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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108화 (108/111)

< 외전. 이현우 (1) >

이현우는 어디에나 있을법한 평범한 인물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기초교육을 받게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러했다. 그 기초교육을 받으며 이현우는 뛰어난 총명함을 드러냈다. 한 번 본 것은 잊지 않으며, 대단한 이해력을 발휘하는 모습. 소위 영재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부모는 아주 기뻐했다. 하기야, 자기 아들이 영리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우려나 걱정을 보이는 부모는 아무도 없으리라.

그 빼어난 총명함이 타고난 각성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란 건 오래 걸리지 않아 밝혀졌다. 인간 백과사전. 뛰어난 성대모사는 물론이요, 외모를 모방할 수 있는 능력. 더해서 한 번 본 것을 까먹지 않고 기억하며 접촉한 대상의 기억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 현대사회와 사교육의 시대에서 그 능력은 진가를 발휘했다. 게다가, 이현우는 능력 없이도 원래 언변과 머리가 원체 뛰어났다. 논술과 같은 부분에서 이현우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영재라고 불리우는 아이들을 완전히 찍어눌렀다. 학부모들 몇이 능력을 사용해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 성적을 따내는 건 불합리하지 않느냐 물었다.

그리하여 이현우만 따로 능력 사용유무를 따지기 위해 측정기를 찬 채 시험을 봤다. 그런데도 틀린 문제 하나 없이 모두 백점이었다. 학부모들은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 어린 초등학생은 미워할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영약하게도 이현우는 그 학부모들의 기억을 읽어내 호감을 살만한 목소리를 내고 예의 바른 모습을 연출했다. 미묘하게 이목구비의 위치를 조작해 인상을 바꾸기도 했다.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모두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 뛰어난 능력으로 이현우가 꿈꾼 것은 평범한 가정이었다. 지금 부모님처럼 금슬 좋게 오손도손 살면서 할머니를 모시는 것. 특별한 건 필요없었다. 물론 그 꿈은 순식간에 박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었다. 사고였다.

장례식에서 할머니는 울지도 않았고, 묵묵하게 찾아오는 이들을 반겼더랜다.

'할머니는 슬프지도 않나? 나는 가슴이 이렇게 뻥 뚫린 것 같은데······.'

그 모습에 이현우는 더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모두가 떠난 뒤, 납골당에 비치된 부모님의 사진을 보며 할머니는 그제서야 주저앉은 채 울었다. 이현우의 서러움과는 비할 수 없었다. 부모 잃은 자식은 고아라 부르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를 부르는 단어는 없다. 이현우는 태어나서 할머니가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언제나 여유롭고 강인하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몇 시간 동안 울었다. 그 울음 속에 미안하다느니, 자기가 대신 죽었어야한다느니하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러던 할머니는 문득 어린 이현우를 끌어안곤 말했다.

"우리 아가, 어떻게 사누. 어떻게······."

그 접촉으로 하여금 이현우는 할머니가 느끼는 슬픔들을 더욱 진하게 느꼈다. 가슴이 뻥 뚫린 게 아니라, 완전히 무너져서 내용물이 쏟아지는 기분. 할머니가 바라보는 세상은 하늘이 무너졌다. 이현우는 할머니를 더 꽉 끌어안았다. 그러곤 말했다.

"잘 살 수 있어요. 할머니 있잖아요. 엄마랑 아빠도 하늘에서 안심할 거에요. 우리 할머니 있으니까 다행이라고. 잘 맡길 수 있겠다고······."

그 이후부터 이현우는 성실하게 살았다. 가끔씩 학원을 빼먹고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쉬는 시간에도 공부에 열중했다. 아버지가 으레 하곤 했던 말이 머리에 박혔다. 언제나 열심히 살아라.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그러니 게으르게 살지 말고 노력하거라······이현우는 그 말을 칼처럼 지켰다. 물론 공부벌레처럼 살면서도 인간 관계는 제대로 유지했다. 접촉하는 것으로 기억을 읽어내며 목소리와 외모, 습관을 타인처럼 바꿀 수 있는 재주는 그런 방면에서 최고의 힘을 발휘했다.

