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100화 (100/111)

< 본 게임 (2) >

"학교를 세우는 건 어때요?"

"학교?"

"네. 유성연 씨가 곧 소원 빌면 어떤 식으로든 세상 바뀔 거잖아요. 던전 공략하면서 보여줬던 모습들 보면 난데없이 세계 멸망이나, 부와 권력 같은 걸 원할 것 같진 않고······평화를 가져오시겠죠.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그렇게 되면 학교를 새로 세우자는 거야?"

"예. 새로 자란 아이들이 망가지는 모습들, 보기 힘들어서요. 잘 배우고 그래서 올바르게 자라났으면 좋겠어요. 나 같은 경험은 절대로 하지 않고······."

그 말을 들으며 이현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의견은 김윤기가 꺼낸 것이다.

그리고 김윤기는 아직 어리다. 아이들이니, 후대 교육을 잘하자는 말을 하기엔 그 나이가 십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현우는 김윤기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

김윤기는 회사의 초창기 멤버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현우는 회사의 초창기 멤버들과 가족이나 다름없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저 미성년자가 겪은 일들을 알고 있다.

"어린 애들이 살아남을 걱정은 하지 않게. 새로운 걸 배우고, 배우는 게 귀찮다 투덜대고, 서로 싸우기도 하면서······그 나이 또래 모습 되찾도록······."

격변이 벌어졌을 때 김윤기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학교에 비상이 떨어졌을 때, 그 학생들과 선생들은 그 비상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평소 지진 대피 훈련도 느슨하게 진행하므로 이번에도 학생들은 서로 장난을 치며 움직였다. 건물벽이 무너지고 친구들 몇이 산채로 씹어먹히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패닉이 내렸다. 그 패닉 속에서 내려진 명령은 일단 대기하라는 것이었다. 공포에 빠진 학생들은 그 순간 말 잘 듣는 아이들이 되었다. 평소 너스레를 떨고 어른인 척 해도 그들은 세상물정 모르는 십대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벌벌 떨며 엄마가 보고 싶다 울던 아이들은 교실 안에 앉은 채 먹잇감이 되었다. 무능한 윗선들을 알고 있는 교직원들 몇은 미리 도망쳤고, 나름의 신념을 갖고 있는 선생들만 마지막까지 남아 함께 죽었다.

그 학교에서 살아남은 건 김윤기 뿐이었다. 포인트를 많이 투자하지 않았음에도 초반부터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던 능력 덕분에. 사춘기를 겪으며 자신이 만들었던 캐릭터들을 현실에 불러온 소년은 교실 구석에 틀어박힌 채 벌벌 떨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오늘 급식 메뉴가 뭐냐 묻고, 시간표를 묻던 아이들. 우유 당번을 함께 하던 아이와 매일 까탈스레 굴던 선생님들. 재수 없던 반장. 모두 말 없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삼선 슬리퍼에 핏물이 끈적하게 붙었다. 지독한 피냄새 속에서 김윤기는 혼자 살아남았다.

그 사건은 각성자들이 존재하기 전, 대한민국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며 벌어졌던 참사보다 심각했다. 생존자 한 명.

그 마지막 생존자는 다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랬다. 절대로.

김윤기의 심정을 이해하는 이현우는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야지. 세상이 다시 평화로워지려면 아이들이 잘 자라야지. 당연한 말이야."

그리고 그런 대화가 끝난 후, 네 번째 이벤트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과연 모두가 예상했듯 우승자는 유성연이 되었다.

더해서, 본 게임의 우승자가 등장했다는 알림도 함께 떠올랐다.

***

『당신은 이 본 게임에서 우승했습니다.』

『위대한 업적입니다.』

『총 획득 포인트가 백만 포인트를 넘습니다.』

『잔여 포인트를 투자하시겠습니까?』

성연은 떠오른 창들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러곤 마지막으로 떠오른 문장을 본 뒤 그러겠노라 말했다. 곧 온라인 게임 인터페이스처럼 생긴 투명한 창이 등장했다. 스킬 포인트를 투자하듯, 나머지 포인트를 모조리 투자하려 했다.

