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장 이현우 (4) >
요란한 불꽃이 폭발했다. 그 초고열 광선은 단번에 놀라운 숫자를 죽였다.
하기야, 아무리 슈퍼맨이 미쳐버렸다 한들 자기 아군쪽으로 공격을 퍼부을 거란 생각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으리라. 그리하여 난리가 벌어진 가운데 로버트는 몸 안에 흘러들어오는 포인트를 마음껏 느꼈다. 망설임 없이 그 포인트들을 총량 강화요, 테크 트리를 개방하는 것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실시간으로 힘이 강력해지는 이 효과는 일종의 쾌감을 불러왔다. 온라인 게임에서 캐릭터가 레벨업하며 성장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마약과 같은 쾌감······.
로버트는 이럴 때마다 자신이 신에 가까워진다고 느꼈다.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압도적 존재로 군림하는 과정. 한데 모였던 각성자 군단은 열을 무너뜨리며 서로를 밀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든든했던 전력이 적으로 뒤바뀐 순간 찾아온 공포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로버트 데이비스는 수 킬로미터 밖에 있는 적도 곧장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내다. 그러니까,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붉은 선이 몇 번 그어졌고 그 굵은 선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이 녹아내려 죽었다.
우월한 기술로 만든 전차요, 여러 무장을 장비하고 있던 병사들마저 모조리.
비서의 정신파가 다급하게 울렸다.
「로버트! 로버트 뭐하는거에요? 도대체 이게 무슨······.」
"힘이 필요하다! 저쪽에서 날아온 공격이 날 부상입혔어. 알지? 내가 사라지면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는 것. 그러니까, 이건 마땅한 과정이야. 나를 따르고 있는 병사들이 그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그게 뭔······로버트, 당신 대체 어디까지 망가질 셈이에요?」
"망가져? 웃기지도 않는 소리로군. 나를 비난하는건가? 불경한 마음을 품고 있었군. 실망스러워. 정말로 실망스러워. 당장이라도 여기 찾아와 제물 중 하나가 되진 못할 망정."
「로버트. 나는 영웅을 보고 평생을 바친 거에요. 세상에 정의를 불러오고 악인들을 처단할 정의로운 영웅······이게 당신이 바란 정의에요? 이게 그리도 부르짖던 히어로냐구요!」
"닥 - 쳐!"
우렁찬 외침은 그대로 정신파가 되어 비서에게도 전해졌다.
그 광기에 휩싸인 말이 단순히 전투의 흥분 탓에 충동적으로 뱉은 말이 아니요,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란 것도 알아챌 수 있었다. 비서는 이제 완전히 알았다.
로버트는 미쳤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비유했듯, 저 비틀린 영웅은 이제 완전히 하이드에 집어삼켜졌다. 그 결과는 절망을 불러올 것이다. 인류엔 더 없는 비극이 찾아올 것이다. 분명히. 그리하여 비서는 결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과 더는 일할 수 없어요. 로버트, 당신이 파멸을 불러올 거에요. 제물? 그 제물 위에 당신이 마침내 올라서서 어떤 소원을 빌지 모르겠군요. 정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어요. 모두가 죽고 난 시체의 탑 위에서 당신은 당신을 위한 안녕만을 빌겠죠. 세상엔 결국 누구도 남지 않을테고. 오, 신이시여······.」
그것을 끝으로 정신파가 끊겼다. 로버트는 별 상관 않았다.
가장 믿고 있던 비서가 불경한 마음을 가졌다는 건 충격이었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전부 허울뿐인 조력이었다. 이 몸뚱이와 힘만 있으면 어떻게든 세상을 다시 구성할 수 있다.
성경에 나왔듯, 노아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이들은 외면한 채 홀로 방주를 만들어 신의 계시를 따르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지금은 고통스럽더라도 나중엔 모두 뼈저리게 후회할 것이다. 믿지 않았음에, 따르지 않았음에 후회할 것이란 말이다.
"미친 새끼······."
그때 한 여자가 보였다. 눈살을 찌푸린 여인. 아까 방패로 초고열 광선을 튕겨냈던 그 여인이다. 아군이 대부분 도망친 가운데 로버트는 충분한 힘을 얻었다고 확신했다.
이제 모종의 무기는 자신의 살갗을 뚫지 못할 것이다. 로버트 데이비스는 모습을 드러낸 저 여인을 가만 둘 생각이 없었다. 몸을 기우뚱하게 숙인 뒤 비행했다. 정지한 세상 속에서 그 홀로 움직였다. 주먹을 높게 쳐들고 뻗었다.
