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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102화 (완결) (102/111)

< Epilogue. 유성연. >

약 칠십 년 전, 세상은 변했다.

인류의 일부는 초인이 되었고 하늘에 뻥 뚫린 구멍에서 괴물들이 쏟아졌다. 격변한 세상에서 각성자라 명명된 초인들은 귀족이 되었다. 놀라운 힘을 가진 그들은 순식간에 사회의 상류층으로 자리잡았다······.

모든 것의 시작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

가장 먼저 그 사건을 바꾸었다. 「첫 번째 격변」이라 명명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단순한 간섭으로 하여금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참으로 많이 바뀌었다.

「오랜 전쟁을 겪으며 인류는 강해졌습니다. 더불어 괴수들의 침략을 막아내는 일은 목숨을 건 사투가 아니라 떼돈을 벌 수 있는 하나의 이벤트가 되었죠. 」

「예. 맞죠.」

「징그럽게 생긴 사체 내부에 박힌 마석과 마력이 듬뿍 담긴 핏물이 화석연료보다 훨씬 효율이 좋을 거라는 사실을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마석과 괴수들의 부산물들은 이제 없어선 안 될 자원이 되었죠.」

「맞습니다. 기자들은 끔찍한 적이라고 평가했지만, 현재에 이르러선 누구도 괴수들의 침략이 멈추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겁니다.」

「뛰어난 헌터들과 용감한 군의 덕이 컸지요. 괴수들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그 침략자들에게 우리가 잡아먹혔을 거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사실입니다. 실제로 사십 년 전까지만 해도 자원을 이용할 생각은 커녕 균열을 틀어막는 것도 급급했으니까요. 무척 다행이었죠. 그 긴 시간 동안 인류와 다르게 괴수들은 조금도 발전하지 못하고 있으니······.」

가장 먼저 인류의 발전은 극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마석과 괴수 부산물을 기반으로 한 기술 개발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한 제품들은 등장하지 않았다. 인류는 석유와 전기를 다루었다. 지하 수십층에서도 통신이 가능한 휴대폰은 등장하지 않았다. 휴대폰은 뒷자리의 숫자만 바꿔가며 11,12,13 따위로 시리즈만 지속해가며 새로이 출시되었다.

눈에 띄는 기술 발전은 없었다. 그러나 그 시절보다 세상은 조금 더 평화로워졌다.

평범해졌다. 이계에서 침략해 온 괴수에게 죽는 이들은 없었다.

원래 그랬듯, 교통사고나 암······혹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가장 많았다.

평화를 되찾은 이들은 당연하게도 이 평화가 한 인물 덕분에 찾아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인류는 찾아온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기도는 실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하느님이요, 부처님에게 쏟아졌다.

【짜증나. 왜 네가 한 일들을 아무도 몰라? 퍼뜨려야 하는 거 아냐? 억울하잖아.】

【억울하진 않은데.】

【난 억울하거든? 나 완전 노력했는데 이제 아무도 나 아는 사람 없잖아. 넘치던 팔로워들이랑 팬들도 없고······지긋지긋하게 선물 보내주던 사람들도 없다고. 이게 뭐야. 너 진짜 이게 재밌어?】

【죽은 사람들 위에서 칭송 받는 것보단 훨씬.】

이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그녀는 이 찬란하고 영웅적인 업적을 세상 모두가 알길 바랬다. 그리하여 신세계의 신이요, 실제하는 절대자로 그가 군림하길 원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 역사에 한 줄쯤 적히는 건 괜찮지 않은가. 하지만 성연은 그저 옅게 웃을 뿐이었다. 하늘 위에선 모든 것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레베카는 문득 질문했다.

【이제 어떡할거야? 진짜 여기 앉아서 몇백년이고, 몇천년이고 신처럼 바라보기만 할거야?】

그 물음에 성연은 잠깐 무언가를 생각했다.

신처럼 계속 군림하며 속세를 내려다보는 것. 편안하지만 지나치게 지루한 일이다.

성연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뗐다. 레베카가 소원을 빌기 전 부탁했듯, 성연은 자신의 행복도 버리지 않을 셈이었다. 그러니까, 자신도 이 세상의 변화를 체감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나는······.】

***

"그러니까 지금 네 역할이 중요하다니까? 잘만 구슬리면 평생 먹고 살 돈 챙길 수 있다고. 할머니 병원비도 낼 수 있는 건 물론, 중국가서 여자들 여럿 끼고 펑펑 놀 수 있어."

"그러다 운 나쁘게 잡히면요? 나 교도소 가면 할머니 누가 챙겨줘요."