그리하여 이현우는 하루도 쉬지 않으며 마침내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서울대학교. 주변 친구들이 모두 축하해줬다. 이현우는 그 날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 편히 쉬었다. 성인이 된 기념으로 거나하게 취하도록 술을 마셨고, 아이들과 어울렸다.

물론 역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사고를 당하셨다고요?"

신은 이현우에게 하나 남은 가족마저 앗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이현우는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호흡기를 달고 누워있는 할머니를 보자니 모든 게 막막했다.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다. 수술비는 지나칠 정도로 비쌌다. 병실에 계시는 병원비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서울대학생이라는 이름을 팔아 과외를 해도 모자랄 정도로.

그럼 아르바이트를 여러 탕 뛰며 과외까지? 아니. 그래도 부족하다.

로또를 맞아도 돈이 줄줄 새어나갈 판이다. 순간 이현우는 다른 생각을 했다.

포기할까. 그 동안 열심히 살지 않았나. 이제 내 삶을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할머니에게 사로잡혀 이십대마저 모두 버린다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던 이현우는 문득 화장실로 달려가 구역질을 했다.

무슨 생각을 한걸까? 할머니는 나보다 더한 세월을 희생하셨다. 자신을 태워서 나를 키우셨다. 할머니는 여인의 삶을 포기하고 어머니가 되셨고, 어머니의 의무를 다하고 나서도 할머니가 되셨다. 나는 그 희생을 저버릴 수 있나? 아니. 그럴 수 없다.

평생 고생만 하셨다. 아들이랑 며느리를 일찍 떠나보내시고 처절하게 울부짖던 그 순간은 여전히 생생히 기억났다. 인간 백과사전이라 명명된 능력은 쓸데없이 비상한 기억력을 자랑했고, 그 탓에 지금도 선명히 그 목소리를 기억했다. 이현우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눈을 치켜떴다. 돈이 필요하다. 많은 돈. 수술비를 충당할 아주 많은 돈.

"아주 사기치라고 하늘에서 도와준 능력이네? 네가 배우를 맡겠다고?"

"예."

이십대 청년이 아주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나쁜 길로 빠지는 것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평생 성실히 살던 청년은 사기꾼이 되었다. 사람을 농락하고 정신을 빼놓는 사기꾼.

이현우는 실력이 좋았다. 초짜라는 걸 감안해서 실력이 좋다는 게 아니고, 그냥 사기꾼들과 견주어도 실력이 아주 좋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손을 잡는 것으로 대상의 기억을 읽어내 속사정을 입밖으로 읊을 수 있으며, 외모와 목소리를 뜻대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은 가히 천상 사기꾼의 능력과 다름없었다. 부잣집 사모님들은 금세 빠져들었다.

"그래요? 아니, 그건 또 어떻게 아시고······어머. 정말 뭐가 있나봐······."

집안의 사소한 사건들이요, 트라우마처럼 숨겨두었던 것들을 꺼냈다.

그들의 눈에 이현우는 용한 점쟁이를 넘어서 신적인 존재처럼 보였다.

순식간에 거금을 쥐었다. 병실에 계시는 건 물론이고 수술비를 충당하고도 한참 남을 돈이 들어왔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한들 이현우는 초짜였다.

어딘가로 돈이 새나간 것을 알게 된 사모님들의 남편이 경찰에 신고했다.

생전 처음 경찰서에서 이름과 주민번호를 부르고 조사당한 이현우는 크게 당황했다. 머리가 어질해졌다. 이현우는 배짱이 없었다. 애초에 배짱이 있는 것이 이상했다. 평생을 공부만 했으며, 돈을 벌기 위해 억지로 뛰어든 청년이 뭔가 대단한 배포가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이현우는 확실한 증거가 없었음에도 스스로의 잘못을 실토했다.

다행히도 그 사모님들이 자신들은 사기당한 게 아니라며 극구부인했고, 초범이었으며, 서울대 출신이었기에 교도소에 오래 살진 않았다.

이현우가 실력자임을 알아챈 공범들은 이현우의 출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약속대로 이현우가 수감된 동안 그의 할머니 수술비를 내주었다. 이현우는 믿을만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다시 사기극을 시작했다.