굉음이 울렸다. 땅에 실금이 새겨졌다. 이번에도 여인은 다치지 않았다.
이를 악문 채 방패를 치켜들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늙었으면 추하게 굴지말고, 곱게 뒈지세요. 씨발······."
방패 뒤편에서 총성이 울렸다. 하지만 그 공격은 로버트에게 위험이 되지 않았다. 로버트의 동체 시력은 탄환을 확인할 수 있을만큼 뛰어나다. 그러니까, 날아드는 탄환들을 고개를 젖혀 피하거나 손가락으로 퉁겨내는 기행은 지나치게 쉬웠다. 로버트는 그렇게 했다.
안혜지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드는 가운데 초월적인 속도를 동반한 손이 뻗어졌다. 길게 묶은 머리채를 잡고 끌어당겼다. 안혜지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품에서 짧은 단검을 꺼내 머리를 잘라냈다. 그 뒤, 뒤로 구르며 다시 한 번 사격을 강행했다. 이번에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로버트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그에 더해서 방패마저 손에서 빼앗았다.
초고열 광선과 주먹질마저 막아낸 방패. 로버트는 그 방패를 쥔 손에 힘을 주었고, 철판은 그대로 우그러졌다. 흙먼지가 나부끼는 가운데 미국인이 천천히 전진했다.
발걸음 한 번에 수 미터를 이동했다. 중간 과정을 편집한 듯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당연하게도 안혜지는 그 놀라운 행동에 반응하지 못했다.
그에 대응한 것은 다른 인물이었다. 기체로 화한 왕웨이. 각성자 군단이 모조리 도망쳤으므로, 다수의 적을 상대할 필요 없이 그 중국인은 한 인물에게 능력을 집중했다.
그리하여 대상을 중독시키고 내면을 파괴하는 힘이 발동되었다. 로버트의 주먹이 드물게도 빗나갔다. 우연? 아니다. 그의 시야가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한 까닭이다.
"이, 원숭이, 새끼가······."
로버트는 눈 앞의 사물들이 모조리 두 개로 나뉘어 보인다는 것을 느꼈다. 그 속에서 로버트 데이비스는 더 없는 분노를 느꼈다. 강력한 마약을 투약했으며 한곳에 집중된 왕웨이의 능력은 과연 슈퍼맨에게도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피를 토하거나, 쓰러지게 만드는 극적인 효과는 없었다. 왕웨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자네, 대체 그 동안 약을 얼마나······."
"SHUT UP!"
우월한 육체를 취하게 만들기 위해선 아주 많은 약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꾸준히 투약을 해온 로버트는 강력한 독성에도 어느 정도의 내성을 갖고 있었다. 로버트가 비틀대며 비행했다. 그 과정에서 하늘을 날지 못하게 하려 안혜지가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로버트는 복싱선수가 으레 하듯, 짧게 끊는 잽을 내질렀다.
빛살에 가까운 잽이었다. 직접 닿지 않았음에도 강렬한 충격파가 발생했고 그것만으로 안혜지의 손과 팔꿈치, 뒤이어 어깨까지 모조리 핏물로 무너졌다. 끔찍한 고통과 함께 안혜지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하여 방해받지 않게 된 로버트는 높게 비행했다. 아주 아주 높게.
탄환이 닿지 않을 높이까지. 아니, 저들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거리까지.
'제물을 바친 덕에 신께서 힘을 주셨다. 저 날파리같은 놈들을 상대할 필요 없이, 시간을 들이면 단번에 이 땅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을만한 강대한 힘······.'
이 좁아터진 대한민국 땅덩어리를 통째로 날릴 셈이었다. 바다 아래 가라앉는다면 그 네크로맨서는 물론이요, 저 거슬리는 것들을 모조리 몰살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기 머무르고 있는 생존자들도 로버트가 죽인 것으로 판정될 것이다. 그러면 운이 좋을시, 그 동안 투자한 포인트보다 많은 포인트를 얻을 것이다. 그 네크로맨서의 것까지 합쳐지면 단번에 우승 상품을 얻게 될 지 모른다. 그러면 이 지긋지긋한 늙은 몸뚱이를 버리고 비로소 신으로 군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낙원. 위대한 낙원의 왕으로!
"안혜지 씨, 막을 수 있어요?"
"방패 없는데······."