"우리가 챙겨준다니까? 내가 애들한테 잘 시켜서 보살펴 드리라고 할게. 사기죄 그거, 몇 년 살지도 않는다? 너 초범이잖아. 게다가 우리 성실하신 서울대생을 의심하겠어? 그거 일종의 치트키다? 가정 형편 좋지 않은 명문대생, 할머니 병원비 구하려 어쩔 수 없이 범죄 저질러······사람들한테도 기가 막히게 먹히겠네! 안 그래?"

"······."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청년, 이현우는 그 말에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학창 시절부터 올바르게 살아왔다.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평범한 여자를 만나 그럴듯한 직장에 들어가 근사한 가정을 꾸리는 것. 그리하여 할머니를 모시고 살며 평생 걱정 없이 눈 감게 해드리는 것. 하지만 그 계획은 틀어졌다.

대낮부터 음주 운전을 한 운전자가 할머니를 들이받았다. 원체 몸이 좋지 않으셨던 탓에 단숨에 위중한 상태가 되셨다. 대학생에 불과한 이현우는 그 병원비를 낼 형편이 되지 않았다. 수술비는 단순한 아르바이트나 과외 따위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준의 돈이 아니었다.

스무 살 청년이 그만한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선 범죄의 길로 빠져드는 수밖에 없었다. 이현우는 지금 고민하고 있었다. 이 사기극에 동참하는 게 아주 꺼려졌으며, 실패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사회 생활 경험도 없는 자신이 어찌 부잣집 사모님들을 속이고 그만한 거금을 빼낸단 말인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 그럼 사채 쓰던가. 우리가 뭐, 강요한 건 아니잖아."

"······."

"사채가 훨씬 막막할걸? 사기 걸리면 몇 년 살다와서 끝이지만, 그 지독한 새끼들한테 걸리면 평생이 죄인이야. 그러니까 우리랑 같이 하는 게 훨씬 낫다고. 좋은 대학 나왔는데 머리 안 굴러가? 어휴······."

이현우는 이제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였다. 뒤편에서 누군가 다가와서 이현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낯선 사람이다. 피곤한 눈, 후드를 뒤집어 쓰고 마스크를 쓴······.

저기 있는 사람보다 훨씬 범죄자 같이 보이는 남자.

"이현우 씨? 맞아요?"

"예?"

"저랑 같이 가죠. 이상한 술수에 걸려들지 마시고.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할머니 수술비 때문에 고민하고 계시죠?"

"어, 그게······."

"안 어울리게 더듬지 마시고 따라와요, 일단."

남자는 이현우의 손을 잡아끌었다. 체격과 어울리지 않게 힘이 꽤나 셌다.

그쪽으로 딸려가며 이현우가 어버버거렸다. 그때 반대편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야, 이 새꺄! 너 뭐······."

뭐라 소리치며 반대편에 있던 이가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남자는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멱살을 잡힌 채, 고개를 치켜들고 그를 노려보았다. 덥수룩한 머리칼 아래에서 빛나는 눈은 날카로이 반짝였다. 그 눈동자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분노나, 짜증이 담겨있는 눈보다 훨씬 소름끼쳤다. 뭐든 할 수 있을 듯한 눈이었다. 언론에서 말하는 싸이코패스요, 소시오패스나 다름없는 눈동자······.

남자가 짧게 말했다.

"놔."

침을 꿀꺽 삼키던 이가 멱살을 놓았다. 그러곤 무언가에 홀린 듯 가만히 서 있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남자는 그대로 이현우를 끌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어둠 속으로, 깊은 어둠 속으로.

***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몇 번이나 당하는건지······할 게 사기밖에 없나? 대체 시간을 몇 번 되감아야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거야······이제 지겨울 지경······."

"예?"

"아, 아닙니다."

이현우는 그 이상한 혼잣말을 들으며 표정을 찌푸렸다.

그러곤 남자가 붙들고 있던 손을 거칠게 놓았다.

"당신 뭡니까? 나 알아요? 도와준 건 고마운데, 갑자기 이게 무슨······."

"알죠. 이현우 씨 도와주러 왔습니다. 원래 이러면 안되는건데 몇 번을 되풀이해도 결말이 시원찮아서요. 내 주변 사람들 챙겨주는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냐고요.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다 아는 방법이 있어요. 어쨌건 사기는 칠 생각 말아요. 가만히 집 가서 기다리고 계세요."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해요? 나도 사정이 있는데. 내가 하고 싶어ㅅ······."