그러다 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보았다.

초월자 부문, 신성.

마운틴을 잡으며 새로이 얻었다 떠올랐던 부분이었다. 그 문장을 읽으며 성연은 거기에 투자하기로 했다. 나머지 포인트가 그 안에 쏟아졌다.

포인트가 하나씩 빠져나갔고, 그와 동시에 성연은 몸 속 어딘가에 뭔가 차오르는 충족감을 느꼈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뒤, 눈을 떴을 때 성연은 새로운 세계에 와 있었다.

『신성은 절대자로 거듭날 수 있는 힘입니다.』

『당신은 필멸자로 달성할 수 없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위대한 업적이란 마땅히 숭배받을 업적이요, 숭배받는 것은 신이 될 수 있는 조건입니다.』

깨어난 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누구도 손대지 않은 도화지처럼 온통 순백이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들리는 소리나 맡을 수 있는 냄새도 없었다. 완전한 무(無)의 세계라 여겨도 좋을 정도였다.

주변에 즐비하던 언데드 군단은 사라졌고, 주변에서 생명 반응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세계에 있는 것은 오롯이 자신뿐이다. 그것을 깨달은 성연은 제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와 함께 성연의 눈에 새로운 풍경이 보였다.

울창한 숲. 숲 가운데 장작을 땔감 삼아 타오르는 불꽃. 넘쳐 흐르는 강물······.

성연은 그 풍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빨리감기 버튼을 누른 듯 그 광경들이 세차게 스쳐지나갔다.

울창하던 숲의 나무가 시들었다. 타오르던 불꽃은 잿더미가 되어 꺼졌다. 흐르던 강물은 완전히 말라버렸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성연은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꽂히는 기분을 느꼈다. 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지금 이 순간 성연은 속세의 모든 것을 잊었다. 그러곤, 할 수 있게 된 일을 했다.

시들어버린 나무들. 잿더미가 된 불씨. 말라버린 강물.

모두 세월에 의한 풍화이다. 활동력을 잃고 정지한 것들. 그러니까,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게 정지된 것. 인류가 '죽음'이라 명명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네크로맨서는 모든 죽은 것들을 일으킬 수 있다. 정말 무엇이든지.

성연은 손을 뻗었다.

그것으로 시들었던 숲이 다시 울창해졌다. 뒤이어 불씨가 살아났다. 마른 강에 물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죽었던 것들이 생명을 되찾은 것이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성연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각성 능력이라 부르기엔 지나치게 경이로운 현상들이다. 성연은 방금 자신이 벌인 현상이 밖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요, 꿈에 가까운 이 괴이한 백색 공간에서만 가능한 일이란 걸 깨달았다.

이를테면, 꿈 속에선 평범한 사람도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절대적, 초월적인 힘.'

그 순간 성연은 뭔가 깨달았다.

이 모든 게임의 종착점에 있는 존재들은 분명히 말했다. 어떤 것이든 이뤄주겠다고. 그러니까, 무슨 소원이든 이뤄주겠다고.

그 소원에 제한이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성연이 떠올리는 그 소원도 분명 이뤄줄 것이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소원. 더해서, 이 세상에 끔찍한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게 막을 수 있는 소망을 말이다.

그 순간 펼쳐졌던 백색 공간이 사라졌다. 뒤이어 눈을 감았다 뜨자 까만 풍경이 펼쳐졌다.

우주를 연상케하는 하염없는 어둠 속에서 하얀 글귀가 새겨졌다.

『본 게임의 우승 상품을 수령키 위한 장소로 이동합니다.』

직후, 성연은 거인들을 맞이했다.

그 크기를 추정할 수 없는 거인들. 모든 곳에서 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언뜻 보아도 초월적인 무언가에 해당될 인물들이다. 성연은 녀석들을 올려다 보았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국인 유성연? 반갑습니다. 일단, 우리가 만든 게임을 재미나게 플레이 해주시고 멋진 광경들을 연출해주신 것에 더없는 감사를······.】

***

레베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성연.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있던 이가 사라졌다.

