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101화 (101/111)

< 본 게임 (3) >

우주가 펼쳐졌다. 눈을 감았던 성연은 천천히 그 광오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시스템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저들이 그 초월적 존재들일 것이다. 아니, 그런 추측이 없더라도 저 존재들이 신화에나 등장할 법한 위대한 이들이란 것은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공간을 채우는 존재감은 인간이나, 그 밖의 생물이 지닐만한 것이 아니었다.

성연은 천천히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들 중 누군가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유성연. 당신이 이 게임의 주인공이었다는 건 누구도 의심치 않을 겁니다. 모든 이벤트에서 우승하고 다섯 번째도 아닌, 네 번째에서 게임을 끝장내다니? 우리가 준비한 플롯의 절반도 도달하지 못했어요. 조기 완결인 셈이지요. 그럼에도 더 없이 만족스러워요. 정말이지 아주······.】

성연은 그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없었다. 흐릿한 안개 같은 게 거기 있을 뿐이었다.

"주최측?"

【아, 우리끼린 운영진이라고 부릅니다. 당신도 편하게 부르셔도 괜찮습니다. 우린 모두 당신의 팬이거든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TV에서나 보던 연예인께서 친히 찾아오신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지요.】

"그렇습니까?"

【예.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그럼 바로 소원을 비시겠습니까? 생각할 시간은 얼마든지 드리지요. 그 동안 달려오셨으니 충분히 휴식을 취하셔도 괜찮고요.】

"휴식? 필요없습니다."

성연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휴식. 지금껏 달려온 보상으로 달콤한 잠을 청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성연은 아직은 쉴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세상은 망가졌고 모두가 자신이 어떤 소망을 빌지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시간 흐름이 다르다는 말도 믿을 수 없었다. 성연이 보기에 이들은 인류의 안녕을 바라는 신들 따위가 아니다. 성연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혹시 그 질문도 소원에 해당됩니까?"

【질문 몇 개 정도는 정중히 대답해 드리지요. 재미난 게임을 보여주신 대가로.】

"당신들은 뭡니까? 그리고 이 본 게임이란 도대체?"

【본 게임······쉽게 말하면 지루한 세상에서 벌인 일종의 유흥입니다. 서로 행복함만 나누고 다툼과 분쟁 따위는 적은 세상. 재산과 정치로 서로를 깎아내리며 물리적인 다툼 따위는 없는 세상. 최악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런 세상들을 조금 더 보기 좋게 만드는 존재들입니다. 말 그대로 조회수 많이 나오고 호평 받을만한 게임 만드는 운영진들이지요.】

그 설명을 듣던 성연이 무심코 이를 악물었다.

조회수, 호평.

그게 세상을 망가뜨리면서 할 소리인가?

이들은 인류나 그들이 살고 있는 배경을 정말 게임 취급 하고 있었다.

성연은 그 순간 소원으로 너희들이 다 뒈져버렸으면 좋겠다느니, 소멸해버리느니하는 말을 내뱉으려다 겨우 참았다. 의미가 없었던 까닭이다. 일종의 초월자나 다름없는 이들은 그런 소멸을 기꺼이 받아들일 지 모른다. 치열하게 생존을 원했다면 이런 곳에 틀어박혀 인간들이 처절히 발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낄낄거리고 있을 리 없다.

저런 이들에겐 죽음이나 소멸이 심판이 되지 않을 것이다. 더해서, 소원으로 그런 걸 빈다면 남겨진 세상은? 엉망진창이 된 세상에 남겨져 처참히 살아가야 할 사람들은?

가만히 볼 수 없다. 성연은 모두를 구하고자 했다.

정말, 모두를······.

【유성연. 소원을 비시겠습니까? 아니면 질문을 몇 개 더 하시겠습니까?】

"아니, 바로 빌죠."

【좋습니다. 관중들이 질질 끄는 걸 싫어한다는 사실은 어찌 아시고? 역시 타고난 인재시군요. 저들이 뭘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고 계신······.】

성연은 그 말이 칭찬인지, 비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최종적인 목적을 담아 말했다.

뚜렷한 몸뚱이를 갖고 있지 않은 저 추상적 존재들을 노려보면서.