그리 말하던 이현우가 문득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다시 봐도 소름끼치는 눈빛이다. 그 눈을 응시하던 이현우가 침을 꿀꺽 삼키고 조금 얌전한 어조로 말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닙니다, 그 선생님. 가난한 대학생이 돈 필요할만한 사정이 있었다고요. 다른 애들처럼 스포츠 토토하다가 빚 생겨서, 유흥업소 다니기 위한 돈 필요해서가 아니라요. 진짜 간절한 사정이 있어요."

"알아요. 그냥 집에 가 있어요. 알아서 다 해결될테니까. 그런 거 봤죠? 식물인간으로 평생을 살아야 할 거라고 했던 사람이 기적처럼 살아나는 일······다 알아서 될 거에요."

"그걸 어떻게 믿어요? 지금 1분 1초 동안 생사를 넘나드시는데?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도 아니고······."

"전생에 나라 하나쯤은 구했죠. 충분히."

또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다.

어둠 속의 남자는 옅게 웃었다.

이현우는 미심쩍은 목소리로 문득 물었다.

"당신, 대체 누구십니까?"

그 말에 남자.

성연은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친구."

교도소 감방 동기보다는 훨씬 나은 대답이었다.

"······친구?"

그로부터 17시간 뒤.

이현우의 할머니는 의식을 되찾고 빠르게 회복했다.

의사가 말하길, 기적이라고 했다.

***

성연은 어둠 속을 터덜터덜 걸었다.

소설이나 영화에 나왔듯 신과 같은 전지전능한 존재는 속세에 간섭하지 않는다.

그 파급력이 지나치게 강력할수도 있는 것은 물론이요, 자칫 어딘가 망가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레베카는 성연이 여기 내려오는 것을 처음엔 거부했다.

이현우를 돕는 것 말고 두 번째 목적을 말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래? 그럼 가야지. 그 사기꾼이 교도소에 또 잡혀가는 한이 있어도 그건 꼭 해야해······.】

성연은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익숙한 거리를 지나, 낡은 계단을 올랐다.

이사를 거듭하며 초라해진 풍경이지만 여기서 언제나 행복했다.

평생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이번엔 비참한 에피소드는 없었다.

성연의 기억 속에서 부서지고 무너진 광경은 말끔하게 고쳐졌다.

창문 사이로 화사한 빛이 새어나왔다. 김치와 참치를 넣고 끓여낸 찌개 냄새가 정겹게 풍겼다. 성연은 저도 모르게 눈에 물기가 차오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손등을 댄 뒤 익숙한 비밀번호를 눌렀다. 십 년도 넘게 지났으나 여전히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는 번호이다. 당연하게도, 비밀번호는 바뀌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혼기념일. 더 이상 축복할 일이 없던 그 날짜를 누르자 굳게 닫혔던 문은 천천히 열렸다.

좁은 거실에 누워 TV를 바라보는 아버지가 몸을 일으켜 손을 흔들었다. 이제 왔냐는 어머니의 물음. 이름 대신, 아들이라는 단어가 쏟아졌다. 오랫동안 들어본 적 없던. 참으로 그리웠던 단어다.

이 순간 세계를 구한 네크로맨서요, 초월적 존재가 된 청년은 없었다.

거기엔 어릴 적 상처를 입었던 소년만이 자리했을 뿐이다. 휘청거리며 들어온 소년은 새어나오려는 울음을 겨우 참아냈다. 콧등이 시큰해지고 물기로 시야가 흐려지는 가운데, 이 재회의 순간에 절대로 울지 않겠다는 다짐을 마침내 지켰다. 겨우 만들어낸 덤덤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다녀왔습니다."

유년 시절부터 흑백으로 물들었던 세계는 드디어 제 색을 되찾았다. 흑색과 회색이 섞여있던 성연의 세계는 이제 다시금 화려한 색채로 수놓였다.

그 말을 내뱉고 나서야 성연은 울음을 터뜨렸다.

정말 오랫동안, 한참이나 울었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성연은 눈물을 흘리는 동시에 웃었다.

소박한 보상이다. 부와 권력을 거머쥘 수도 있었으나 성연은 지금 이 순간 더 없이 만족했다.

이제 완전한 빛깔을 찾은 새로운 세상이 유성연을 반겼다.

모든 것을 잃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흑백의 세계를 살던.

한 때의 기억에 사로잡혀 평생을 살던 소년은 마침내 유년기의 끝을 맞이했다······.

END.

< Epilogue. 유성연. > 끝

(102)

작가의 말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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