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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97화 (97/111)

< 죽음의 군주 유성연 (1) >

"WHAT······."

내려앉은 침묵 위로 신음에 가까운 중얼거림이 얹혔다. 오만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던 로버트는 눈을 크게 떴다. 커다란. 아주 커다란 무언가가 있었다. 예전에 대한민국에서 본 것보다 훨씬 몸집이 거대해진······정말 신화적인 존재에 가까워진 괴물.

로버트는 멍청하게 마운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녀석이 몸을 웅크렸다. 그러곤 일련의 준비 동작을 마친 후 뛰어올랐다. 그 속도는 로버트와 비교하여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잠깐 멍하니 서 있던 로버트는 그제서야 위험을 직감했다. 허리를 비틀어 후방으로 비행했다. 그러나 당황에 휩싸인 탓에 반응이 다소 늦었다. 마운틴은 어느새 로버트의 근처까지 도달했다. 그 거대한 생물체는 허공을 한 번 밟은 뒤, 각도를 틀어 도망치는 슈퍼맨의 몸뚱이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그 주먹질은 일종의 빛살에 가까웠다. 삼백 미터 몸뚱이에서 쏘아지는 벼락. 신의 심판에 가까운 무력.

로버트의 몸이 팍 꺾이며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흙먼지가 폭발했다. 그 연기 속에서 피와 살점이 흩날렸다. 몇 번을 퉁기며 날아간 로버트 데이비스는 힘겹게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이게 뭔 말도 안되는······.'

아득한 수준의 힘이다. 로버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극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보이는 모든 것이 여러 개로 나뉘었다.

그 중국인이 사용한 능력이 여전히 남아서? 아니었다.

순전히 방금의 충격 때문이었다. 로버트가 제 얼굴에 손을 얹었다. 귀와 콧구멍에서 끈적한 피가 흘렀다. 지나치게 강력했다.

이럴수가 있나? 그때에 비하여 자신은 한참이나 더 발전했는데.

로버트가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거대한 산이 돌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슈퍼맨이 땅을 박차고 비행했다. 이번엔 후방이 아닌 정면으로.

"FUC - - K!"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다. 그 함성 직후 굉음이 울렸다. 이번엔 일방적인 공격이 아니었다. 로버트의 힘이 온전히 실린 공격이 마운틴의 몸뚱이를 때렸다. 소리만큼이나 강력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력을 자랑하는 슈퍼맨은 한 자리에서 싸우지 않았다. 수시로 위치를 바꾸며 거대한 괴수라면 으레 약점이 되는 부분들을 두드렸다. 물론 원래도 강인했으며 성연의 능력으로 한층 강화된 껍질은 그런 공격에 떨어지지 않았다.

지상 최강의 괴수, 세계 최강의 초인.

둘의 전투가 동반하는 현상들은 가히 재난에 가까웠다. 펼쳐진 땅에 상처를 새겨넣고 폭풍을 불러오는 공방. 첫 공격을 제외하면 서로 유의미한 피해는 입지 않았다.

육 초 정도의 주고받음을 끝낸 로버트는 육탄전으로 저 마운틴을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숟가락으로 흙을 파내서 산을 옮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다른 무기를 쓸 차례이다. 로버트는 뒤로 슬쩍 비행한 뒤 몸을 기울였다. 그러곤 제 화력을 모조리 쏟아부어 초고열 광선을 날렸다. 포인트를 한껏 투자해 그 화력이 극단적으로 향상된 살육 광선.

"- - - !"

붉은 섬광이 번쩍였다. 노리는 건 마운틴의 다리였다. 과연 포인트를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 한순간 껍질이 녹아내렸다. 그 직후, 무릎이 분질러졌다. 삼백 미터라는 아득한 몸집과 중량을 지탱하는 기둥이 무너진 것이다. 그리고 그 크기가 클수록 기둥이 무너졌을 때 입는 피해는 심각하다. 마운틴이 휘청거리며 팔을 휘적였다. 로버트는 그 모습을 보며 신이 자신에게 내려주신 힘이 마침내 지상 최강의 괴수를 상대할만큼 발전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변수는 예상치도 못한 채 말이다.

로버트는 저 마운틴이 언데드라는 사실에 집중하지 않았다. 더해서, 그 언데드를 부리는 네크로맨서가 성연임에 집중하지도 않았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능력으로 중앙각성자교도소에서 탈옥한 바 있으며, 각종 전투 상황에 맞춰 언데드를 다양한 방면으로 변이시킬 수 있는 유일한 네크로맨서라는 사실을 말이다.

