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95화 (95/111)

< 회장 이현우 (3) >

왕웨이, 역사상 등장한 두 번째 S급 각성자.

다수전. 정확하게 말하면 이러한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인물이다. 수십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은거했으나 그 실력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감각은 얼마 전 로버트 데이비스에게 패배하며 더욱 날카로이 세워졌다. 왕웨이가 연초에 불을 붙여 길게 빨았다. 더해서 주사기를 하나 꺼냈다.

전투에 앞서 이현우에게 부탁해서 얻어온 것.

멕시코와 남미에 굴러다니는 마약들 중 가장 센 성능을 가진 약물이다.

왕웨이는 전에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괜찮겠어요? 그거 진짜 세요. 웬만한 약쟁이들도 한 번에 보내버린다는데······.'

'그럼 오히려 좋군.'

'부작용 있을지도 몰라요. 약성 관련된 능력이라도 부작용 있을 거 아녜요? 자칫 잘못하면 중독될 수도 있고, 정신 못 차려서 오히려 능력 망가질지도······.'

'걱정할 것 없어. 원래 각성 능력이란 것엔 결함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지만······그런 결함이 없는 각성자들이 딱 다섯 있거든. 나도 그 다섯에 속해있고.'

그 말에 이현우는 입을 다물었었다. 하기야, S급 각성자가 부작용에 휩싸일까 걱정하는 것만큼 시간낭비인 일도 없다. 겉은 평범한 늙은이지만 왕웨이는 엄연한 세계의 최강자들 중하나이다. 그러니까, 저기서 홀로 전장을 휩쓸고 있는 슈퍼맨과 같은 반열에 속한.

왕웨이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와 함께 연기가 뱉어졌고, 그 중국인의 몸이 서서히 뿌옇게 흩어졌다. 각성 능력, 『약성 인간』이라 명명된 힘.

흡수한 약물의 성분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은 물론이요, 몸뚱이를 약성이 담긴 기체로 화하게 만들 수도 있는 능력. 그 힘이 서서히 전장을 덮쳤다.

그 광경을 보며 누군가 외쳤다.

"방독면! 특수 방독면 당장······."

왕웨이가 이쪽 전력에 속했다는 정보는 이미 받았다. 그리하여 협회의 각성자 군단은 제각기 챙겨온 장비를 쓰기 위해 움직였다. 협회에 속한 전문가들이 오랜 연구를 통해 만들어낸 보호장비. 왕웨이의 능력을 파훼하기 위한 장비이다. 하지만 S급 각성자의 능력이란 그리 간단히 파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백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들이 군림할 수 있었던 건 요행이 아니다.

전장을 덮은 연기. 담배 연기보단 안개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풍경 속에서 협회 각성자 군단 서너명이 주저앉으며 쓰러졌다.

어떻게? 분명 방독면을 썼을텐데······.

정답은 간단했다. 지나치게 강력한 독성은 인간의 신체에 닿는 것만으로 그 체내에 퍼진다. 그러니까, 지금 약물을 투여해 전과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독성을 띈 왕웨이의 능력은 적들의 피부에 닿는 것만으로 그들을 중독시켜 주저앉혔다.

그 피부란 고스란히 드러난 맨살이 아니라 옷에 가려진 살도 포함되었다. 천의 조직이 아무리 촘촘하다 한들, 빈틈이 아예 없는 건 불가능하므로. 미세하게 파고든 독성은 곧 전신을 잠식해 그들을 하나씩 쓰러뜨렸다.

그리하여 협회 각성자 군단의 선봉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그 속도는 슈퍼맨이 초고열 광선을 쏴대며 적들을 학살하던 속도와 비교해 뒤쳐지지 않았다.

"······감히."

로버트는 다가오는 그 연기를 바라보았다. 초고열 광선은 봉쇄된 상황이다. 그러니까, 전에 테러를 하던 저 중국인을 제압했듯 모조리 일대를 날려버리는 건 불가능하다. 사용할 수 있는 건 초월적인 몸뚱이뿐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땅을 박차고 달리는 대신, 옅게 도약한 뒤 비행했다. 끔찍한 소음이 터졌다.

번쩍이는 탄환 세례들, 요란하게 주고받는 마법들. 그 사이로 슈퍼맨은 빛살에 가깝게 움직였다. 평범한 이들의 눈엔 보이지도 않았다. 바람이 불었고 그 뒤 소닉붐이 터졌다. 거친 선을 그리며 빛살이 움직였고 그 길 사이에 머무르던 이들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찢겨죽었다. 그 일련의 과정은 소리보다 빨랐다. 방금 전까지 싸우던 이들이 핏물이 되었고 부서지고 무너지는 소리가 그 다음에 울렸다. 경악스러운 풍경이다.

