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김유현 (2) >
"저 새끼 어떡할까?"
"냅둬."
유성연. 그 소년의 등장을 김유현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어린애일뿐이다. 그러니까, 억울함을 호소할 뿐인 어린애.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는 것은 물론이요, 곧 무력감을 느끼고 절망할 소년······.
김유현은 그 소년을 보며 왠지 모를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 죽은 눈 속에서 피멍이 들고 어깨를 움츠렸던 어릴적의 자신을 떠올렸다. 과거의 그를 절망시켰던 헌터처럼 때려눕히는 게 옳은가? 아니, 그냥 두어도 될 것이다.
김유현은 그 소년을 지나쳤다. 국가권력에 가까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초인은 자기가 저지른 수 많은 악행들을 모두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저 소년의 부모를 눈 앞에서 몰살시켰으며 그 과정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말들을 내뱉었음을 모두 잊었다.
그 부모를 죽이면서 소년의 심장박동과 숨소리를 인지했기에, 한 아들이 부모의 몰살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 눈치챘음에도 그랬다. 김유현이 보기에 이제 일반인들은 벌레와 같았다. 복수를 결심해봤자 약간 소란을 일으키는 것에서 그칠 수 밖에 없는 벌레들.
벌레가 앵앵거린다고 굳이 힘들여 잡을 필요는 없다. 놔둬도 수명이 다해 죽을 것이다. 하루살이처럼. 감히 불빛에 다가왔다가 열을 이기지 못해 타죽을 것이다.
"오늘 새로운 이쁜이들 들어왔다며? 걔네나 보러가자."
그리 생각없이 굴던 김유현이 그 소년은 벌레가 아니었으며, 행동력 충만한 하나의 인간이었음을 깨닫게 되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헌터에 의해 억울하게 가족을 잃었다며 외친 10대 청소년의 고발로 인해 자격 논란이 벌어졌다. 평소엔 쩔쩔매던 이들이 자신을 호출해 뭐라 중얼거렸으며 기자들이 시끄럽게 지껄이며 김유현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군중이 비판을 내뱉기 시작했다. 과감하진 않았지만, 그 비판이 곧 비난으로 바뀌며 모든 화살이 쏟아지리라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타기란 그런 것이다. 한 명이 물꼬를 틀기 시작하는 순간 분위기에 휩쓸린다.
더불어, 김유현이 위대한 영웅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 거품이 아니냔 말이 들려왔다. 성과가 부실하지 않느냐. 정말 대단한 것이 맞느냐? 같은 말들.
이 상황에 협회가 김유현의 자격 논란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니까, 명예와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쓰는 미국의 슈퍼맨이.
그러던 와중이었다.
"지원 요청?"
대균열 사태가 발생했다.
방어선이 무너졌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통상 균열의 스무 배 크기. 쏟아져 나온 괴수들의 수는 통상의 육백 배로 추정되는 「대균열」. 그 가까이에 김유현이 있었다.
고민할 것은 없었다. 김유현은 그곳으로 향했다.
***
"쏴! 쏴!"
"좆나 많아, 씨발 원숭이 새끼들!"
곳곳에 비치된 자동 기계식 병기요, 근무를 섰던 군인들은 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적들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았기 때문이다. 기계식 병기는 과열되어 정지되었고 군인들은 이 난잡한 상황에 우선 순위를 두지 못했다. 군인들 중엔 적들을 물리치는 대신, 자기 핸드폰이 어딨는지부터 찾는 병신들도 많았다. 떨어진 휴대폰 액정에 SNS 메시지 창이 띄워져 있었다. 이곳의 근무 환경이 어땠는지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인류는 지나치게 오랫동안 평화로웠고, 그 평화는 그들을 나태하게 만들었다. 무너진 방어선 속에서 모두 비명질렀다.
그리고 그 전장에 한 사내가 등장했다. 김유현.
"김유현? 당신 혼자입니까? 지원은? 대한민국 다른 헌터들은······."
"나 혼자면 충분한데."
그 대답에 모두 안심하지 못했다.
영국의 대마법사나, 일본의 검성과 달리 김유현은 아직 자신의 힘을 증명한 전력이 없었다. 시야에 걸린 모든 것을 참살하는 괴물이나 41Km 반경을 모조리 날려버리는 마법사가 현 상황에선 훨씬 쓸만할 것이다. 군인들 중엔 김유현의 능력을 제대로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 한국인의 힘이 이런 다수전에 최적화되었으며, 걸어다니는 핵폭탄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하여 김유현은 백마디 말로 자신을 어필하기보다 힘을 보여주기로 했다. 괴수들에 비하면 한참 작은 한국인이 걸었다. 시선을 위로 올렸다.
난동치는 괴수들은 스스로의 존재감을 과시하듯 포효를 내질렀다. 포효는 곧 성대를 진동시켜 내는 시끄러운 볼륨의 음파였다. 그러니까, 김유현의 무기가 되기 충분한 소리.