"워어······."

로버트는 뻗어오는 마운틴의 팔을 바라보며 거리를 쟀다. 여기까지 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안일한 생각이었다. 무언가 뜯겨지는 소리와 함께 관절이 길게 늘어졌다. 생물체의 몸뚱이가 아니라 기계 장치의 스프링이 늘어나듯이. 갈고리처럼 휘어진 손가락 끝에 로버트의 몸이 걸렸다. 우악스런 손아귀 안쪽으로 슈퍼맨이 잡혔다.

마운틴은 망설임 없이 그 손에 힘을 주었다. 끔찍하리만치 강력한 압력이다. 손가락 사이로 핏물이 튀었다. 로버트의 눈에 핏발이 섰다. 고통에 젖은 비명이 쏟아졌다.

붉게 물든 슈퍼맨의 눈에서 초고열 광선이 쏟아졌다. 최대한으로 끌어낸 위력의 광선이 굵은 손목을 절단했다. 그제서야 로버트는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몸은 이미 엉망이 되었다. 로버트는 한쪽 다리와 팔이 완전히 망가졌음을 깨달았다. 덜렁거리며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로버트가 마운틴을 노려보았다. 그러면서 포인트로 회복약을 구매했다. 완전 회복을 선사하는 그 회복약을 쭉 들이킨 뒤, 로버트는 입가를 닦으며 다시 일어났다.

"SHIT······."

마운틴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기껏 새겨놓은 상처들은 그 일들이 없었던 일이라고 말하는 듯 사라져 있었다. 로버트는 그 네크로맨서의 언데드 회복 능력이 이 삼백 미터에 달하는 생물체에게도 적용되었다는 사실에 눈살을 찌푸렸다. 적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리고 맞붙어 본 결과, 아직 자신의 힘은 저 신적인 생물에게 맞서기엔 부족하다.

부족하다면 답은 간단하다. 도망친다. 언데드나 괴수들은 성장 따윈 할 수 없으므로, 시간을 들여 힘을 더 키워오면 된다. 인간의 가장 강력한 무기 아니던가. 치욕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 이건 전략적 후퇴요, 훗날을 위한 대비이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으면 마운틴은 물론이고 그 네크로맨서조차도 쓸어버릴 것이다.

그때였다. 로버트의 발에 냉기가 덮혔다. 싸늘한 기운.

마법이다. 로버트가 마운틴 너머, 먼 곳을 바라보았다.

레베카가 있었다. 그리고 절뚝이며 숨을 헐떡이는 유성연도 함께.

'누가 봐도 환자에 가까운······회복이 되지 않은 모습······.'

그 모습을 본 순간 로버트의 머릿속에서 후퇴라는 결정이 번복되었다. 저런 상태라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마운틴이 호위한다 한들, 잠깐의 틈만 있으면 초고열 광선으로 레베카와 유성연을 동시에 태워버릴 수 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로버트 데이비스는 이제 회유책이나 협상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모두 자신의 거름이 될 제물이었다.

저 삼백 미터에 달하는 생물을 죽이긴 어려우나,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네크로맨서라면 지나치게 쉽다. 그리고 네크로맨서를 죽이면 저 생물도 자연스레 무너져 내릴 것이다. 판단은 짧았다. 후퇴하려던 로버트가 정면을 향해 현란한 궤도를 그리며 비행했다.

마운틴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에 더해서 저 네크로맨서가 자신의 의도가 뭔지 파악하지 못하게 하려고. 마운틴은 로버트가 마음껏 날고 있음에도 제지하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팔만 대충 휘저을 뿐이다. 그 모습을 보며 로버트는 자신의 속력이 원래보다 더 빨라졌나, 그래서 눈으로 쫓기도 힘든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였다. 신나게 날아다니던 로버트의 몸이 아래로 꺾였다. 강철 같은 몸뚱이를 뚫고 강렬한 충격파가 들어왔다. 아까보다도 극심한 통증이다. 허리부터 시작해 전신으로 퍼지는 격통. 로버트가 바닥에 내리꽂혔다. 피가 울컥 쏟아졌다.

그 미국인은 천천히 고개를 올렸다. 유성연의 뒤편엔 언데드가 하나 더 있었다. 마운틴에 비하면 한참 작은, 그러나 충분히 거대한 몸집을 가진 놈······.