"신이 되게 해주십시오."

【신? 어떤 신을 말하는 겁니까? 우리와 동등한 힘? 아니면, 당신네들 신화에 등장하는 구름 위에 살며 군림하는 신? 그 신은 동양 신화의 존재입니까, 아니면 서양 신화의 존재입니까?】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 아닙니다."

【그럼 어떤?】

"당신들보다 우월한 힘을 가진 절대자. 세계 하나에 완전히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으며,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그러니까, 당신들이 벌인 본 게임보다 극적인 일들을 벌일 수 있는 초월자. 그런 존재가 되길 원합니다."

그 말이 쏟아진 직후, 저쪽의 반응이 명확히 갈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이 얽혔다.

성연은 그 분위기를 읽었다.

이걸 들어주어도 괜찮은 게 맞느냐?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들 중 하나가 나서서 말했다.

【정말 그 소원을 원하십니까?】

"안됩니까?"

【아뇨. 본 게임의 상품인 소원은 절대적이므로 저희 권한을 넘어서는 것도 당연히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건 우주의 법칙이요, 섭리이기 때문에······하지만 후회하실텐데요.】

"후회라니요?"

【우리와 같은 존재들이 여기 틀어박혀 인간들 사는 것 보며 즐거워하는 것. 솔직히 정상적이진 않지요? 게임이니, 운영진이니 해가며 필멸자들 싸우는 것 되풀이시켜 구경하고 있으니······당신도 분명 후회할 겁니다. 절대자란 자리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 힘이 독보적이며 초월적일수록 더더욱.】

그 말을 듣던 성연은 말 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조금 간격을 둔 뒤에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그 대답은 곧 최종 결정이 되었다.

성연이 빈 소원이 실행되었다. 신이 되고 싶다는 소망.

그리하여 성연의 내면부터 강렬한 힘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힘의 기반은 네크로맨서 능력이 되었다. 죽은 것들을 일으키는 힘은 곧 초월적인 수준으로 상승했다. 신화에 등장하는 사신이나, 지하 세계의 왕. 하데스도 이런 권능을 가지진 못했을 것이다.

뿌연 안개로만 보이던 본 게임의 '주최측'이 점점 뚜렷한 형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동등한 위치에 섰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연의 성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성연보다 작아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성연의 존재감이 그들을 찍어누를 정도로 거대해진 것이다. 성연은 그들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주최측이 말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소원 성취가 끝났으니 이제 세상을 청소하겠습니다.】

"청소?"

【예. 등장인물들 정리하고 시간 되감아서 다시 시작해야지요. 더 흥미로운 플롯과 에피소드들로······.】

"미안하지만 그건 안되겠는데."

【그게 무슨?】

"소유권, 주장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성연은 더 이상 존칭을 하지 않았다.

그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소원 성취로 하여금 성장한 성연은 자신의 변화를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의 내면에 흘러넘치는 힘을 어찌 사용해야 하는지, 그 힘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알았다. 이 절대자에 가까운 힘이 저 주최측들이 가진 권능을 아득히 넘어선다는 사실도 함께.

성연은 손을 내뻗었다. 그것으로 주최측 여럿이 허공으로 붙들려 떠올랐다.

"꺼져. 역겨운 것들아. 게임이 하고 싶나? 그럼 너희들끼리 해. 서로 칼과 방패 쥐여주고 마지막까지 누가 살아남는지 판돈 걸고 놀라고. 괜한 것들 휘말리게 하지말고······."

***

성연은 세상을 내려보았다. 고칠 부분은 지나치게 많았다.

우선, 성연은 새로이 거듭난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모든 죽은 것들을 일으키는 힘. 크게 아울러 보자면 극적으로 변화하진 않았지만, 그 일으킬 수 있는 것들에 제한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네크로맨서 능력은 신적인 힘이 되었다.

'시간은 앞으로만 나아간다. 그러니까, 초 단위로 시간의 일부는 계속 죽는 것을 반복하는 것과 다름없다. 죽은 시간을 살린다고 생각하면······곧 시간을 되감을 수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터무니 없는 발상이다. 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바란 것으로 그리 되었다. 세상이 거꾸로 감기기 시작했다.

