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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107화 (107/111)

< 외전. 안혜지 (2) >

'숙녀? 이 새끼 왜 생긴 건 나랑 나이 비슷하게 생겨서 말투가 이따위······.'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안혜지는 생각하는 바를 입 밖으로 내뱉는 대신,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엔 너무나 지쳐있었다. 이 난리통에서 생존자들을 만났다는 생각에 반갑다는 마음이 먼저 솟기도 했고.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완전히 긴장을 놓진 않았다.

'좀비 영화. 아포칼립스 관련 장르에서 사회 망가지면 늘 씹새끼들 출현하지. 정해진 수순 마냥 짐승처럼 구는 녀석들이 태반이야. 이놈도 그러지 않을 리 없다. 아니, 느끼하게 생겨서 말투도 좆같은 거 보면 거의 백퍼센트······.'

안혜지는 터덜터덜 걸어오며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들을 살폈다.

그 시선들은 묘하게 끈적거렸다.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생존자를 보는 시선이 아니다. 이 캠프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은 그때 눈치챘다. 더해서, 안혜지는 세워진 천막 틈새에서 슬쩍 자신을 바라보는 흙투성이의 사람들을 보았다. 명백히 구타당한 흔적이 보였다. 괴수들에게 입은 부상이라기엔 어울리지 않는다. 이십 미터 고질라한테 두들겨 맞고 저 정도의 부상이라면 슈퍼 솔저로 데뷔해야지, 저기서 골골거리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이다. 학대당하던 사람들을 여기서 구했거나, 이 사람들이 저들을 노예 취급하며 학대했거나. 고작 몇 시간만에 그게 가능한 일인가?

가능할 것이다. 원래 사람은 자기가 우월하다고 생각되는 순간 십분 가량의 시간만에 얼굴을 확 바꿀 수 있는 생물이다. 법과 도덕 따위 적용되지 않을 듯한 이런 세계라면 더더욱.

"일단 쉬시죠? 음식도 좀 드시면서 쉬시고······."

안혜지는 그가 건네는 에너지바와 음료수를 받았다. 에너지바는 포장이 뜯어지지 않은 완전히 새것이다. 하지만 음료수는? 묘하게 미적지근하다. 한참 전에 뜯어낸 것이 분명했다. 안에 모종의 약을 탔을지도 모른다. 안혜지는 저들이 의심하지 않게 옅게 웃으며 음료수를 단번에 들이켰다. 그러곤 안내하는 천막으로 들어가 일단 몸을 뉘였다.

"좀 자세요. 그 뒤에 이야기라도 하죠."

그 말대로 했다. 누운 채로 안혜지는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곤 완전히 잠에 들기 전에 떠오른 게임 인터페이스 창을 눌렀다. 포인트로 무언가를 살 수 있다. 그 문장을 읽은 직후에 봐두었던 물건들이 있다. 회복약. 모든 해로운 효과를 제거하는 물건.

완전 회복이라는 거창한 효과도 있었으나 그만한 물건을 구입할 재화는 없다. 안혜지는 가장 아래에 위치한 싸구려 회복약을 구입했다. 이게 약성도 회복시켜줄까? 모른다. 하지만 안혜지는 그러리라 믿었다. 자신의 몸은 무척 튼튼하니까.

'뭐, 안되면 그냥 노예처럼 굴어야지. 애써 반항해봤자 저 숫자면 상대하다 뒈질게 뻔한데 일단 어떻게든 목숨이라도 부지해야······.'

개처럼 살아남아야만 훗날의 기회를 볼 수 있다. 안혜지는 저승보단 이승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 중 하나였다. 어떤 경험을 겪든, 일단은 살아야한다. 그래야만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안혜지는 예비용 장비인 권총을 매만진 뒤, 괴수 부산물 해체용으로 언제나 구비하고 있는 단검을 만졌다. 그녀가 그 동안 쌓은 경험과 전투 능력으로 미루어보면 무장하지 않은 성인 남성 다섯쯤은 단숨에 골로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군에 가까운 장비로 무장한 집단이라면? 빌빌 기는 게 답이다. 밤에 몰래 도망치던가.

다행히도 이 생존자 무리는 그 정도의 장비는 구비하지 못했다. 아까 들어오면서 미리 파악해두었다. 안혜지는 천천히 잠드는 척을 했다.

음료수 안에 약을 넣었는지, 아니면 피로감 탓에 몽롱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건 회복약이 제 효능을 올바르게 발휘했고, 그리하여 졸음이 씻겨나가듯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안혜지는 실눈으로 텐트 바깥을 쳐다보았다. 누군가 천막을 걷히며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 명이 아니다. 두 명? 아니, 세 명이다. 그들은 헤벌쭉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번에도 걸렸······."