그때 누군가 확성기를 들고 소리쳤다. 이경민. 말 몇 마디로 사람을 옥죄는 능력자.

"아 - 아 - !"

시끄러운 소리가 전장을 뒤엎었다. 로버트 데이비스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았다. 누가 위험인물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전투감각이다. 초고열 광선은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초월적인 몸뚱이는 손에 쥔 모든 것을 최고의 무기로 만들 수 있다. 로버트는 비행하는 와중, 손에 쥔 돌덩이를 하나 던졌다. 땅에 구르던 돌덩이. 이 전장에서 가장 뒤떨어진 구석기는 이 순간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직선을 그리며 날아 목표물에 도달한 구석기는 가히 미사일이며 폭격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었다. 뭔가 말하려던 이경민의 팔뚝이 으스러졌다. 손에 쥐여졌던 확성기가 떨어졌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어떤 난전에서도 우선 순위를 파악하고 움직이는 감각은 그 슈퍼맨을 진정한 의미의 초인으로 만들었다. 그때 뿌연 연기가 로버트를 덮쳤다. 로버트는 단순히 팔 몇 번 휘젓는 것으로 왕웨이를 몰아낼 수 없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직접 맞서는 대신 상공으로 팍 날아올랐다. 아주 높게.

"뭐야, 저 새끼 도망치려는······?"

아니었다. 로버트는 일정 높이에 도달한 즉시 다시 아래로 비행했다. 지구에 존재하는 어떤 물질보다 단단한 강도를 가졌으며, 극한의 속력으로 비행할 수 있는 몸뚱이는 그 자체로 생체 미사일이 되기 마련이다. 화학 반응을 추진력으로 해 쏘아지는 미사일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한 파괴를 동반하는 미사일. 그 사실을 알아챈 몇몇이 괴성을 질렀다.

대피하라거나, 뭔가 쏴서 요격하라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그 대피는 음속을 돌파하는 비행보다 빨리 이어지지 못했다. 빛살처럼 날아온 로버트가 대지를 두드렸다. 중심부터 성대하게 붕괴가 시작되었다. 주변에 있던 이들은 충격파에 휩싸인 것만으로 즉사했다.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신음하는 가운데 로버트는 다시 위로 비행했다.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슈퍼맨이 다시 저 하늘 위에서 등장했다.

"저, 미친 새끼······."

누군가 중얼거렸다. 아군의 죽음 따윈 개의치 않고 뛰어드는 그 모습은 히어로와는 거리가 무척 멀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 중, 로버트가 많은 희생을 일으키며 공격하는 이유가 아군을 죽여서 포인트를 벌어 이 와중에도 강해지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없었다. 로버트 데이비스는 자신만 살아남으면 아군이 몇이나 죽든, 적이 몇이나 죽든 상관없었다. 죽음은 곧 강해질 수 있는 발판으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이 상황에서도 왕웨이는 각성자 군단 여럿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초고열 광선을 쏠 수 없는 로버트와 왕웨이는 서로를 상처입힐 수 없다. 로버트 데이비스 정도의 몸뚱이를 중독시키기 위해선 최소 2초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저 영악한 미국인은 안개 속에서 1초 이상 머무르지 않았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때 안혜지가 중얼거렸다.

"가지가지하네, 씨발 늙은이 새끼······."

"저거 어떻게든 막아야 돼요. 저 새끼 미친 짓 시작한 거 보니까 여기 죄다 박살낼 때까지 반복할 셈인 거 같은데······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몰라요."

"어떻게 막아요? 쟤 싸움도 좆나 잘하는데 머리도 겁나 빠르게 굴려요. 치매 걱정해야 할 나이에 왜 이리 팔팔한 건지, 씹······."

"방법이 있어요. 잘 먹히면 로버트를 여기서 당장 몰아낼 수도 있는······."

안혜지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 몸을 숙인 이현우가 머릿속으로 한 인물을 간절히 떠올렸다.

「인간 백과사전」. 원하는 인물의 목소리며 외모를 흡사하게 모방하는 능력. 포인트 투자로 하여금 대상의 능력 일부마저도 가져올 수 있게 된 힘. 지금 이현우가 연기해야 할 배역은 누구인가.

유성연? 아니다.