그때 레베카가 하늘을 올려다 보는 표정이 보였다. 비참해보였다.

이런 건 바라지 않았다는 듯한······벗어나고 싶다는 듯한 표정.

성연은 레베카에게 말을 걸었다. 신적인 음성이 쏟아졌다.

【시간 되감는 소원 안 빌었으니 걱정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그 순간 레베카가 눈을 크게 떴다.

뒤이어 그녀가 소리질렀다.

"이게 뭔데? 시간 되감는 소원 안 빌었으면 이게 뭐야? 신선이라도 된거야? 그래서 얻은 힘으로 세상 고치겠답시고 이러는거고?"

【그래. 잘 알고 있네.】

"무슨 권리로! 난 원래대로 돌아간 세상 원하지 않거든? 시간 되감기면 새로 태어난 아이들 모두 사라지잖아. 그건 죽음 아니야? 더해서, 그 동안 함께 추억 쌓고 친구된 사람들은? 그 추억 모두 사라져서 너 잊어버리면 죽음보다 더 비참한 결과라고. 이게 진짜 네가 원하는 결과 맞아?"

【추억도 있지만 본 게임의 시작 때문에 비극을 겪은 사람들이 더 많지.】

"너, 후회할거야. 이 세상에 너 혼자만 남게 되는 거라고. 태어날 때부터 절대자로 태어났다는 하느님도 아니고, 네가 그 고독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일 년도 못 버틸걸. 죽기보다 더 괴로울 거야······."

【혼자 괴롭고 세상을 이롭게 바꾸는 게 낫지.】

"그게 무슨 소용인데. 대체 그게 뭔······."

레베카의 눈에서 굵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상실감, 슬픔 따위의 여러 감정이 얽혀서 솟은 까닭이었다.

즐겨 읽던 소설 속 주인공이 난데없이 죽어버리거나 배드 엔딩을 겪었을 때도 이런 기분은 느끼지 않았다. 감정을 많이 줘버린 상대,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던 인물을 잃어버린 기분은 처음 느껴봤다. 레베카는 주저앉은 채 울었다. 성연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물었다.

【시간을 되감지 않길 바라나?】

"그래······너 혼자 되는 것도 싫고······지금까지 쌓은 기억들 다, 잃는 것도, 싫어······."

【그럼, 너도 이쪽으로 오겠나?】

"뭐?"

웅장한 목소리가 울렸다. 레베카는 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보았다.

성연의 말이 뒤따랐다.

【진정한 의미로 평화의 여신이 되어보지 않겠냐는 말이다. 그러니까, 되감겨서 살아가는 게 싫으면 여기 와서 함께 세상 고치자고. 개판된 세상 이대로 놔둘 순 없는 노릇인데 시곗바늘 되감는 것에 휘말리는 거 싫다며?】

"······."

【싫나?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으면 나도 어쩔 수 없는데. 내가 혼자 완벽하게 해낼 거란 보장도 없고, 네 말대로 계속 혼자 있으면 진짜 우울증에 빠져서 본 게임 주최측처럼 타락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어. 그러니까, 옆에 한 명쯤 두는 건 괜찮은······.】

"할게."

【뭐?】

"한다구."

울먹이는 목소리를 내뱉던 레베카는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붉어진 눈으로, 갈라진 목소리로 밝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되감기던 세상에서 레베카는 혼자만 벗어났다.

직후, 눈을 감았다 뜬 순간 그 영국인은 더 없이 초월적인 공간에 있었다.

구름 위의 세계.

거기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레베카는 문득 반가운 인물을 찾았다. 흘린 눈물 탓에 화장이 번졌다. 그러나 아무런 상관 않고 레베카가 달렸다. 그 가운데 앉은 인물이 무심한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영국인 대마법사가 그 품에 안겼다.

"유성연!"

< 본 게임 (3) > 끝

(101)

작가의 말

오늘은 한편 더 올라오지 않습니다! ㅠㅠ

이제 완결까지 에피소드 하나가 남았네요.

원래 장편으로 생각했던 소설이라 조금 아쉬운 마음도 있네요.

군대 안에서 차곡차곡 준비해서 다음 작품은 300화 넘는 초장편을 쓰고 싶네요!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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