓰다듬어 주셨다. 이현우는 오랫동안 울었다. 정말이지 아주 오랫동안.
그리 폐건물 속에서 할머니와 이십대 손자는 고요히 잠들었다.
"아······."
낮이 밝았을 때 이현우는 여전한 폐허를 보며 이 끔찍한 일들이 악몽이 아닌 현실이었음을 다시 체감했다. 그러곤 밤과는 달리 주변에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이는 것을 보았다.
이현우가 힘껏 소리쳐서 폐허를 지나는 사람을 불렀다.
"여기! 사람 있어요!"
한 중년 사내가 그 소리를 듣곤 이쪽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현우의 기대와 달리, 그는 구조대나 군인이 아닌 듯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멈추더니 입을 열어 말했다.
"미친 겁니까? 뭐, 내가 어떤 사람일 줄 알고 막 불러요?"
"예?"
"그러다 총 맞아 뒈집니다. 미치광이들이 몇인데······지금 여기 지옥이에요, 지옥. 눈에 띄지 않는 게 오래 살길이라고요."
그 조언을 들은 이현우는 이 인물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저씨. 아저씨는 일행 계십니까?"
"일행? 일행이 있으면 같이 다녔겠지, 이러고 있을리가. 먹을 거라도 찾으려고 움직이는 중인데, 왜 물어봅니까?"
"없으면 우리랑 같이 다니자고요."
"방금 내가 한 말을 뭘로 듣고······."
사내는 다시 충고하듯 뭐라 말했다. 이번엔 이현우도 함께 말했다. 지친 상태에서도 말솜씨는 여전히 좋았다. 교묘하게 흐리며 꾀어냈다. 칠 분에 가까운 대화 끝에 사내는 기꺼이 이현우 일행과 함께 다니기로 결정했다. 이현우는 좋다며 사내에게 악수를 청했다.
단순히 어색함 없애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그 기억을 읽어서 정말 위험한 인물이 아닌지 알기 위해서. 사내는 그런 것도 모르고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작은 불씨 피울 수 있는 능력 있습니다. 밤이나 음식 먹을 때 불 걱정은 하지 말고······난 박수한이라고 합니다. 그쪽은 이름이 뭡니까?"
"현우. 이현우입니다.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다행히 읽어낸 기억에서 위험한 부분은 없었다.
그리 박수한이 합류하게 된 가운데 이현우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서서히 무리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악수로 기억을 읽어내 위험한 이들은 미리 걸러냈다. 단순히 여러 명 모여다니는 것을 넘어, 집단이라 부를 정도의 규모까지 거대해졌다.
"회사라고 부릅시다."
"회사요?"
"네. 그리고 짬에 맞춰서 직급도 만들죠. 이를테면 부장, 과장, 대리 이런 것들······그래야 이 난장판 된 세상에서도 옛날을 잊지 않고 짐승처럼 굴지 않을테니까."
그리하여 「회사」가 탄생했다.
이현우의 집단은 나날이 성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법과 도덕, 질서가 파괴되는 가운데 상식적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집단이나 다름없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생존자들이 모여드는만큼 다른 집단들의 견제도 들어왔다. 그들이 보기에 이현우가 집단을 운영하는 방식은 영 기껍지 않았다. 세상이 바뀌었으면 그에 맞춰 살아야지, 왜 여전히 옛방식을 따르는가?
그런 명목으로 마구 쳐들어왔다. 실제로는 여전히 올바르게 움직이는 그들 탓에 자기네들이 더욱 죄인처럼 보일까 찔려서 그랬던 것이었다.
회사가 끊임없는 다툼에 휘말리는 가운데, 이 피곤한 상황 속에서 이현우는 언제나 편히 잠들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어?"
난데없이 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순위. 그 동안 포인트를 모은 랭킹이 공개되었다.
그 속에서 이현우는 있을 수 없는 이름을 발견했다.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붕괴에 휘말렸던. 그래서 죽었다고 생각했던.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으며, 자신이 굼뜨게 움직인 탓에 땅 아래로 빠져들었던 감방 동기······.
죽지 않았다. 그 강력한 사형수가 죽지 않았다.
"······살아있었구나. 유성연 씨···."
그 사실을 알아챈 순간 이현우는 참으로 오랜만에 밝게 웃었다. 정말 밝게 웃었다.
그러곤 다음 날 움직일 채비를 했다.
목적지는 중앙각성자교도소였다. 이젠 거대한 붕괴의 흔적만이 자리한 곳.
"거긴 왜 가요? 위험할텐데."
누군가 질문했다.
이현우는 고민 없이 답했다.
"은혜를 갚을 사람이 있어서요."
< 외전. 이현우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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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asdasd8954님 후원금 감사합니다.
매일같이 보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닉네임을 외울 것 같습니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