의도를 파악하긴 어렵지 않았다. 안혜지는 잠버릇처럼 몸을 돌리는 척하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러곤 흘긋 눈을 뜨며 각각 위치를 파악한 뒤 권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렸다. 비명 없이 한 놈이 뒤로 넘어갔다. 피가 터졌다. 두 명이 놀란 눈을 뜨는 것이 보였다. 안혜지는 한 번 더 방아쇠를 당겼고, 그러면서 웅크린 놈에게 달려들었다.

머리채를 붙잡아 기우뚱하게 만든 뒤, 단검을 찔러 목을 꿰뚫었다.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놈이 쓰러졌다. 그와 함께 인간 살해에 성공했다느니,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포인트를 옮겨받느니하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 문장을 읽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안혜지는 천막 바깥으로 나왔다. 생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사정 없이 구타당하는 이들. 벌거벗겨진 채 내버려진 이들.

그들을 보며 낄낄대는 이들.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저들이 방금 전까지 현대 사회에 살던 소시민들이 맞는가? 알 수 없었다. 게임처럼 바뀌어 버린 세상에 맞게 악역에 해당되는 NPC들이라도 출현한걸까? 그것조차 모르겠다. 현실이란 게임보다 훨씬 잔혹하기 마련이다. 안혜지는 권총을 겨눈 채 당겼다. 한놈이 더 죽었고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저 씹······."

안혜지가 천막 뒤로 몸을 숨겼다. 그 직후 탄환 세례가 쏟아졌다. 저쪽에도 총이 있기는 있었다. 숫자에서 밀리는데다 총기까지 보유했다면 승리는 희박하다. 도망치는 것이 답이다.

그리하여 몸을 돌린 채 뛰었다. 그때 누군가가 안혜지의 발목을 붙잡았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저도 데려가주세요. 제발······."

그 안쓰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안혜지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발목 아래가 없었다. 처참하게 짓뭉개졌다. 의도는 모르지만 결과는 끔찍했다. 제대로 걸을 수 없고 동물처럼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기어다니고 있었다. 안혜지는 애써 감정을 추스렸다. 이기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망가진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나만 챙겨야 한다. 나만······.

안혜지가 거칠게 그 손을 걷어찼다. 그러곤 달렸다.

뒤편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데려갈라느니, 살려달라느니, 이 지옥에서 꺼내달라는 비명. 안혜지는 무시했다. 듣지 않으려고 했다. 아무리 멀리 도망가도 그 목소리는 끊임없이 귓가를 따라다녔다.

격변 이전, 여러 사람들이 자신에게 건넸던 감사들과 얽혀 들렸다.

감사합니다. 살려주세요. 헌터님 덕분입니다. 이 지옥에서 꺼내주세요.

고문에 가까웠다. 안혜지는 폐건물 안에 누운 채 한참을 구역질했다.

숨을 헐떡이며 뻥 뚫린 벽면 밖의 풍경을 보았다. 언덕이요, 산이라 불러도 될 생물체들이 서울 한복판을 부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게임이 되었다기엔 지나치게 가혹하다. 안혜지는 이제 탄약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어찌 해야하는가? 아까처럼 운 좋게 요행으로 괴수를 사냥할 수 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소리에 민감하며 냄새를 기가막히게 맡는 놈들 특성상, 사냥 와중에 다른 괴수들이 끼어들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얼마 남지 않은 총알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지 아닌가? 그런 고민들이 머리 속을 휩쓸었다.

하지만 결국 안혜지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살아남을 것이다. 악착같이. 누구보다 악착같이.

"저기······."

그런 각오를 마친 안혜지는 언제나 쉼없이 움직였다. 다른 이들이 사냥하던 괴수를 몰래 잡아서 포인트를 벌기도 했고, 일반인인척 생존자 캠프에 끼어들어 식량과 탄약을 약탈하기도 했다. 이십대 여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캠프는 없었다. 물론, 도둑년이 돌아다닌단 소문이 퍼진 이후로는 그 일들도 힘들게 되었다. 안혜지는 여전히 줄지 않는 괴수들과 하루가 지날수록 짐승처럼 구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땅에 떨어진 담배 한 갑이 보였다.

잠깐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몸은 곧 자산이다.

헐떡이는 1초가 곧 생사를 가를 순간은 많을 것이다. 안혜지는 다시 한 번 자신의 결심을 상기시켰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눈 앞에 새로운 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던전, 지하미궁.

게임과 같은 단어였다. 그 문장을 읽던 안혜지는 아래쪽에 쓰인 '입장 시 포인트 지급'이라는 단어를 보았다. 괴물 같은 각성자들이 출현하는 가운데 그녀는 우승을 노릴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살아남을 궁리라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광화문 광장? 여기서 멀지 않은 거리······.'

고민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안혜지는 곧장 그쪽으로 향했다.

거기 앉아있던 와중, 헬멧을 뒤집어 쓴 괴상한 사내를 보았다.

'별 미친······.'

물론 그 첫인상이 바뀌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와, 씨발. 방패 몇 번 들고 천 포인트? 미쳤다······내가 진짜 개처럼 몸빵해줄게. 우리 평생 같이 해요."