두 거대한 생물체의 그림자가 겹쳐 드리워졌다. 지나치게 어두웠다. 태양빛 대신 거기 깔린 어둠은 마치 죽음이 내린 것 같았다. 로버트는 고통에 젖은 눈으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자신의 몸뚱이가 왜 순식간에 망가졌는지 아직도 알지 못했다······.

***

"미쳤어? 너 지금 정상 아니야. 제대로 반응도 못할거고, 보이는 순간 죽는다고."

"알아."

"그런데 왜? 자살이라도 하려는 거야?"

"내가 안 가면 조금이라도 위험해지는 즉시 놈이 도망칠테니까."

"도망치라고 해! 그리고 더 회복해서 싸우면 되잖아. 네 몸이 정상일 때."

"지금 잡아야 해. 한 번 겁 먹은 놈은 절대로 기회를 주지 않을거다. 지독하게 센 힘에 어울리지 않게, 겁이 많은 놈이야······한 번 대한민국에서 쓴맛을 봤다고 이 주변은 절대로 얼씬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깨어난 즉시 성연은 휘청이며 일어섰다. 그러곤 우선 마운틴을 전장으로 보냈다. 그 과정에서 일부러 힘조절을 하도록 조정했다. 로버트를 죽이기보단 시선을 돌려 아군의 피해를 막는 방향으로. 그리고 급격한 힘의 차이를 느껴 곧장 도망치지 않도록. 적당하게 좌절감을 느끼면서도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하여 마침내 초췌해진 자신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후퇴하지 않고 곧장 달려들도록.

생전에 영리했던만큼 마운틴은 그 명령을 충실히 받들었다. 그 신화적인 전투를 본 인물들 중 누구도 마운틴이 힘조절을 해주고 있으며, 진짜 무력을 꺼내들시 만신창이가 된 로버트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리란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성연은 레베카의 부축을 받으며 대치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도착했다.

상황은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안혜지는 땀을 뻘뻘 흘리며 회복약을 마시는 중이고, 이현우는 일사분란하게 뭔가 명령하고 있다. 그 둘과 눈을 마주쳤다. 말을 나눌 필요는 없었다. 눈빛을 교차한 것만으로 그들은 성연의 속내를 알아챘다. 선수 교체. 이제는 자신이 맡겠다는 뜻을.

성연은 일부러 반병신처럼 걸으며 로버트의 눈길을 잡았다. 눈에 두려움이 섞여있던 슈퍼맨이 도망치려던 자세를 고친 것은 그때였다.

짧은 순간 태도를 바꾼 그 미국인은 즉시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서커스라도 하는건지 화려하기만 하고 비효율적인 궤도를 그리면서. 그 비행을 하며 로버트 데이비스는 할리우드의 슈퍼맨이 으레 하는 한 손은 뻗고, 한 손은 주먹을 쥔 채 허리에 가져다대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노인이 그러고 있는 모습은 봐주기 힘들었다.

그래서 성연은 글러트니에게 명령을 내렸다.

마운틴은 힘의 총량이 지나치게 컸기에 능력의 융합과 분해가 먹히지 않았다. 그리하여 각종 능력이 결합된 언데드는 글러트니뿐이었다. 글러트니는 손을 위로 뻗은 채 아래로 힘차게 내렸다. 그 과정에서 다케다 유이치의 능력이 적용되었다. 거리를 무시하고 충격을 전하는 힘. 더해서, 강윤식의 능력도 함께 적용되었다. 어떤 방어구를 입었든, 어떤 우월한 육체를 가졌건 그 피해를 온전히 전하는 힘. 두 가지 조합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했다.

비행하던 로버트는 파리채에 맞은 날벌레처럼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꿈틀대는 그 모습도 벌레와 다르지 않았다. 날개 하나가 뜯기고 다리가 구부러져 일어나는 것도 벅차하는, 날벌레······.

로버트가 손을 떨며 무언가를 마셨다. 회복약이었다.

기껏 입힌 부상을 회복하는 것이었지만 성연은 별 상관않았다. 로버트는 도망치기엔 지나치게 깊게 들어왔다. 이젠 끌어들일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성연은 마운틴에게 명령을 내렸다.

총량이 크기에 각성 능력이 결합이 불가능하고, 몸집이 지나치게 커서 다양한 변이를 강행하기 힘든 개체.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감안해도 어떤 생물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지상 최강의 괴수에게.

'힘조절, 그만.'

저 늙은이를 죽여버리란 명령을.

< 죽음의 군주 유성연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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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A.가우디님 후원금 감사합니다!

한편 더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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