"주변에 떨어진 것들 있잖아요!"
"쿨타임이에요. 한 번 완전방어한 뒤엔 시간 필요하다고요. 게다가 팔 한쪽 걸레짝이면 제대로 막지도 못해요. 회장님이 하세요. 회장님, 능력 베껴서 쓸 수 있잖아요."
"진짜 그래야 하나······."
총기 훈련은 꾸준히 했지만 중세 시대의 인물들처럼 방패나 검을 써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물러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 당장 뒈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건 막아야 한다. 푸른 하늘의 색이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저녁이 찾아오며 해가 지는 탓이 아니었다. 태양만큼이나 강렬한 광원이 거기 떠오른 탓이었다. 붉은 광원. 파괴와 죽음을 불러오는 두 번째 태양. 저게 여기 내리꽂힌다면 무사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물론이고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유성연마저도 죽을 것이다.
그건 안 될 일이다.
"방패, 방패라도 좀 줘봐요!"
"내가 도울 일은 없나?"
"도핑 같은 거 안됩니까? 그 약성 능력 잘 사용해서, 내 능력 뻥튀기하고 그런거······."
"그 즉시 자네 뇌가 다 타버리는 건 물론이고 백 년 된 시체처럼 쪼그라들어 죽을텐데?"
"이런······."
현실의 능력은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에 등장하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다.
각성 능력의 주체가 되는 인간의 육체는 강철처럼 강력하지 않다.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몸뚱이를 강화하는 건 당연히 자살행위에 해당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여기 공포에 떨고 있는 이들. 전투를 포기하고 하느님에게 기도를 하고 있는 이 사람들을 어찌 구해야 한단 말인가. 뭐든 해야한다. 이대로는······.
하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다. 머릿속이 캄캄하다. 떠오르는 건 절망뿐이다.
'어떻게······.'
이현우는 이 순간 과거의 어떤 기억이 오버랩되는 것을 느꼈다. 공부 좀 잘하는 게 전부였던 자신, 어느날 들려온 할머니의 교통사고 소식, 단순한 알바로는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와 수술하지 않으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거라던 의사의 목소리.
그때와 비슷한 막막함이다. 그러나 지금은 미래를 포기하고 돈을 벌 수 있는 나쁜 길조차 없다. 정말 이대로 남은 건 죽음밖에 없나······.
그리고 그때였다.
어마어마한 굉음이 일대에 쏟아졌다. 세상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소리다.
거대 전차가 전진할 때나, 군단이 전진해오던 존재감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비어있는 모든 공간에 자신이 있다는 듯 외치는 듯하다. 우렁찬 떨림은 지진에 가깝게 울렸다. 이현우는 문득 그 소리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와 함께 그림자가 일대를 뒤덮었다. 붉은 빛이 하늘을 물들였던 것과 비슷하게, 시커먼 그림자가 일대를 가렸다. 저 멀리서 거뭇한 무언가가 보였다.
지나치게 커다란 몸집이다. 전에 보았던, 기억 속의 그 모습보다도 더 거대한 것 같다.
멀리서 점처럼 보였던 그 무언가는 어느새 산처럼 커졌다. 그리고 이젠 감히 머리를 올려다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보이는 건 하반신으로 추정되는 굵직한 다리뿐이다.
그에 발맞춰 재앙에 가까운 붉은 태양이 광선이 되어 쏟아졌다.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무언가의 머리 부분이 갈라졌다.
그것이 단순히 주둥이를 연 행동에 불과하단 사실을 눈치챈 인물은 많지 않았다.
쩍 벌어진 주둥이가 붉은 광선을 게걸스레 먹어치웠다. 물리법칙 따윈 무시한 일이다. 동반되야 할 충격파나 폭풍 따위는 없었다. 모든 게 없었던 일처럼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멍청한 표정으로 그 거대한 생물체를 바라보았다. 아니, 이젠 숨을 쉬지 않으므로 생물체라 부르지 않는 것이 옳으리라. 삼백 미터에 달하는 그것은 스스로의 생명력이 아닌 오로지 자기 주인이 내리는 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니.
언데드 마운틴.
지상 최강의 언데드가 마침내 등장했다······.
< 회장 이현우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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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성연아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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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asd8954님 후원금 감사합니다!!
주신 후원금 모아서 방금 저녁 시켰어요. 맛있는 저녁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ㅠㅠ
독자님들도 이제 저녁시간이니 맛있는 저녁 드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