안혜지는 그 사내가 거물이라는 걸 금세 알아챘다.

그리하여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 가운데 안혜지는 행복했다. 그러던 와중 사내를 따라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회사」였다. 그녀가 보았던 생존자 캠프들과는 완전히 다른, 상식과 도덕이 존재하는 집단. 그 집단의 리더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아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의 대화를 나눈 이후 안혜지는 이현우에게 금세 빠져들었다. 안혜지는 그런 대화를 하는 와중, 가끔 이리 묻곤 했다.

"이 망가진 세상에서 이런 집단을 어떻게 만든 거에요. 대체?"

"그냥······여러 사정이 겹쳐서요."

그 사정들이 비각성자인 할머니가 홀로 남겨질까봐이며, 가족처럼 알게 된 사람들이 훗날 좋지 않은 꼴을 당하지 않게 되었길 바랬다는 건 머지않아 알게 되었다.

안혜지가 보기엔 이 남자가 그 네크로맨서보다 훨씬 대단해보였다.

이 회사라는 집단도, 이현우가 가진 사상도······.

그리하여 안혜지는 프리랜서 헌터 대신, 이 회사에 소속되는 것을 결정하게 되었다.

회사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매일 같이 바빴지만 악독하게 살지 않아도 되었다. 안혜지는 참으로 오랜만에 편한 잠을 잤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 올바른 신념. 당연한 것들은 이제 소중한 것이 되었다. 안혜지는 이 소중한 것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 안혜지는 언제나 꿈을 꾸었다. 옛날의 꿈.

이제 행방도 모르게 된 가족들. 주말이나 휴일에 만나서 시답잖은 이야기를 떠들곤 했던 친구들. 소중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이들.

지금의 삶도 소중하지만, 안혜지는 여전히 그때를 기억한다.

걱정거리라곤 미래의 결혼이요, 일자리 유지였던.

난데없이 쏟아지는 이십 미터 고질라들과 피에 굶주린 미치광이들을 경계하지 않아도 되었던 그 시절을.

그리 치열하게 살았다.

안혜지는 마침내 본 게임의 마지막 순간에 도달했다.

우승자는 역시나 그 네크로맨서였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안혜지는 문득 유성연이 사라졌음을 알았다. 직후, 세상이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동요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안혜지는 기꺼이 그 변화를 받아들였다. 종착점에 도달한 그 네크로맨서가 선택한 변화. 세상의 평화.

***

"허억······."

안혜지는 몸을 일으켰다. 땀으로 옷이 흠뻑 젖었다.

또 똑같은 꿈을 꾸었다. 괴수가 쏟아지고 초인들이 등장하던 괴상한 꿈.

안혜지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당연하지만 뻥 뚫린 구멍이요, 폐허가 된 서울은 없었다.

화려하게 빛나는 야경만 있었다. 안혜지는 숨을 돌리며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배경화면으로 그녀와 한 사내가 손을 맞잡은 사진이 보였다.

안혜지는 숨을 추스리며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상대가 금세 받았다.

"새벽인데 받네?"

「아, 할 게 있어서.」

"뭐하는데? 나한테 연락도 없이 밖에서 나도는 거 아니지?"

「집이야, 집. 영상통화라도 할까?」

"아······됐어. 나 방금 일어났어."

「다시 자. 새벽인데.」

"잠 다 깼어. 어디야? 그쪽으로 갈까?"

「집에 할머니 계시는데?」

"할머니 나 좋아하시던데?"

「아니······.」

당황하며 말끝을 흐리는 목소리에 안혜지가 픽 웃었다.

상대쪽에서도 웃는 목소리가 들렸다. 장난임을 알아챈 것이다.

「그래서 왜 깼어? 또 알람 잘못 설정했어?」

"아니, 그냥 이상한 꿈 꿔서. 요즘 계속 이러네. 악몽인지, 그 꿈 꾸면 자꾸 잠도 다 깨."

「꿈? 당연히 나도 나오지?」

"어, 너도 나와."

「뭘로?」

잠깐 생각하던 안혜지는 선명했다가 점점 흐려지는 그 장면을 되살렸다.

꿈이 으레 그렇듯, 깨었을 땐 지나치게 생생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안개처럼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 흐릿한 장면들을 생각하던 안혜지는 그 꿈을 열심히도 떠올렸다.

뭐라고 해야할까? 그리 곰곰히 떠올리던 와중에 한가지 단어를 떠올렸다.

지금 통화하는 상대와는 퍽 어울리지 않는, 그러나 꿈속의 자신이 늘 그를 불렀던 명칭.

"회장님. 이현우 회장님."

< 외전. 안혜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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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제 외전 에피소드 하나와 신이 된 후, 후일담 정도의 스토리를 정리하고 나면 정말 모든 이야기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따라와 주신분들 정말 감사합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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