그 네크로맨서의 얼굴을 따라하면 슈퍼맨은 분명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그 전진을 막아내는 게 불가능하다면 그 즉시 이현우는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절명할 것이다. 게다가, 전에 한 번 해본 적 있기에 알았다. 그 초월적인 네크로맨서의 각성 능력은 따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거듭된 학습과 아득한 노력으로 일군 힘. 단순히 가져온다고 해서 흉내낼 수 있는 기행이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이현우가 되어야 할 배역은 유성연이 아니다. 뭐든지 뚫는 창. 로버트 데이비스의 살갗을 찢을 수 있으며, 그 능력의 사용법도 어렵지 않은 인물. 그로인해 단번에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마음 편히 하늘을 날지 못 하게 할 수도 있는 인물. 이현우의 얼굴이 서서히 변화했다.

젊은 청년의 얼굴엔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생겨난 주름이 새겨진다. 청년은 중년인이 되었고 그 이목구비는 거친 형태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이현우는 그 인물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중앙각성자교도소, 거기서 처음으로 들었던 그 인물의 목소리.

「유성연?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든 스타께서 안 좋은 꼴을 보셨군.」

원예반 최고의 범털.

브라더후드 2인자. 중국을 손아귀 안에 두었던 권력자. 이제는 세상에 없는 고인.

「나를 찾아오게 될 일이 있을거야. 분명히.」

그 목소리와 함께 이현우는 자신이 강윤식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직후, 이현우는 평소 쓰지 않던 무기를 꺼내들었다. 오로지 위력에만 치중된 특이한 무기. 그 총을 조준한 채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직선을 그린 탄환이 하늘을 날았다.

상공에 머무르던 로버트는 그 탄환을 피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능력을 각성한 이래 로버트 데이비스는 어떤 철탄이나 폭약이 날아와도 가만히 서 있었다.

일종의 자신감이었다. 어떤 현대 무기도 자신을 상처입힐 수 없으리라는 자신감.

그리하여 이 전투에서도 로버트는 모든 공격을 제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로버트는 회전하며 날아온 탄환이 제 피부를 손쉽게 뚫어내는 감각을 느꼈다. 더해서 살점을 부수고 근육을 침범해 들어오려는 감각까지도.

로버트는 그 순간 크게 놀랐다. 몸을 크게 뒤트는 것과 함께 총알의 궤도를 빗겨나게 만들었다.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단순히 팔뚝에 붉은 선이 생겨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입은 타격은 심각했다. 정말이지 아주 심각했다.

'방금 무슨······나이가 들며 노화한 몸뚱이가 드디어 제 구실을 못하게 되었나? 아니면 대한민국 쪽에서 특수한 무기라도 만든 것인가? 아니, 재질 자체는 단순한 철처럼 보였는데. 그렇다면 설마 내 몸뚱이 쪽에 결함이 생긴······.'

로버트는 자신감에 상처를 입었다. 그 미약한 상처는 로버트 데이비스가 전장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과감함을 앗아갔다. 그가 가진 강력한 무기를 무너뜨린 것이다.

그 표정 변화를 보며 이현우는 자신의 의도가 어느정도 맞아떨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조심스레 비행하는 로버트는 이제 이쪽으로 뛰어들지 못할 것이다. 로버트 데이비스가 제 안전을 끔찍이 챙기는 건 유명하다. 그러니까, 다치는 걸 두려워하는 저 늙은이는 전장에서 완전히 이탈할 것이다······.

그러나 이현우의 그 추측은 절반만 맞았다.

이현우는 로버트 데이비스가 예전에 비해 얼마나 망가졌고 타락했는지, 그리하여 어떤 추악한 일이든 벌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다음 순간 벌어진 일은 명백히 이현우의 예상을 벗어난 일이었다.

높은 하늘에서 로버트는 이렇게 생각했다.

'결함이 생긴 몸뚱이는 포인트로 고치면 된다. 신께서 내게 내려주신 기회가 아니던가. 제물이 부족했던 까닭이야. 죄악을 저지르고 뒤떨어진 구인류들을 어서 처단하지 않으면 능력을 앗아가고 늙은이로 죽게 하시겠다는 높으신 뜻······그렇다면 제물을 더 바쳐 원래 가졌던 힘보다 더 강력한 힘을 손에 넣으면 될 일······.'

그 터무니 없는 생각을 마친 후 로버트는 시선을 돌렸다.

까다로운 방패를 쓰는 여자도 없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총탄도 없는 쪽.

그래서 어떤 제한도 존재하지 않는 방향.

로버트 데이비스는 초고열 광선을 쏴 갈겼다.

적군이 아니라, 자신이 끌고 온 아군이 밀집한 곳을 향해서······.

< 회장 이현우 (3) > 끝

(95)

작가의 말

한편 더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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