그 현상에 그 영국인은 마침내 우승자가 결정되었으며, 그 우승자가 상품을 수령받기 위해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와 함께 불안한 생각들이 밀려왔다.

'소원으로 이상한 걸 빈 건 아니겠지? 뭐, 중국 소설에 등장하는 것처럼 늙은이들이 하늘로 승천하듯 천국으로 보내달라는 둥의······.'

그런 소원을 빌어서 사라진 것이 아니길 바랬다.

레베카는 성연이 여기 남아 자신과 함께 하며 노력의 보상을 받길 바랬다.

얼마나 수고했는지 알고 있었다. 얼마나 자신을 깎아가며 끝에 다다랐는지도 알았다.

그래서 레베카가 지금 성연에게 품은 감정은 단순히 소설 주인공을 좋아하는, 과몰입 정도의 감정을 완전히 넘어섰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네크로맨서가 고심 끝에 자신의 안녕을 위한 소원을 빌었기를.

그 소원에 스스로의 부귀영화도 포함되어서, 다시 여기로 돌아와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기를 빌었다. 그리 속으로 중얼거리던 와중 레베카는 문득 이 생존자 캠프의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는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련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모두가 유성연이 마침내 소원을 빌기 위해 떠났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생존자 캠프의 일원들 대부분은 그 유성연이 어떤 인물인지 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그 대단한 기회를 내버릴 위인이 아니란 것을. 마땅히 모두를 위해서 일생일대의 기회를 사용할 것임을 안다.

그렇게 오랫동안 적막이 흐르던 때였다.

"어, 저기······."

그들은 문득 생존자 캠프의 바깥을 가리켰다. 즐비하던 괴수들의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모종의 공격에 의해 죽어나가는 게 아니라 햇빛에 노출된 뱀파이어들이 그렇듯, 녹아서 흙으로 돌아갔다. 그 과정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더해서 뻥 뚫렸던 구멍들이 메워졌다. 세상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여기 있는 이들은 그 네크로맨서가 마침내 고결한 소원을 빌었음을 알아챘다. 아마도, 이 세상에 내린 모든 재난을 없애달라는 둥의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평화를 위해서. 그 모습을 보며 레베카는 나름 나쁘지 않은 소원이라고 생각했다.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자신이 간섭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일어나기 시작한 현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뭔?"

공중에 뜬 태양이 거꾸로 움직였다. 아래로 지는 것이 아니라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시간이 되감기는 것도 아니고?

그리 생각하던 이들은 문득 이제 목소리를 내뱉을 수 없게 되었음을 알아챘다.

더해서, 누군가 방금 내뱉었던 말이 반복되었다.

"······기저, 어."

그 현상에 레베카는 경악했다.

설마 시간을 되감는 소원을 빈 것인가? 대체 왜?

그 자신만만한 네크로맨서는 설마 과거로 돌아가서 실수 없이 모두를 구하고자 한 것인가?

안 된다. 그건 너무나 가혹하다. 그 네크로맨서는 정신적으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더해서 레베카는 지금껏 쌓은 기억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모든 걸 잊는다면 자신은 유성연을 어찌 대하게 될 것인가? 모르겠다. 그래서 무서웠다.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으니까.

대체 왜 이런 소원을 빈걸까. 이건 아니다.

유성연은 마땅히 노력한 보상을 받아야 하며 휴식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 네크로맨서가 다시 치열한 삶을 되풀이하는 건 옳지 않다······.

그러던 와중, 레베카는 문득 자신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리는 걸 깨달았다.

익숙한 목소리. 그러나 발하는 존재감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음성.

인간의 것이라 생각할 수 없는, 신화에서 으레 묘사하는 신성함이나 위대함이 한껏 담긴.

그러니까, 신의 목소리······.

【시간 되감는 소원 안 빌었으니 걱정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 본 게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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