"옛날에 아들이 장난감 삼킨 적 있죠? 네모낳고 붉은 레고······의사가 뭐랬죠? 원래 애들은 다 입으로 가져가니까 조심하라고 했던가. 아니에요. 귀신이 든 겁니다. 무섭고 외로우니까 도와달라고, 자기 좀 봐달라고 장난감 삼킨거죠.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귀신 들려서 받는 통증은 죽는 것보다 고통스럽거든요. 그 다음에도 그러지 않았어요? 칼에 검지 손가락도 베였었고, 난데없이 아빠한테 뭐 집어던지면서 화낸적도 있죠? 아이고,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되었으면 좀 위험한데······."

"그, 무슨 말도 안 되는······그리고 대체 어떻게 그런 것들 알고 계시는······."

"신령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고통받는 영혼을 구하라고요. 못 믿으십니까? 허어······그럼 이건 어떻습니까······엄마!"

이현우는 목소리를 점점 줄이다 마지막에 가서야 그 자식의 목소리를 흉내내 소리쳤다. 사모님의 기억 속에 남은 목소리를 대충 흉내내면 되었기에 어렵지 않았다. 그 즉시 부잣집 사모님은 놀라서 뒤로 넘어질 뻔했다. 이현우는 트라우마처럼 남은 그녀의 기억에서 딸이 외쳤던 말들을 반복했다. 자존심 센 사모님들도 어머니일뿐이다. 딸이 죽을만큼 고통받고 있다는 말에 그녀는 흐느끼며 결국 돈을 지불하기로 했다. 아무런 효능 없는 부적을 구입하기 위해서. 물론 부적은 아무 효능 없었지만, 불화가 깊었던 그 가족 관계는 실제로 개선되었다. 기억을 읽고 갈등을 해결하도록 유도한 이현우의 언변 덕분이었다.

그리하여 정말 변화를 맞이한 피해자들은 이현우가 사기범으로 잡혀가는 걸 보면서도 경찰이 미쳤다고 말했다. 절대 사기꾼이 아니라고, 진짜 신령님과 소통하시는 신성한 분이라고, 모욕하지 말라고 소리치면서······.

이현우는 그런 과정을 몇 번 반복했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이번 수술만 훨씬 좋아지실 겁니다. 어쩌면 병상에서 일어나 가벼운 산책도 하시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근데 꽤 비쌉니다. 그······."

의사는 이번에 괴수 부산물 활용한 새로운 기술이니, 외국쪽에서 나온 거라 굉장히 값이 비싸다느니 말을 덧붙였다. 이현우는 당장 하겠다고 했다.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다. 이제 스스로의 실력에도 꽤나 자신감이 붙었다.

"크게 한 탕 하자고? 우린 좋지."

그리하여 이현우는 대한민국에서 꽤 알려진 인물들을 건드렸다.

만만치는 않았지만 엄청난 거금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러한 거물들의 주변엔 영리한 이들이 많기 마련이다. 그들은 이현우가 벌인 게 사기라는 것을 곧장 알아챘고 신고를 넣었다. 그 사이, 이현우는 돈을 빼돌린 뒤 공범들에게 전했다. 그들은 이번에도 자신들만 믿으라 말했다. 옛날처럼 자신들이 잘 보살펴 주겠다고. 할머니가 만약 깨어나면 꼭 연락하겠다면서······.

그리하여 이현우는 담담히 체포되었다. 출소했을 때는 누워계신 할머니가 아닌 깨어나신 할머니를 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호송되는 과정은 이제 익숙했다.

법무부 호송버스. 이젠 관광버스처럼 느껴지는 이동수단이다.

그 속에 흉흉한 분위기가 이현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도 마음이 편하진 않지만, 애써 유쾌한 척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멍한 얼굴로 정면만 빤히 쳐다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유명인 아닌가?

이현우는 문득 손을 흔드려다가 온몸이 포승줄로 묶였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손을 흔드는 대신,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저기요, 유성연 씨 맞죠?"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마.

사형수 유성연.

< 외전. 이현우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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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오랫동안 쓰던 노트북이 맛이 갔네요..

오늘은 한편만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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