김유현이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진동하며 일대를 흔들던 소리가 멎었다. 그러곤 느닷없이 괴수들의 머리통이 폭발했다. 피와 뇌수가 튀어올랐다. 흩뿌려지는 잔해들 틈에서 놀란 눈을 한 군인들이 보였다. 그 과정에서 김유현은 얼마 전 거금을 투자해 만든 무기를 꺼냈다. 원하는 악기로 변환할 수 있는 물건.
"제대로 찍어. 사람들이 좋아하게."
김유현은 두 손에 기다란 스틱을 쥐었다. 그러곤 외견을 바꾼 물건을 두드렸다.
드럼이라 불러야 할지, 북이라 불러야할지 모르는 애매모호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물건을 사용하는 인물이 한국인이기에 북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기다란 스틱이 북을 한 번 두드렸다. 스피커 볼륨을 최대까지 늘인 듯, 커다란 음량이 주변을 휩쓸었다.
괴수와 사람을 때리고 넓게 퍼진 음파는 곧 충격파가 되었다. 수류탄을 아득히 넘어서는 무형의 폭탄. 여러 번 충돌하며 증폭된 충격파는 괴수들의 몸을 뒤흔들었다. 겨우 살아남은 원숭이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뇌진탕에 가까운 진동이 머리를 감싼 것이다.
그런 것들은 군인이나 자동 기계식 병기들이 사살했다.
"AH······."
전장은 수초만에 전황이 뒤집혔다. 소리를 다루는 능력은 곧, 그 공격이 가해지는 속도도 음속에 육박한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김유현의 능력은 알려지기로 한계까지 끌어낼 시 그 영국인 대마법사보다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저 한국인은 반경 41Km를 넘어서는 범위에 소리의 속력으로 매순간 타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는 곳마다 핏물이 터졌다. 정확히 적군만을 타격해 부수는 공격들. 절망에 빠졌던 군인들이 보기에 그 광경은 전율적이었다. 인류를 구하는 영웅의 힘이요, 신의 심판에 가까웠다.
모두가 열광해 함성을 내질렀다. 그 함성 위로 적들의 비명과 총성, 폭음이 내려앉았다.
균열에서 등장하는 족족 괴수들이 죽었다. 김유현이 휘파람을 한 번 불었다.
그 휘파람조차 무기가 되어 적들을 절명시키는 가운데 누군가 김유현의 능력명이자 훗날 가장 유명해질 별명을 읊조렸다.
"마에스트로······."
그 날 전장의 마에스트로는 자신의 존재감을 당당히 증명했다.
죽어 널브러진 괴수들 위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은 신화의 한 장면과 빗댈만했다. 그 장면은 영상으로 기록되었고, 댓글창은 한국인들의 말로 폭발했다. 한국적인 물건인 북을 다루며 모두의 환호성을 받는 자국민. 국뽕이 차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타기의 민족답게 언제 비난을 뱉었냐는 듯 다 함께 찬사를 쏟아냈다. 이 놀라운 무력을 가진 개인에게 정부도 당연히 힘을 실어주었다. 매스컴이 움직였다. 제기되었던 논란이 묻히는 건 삽시간이었다. 승리하고 돌아온 김유현은 국민 영웅 취급을 받았다.
"과찬입니다. 그분들께서 희생하시고 버텨주셨기에 제가 활약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개인이니 당연히 혼자서 전쟁의 승패를 뒤집는 건 불가능······."
여론이 좋을 땐 분위기만 타면 된다. 김유현은 입에 발린 말 몇 번 내뱉는 것으로 단숨에 이미지를 회복했다. 전과 4범에 살인 용의자 취급을 받던 사내는 단숨에 겸손을 갖춘 초인으로 탈바꿈했다. 그 과정에서 식물인간이 된 헌터 남편을 돌보던 아내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협회 한국 지부 앞에서 부모를 억울하게 잃었다며 1인 시위를 이어가던 청소년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는 사실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 멈추지 않고 김유현은 유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인터뷰 몇 번과 통 큰 기부. 이미지 세탁의 정석은 당연히 이번에도 잘 먹혀들었다. 그 댓글에서 종종 비난을 내뱉으면 답글로 너는 누군가에게 기부 한 번 해본 적 있느냐, 기부라도 하고 떠들어라, 저런 힘을 갖고 겸손을 갖추고 베푸는 게 당연하냐라는 말들이 달렸다.
전과 기록 있는 살인사건 용의자는 어렸을 적 탈선 좀 했던, 개천에서 용난 대한민국의 슈퍼 스타로 거듭났다.
개과천선한 세계적인 실력자.
할리우드 톱스타들에게 구애받는,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하나.
김유현이 정상에 군림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빚은 금방 청산되었다.
돈벼락에 앉은 김유현은 전망을 바라보며 웃었다. 마음에도 없는 말들, 어디서 본 것 같은 명언들을 쑤셔넣어 SNS 게시물을 올렸다. 그 과정에 사람 좋게 미소 짓는 얼굴과 슬쩍 끼워넣은 명품과 와인들, 한강이 보이는 전망이 있는 사진을 첨부했다.
댓글이 순식간에 달렸다. 그 물건 어디 제품이에요, 오늘도 너무 멋져요, 역시 김유현 헌터······.
쉬웠다. 김유현은 이번에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세상은 지나치게 쉬웠다······.
***
"담배 없어?"
"아, 저도 다 떨어져서······."
"하나 사러가자. 간식거리도 좀 사고."
"애들 시키시지, 굳이 가십니까?"
"서민적인 이미지도 챙기고 눈치 안 보면서 쉬는 시간도 챙기는 거지, 새끼야······."
"아······."
"요즘 애새끼들 배가 불러서 뭐만 해도 갑질 논란이니, 헌터가 비각성자 차별한다느니 이상한 거 따지는 거 몰라? 이런 거라도 챙겨야지. 게다가 업무랍시고 지긋지긋한 반복 작업 자꾸 시키는데 이렇게 벗어나서 개인 시간 챙겨야 하는거야. 알겠어?"
"아, 감사합니다. 오늘도 새로운 거 배웠······."
그리 말하며 김유현은 편의점에 들어섰다.
허름한 편의점이었다. 들어오며 창문에 다닥다닥 붙은 벌레들을 째려보았다. 불빛에 몰려든 벌레들이다. 김유현은 저 벌레들을 보며, 바깥에서 자신을 알아보고 꺅꺅대는 일반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편의점 알바에게로 눈을 돌렸다.
계속해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저놈도 다를 것 없었나보다.
담배를 달라고 말하며 김유현이 물었다.
"사인 해드릴까요? 나 알죠?"
이제 몸에 배어버린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김유현은 그 알바생이 건넨 노트를 받아들고 펜을 쥐었다. 그러면서 가슴께에 달린 명찰을 보았다. 유성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이름이다. 비슷한 이름의 연예인이 있었나? 제대로 기억은 나지 않았다.
대충 노트에 사인을 휘갈기고 유성연에게라는 문장을 덧붙였다. 그러곤 담배를 받아든 뒤 편의점을 나섰다.
"아, 여기 불."
"새끼, 아주 잘 배웠네. 누가 가르쳤는진 몰라도······."
담배 끝에 불을 붙이고 길게 빨았다. 그러고 있는데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어달라느니, 사인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김유현은 담배 하나 태우는데도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다 직후 다시 표정을 관리했다.
그때였다.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편의점 알바가 안에서 나왔다.
왜? 사진이라도 찍어달라고?
"혹시 결제 다시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니었다. 처리가 미숙한 어리버리한 놈이었다.
김유현은 다시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조금 이따 해주겠노라 답했다.
그런데 편의점 알바라는 놈이 계속해서 재촉해왔다.
'알바나 하는 새끼가, 씨발······.'
화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김유현은 감히 편의점 알바생이 거슬리게 구는 이 상황이 기껍지 않았다. 주변에서 사인이나 사진을 요청하던 다른 사람들과 주변 네 명의 동료들이 대신 나서줬다. 김유현은 그 모습을 보며 알바생이 곤란해하길 바랬다.
원래 저런 눈치 없는 새끼들은 대개 찐따인 법이고,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당황하길 마련이다······그때였다.
"커흠! 케헥······아, 담배 연기······."
담배 연기가 코로 들어간건지 재채기가 나왔다. 눈물이 찔끔 나오고, 콧속이 매웠다. 그러면서 코를 부여잡고 눈을 비볐다. 그러던 와중 편의점 알바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걱정스러운 눈빛. 하지만 그 눈빛 속에 뭔가 다른 감정이 숨어있다.
편의점 알바라기엔 어울리지 않는. 더불어 일하던 헌터들에게나 보이던······.
"괜찮으세요?"
그 말이 들린 순간엔 이미 늦었다. 김유현은 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통증이 찾아온 것은 직후였다. 호흡이 훅 빠져나가는 동시에 몸에 힘이 풀렸다. 다리가 무너졌다. 고통은 콧속에서도 함께 찾아왔다.
김유현이 저 알바생이 네크로맨서 능력자요, 그리하여 날벌레 언데드를 코점막을 뚫고 뇌에 침투하도록 명령했으리라 추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김유현은 그저 막연한 순간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쓰러졌다.
그리하여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시선이 되었을 때, 그 알바생이 눌러쓰고 있던 모자 안쪽의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을 때. 그 순간이 되어서야 청년의 얼굴이 누구와 비슷한 지 떠올렸다. 오래 전,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던 소년. 유성연. 부모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던······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죽은 눈의 소년.
머리가 땅에 부딪히고 튕겼다가 다시 힘을 잃었다.
'안돼······이럴수는······.'
여러 순간들이 스쳤다. 그 고통 속에서 김유현은 끝없이 자기 얼굴과 몸뚱이를 찌르는 감각을 느꼈다. 산채로 회떠지는 듯한 생생한 격통 속에서 김유현은 천천히 죽어갔다.
심장박동. 그가 한 부부의 살생을 행할 때, 장롱 안에 숨어서 세차게 뛰던 것과 동일한 심장박동. 그 소리를 선명하게 들으면서.
< 외전 김유현 (2) > 끝
(105)
작가의 말
비중있게 다루던 인물 중 하나인데 살아있던 적이 없어서 외전으로 적게 되었네요.
다음 외전 에피소드는 안혜지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